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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승태 게이트’ 특검이 필요하다

- 〈김종철 자유언론실천재단 이사장ㆍ동아투위 위원장〉

기사승인 2018.08.06  12:44: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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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승태 전 대법원장이 6월 1일 오후 경기도 성남시 수정구 자신의 자택 인근에서 대법원장 재임 시절 법원행정처의 ‘(박근혜 청와대와) 재판 거래 의혹' 등 사법행정권 남용 논란에 대해 입장을 발표하고 있다. ⓒ 오마이뉴스 이희훈

 

최근 한국사회에서 가장 뜨거운 쟁점이 된 것은 양승태 대법원장 시기의 사법행정권 농단과 박근혜 정권 말기 국군기무사령부(기무사)의 ‘내란음모’(또는 쿠데타 미수)이다. 후자는 휴가 중인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3일 “기무사를 해편(解編)하고, 과거와 역사적으로 단절된 ‘새로운 사령부’를 창설하라”고 지시함으로써 국민의 우려를 씻을 수 있는 실마리를 찾게 되었다. 그러나 전자는 아직 본격적 수사의 기미조차 보이지 않는다. 김명수 대법원장 체제의 사법부가 주권자들이 납득할 수 없는 법적 조치들을 남발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문건을 통해 드러난 사실들만 보더라도, 양승태를 정점으로 한 사법부의 핵심 법관들이 저지른 위법행위들은 탄핵을 넘어 엄정한 사법처리를 받아야 마땅한 사건이다. 지난 6월 5일 법원행정처가 사법행정권 남용에 관한 문건 68건을 공개한 뒤 안철상 처장은 “특정 언론기관이나 특정 단체에 대한 첩보나 전략 문서 파일은 재판 및 법관의 독립 침해·훼손에 관한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과는 거리가 있어 공개 범위에서 제외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여론의 비판이 거세지자 행정처는 지난달 31일 추가로 196개 문건을 공개했다. 핵심적 내용이 뭉텅이로 삭제되거나 곳곳에 구멍이 뚫려 있기는 했지만 판독 가능한 사실들로만 미루어보더라도 양승태 체제가 저지른 사법농단은 대한민국 헌정사상 초유이자 최대의 ‘사법 파괴 사건’임이 명백하다. 2016년 10월 하순에 터지기 시작한 ‘최순실의 국정농단’이 박근혜 탄핵으로 이어지던 시기 훨씬 전에 양승태의 사법부는 거기 버금가는 위법행위를 서슴없이 자행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 대표적인 사례들을 보기만 하는 것으로도 등골이 오싹해질 지경이다. 신문과 방송에 보도된 기사의 제목들을 선별해 보겠다.

· 무서운 양승태 행정처···‘상고법원’ 청(靑) 뒤로 숨는 연막술까지
· ‘뇌물판사’ 청 관심 돌리려 ‘이석기 선고’ 앞당긴 대법
· 양승태 대법, 파워블로거 등 민간인 SNS도 사찰했다
· 양승태 대법, 청와대에 ‘재판개입 길 터주겠다’ 제안
· 행정처 출신 ‘전관’까지 입법로비에 조직적 동원 의혹
· 대법·조선일보 ‘상고법원’ 거래 의혹 진실규명 촉구 잇따라
· 임종헌, 박근혜 청와대 찾아가 ‘징용소송’ 상의했다
· 징용 피해자는 세상을 떠났고 판사는 해외로 나갔다
· 양승태 대법원, 외교부 간부에 ‘판사 유엔 파견’ 청탁
· 문건 속 사법부 ‘민낯’···국민 내려다본 선출되지 않은 권력
· ‘지역구에 상고법원 지부’ 의원 비위 맞추기 골몰한 사법부
· 판사 블랙리스트 의혹, 사실로 확인됐다

양승태 대법원은 대통령 박근혜 만을 ‘지엄한 군주’로 섬겼을 뿐, 입법부와 행정부는 물론이고 언론까지도 로비의 대상으로 삼았다. 민주주의의 기본인 삼권분리 원칙은 안중에 없었던 것이다. 심지어는 주권자인 국민을, “‘내 사건’은 대법원에서 재판받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이기적인 존재들”이라고 폄하했다. 이 모든 사법농단과 위법행위의 정점에는 양승태가 자리 잡고 있었다. 그래서 이 희대의 사건은 ‘양승태 게이트’라고 불러야 마땅하다고 믿는다. 그는 대법원장직을 떠난 뒤인 지난 6월 1일 경기도 성남시의 자택 앞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이렇게 주장했다. “대법원장으로 재임했을 때 재판에 부당하게 관여한 적이 결단코 없으며 재판을 놓고 흥정한 적도 없다.” 이 말이 순전한 거짓이라는 사실이 최근의 문건 공개를 통해 명백히 드러났는데도 그는 일언반구도 해명을 하지 않고 있다.

 

제헌절 경축식 참석한 김명수 대법원장 김명수 대법원장이 17일 서울 여의도 국회 로텐더홀에서 열린 제70주년 제헌절 경축행사에 참석하고 있다. ⓒ 오마이뉴스 남소연

 

양승태 게이트에 법적으로 대처하는 김명수 사법부의 자세는 무책임을 넘어 ‘동류(同流)의 비리 감싸기’라는 비판을 받아야 마땅할 것이다. 지난 7월 24일 서울중앙지검 특수1부가 양 전 대법원장, 박병대 전 법원행정처장, 이규진 전 양형실장 등의 자택과 사무실에 대한 압수수색 영장을 청구하자 법원은 “피의자 양승태·박병대가 지시 또는 보고 등 피의자 임종헌과 공모했다는 점에 대한 소명이 부족했다”며 기각했다. 지난 1일에는, 일제강점기 강제징용 및 일본군 ‘위안부’ 소송 ‘재판거래’ 관련 자료를 확보하기 위해 검찰이 청구한 법원행정처 압수수색 영장을 법원이 기각했다. 검찰이 지난 7월 말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에 대한 강제수사를 시작한 뒤 4차례에 걸쳐 22곳에 대해 압수수색 영장을 청구했지만 임종헌(전 법원행정처 차장)의 주거지와 사무실, 그리고 외교부에 대해서만 영장이 발부되었다. 기각률은 무려 91%나 되었다. ‘제 식구 감싸기’를 넘어 ‘법관의 독재’라는 비판을 받아야 할 정도 아닐까?

그러자 비난의 화살이 현직 대법원장 김명수에게 쏠리고 있다. 양승태 체제의 법원행정처가 상고법원 도입을 위해 청와대와 거래를 하고, 국회· 언론 등을 대상으로 전방위 로비를 한 사실이 명백히 드러났는데도 소극적 태도로 일관하면서 사법 불신을 자초하고 있다는 것이다. 물론 대법원장이 영장담당 판사들에게 직접 영향을 미칠 수는 없겠지만, 법 적용에 관한 원칙을 제시하는 것은 당연한 책무임이 분명하다. 그런데도 ‘사법부 개혁’을 강조하며 취임한 그는 사법부의 적폐를 방관하고 있을 뿐이다. 법원장들과 고법 부장판사들로 구성된 차관급 이상 고위 법관들이 여전히 양승태 대법원장 시절에 선임된 인물들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고 변명하기에는 현재 사법부가 처한 상황이 너무나 위급하다.

헌법 제7조 1항은 “공무원은 국민 전체에 대한 봉사자이며, 국민에 대하여 책임을 진다”고 규정하고 있다. 그리고 제103조에는 “법관은 헌법과 법률에 의하여 그 양심에 따라 독립하여 심판한다”고 명시되어 있다. 양승태는 물론이고 그를 따라 사법농단을 일삼은 고위 법관들이 헌법 제7조 1항과 제103조를 위반했음이 법원행정처가 공개한 문건으로 명백히 드러났다. ‘국사범’으로 다루어야 할 그들을 검찰이 제대로 수사할 수 없다는 사실은 최근 법원의 영장 기각률 91%라는 수치로 입증되었다. 양승태 게이트 관련자들을 철저히 수사해 기소하는 작업을 강도 높게 추진하려면 특검이 설치되어야 한다.

특별검사의 임명 등에 관한 법률(약칭 특검법) 제2조(특별검사의 수사대상 등)는 “법무부장관이 이해관계 충돌이나 공정성 등을 이유로 특별검사의 수사가 필요하다고 판단한 사건”이 수사대상이라고 적시하고 있다. “제2조에 따라 특별검사의 수사가 결정될 경우 대통령은 제4조(특별검사 임명절차)에 따라 구성된 특별검사추천위원회(국회가 구성)에 지체 없이 2명의 특별검사 후보자 추천을 의뢰하여야 한다.” 극우 또는 수구적 야당이 특검 구성에 반대하겠지만 대다수 주권자들은 사법농단의 뿌리를 완전히 뽑기 위한 대통령과 국회의 결단을 강력히 지지할 것이다.

법조계 일각에서는 양승태 게이트에 대한 향후 재판의 공정성을 위해 ‘특별재판부’를 구성해야 한다는 의견이 제기되고 있다. 박주민 의원(더불어민주당)은 사법농단 사건을 맡을 영장전담판사를 서울중앙지법에 새로 지정하고, 특별재판부를 설치하는 내용의 특별법안을 국회에서 이른 시일 안에 발의할 예정이라고 한다.

박정희 정권 시기의 대법원은 1975년 4월 8일, 인혁당 관련 피고인 8명에 대한 사형을 확정함으로써 행정부 수장의 ‘하수인’이 되어버렸다. 법무부는 확정 판결이 나온 지 18시간 만에 그들을 교수대로 보내 목숨을 앗아갔다. 국제법학자회의는 4월 9일을 ‘사법사상 치욕의 날’로 명명했다. 인혁당 사건으로 목숨을 잃은 사람들은 물론이고 살아남은 이들도 나중에 대법원에서 무죄 판결을 받았다.

사법 정의를 바로 세우지 못하면 국가의 근간이 흔들리고 국민의 생명과 재산이 위협을 당한다는 사실은 한국은 물론이고 세계 여러 나라들에서 무수히 입증되었다. 불행한 역사를 반면교사로 삼아 진정한 민주국가를 건설하기 위해서 양승태 게이트는 법정에서 엄정한 심판을 받아야 한다.

 

* 이글은 오마이뉴스에도 함께 실립니다.

 

관리자 freemediaf@gmail.com

<저작권자 © 자유언론실천재단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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