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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보위와 ‘사회정화’

- 조선일보 대해부 4권 -6장

기사승인 2019.07.10  15:35: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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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의 국보위 칭송

‘광주사태의 전모’를 발표한 5월 31일 신군부는 국가보위비상대책위원회(국보위)를 발족시켰다. 국보위는 박정희의 국가재건최고회의를 본 따 만든 일종의 혁명위원회로서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둘렀다. 국보위 의장은 대통령최규하였지만 실질적인 실력자는 전두환이었다. 전두환은 국보위의 위임사항을 처리하기 위한 상임위원회를 설치하면서 위원장을 차지한 뒤 군 장성 등 측근들을 위원직에 앉혔다. 실제로 국보위 상임위가 국가의 모든 업무를 관장하는 핵심조직이 된 것이다. 국보위의 출범은 5공의 시발점이었다. 국보위는 광주 항쟁이 일어나자 전두환이 강압적으로 최규하에게 건의해 만들어진 것으로 알려졌다.

조선일보는 6월 1일자 1면 머리기사(「국가보위비상대책위 설치」)에서 “정부는 31일 최규하 대통령을 의장으로 하고 주요 각료 및 군 수뇌 등 26명을 위원으로 하는 ‘국가보위비상대책위원회’를 구성, 발족시켰다”며 “이 위원회의 위임을 받은 사항의 심의·조정을 위하여 상임위원회를 설치하고 상임위원장에는 전두환 중앙정보부장 서리가 임명됐다”고 보도했다. 조선일보는 바로 그 날짜 2면에 「나라의 중대한 국면」이라는 제목으로 국보위 발족을 정당화하고 그 활동을 기대하는 통단사설을 게재했다.

 (…) 국가보위비상대책위원회의 설치에 있어서 최 대통령이 발표한 유시와 그 구성의 비중에 접할 때 우리는 이 나라가 한 중대한 국면에 도달했음을 직감할 수 있다. 지난 10·26 사태 이후 난국이란 말은 흔히 사용되었으나, 이번 광주 사태로 사정은 더욱 심각하게 되었다. 모든 국민들이 그러한 사태의 재연을 바라지 않고 있음은 물론, 지금까지 모든 상처가 하루 빨리 아물어 정치, 경제, 사회가 정상화되기를 바라지만 우리들의 마음은 아직도 무겁고 심정은 착잡하다.
 (…) 이러한 비상시국에 발족한 국가보위비상대책위원회가 그 주어진 임무를 어떻게 수행하는가는 전 국민의 일대 관심사가 아닐 수 없다. (…) 우리는 하루속히 사회질서가 정상화되어 전국계엄이라는 과도기를 슬기롭게 넘기면서 국민적 시련과 나라의 중대한 국면을 영예롭게 타개하기를 동 대책위원회의 발족을 보면서 새삼 희구해 마지않는다.

조선일보는 6월 8일자 1면을 몽땅 털어 국보위의 존재이유를 재차 정당화하고 그 활동계획을 홍보하는 기사를 내보냈다. 이 신문은 정부의 한 소식통을 인용해 “국가보위비상대책위원회는 국가발전을 저해하는 제반 혼란요인을 하루빨리 발본색원한 뒤 사회 안정과 군의 조속한 복귀를 통해 이미 정해진 정치일정을 앞당겨 보겠다는 현 정부의 강한 의지의 발로로 설치된 것”이라고 전했다. 조선일보는 이어 국보위의 목표가 안보 강화, 경제난국 타개, 정치발전, 사회악 일소라며 권력형 부조리와 불법시위 및 소요사태를 근절하는 등 사회 전반에 대한 개혁 단행 방침을 밝혔다고 보도했다.

조선일보는 같은 날짜 2면 사설(「권력형 부조리의 발본」)을 통해 국보위의 ‘정책’을 미화하는 데 앞장섰다. 향후 신군부의 정권 장악을 위한 국보위의 대대적인 공포정치를 예고하는 것이었다.

정부는 대대적인 사회정화를 위하여 중대 결단을 내린 것 같다. 7일 정부의 한 고위소식통을 인용한 보도에서 우리는 그것을 역력히 감지할 수 있다. (…) 정부의 전기한 문제 제기와 결단은, 결론부터 말한다면 매우 적절한 것이라 평가된다. 어떤 경우에 있어서나 문제를 올바르게 제기해야만 올바른 해답을 얻을 수가 있기 때문이다. (…)
“생선과 위계질서는 머리부터 부패한다”는 말이 있다. 이러한 경구가 함축하고 있는 부패예방적 의미를 현실에서 실효화하기 위해서는 이미 있어온 ‘권력형 부조리’의 척결에 철저를 기해야 함은 물론, 그러한 부조리를 근원적으로 막는 어떤 법적 장치도 반드시 마련돼야 한다고 생각한다. (…)
또 다른 하나는 권력형 부조리로 민형사상 또는 행정상 처벌을 받은 공직자는, 모든 공직에서는 물론, 일정한 사기업의 일정직에서까지도 영구히 추방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 정부 수립 후 수십년에 걸쳐 해결하지 못해온 적년의 숙제인 부조리가 이번 기회에만은 발본색원되기를 거듭 간망해마지 않는다.


대규모 언론인해직과 폐간조치

국보위는 이를 계기로 ‘사회정화’라는 명분 하에 무소불위의 권한 행사에 들어갔다. 정당활동을 봉쇄하고 언론을 주구로 만드는가 하면 민주화운동 조직을 파괴했다. 수많은 정치인과 공무원들을 숙청하고 언론인들을 구속하거나 해직하는가 하면 언론기관들을 강제로 통폐합했다. 민주화운동을 벌인 교수와 학생들을 대학에서 쫒아냈다. 불량배를 일소한다며 수만 명의 시민을 재판도 없이 군부대에 몰아넣고 기합과 고문을 자행하는 ‘삼청교육’을 벌였다. 노동계 또한 소멸되는 비운을 맞았다. 산별노조가 없어지고 노동조합들은 해산당해야 했다. 그야말로 ‘공포와 암흑의 시대’를 맞게 된 것이다.

국보위 출범 10일 만인 6월 9일 계엄사는 유언비어 유포 등의 혐의로 언론인 8명을 연행해 조사 중이라고 발표했다. 언론이나 언론인에 대한 보도 내용 등을 통제하던 계엄사가 이번에는 유언비어의 유형까지 자세히 발표했다. 조선일보는 그 내용을 6월 10일자 1면에 주요 기사로 내보냈다. 연행된 기자들의 이름과 나이는 물론 근무부서까지 자세히 밝혔다. 연행된 기자들은 서동구(44·문화방송-경향신문 조사국장), 이경일(41·경향신문 외신부장), 노성대(41·문화방송 보도부국장), 홍수원(37·경향신문 외신부기자), 박우정(31·경향신문 외신부기자), 표완수(34·경향신문 경제부기자), 오효진(37·문화방송 사회부기자), 심송무(39·동아일보 사회부기자) 등 8명이었다. 이들은 광주항쟁과 관련해서 검열이나 제작을 거부해 계엄사의 지목을 받았다. 조선일보는 계엄사의 발표 전문을 다음과 같이 전했다.

그 어느 때보다도 어려운 난국에 처하여 정부와 국민 모두가 일치단결, 국가보위와 난국 타개에 정진하고 있는 이 때 확고한 시국관을 가지고 국민을 올바로 계도해야 할 언론인이 자신들의 신성한 사명과 책무를 망각하고 도리어 악성적 유언비어를 날조 유포시켜 사회 민심을 자극 현혹시키는 행태를 계속하여왔다. (…)
이들 8명의 현직 언론인들은 놀랍게도 1)려연방제는 통일을 위한 밑거름이다 2) 김일성 치하에서 살아보았느냐, 현 통치보다는 김일성 치하가 나을 것이다 3)광주 사태는 권력에 짓눌려온 민중의 의거이며 민중의 의거가 전국에 확산된다면 궁극적으로 통일이 될 수도 있다 4)월남이 망했다고 하나 분명히 분단월남은 통일되지 않았는가(이상 경향신문-문화방송 간부 및 기자들) 5)계엄군이 여학생의 유방을 도려냈으며 광주시민을 대검으로 무수히 찔렀다 6)계엄군에게 환각제를 먹여 얼굴이 벌겋게 된 군인이 광주시내를 누볐다 7)모 운전사가 부상자 4명을 병원에 싣고 갔는데 계엄군이 이 운전사를 공개처형했다(이상 동아일보 심송무 기자) 등의 발언과 주장을 서슴지 않았으며 이를 행동화하려는 선동과 유포행위를 자행하여 왔다.


계엄사의 언론인 8명 구속은 신군부의 언론인 숙청을 위한 신호탄에 불과했다. 5·18 광주민중항쟁이 일어나자 신군부는 각 언론사에 광주시민을 난동분자 혹은 폭도로 표기하라고 강요했다. 그러자 경향신문을 비롯한 많은 언론사가 5월 20일부터 제작거부투쟁을 벌였다. 가장 격렬한 투쟁을 벌였던 경향신문에서는 평기자 대부분이 제작거부에 참가했으나 부차장 등 간부들의 제작으로 발행이 중단되지는 않았다. 중앙일보, 한국일보, 동양통신, 합동통신, 문화방송 등에서도 제작거부를 결행했다. 신군부는 제작거부에 참여했던 기자들에 대한 대규모 보복의 일환으로 언론인 8명을 구속한 것이었다.

신군부는 단순한 언론검열이나 통제에 그치지 않고 민주화 성향의 언론인들을 완전히 제거하기 위한 음모를 꾸몄다. 언론인 대량해직은 국보위의 지시에 따라 보안사의 ‘언론대책반’이 작성한 계획에 의해 이루어진 것이었다. 강제해직 대상자는 모두 3백36명이었고 그 중 해직된 사람은 2백98명이었다. 그런데 언론사에서 실제로 해직된 사람은 9백33명이나 됐다. 대상자 명단의 2배에 이르는 6백35명이 언론사 자체의 ‘끼워 넣기’에 의해 해직된 것이다. 신군부는 7월 말 한국신문협회 등의‘자율정화’ 결의 형식을 빌려 대량해직을 강행했고 이어 1백72종의 정기간행물을 폐간시켰다.


국보위의 ‘사회정화’사업들

신군부는 집권을 위해서라면 무슨 일이든 저질렀다. 특히 국보위는 민심을 얻기 위해 마구잡이식 공작을 벌여 나갔고, 이를 적극 지원한 대표적 언론이 조선일보였다. 6월 18일 신군부는 3, 4공화국의 인물들 가운데 권력형 부정축재자 10명을 발표했다. 조선일보는 이와 관련한 기사를 6월 19일자 1, 2, 3면에 깔았다. 1면에는 통단으로 계엄사의 권력형 부정축재 혐의자 10명에 대한 수사결과를 보도하고 2면에는 「권력형 부정축재자들」이라는 통단사설을 게재했다.  주요 내용은 다음과 같다.

 계엄사는 18일 김종필 공화당 총재 등 권력형 부정축재 혐의자 10명에 대한 수사결과를 발표했다. 계엄사는 지난 5월 17일 이들이 연행된 뒤 32일간에 걸친 수사결과 10명 중 9명(김치열 전 내무부장관 제외)이 권력과 직위를 이용, 막대한 치부를 했으며 그 총액은 드러난 것만 8백53억1천만원에 달한다고 밝혔다.
개인별 축재액은 김종필 2백16억4천6백48만원, 이후락(전 대통령비서실장·중앙정보부장) 1백94억3천5백10만원, 이세호(전 육군참모총장) 1백11억5천1백만원, 김진만(국회의원·동부그룹대표) 1백3억3천7백6만원 ▲김종락(코리아타코마 사장) 92억2천9백87만원, 박종규(전 대통령경호실장) 77억3천3백42만원, 이병희(국회의원) 24억1천8백50만원, 오원철(전 청와대 경제제2수석비서관) 21억7천8백94만원, 장동운(전 원호처장) 11억8천1백17만원으로 드러났다. 계엄사는 이 같은 권력형 부정축재는 특정범죄가중처벌법 위반 등에 해당되나 이들이 국민들 앞에 속죄할 것을 다짐하면서, 부정으로 축재한 재산을 국가에 헌납하고 공직에서 사퇴할 뜻을 밝혔기 때문에 형사처벌은 유보키로 했으며, 이들로부터 환수된 재산은 국민복지기금으로 활용할 방침이라고 발표했다(1면 머리기사).

(…) 윗물이 맑아야 아랫물이 맑은 법, 권력의 핵에 앉은 자들의 공공연한 부정축재 행위가 처벌되지 않고 넘어간다는 것은 상하 권력구조 곳곳에서 크고 작은 부정행위를 만연시키는 원천으로 되고 나아가서 권력의 주변과 주변의 주변으로 부정행위를 확산하는 역할을 다하는 것이다. 그런 뜻에서 권력형 부정축재의 전반적인 수사와 처벌 이전에 먼저 그 핵에 앉았던 자들을 대상으로 한 것을 이유 있다고 보는 소이다.
아울러 그로써 국민적 담합을 이룩하기 위한 ‘구악 일소 조치의 하나’로 삼았다는 것에서 그것에 이어질 후속조치의 향방을 주목하게 하는 함축을 느끼는 것이다. (…) 이번 수사가 정말 일벌백계의 구실을 다할 것을 바라고, 아울러 계엄당국이 기대하는 것처럼 유사행위를 해온 자들이 스스로 뉘우치고 속죄하는 뜻으로 부정축재 재산을 자진하여 국가·사회에 환원한다면 더 이상 다행은 없을 줄로 여긴다(2면 통단사설).

조선일보는 국보위가 벌인 사회정화 사업에 특히 많은 지면을 할애하면서 적극적으로 지원했다. 신군부의 국보위는 사회정화라는 미명 하에 각 분야의 저항세력을 제거하고 국민에게는 ‘정화’라는 이미지를 강조하는 효과를 노렸다. 이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해 언론의 보조가 필수적이었고 그 중에서도 조선일보의 지원은 강력한 힘이 됐다고 할 수 있다. 조선일보는 그 이후 ‘사회정화’라는 이름을 붙일 만한 일이면 무엇이든 많은 지면을 제공하고 7월까지 특집과 시리즈, 그리고 사설 등을 통해 전폭적으로 ‘홍보활동’을 벌였다. 6월27일자 1면 머리기사(「공무원 숙정 부처별 진행」)에서는 숙정작업에 국보위가 직접 나서기로 했다는 내용을 부제목으로 뽑았다. 기사 내용은 다음과 같다.

사회정화를 추진하고 있는 국가보위비상대책위원회(국보위)는 부정비위 공무원 숙정 작업을 1차적으로 정부의 장관들이 주도하도록 하고 가급적 시일 안에 매듭짓도록 했다. 이에 따라 이미 숙정작업을 진행 중인 각 부처는 숙정 대상자로, 부정축재 등으로 사회의 지탄을 받고 있는 공무원, 부패한 공무원, 무능한 공무원들을 꼽아 인사조처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장관들이 주도하는 숙정작업이 미진하거나 부진할 경우엔 국보위의 정화분과위원회가 직접 개입할 방침인 것으로 전해졌다.


‘김대중  내란음모 사건’

계엄사는 7월 4일 이른바 ‘김대중 일당의 내란음모 사건’을 발표했다. 언론을 꼭두각시로 만든 신군부는 광주 항쟁이 벌어지고 있던 5월 22일 ‘김대중 씨 수사 중간발표’를 통해 ‘김대중 일당’을 광주 항쟁의 ‘배후 조종자’로 발표한 바 있다. 계엄사의 7월 4일 발표는 한마디로 조작된 소설이었다. 그러나 조선일보는 7월 5일자 1, 2, 3, 6면에 그것을 대서특필 했다. 1면 머리에는 계엄사의 발표 내용, 2면에는 김대중이 의장을 역임했던 ‘한민통의 정체’에 관한 상자기사, 그리고 3면과 6면에는 계엄사의 발표 내용 전문을 실었다. 그것은 김대중을 사형에 처하려는 빌미에 불과했다. 2면에 나온 「한민통의 정체」라는 기사는 김대중을 거의 간첩으로 몰아가는 정도였다. 김대중 이 정권을 잡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사람임을 강조하는 내용이었다. 1면 머리기사의 주요부분을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계엄사령부는 4일 김대중의 내란음모 혐의에 대한 수사를 일단락 짓고 김대중과 추종세력 37명을 내란음모, 국가보안법, 반공법, 외국환관리법, 계엄 포고령 위반 등 혐의로 계엄보통군법회의 검찰부로 송치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계엄사는 발표를 통해 그동안의 수사결과 “김과 추종분자들이 소위 국민연합을 전위세력으로 하여 대학의 복학생들을 행동대원으로 포섭, 학원 소요 사태를 폭력화하고 민중봉기를 꾀함으로써 유혈혁명 사태를 유발, 현 정부를 타도한 후 김대중을 수반으로 하는 과도정권을 수립하려고 했음이 드러났다”고 밝혔다.
(…) 계엄사는 김대중이 학생선동→대중규합→민중봉기→정부전복을 목표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비합법적 투쟁을 추구했다고 말하고 그 구체적 사실로서 5월 22일 정오 서울에서는 장충공원, 지방에서는 시청광장에서 ‘민주화촉진선언 국민대회’를 열어 시민들은 검은 리본, 국민연합 중앙위원들은 수의를 입고 참석케 함으로써 민중봉기를 통한 정부전복을 획책했고, 5월 16~17일 이대에서 있은 전국대학생총학생회장 회의에 자신의 대표 심재권을 보내 D데이가 5월 22일로 변경됨을 통보했으며, 광주 사태의 발단이 된 전남대생들의 시위를 배후조종, 전남대 복학생 정동년에게 5백만 원을 주어 전남대 총학생회장 박관현에게 2백70만원, 조선대 윤한봉에게 1백70만원을 전달하도록 했다고 밝혔다.

조선일보는 바로 다음 날인 7월 6일자에 ‘김대중 일당의 내란음모 사건’에 대한 사설을 실었다. 미국정부나 일본정부는 이에 대한 언급을 미루고 있던는 시점이었다. 「다시 생각을 가다듬자」라는 제목의 이 사설은 ‘김대중 사건’과 관련, 한 독자의 투고 내용이라며 “요즘 되풀이되는 데모로 소란하고 불안한 사회(직장)에서 집으로 돌아와 잠들어 있는 어린 자식의 얼굴을 볼 때마다 불안감에 엄습 당하곤 한다”고 전제하고 계엄사의 발표 내용을 그대로 인용하며 “사건의 전말이 낱낱이 밝혀질 것”이라도 주장했다.

(…) 독자투고가 말해주는 사태가 마침내 발생하고 말았다. 아니 전방의 병사들이 당부하면서 걱정했던 사태가 터지고 말았다. 그 기세는 전국화했고, 불행했던 광주 사태로까지 절정의 증폭성을 보였다. 이윽고 ‘5·17’ 조치가 취해졌다. (…) 보도된 방대한 계엄사의 발표 내용에 일일이 언급할 겨를을 갖지 못하거니와, 이 미증유의 사건 혐의자들은 곧 공개 법정에 서게 될 것이고, 국민의 환시리(環視裡)에 그 사건 전말이 낱낱이 밝혀질 것이다.
(…) 지금 우리는 결코 ‘남의 일’이 아닌 ‘나의 일’로서의 우리의 특수성을 무엇보다도 우선 극복해야 하는 역사단계의 과제 앞에 있는 것이다. 그것은 2분의 1 해방이 가져온 35년에 걸친 우리 삶의 근원적인 불안요인을 해소하는 작업에 최우선적으로 우리의 총명이 모아져야 할 단계에 있음을 뜻한다.
(…) 그리고 그것은 아무리 지겹고 힘겨워도 외면할 수 없는 우리의 냉혹한 현실이다. 5월 이후 우리에게 심대한 상처를 입히고 남긴 일련의 불행한 사태와 미증유의 사건들은 이 역사현실을 착각한데서 빚어지고 초래됐다. 그리고 결코 다시 되풀이돼서는 안 될 아슬아슬한 위기를 수반한 자괴행위의 기록만을 우리의 역사에 매운 교훈으로 남겼다.

신군부는 언론조작의 힘을 빌려 날조극을 만든 셈이었다. 광주에서 상황이   예상 밖으로 악화되자 전두환은 당황했다. 그러자 ‘3허’로 일컬어지는 허화평·허삼수·허문도가 전두환에게 “호랑이 꼬리를 잡고 있다가 놓치면 모두 잡혀 먹힌다”는 상황극복론을 펼쳤고 이에 따라 광주의 상황을 김대중과 연계시키려는 작전이 개시되었다. 이 작전에는 보안사 수사총책인 대령 이학봉 을 비롯하여 중정 안전국장 김근, 검사 이종남, 정경식 등이 동원되었다.

(…) 김대중은 후일 당시 받았던 고문에 대해 “며칠이고 잠을 안 재우고 질문하는 것은 매 맞는 것보다 더 힘들었습니다. 정말 질식할 것도 같고 미칠 것 같은 심정이었어요. 저도 심신 양면으로 인간의 한계에 이르렀고 법정에 가서 진실을 말하겠다는 생각을 하여 그들의 요구대로 응해주었습니다”라고 말했다(<한국현대사 산책-1980년대편 1권, 206~207쪽).

조선일보는 7월 10일자 1면 통단기사(「고급공무원 232명 숙정」)로 국보위의 고급공무원 숙정 결과를 보도했다. 그 기사는 정화대상자들을 직급별로 나눠 “장관 1명을 비롯하여 차관급만 37명인데, 행정부의 차관 6명, 청장 5명, 도지사 5명, 교육감 3명 등 31명과 국회사무처 및 법원의 차관급 공무원 6명이 포함돼 있다”고 전하고 국보위의 발표 전문을 실었다. 국보위의 발표문은 부정축재, 무사안일, 기회편승, 생활무질서 등 매우 포괄적인 기준으로 ‘정치적 숙정’을 할 것임을 시사하고 있다. 국보위의 발표 내용 중 “특히 10·26사태 이후 일시적인 정치사회의 불안에 편승하여 공직자로서의 본분과 사명감을 망각하고 수수방관하면서 일신의 영달만을 꾀함으로써 정부에 대한 불신감을 고조시키고 다수 공무원의 명예를 더럽힌 자가 있었음을 개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고 한 부분이 그것이다. 조선일보는 2면 사설을 통해 국보위의 ‘공무원 숙정’을 찬양 수준 이상으로 띄워주는가 하면 3면에는 해설을, 4면에는 해외의 사례를 소개해 분위기를 잡는 편집을 했다. 여기서는 사설 내용을 소개한다.

그동안 국가보위비상대책위원회에서 추진되어온 고급공무원에 대한 정화사업의 결과가 발표되었다. (…) 지난날의 숙정작업이 고급공무원이나 특수권력층에 대해서는 거의 손을 대는 일이 없었다는 사실에 비추어 생각해보면 국보위의 조치는 가위 혁명적인 것이라 해서 과언이 아닐 것이다. 이것은 두말 할 필요도 없이 숙정에 관한 정화당국의 문제의식이 그만큼 강렬했다는 것을 실증하는 것이라 풀이된다.
당국의 이러한 문제의식은 고급공무원의 정화사업을 ‘국가보위’와 ‘국민생존권 수호’ 및 ‘사회안정’의 대전제로 보고 있다는 점과, 이 정화사업의 철저한 선행 없이는 우리 사회에 만연한 불신풍조의 해소와 깨끗하고 밝은 공무원사회의 건설도 기대할 수 없다고 한 배경 설명에서 역력히 드러나 있다. 게다가 당국의 각오는 다음의 인용문에서 보는 것처럼 비장하기까지 했던 것 같다. “껍질이 깨어지는 아픔이 없이는 새로운 싹을 볼 수 없듯이 건전한 사회기풍이라는 새로운 싹을 보기 위하여 껍질이 깨어지는 아픔은 불가피한 것이다. 이렇게 하여 공무원사회가 정화됨으로써 건전한 사회의 기풍이 조성된다면 껍질의 아픔은 후일에 훌륭한 밑거름으로 평가될 것이다.

관리자 freemediaf@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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