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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 저격수가 된 최측근들

- ‘배신’이 아니라 촛불혁명의 당연한 귀결
〈김종철 자유언론실천재단 이사장ㆍ동아투위 위원장〉

기사승인 2018.01.22  11:08: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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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7일 청와대 전 총무기획관 김백준과 전 민정2비서관 김진모가 국가정보원으로부터 거액의 특수활동비(특활비)를 받은 혐의로 구속되자 이명박은 엄청난 충격을 받았음이 분명하다. 특히 김백준이 오랜 기간 그의 ‘집사’ 노릇을 했다고 널리 알려져 있었기 때문이다. 이명박은 바로 그날 오후 즉각 기자회견을 가졌다. 그는 “최근 역사 뒤집기와 보복 정치로 대한민국의 근간이 흔들리는 데 대해 참담함을 느낀다”며 “적폐 청산이라는 이름으로 진행되고 있는 검찰 수사에 대해 많은 국민들이 보수를 궤멸시키고 또한 이를 위한 정치 공작이자 노무현 대통령의 죽음에 대한 정치 보복이라고 보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명박은 이런 말도 덧붙였다. “지금 수사를 받고 있는 우리 정부의 공직자들은 모두 국가를 위해 헌신한 사람들이다.”

그러나 1월 20일자 한국일보 1면에 대서특필 된 김희중(이명박 정부 청와대 제1부속실장) 단독인터뷰 기사는 초대형 수소폭탄이나 다름없었다. 기사 제목은 ‘특활비 모든 진실 알고 있는 분은 MB뿐’이었다. 김희중은 이명박이 초선 국회의원이던 1997년에 6급 비서관으로 채용된 뒤 대통령 재임 시절을 포함해 15년 동안 지근거리에서 보좌한 그의 ‘분신’이자 ‘성골집사’ 또는 ‘걸어 다니는 일정표’로 알려진 인물이다. 그는 박근혜의 ‘문고리 3인방’으로 불리던 안봉근, 이재만, 정호성처럼 비선에서 권력을 휘두르지는 않았지만 다스부터 국정원 특활비, 이명박 정부의 블랙리스트, 국정원 등 정부기관의 ‘댓글 사건’에 이르기까지 전모를 샅샅이 파악할 수 있는 자리에서 일하고 있었다.

 

2012년 7월24일 김희중 전 청와대 부속실장이 영장실질심사를 받기 위해 서울 서초동 중앙지방법원으로 출석하고 있다. 사진=노컷뉴스

 

김희중은 한국일보 전화 인터뷰에서 이렇게 밝혔다. “최근 진행되고 있는 ‘국정원 특활비 이명박 청와대 상납 수사’에 관해 검찰에 소환되어 조사를 받으면서 청와대 근무 당시 국정원 직원으로부터 10만 달러를 건네받아 당시 대통령 부인 김윤옥 여사를 수행하는 청와대 제2부속실 행정관에게 전달했다.” 그는 이명박 정부 때인 2012년 솔로몬저축은행으로부터 1억8천만원의 금품을 받은 혐의로 구속된 뒤 대법원에서 징역 1년 3개월의 실형이 확정되어 복역했다. 그러나 김희중은 그 돈을 사적으로 쓰지 않고 보관하고 있었는데도 이명박 임기 말의 사면 대상에서 제외되었다. 그의 아내는 남편이 만기 출소하기 직전에 생활고를 못 이겨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고 한다. 김희중은 국정원 특활비에 관한 진실을 검찰에서 밝힌 것이 “(이명박에 대한) 배신감이나 복수심 때문이 아니라 아이들에게 더 이상 잘못된 모습을 보일 수 없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런 돈 쓰면 안된다고 충언하지 못한 죄가 크다”며 이명박을 향해 준엄하게 경고했다.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이후 국민의 시선이 얼마나 높아졌느냐”, “더 이상 국민들이 용납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 이 전 대통령께서도 국민께 진심으로 사과하고 용서를 구하는 것이 최선이 아닐까?”

이명박을 ‘절대군주처럼 모시던’ 최측근들 가운데 이명박 저격수로 변해버린 이는 김희중 한 사람 만이 아니다. 최근 전 국정원 기획조정실장 김주성은 검찰 조사에서, 김백준에게 첫 번째 특활비 2억원을 전달한 뒤 이명박을 독대해 ‘법적으로 문제가 될 수 있다“고 보고했지만 2년 뒤에 다시 2억원 상납을 요구받았다고 진술했다. 이명박 청와대 대통령실장 류우익도 대통령과 김주성의 청와대 집무실 만남을 조율했다고 검찰 조사에서 인정했다. 2007년 검찰 수사와 이듬해 특검 수사에서 다스는 이명박과 관계가 없다고 진술했던 김성우(다스 전 사장)는 최근 검찰 조사를 받는 과정에서, 11년 전 검찰, 10년 전 특검에서 한 진술은 거짓이었다는 내용의 자수서를 쓰면서 다스의 전신인 대부기공을 설립할 때 이명박에게 보고하고 지시도 받았다고 밝혔다.

 

1월17일 오후 이명박 전 대통령이 서울 강남구 삼성동 사무실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자신과 관련된 검찰의 수사에 대한 입장을 밝히고 있다. 사진=민중의소리

 

김백준과 김진모가 구속되던 날만 해도 급히 기자회견을 열고 문재인 정부를 향해 ‘노무현 전 대통령의 죽음에 대한 정치 보복’이라며 노골적으로 ‘선전포고’를 한 바 있는 이명박은 ‘측근들 중의 최측근’ 김희중이 국정원 특활비 상납에 관해 구체적인 사실을 언론에 폭로했는데도 단 한 마디 반박도 하지 못하고 있다. 그의 이런 모습을 보면서, 1990년대 중반에 뜨거운 인기를 누리던 TV 드라마 <모래시계>의 마지막 대목에서 주인공 최민수가 친구 우석에게 건네던 물음이 떠오른다. “나 지금 떨고 있니?”

이명박의 최측근들이 과거의 ‘지존’을 향해 총부리를 겨누고 실탄을 퍼부어 대는 것은 뒤늦게 되살아난 정의감의 발로라고 볼 수만은 없을 것이다. 단적으로 말하면 촛불혁명이 빚어낸 당연한 귀결이다. 다음과 같은 가정을 해보면 왜 그런지가 저절로 드러나리라고 본다. 만약 박근혜가 지난해 3월 헌재에서 파면당하지 않았다면, 그는 4년 동안 저지른 온갖 국정농단과 헌정 파괴 행위, 부정과 비리에 대해 퇴임 뒤에 사법처리를 당하지 않으려고 19대 대선에서 필사적으로 부정을 획책했을 개연성이 크다. 마치 이명박이 18대 대선에서 그를 위해 그렇게 했듯이. 그러나 박근혜가 대통령직에서 쫓겨난 뒤 집권세력 내부에는 권력의 진공 상태가 빚어져 아무도 대선 부정을 저지를 수가 없었을 것이다. 23차에 걸친 촛불집회에 참여한 시민 1700만여명이 일구어낸 촛불혁명이 두려워서라도 누가 감히 그런 짓을 저지를 수 있었겠는가? 촛불혁명에 힘입어 정권교체가 되지 않았다면, 이명박은 극우보수정권의 비호 아래 호사스런 생활을 계속 자유롭게 누릴 수 있게 되었으리라.

 

지난 2010년 4월12일 오후(현지시간) 이명박 대통령이 핵안보정상회의 참석차 방문한 미국 워싱턴 D.C.에서 모하메드 빈 자이드 알 나흐얀 아랍에미리트(UAE) 아부다비 왕세자와 면담을 하고 있다. ⓒ 연합뉴스

 

이명박이 안고 있는 위법행위와 부정·비리 의혹은 ‘4자방(4대강 사업, 자원외교, 방산비리)’부터 근자에 나라 안팎을 떠들썩하게 만든 UAE와의 비밀군사협약 체결에 이르기까지 ‘대추나무에 연 걸리듯’ 차고도 넘친다. 촛불혁명의 주역들은 물론이고 적폐 청산을 염원하는 주권자들은 검찰이 언제 그를 포토라인에 세울지를 날카롭게 주시하고 있을 것이다.

* 이 글은  <미디어오늘>에 함께 실립니다.

 

관리자 freemediaf@gmail.com

<저작권자 © 자유언론실천재단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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