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격변의 시대, 불평등한 한미상호방위조약은 영원한가

- 〈고승우 80년해직언론인협의회 공동대표〉

기사승인 2018.05.24  11:2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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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한미군은 평화협정이 체결된다 해도 한-미 군사동맹에 의해 계속 주둔이 가능한 것으로 알려진 가운데, 문정인 대통령 외교안보특보가 한-미 동맹을 거론만 하면 거센 비판과 논란이 뒤따르고 있다. 그러나 이런 와중에도 주한미군의 주둔 근거인 한-미 상호방위조약의 불평등성이 대단히 심각하다는 점을 거론하는 목소리는 거의 들리지 않는다. 한-미 동맹은 신성불가침의 영역이라는 전통이 한반도의 대지각변동이 가시화되는 시점에서도 여전하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다.

불평등한 한-미 군사관계의 핵심 근거 가운데 하나인 한-미 상호방위조약 4조는 “상호 합의에 의하여 미합중국의 육군, 해군과 공군을 대한민국의 영토 내와 그 부근에 배치하는 권리를 대한민국은 이를 허여하고 미합중국은 이를 수락한다”로 되어 있다. 이 4조의 첫 부분 ‘상호 합의에 의하여’는 한-미 주둔군지위협정에 의한 합의를 가리킨다.

한-미 상호방위조약 4조에 의해 미국 군사력을 한국에 배치하는 것을 미국의 ‘권리’(right)로 규정하면서 한-미 주둔군지위협정(SOFA·소파), 방위비분담특별협정(SMA)도 동일한 취지로 만들어 주한미군에 대한 시설, 구역, 경비를 한국이 부담하게 만들고 있다. 소파의 정식 명칭은 ‘대한민국과 아메리카 합중국 간의 상호방위조약 제4조에 의한 시설과 구역 및 대한민국에서의 합중국 군대의 지위에 관한 협정’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22일 오후(현지시각) 백악관 오벌오피스에서 열린 단독회담에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대화하고 있다. 워싱턴/연합뉴스

 

방위비분담협정은 소파 5조(주한미군에 대한 시설과 구역은 한국이 제공하고 주둔 경비는 미국이 부담하는 내용)의 적용과 관련한 예외적 특별 조치를 담았다. 한-미 상호방위조약 4조가 미국에 크게 기울어진 운동장이듯 이 4조에서 파생된 지위협정, 방위비분담협정도 마찬가지다. 군사동맹에서 미국이 갑이고 한국이 을인 구조가 이 부분에서 고착화된 것으로 볼 수 있다.

여기에 전시작전통제권을 미군 사령관이 행사하게 되면서 미국이 한국의 군사주권을 상당 부분 대행하는 구조가 정착되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한국이 주한미군 주둔비를 100% 부담하라’고 한 발언도 이 조약과 파생 협정에 비춰 놀랄 일은 아니다. 논란이 된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사드)의 한국 배치도 미국이 상호방위조약 4조에 따른 ‘권리’를 행사하는 과정이었고 한국은 ‘허여’할 수밖에 없는 입장이었다고 보인다. 이 조약이 존속되는 한 제2, 제3의 사드 사태를 막을 수 없다는 결론을 피하기 어렵다.

한반도 비핵화 논의 과정에서, 주한미군은 한반도 방위와 함께 동북아 역내 안정을 위해 계속 주둔이 필요하다는 식으로 언급되면서 미군의 한국 주둔이 미국의 ‘권리’로 규정된 것에 대한 전면 수정이 불가피하다. 지금과 같은 격동기에 문제 있는 것은 정상화해야 미래가 안정적이라는 점에서 한-미 동맹을 정상화하기 위한 공론화가 불가피하다.

그런데 한-미 상호방위조약은 무기한 유효하고 단지 당사국이 타 당사국에 폐지를 통고한 뒤 1년 후에 종식시킬 수 있다고 되어 있다. 이 조약의 정상화를 위해서는 두 나라 정부 가운데 하나가 적극적 의사를 밝혀야 하는 것이다. 하지만 미국의 조야는 최근에도 한-미 동맹은 절대 변경 불가라는 입장을 거듭 밝히고 있으니 한국 쪽에서 이를 검토할 수밖에 없는 형편이다.

이 조약은 21세기 지구촌에서 찾아보기 힘든 불평등 조약으로 주권국가 한국의 국가 위상을 훼손하면서 미국의 무리한 동북아 정책 추진의 빌미가 되고 중국이 한-미 동맹의 약한 고리인 한국에 ‘사드 제재’와 같은 행위를 취하는 근거가 된다는 비판을 자초해 그 시정이 시급하다.
한-미 동맹의 정상화 당위성은 미국과 필리핀의 상호방위협정, 미-일 상호방위조약과 비교해 보면 명백해진다. 필리핀, 일본이 미국과 맺은 동맹의 경우 그 기한이 10년으로 되어 있어 기한 만료를 기해 재협상 등의 가능성이 열려 있다. 필리핀, 일본의 경우 미국과 상호방위협정, 조약 이행 등에 대해 수시로 협의할 수 있게 되어 있으나 한-미 상호방위조약에는 그런 조항이 없는 것이 심각한 문제다.

북-미 정상회담이 예정되고 한반도 비핵화를 추구하는 움직임이 활발한 상황을 고려할 때 한국이 한반도의 운전자 역할을 하려면 군사부문 등에서 상당한 정도의 자주적 입지를 확보해야 한다. 동북아 평화와 안정은 관련 당사국이 진정한 자주적 역량을 발휘해 소통, 협력, 합의할 때 가능하다는 것을 부인할 사람은 없다.


* 이글은 한겨레 '왜냐면' 코너에 게재된 글입니다. 원문보기 클릭

 

관리자 freemediaf@gmail.com

<저작권자 © 자유언론실천재단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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