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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일성 가면’ 사태, 언론의 반성역량을 묻는다

- [서촌 칼럼] 이명재 전 아시아경제 논설위원ㆍ재단 기획편집위원

기사승인 2018.02.14  12:2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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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사회의 성숙도를 판별할 때 그 기준 중의 하나로 어떤 잘못이나 오류에 대해 반성하고 사과하는 역량이 얼마나 제대로 갖춰져 있느냐를 나는 꼽고 싶다. 특히 그 같은 반성역량을 지위와 영향력이 높은 집단이 얼마나 보여주느냐가 그 사회의 수준을 드러내는 한 지표라고 본다. 그리고, 언론이야말로 사회적 역할과 영향력에서 그에 해당되는 집단으로 빼놓아서는 안 되는 부문일 것이다.

최근 벌어진 한 사건이 언론의 반성역량을 가늠해 보게 해 줬다. 평창올림픽 북한응원단의 가면 사진 기사를 둘러싼 일련의 사태다. 이 사진을 놓고 보수(라기보다는 자칭 보수의 극우) 정치인-언론에 의해 파문이 일고 김일성의 얼굴이 아니라는 것이 명백하게 밝혀진 뒤 이 매체(노컷뉴스)는 사과문을 실었다. 그리고 다음날엔가 이 매체와 같은 계열인 방송사의 아침 시사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유명 앵커가 이 사과문을 인용해 트위터를 올렸다.

“논란의 여지가 없는 명백한 오보입니다. 노컷은 실수를 발견한 즉시 삭제하고 공식사과를 드렸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치권이 못 본 척 정파적으로 이용해선 안 될 겁니다. 저 역시 CBS의 한 구성원으로서 뼈아픈 실수에 다시 한 번 사과드립니다. 참으로 아픈 아침입니다.”

 

노컷뉴스는 지난 10일 오후 “김일성 가면 쓰고 응원하는 북한 응원단”이라는 제목으로 북한 응원단이 한 남성 얼굴 가면을 쓰고 손동작을 하는 장면을 사진으로 담아 보도했다. 하지만 통일부의 반박이 이어졌고 11일 '김일성 가면' 보도를 오보라고 인정하고 사과했다. 사진=노컷뉴스 화면 갈무리

 

이 사과를 어떻게 봐야 할까. 이 정도면 제대로 된 사과이며 해명이었을까.

이 앵커의 글에 즉각 반응한 댓글들이 매우 온당한 지적을 하고 있다.

“왜 ‘정치권’인가요? 바른정당 하태경 의원이라고 분명히 적시해야죠.”

‘정치권’이라는 ‘기계적 중립의 단어’를 쓴 것이 무엇보다 질타를 받았다. 그러자 이 앵커는 다시 글을 올려 하태경 의원만이 아닌 다른 야당 의원들 가운데에도 비슷한 주장을 하는 경우가 있기에 좀 더 넓게 지칭했습니다. 오해 없으시기 바랍니다”라는 해명을 재차 올렸다.

그러나 이 같은 해명은 또 다시 “바른정당 xxx 를 비롯한 야당 정치권 이라고 해야 정확한 표현이죠”라는 반박을 샀다.

 

11일 노컷뉴스가 오보임을 인정하고 통일부도 잘못된 추정이라고 했음에도 하태경 바른미래당 의원은 13일 tbs 라디오 '김어준의 뉴스공장'에 나와 종전 자신의 입장을 강조하면서 "가면에 구멍을 뚫은 것은 김여정이 지시한 것"이란 주장을 내놨다. 사진=SBS 화면 갈무리

 

이 매체로서는 이 같은 비판에 억울한 마음이 적잖게 들지도 모르겠다. 문제의 오보가 나가게 된 경위를 들여다보면 고의가 아닌 착오에 의한 단순 실수 성격이 짙은 것이기도 했고, 오보인 것으로 확인되자 신속하게 사과를 한 것에서 자신의 할 바를 다했다고 생각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한 시민이 올린 “노컷뉴스가 가짜뉴스에 함께할 줄은 몰랐지만 신속하게 사과하신 모습에, ‘역시’라는 믿음은 변함이 없습니다”라는 글처럼 ‘기본’을 다했다고 볼 수도 있을 것이다. 특히 입이 다물어지지 않을 정도의 궤변과 의도적 왜곡들을 쏟아내고, 애초부터 사실이냐 아니냐는 중요한 것이 아니어서 사실이 아니라는 게 밝혀지더라도 사과할 의사는 애초부터 없다는 원칙이라도 세운 듯한 일부 언론과 종편의 행태에 오히려 익숙해진 지금의 기괴한 현실에선 이 정도의 사과와 해명이라면 차라리 감사해야 할 일이 아닌가, 라는 생각마저 든다.

그야말로 언론에 대한 기대치의 하향화 현실이라고 할 만하다. 미디어가 시민들의 불신을 받고 있는 현실의 한 단면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할 만하다.

언론의 진짜 사과, 실체적 사과를 보고 싶다. 오류를 단순 인정하는 기계적인 사과에 그치는 게 아닌 오류는 물론 그것이 낳은 결과까지 적극적으로 바로잡으려는 본질적 사과가 필요하다. 오류에 대한 최소한의 인정에 머무는 게 아닌 자신의 실수와 과오로 인해 빚어진 사태를 수습하려는 책임 있는 사과가 필요하다. 두리뭉실한 언어로 사과가 또 다른 논란을 부르지 않는 적확한 언어로써 문제의 핵심을 회피하지 않는 실질적인 사과와 정정이 필요하다.

세월호 참사를 둘러싼 박근혜 정부에 대한 분노는 구조의 실패에 대한 것이 아닌 반성의 실패에 대한 것이었다. 구조능력의 부재에 대한 것이 아니라 반성역량의 부재에 대한 것이었다. 바닥을 모르게 떨어진 우리 언론의 회생, 그러자면 반성역량의 제고가 절실하다.

관리자 freemediaf@gmail.com

<저작권자 © 자유언론실천재단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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