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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이 간 봉하 찻잔

- [서촌 칼럼] 이원락 언론학 박사ㆍ재단 기획편집위원

기사승인 2018.09.18  16: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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찻잔에 금이 가서 찻물이 샌다.

몇 년 전 봉하에 들렀다가 머그잔을 축소시킨 듯한 도기 잔을 사서 찻잔으로 애용하고 있었다. 거칠면서도 소박하고 장식 없는 온화한 연청색 외관이 노무현 대통령을 닮은 잔이었다. 며칠 전에도 차를 끓여 부어 마시는데, 바닥이 축축해 살펴보니 잔에 금이 간 모습이 보였다. 그냥 버리기 아쉬워서 마른 꽃이라도 꽂아놓으려고 고이 모셔놨다.

#1.
최근 있었던 공영 언론기관의 인사를 두고 언론계 몇몇 입바른 인사가 드디어 공개적으로 불만을 터뜨렸다. 도대체 철저히 정치적으로 인물을 선임하니 지난 정권과 무엇이 다르냐는 것이다. 급변하는 언론 환경 속에 공영 방송의 위상이나 언론의 정체성이 헛도는 현실은 놔둔 채, 전부터 캠프 주변을 떠나지 않던 사람들이 이 자리, 저 자리 돌아가며 차지하는 행태를 보다 못한 일갈이었다.

#2.
통계청장이 바뀌었다. 정권에 불리한 통계를 작성했다는 것이다. 마음에 안 들면 교체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런 사유라면 눈치 봐가며, 적당히 포장을 한다. 이번엔 그런 것도 없었다. 인사를 해명하려고도 안 했다. 오만 그 자체다. 박근혜 정권에서 유진룡 장관과 노태강 국장의 인사가 떠올랐다.

#3.
장하성 청와대 정책실장의 두 주 전 발언은 아직도 잊히지 않는다. 자신이 강남에 살기 때문에 하는 말이라며 "모든 국민들이 강남 가서 살려고 하는 건 아니다. 살아야 될 이유도 없고 거기에 삶의 터전이 있지도 않다"고 한다. 요약하면 자신과 같은 최상위층이 사는 강남 집값 뛰는 걸 일반 시민이 상관하지 말라는 말이다. 왜 서울, 특히 강남 부동산 값이 뛰는지 알았다. 그들은 그걸 잡을 생각이 없는 것이다. 동시에 “국민은 개돼지”라는 나형욱 발언이 기억 속에 살아났다. 주제와 표현 방식이 다르고 인물의 무게도 다르지만 일반 시민에 대한 장하성의 인식은 나형욱과 비슷했다. 시민들과 언론의 비판도 비슷했지만 정권의 대응은 달랐다. 박근혜 정권은 나형욱을 즉각 파면했고, 문재인 정권은 ······

#4.
어느 정권이건 인사에는 늘 비판이 따른다. 구더기 무서워도 장은 담가야 한다. 하지만 오랜 시간 계속해서 비슷한 비판이 확대되고, 그것도 ‘우리 편’에서까지 논란이 된다면 스스로를 돌아봐야 한다. 차기 대권을 노리는 정권 실세가 곳곳에 자기 사람들을 심는다는 말이 잇따르고, 인사 때마다 특정 시민 단체 출신들이 요직을 과점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지만 오만한 권력에는 쇠귀에 경읽기다.

#5.
갤럽 여론조사에서 문 대통령 지지율(정확히 말하면, 직무를 ‘잘 하고 있다’는 응답률)이 지지난주 처음으로 40%대로 떨어졌다가 지난주에 다시 50%를 회복했다. 소득 수준 상위 계층의 전폭적인 응원 덕분에 지방 선거 이후 속절없이 떨어지던 지지율이 반등했다. 소득 수준 상층, 중상층의 지지율은 48%에서 무려 12%가 뛰어 60%가 되었고, 하위 계층 지지율은 41%로 ‘직무를 잘 못 하고 있다’는 응답률 42%보다 낮았다. 문 대통령이 대선에 출마한 이유를 압축하면, 주류 전복 또는 기득권 교체였다.

 

2018년 9월 2주차(11~13일) 한국갤럽 조사에 따르면 문재인 대통령은 취임 후 처음으로 40%대로 내려앉았던 그 전주 대통령 국정 수행 지지도가 다시 50%대로 올라선 것으로 나타났다.

 

며칠 전 지인들과 술자리를 가졌다.

A : 최근 정권 쪽과 친한 아무개가 그쪽 인사들을 만나 세간의 불만을 전했더니 뭐가 문제냐며 당당하기에 더 말을 못 하고 말았대.

B : 정치는 인사인데, 문 대통령이 주변 인물들을 통제 못 하는 것 같아.

C : 문 대통령이 원래 진보는 아니지. 그저 정의감과 도덕으로 무장한 원칙주의자일 뿐이지.

B : 문 대통령이 진보냐 보수냐를 논하기 전에, 솔직히 머리가 안 되는 것 같아.

D : 요즘 박근혜가 박정희의 무덤을 팠듯이, 문재인이 노무현의 무덤을 팔 것이라는 말이 돈다는군.

A : 그건 좀 심 한 말 아니야? 박근혜야 국민을 돌보지 않았지만 문 대통령은 따뜻한 마음을 가졌잖아.

B : 문대통령이 박근혜와 똑같지는 않겠지. 하지만 박근혜도 개인적인 이익을 취하려고 하진 않았어. 뚝심도 있고. 다만 머리가 모자라 주변 것들한테 이용 당하다가 저 모양이 되었지. 박근혜가 대통령 되었을 때 박정희와 당시 인맥까지 살아났잖아. 결국 그로 인해 나라는 엉망이 되고, 이제 박정희는 확실히 지워졌지.

C : 문 대통령은 적폐청산을 하고 남북 관계를 바꿀 것 같은데. 이건 보통 업적이 아니야.

D : 적폐청산을 한다고 구정권의 인물들을 솎아냈지만, 막상 적폐의 구조는 별로 바뀌지 않았어. 주변 세력들은 권력에 취해 도끼자루 썩는 줄 모르고 권력 놀음이나 하고 있고. 진짜 적폐청산을 하려면 적폐와 기득권의 경제적 기반을 고쳐야 되는데, 오히려 강화하고 있잖아. 그리고는 새 권력들이 그 기반에 올라타려고나 하고.

B : 남북관계 개선도 그래. 아이엠에프를 불러왔다고 무능한 대통령의 상징이 된 김영삼을 보라고. 취임 초 지지율은 문 대통령을 넘어선 역대 최고였고, 지방 자치제, 금융 실명제, 고위 공직자 재산 공개, 하나회 척결 등 민주화를 위한 획기적인 업적들을 남겼어. 그런데 경제 망쳐 국민의 삶을 피폐하게 만들고는 막판 식물 대통령으로 끝났지.

A,B,C,D : ······

D : 그래도 이게 우리네 삶이 걸린 문제다보니 그저 잘 되길 바랄 뿐이야.

문 대통령 취임 초, 노무현과 문재인 중 누가 더 위대한 대통령으로 역사에 남을까 고민했다. ‘조오련과 거북이는 누가 더 빠를까?’처럼 부질없고 유치하지만 행복한 고민이었다. 이제 고민할 필요도 없어졌고 고민의 행복도 사라졌다. 노무현 대통령을 무덤에 묻지 말기 바랄 뿐이다.

 

관리자 freemediaf@gmail.com

<저작권자 © 자유언론실천재단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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