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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국 사태를 통해 살펴본 유럽과 한국의 보수, 진보

- 진보, 국보법과 한미동맹 정상화하고 2020년 총선 대비해야
[칼럼] 고승우 80년해직언론인협의회 공동대표ㆍ언론사회학 박사

기사승인 2019.10.11  14:0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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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국 사태 어디까지 갈 것인가. 정치와 언론의 최대 이슈가 되어 있고, 이런 과정에서 이른바 진보진영은 예사롭지 않은 내상을 입고, 그것은 현재 진행형이다. 이번 사태가 앞으로 어떤 식으로 결말이 날지 속단키 어렵다. 조국 사태는 여러 가지 요인이 겹쳐 있어서 그에 대한 견해나 비판, 전망도 여러 가지다. 이 사태는 큰 틀에서 가닥을 잡고 정리해야 할 중대 과제인 것은 사실이다. 그래야 현실을 정확히 점검하고 희망찬 미래를 준비할 수 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냉정해야 한다는 점이다. 더도 덜도 말고 감정 빼고 현실을 직시하자는 것이다.

먼저 조국 사태의 사회적 의미, 즉 한국적 진보와 보수의 문제를 짚어보자. 진보와 보수는 개개인 차원에서 볼 때 DNA에 차이가 있다는 선천적 원인에서부터, 교육이나 사회화 과정에서 학습된다는 여러 가지 논리가 있다. 진보, 보수라는 개념이 처음 등장한 유럽의 경우 보수와 진보진영은 정치 권력의 쟁취를 위해 대중을 상대로 경쟁해왔다. 두 진영은 언론, 정당, 시민단체 등으로 구성되었고 그들의 공통점은 유권자에 대한 서비스다. 그러나 보수와 진보는 노동운동과 복지 등의 분야에서 그것은 큰 차이로 나타났다. 보수는 노동운동에 좀 더 가혹하고 복지에 인색한 경향을 나타냈다.

유럽 진보의 경우 미래에 대한 지향이나 전망이 다양해서 그만큼 분화가 심했다. 하지만 진보가 열린 생각과 행동을 한다는 점에서 분열은 진보의 자연스러운 현상으로 보이기도 한다. 한국에서는 보수가 진보를 공격할 때 ‘진보는 분열하면서 망한다’라고 하지만 이는 적절치 않은 듯하다. 분열이라는 현상 이전에 다양성이 강하다는 의미이고 이는 진보의 당연한 속성이기 때문이다.

유럽은 2차 대전 이후에는 선거에 의한 집권이라는 정치 형태 속에서 두 진영의 차이가 매우 좁혀져서 오늘날에는 양성 또는 성차별 문제, 동성애 등 성적 소수자 문제, 이민자 등 사회적 소수자 문제 등 소수의 주제에 한해 큰 차이를 보일 뿐 많은 부분은 엇비슷해졌다. 예를 들면 유럽의 보수와 진보는 유럽연합 전체에 해당하는 노동법을 만들어 비정규직 문제, 부당 노동행위 등의 발생을 원천 봉쇄했다. 아프리카와 중동에서 엄청난 수의 난민이 유럽으로 쏟아져 들어가도 노사 문제가 생기지 않는 것을 우리 정치권이 시급히 살펴야 한다. 유럽의 정당은 보수, 진보할 것 없이 복지 정책을 확대하는 경쟁을 벌이다가 국가가 파산 지경에 이른 경우도 있다. 유권자들이 개인적 이해관계에 따라 정당을 선택하고 투표를 하면서 생긴 현상이다. 서구 보수는 민족과 전통적 가치 등을 중시한다.

서구의 진보는 프랑스혁명 이후 구지배층에 대립적 의미로 출현한 개념이다. 그러나 한국의 진보는 보수 세력에 대한 비판 또는 대항적 의미를 지닌 세력으로 출발했다. 진보세력은 보수 세력이 지닌 속성과 반대되는 방향을 지향하면서 한국 사회의 비주류로 인식되었고 아직도 그런 경향이 있다. 진보는 비판적 시각이 강하고, 원칙을 중시하며 보수의 치명적 약점인 친일, 친미 등 외세 의존적 성향을 비판하고 북한을 언젠가 재통합해야 할 동족으로 여긴다. 자본주의의 폐해를 비판하고 거론하면서 북한과의 교류협력을 주장한다.

한국의 보수는 민족을 이념보다 덜 중시한다. 이념이 다르면 같은 민족으로 볼 수 없다는 식이다. 전통적 가치 부분에서, 한국 보수는 민족개념이 약하고 서구의 가치에 매몰되다 보니 외국 박사, 원정 출산 등이 보수층에서 버젓이 벌어져 한때 사회적 논란이 되기도 했다. 서구의 진보는 민족이나 민족주의 또는 사회주의를 배격한다. 세계화를 지향하고 개인의 기본권을 중시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국의 진보는 민족문제를 심각하게 고민하고 외세에 대한 경계심이 강하다. 한반도의 역사가 오랜 통일 국가의 형성, 잦은 외세의 침략으로 점철된 탓인지 민족과 전통적 가치에 대한 애착이 매우 강하다.

한국의 진보, 보수는 남북 분단이라는 특수 상황 속에서 매우 기형적인 형태로 발전했다. 국가보안법에 의해 사상의 자유를 제한받는 한국사회에서 막힘없는 진보와 보수의 힘겨루기나 갈등은 존재하기 어려운 풍토였다. 이런 한계 속에서 한국적 진보, 보수는 서구의 그것과는 판이한 체질을 지니게 되었다. 서구식 사상 투쟁이나 상한선 없는 논쟁이 진보, 보수 간에 존재하지 않는다. 국가보안법은 북한을 반드시 괴멸시켜야 할 불구대천의 원수쯤으로 규정하고 경계하기 때문에 북한의 장단점을 객관적으로 분석, 평가하는 것은 금물이다.

한국의 지식인들은 남북관계를 언급할 때 자기검열을 일상적으로 반복하면서 북한을 우선 부정적으로 묘사하고 평가해야 한다는 고정관념의 포로가 되어 있다. 정치적인 논쟁을 할 때도 정적에 대해 친북, 좌파, 수구 꼴통이라는 식으로 막말 공세를 함으로써 정상적인 토론이나 의견 개진을 저지한다. 국가보안법은 한국사회에서 정상적인 토론문화가 정착하지 못하게 만들었고 지금도 그것을 저지하고 있다.

지식인 사회에서 진보, 보수 논쟁은 학문의 영역이라는 점에서 국가보안법의 영향을 그나마 덜 받는다. 그러나 지식인 사회에서 진보는 친북 좌파로 낙인찍혀 이른바 출세의 길이 막히는 경우가 많다. 이러니 지식인 사회에서도 가급적 제 색깔을 드러내려 하지 않는다. 학계는 기회주의적 속성이 심화되어 있어서 국가 중대사 등에 대해 모범 답안 식의 평가나 해설을 내놓는데 익숙하지 않다. 이러니 일반인들이 갈피를 잡지 못하거나 정치권의 소모적인 힘겨루기만 지속된다.

한국의 정치정당의 경우 매우 심각하다. 현 정치권의 제1여당은 진보, 제1야당은 보수로 지칭되고 있으나 그 속내를 살피면 서구의 보수, 진보와는 큰 차이가 있다. 서구의 시각으로 보면 한국의 제1 여·야당은 보수에 속한다. 조국 장관의 경우도 동성애에 대해 법제화는 어렵다고 청문회에서 밝힌 바 있다. 얼마 전에 대만이 동성애 결혼을 합법화하면서 전 세계적으로 비슷한 조치를 취한 국가는 30개 정도가 되었다.

한국 거대 여·야당은 진보정당과는 거리를 두려는 공통점을 보인다. 한국에서 진보정당이라 하면 소수당을 면치 못한다는 공포가 존재한다. 보수 수구의 정치적 공세는 진보 운동권 정치집단을 친북 세력으로 낙인찍는 색깔론이 주를 이룬다. 그 결과는 참혹하다. 이른바 진보정당은 서구의 진보 흉내를 내지만 속내는 보수인 정당이 존재하는가 하면 서구형 진보정당을 지향하는 쪽은 대중적 지지가 매우 약하다. 국가보안법으로 좁혀진 사상의 영역만이 존재하기 때문인 듯하다.

이상에서 살핀 것처럼 한국에서 진보와 보수는 서구에 비해 매우 제한적인 차이나 갈등 현상을 나타낸다. 하지만 진보와 보수로 인식되는 정당 간의 정권교체가 이뤄지는 등 사회변화가 역동적으로 진행되고 있다. 즉 보수 정치세력은 이승만, 박정희, 전두환, 이명박, 박근혜 정권에서 주요 세력의 역할을 담당했고 진보 성향으로 지칭되는 김대중, 노무현, 문재인 정부가 들어서면서 정치, 사회적 변화도 가속화되고 있다. 조국 사태를 통해 확인된 것은 한국 사회가 보수, 진보세력의 정권 교체에 의해 여야 가릴 것 없는 상류층이 형성되거나 기득권을 자연스럽고 정상적인 것으로 여기는 계급의식이 강하게 자리를 잡았다는 점이다.

이른바 수구 보수의 부정적 행태로 인식되던 비상식적 사회관계망이 진보진영에서도 발견되고 있다. 이에 대해 청와대, 집권당, 진보진영 일각에서 보수와의 상대적 비교나 자기 진영 보호내지 강화 논리를 앞세워 방어에 급급하고 있다. 그러나 비정상은 오래 버티지 못한다. 다른 진영은 더 한다거나 언론 탓으로 돌리면서 달을 가리키는 손가락만을 욕해서는 안 된다. 집권층은 정치에 대해 궁극적 책임을 진다는 자세가 중요하다. 조국 사태를 계기로 진보진영 내의 자성이나 각성 움직임이 표면화될 것으로 보인다. 정치권의 내로남불이 반복되는 것에 대해 유권자들이 거부감을 보일 가능성도 크다. 서구라면 이런 상황에서 정의, 공정, 평등 등의 가치를 내건 정당이 득세할 기회로 인식될 터이지만 한국에서는 아직 그렇지 못하다는 부정적 인식이 일반적이다.

 

사진 : 뉴시스

 

하지만 박근혜 탄핵에서 보듯 우리 시민사회의 저력은 막강하다. 촛불로 타올랐던 그 기세가 사회를 좀 더 정상화시키는 쪽으로 작동될 개연성은 매우 크다. 현재 국내외 정세를 보면 한반도 비핵화나 정치경제적 불평등 등 한반도 지각변동을 예비한 변수들이 동시다발적으로 제기되고 있다. 이에 대한 대처가 시급하다. 우선 국보법은 국가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다는 점을 원천 부정하는 악법이다. 이 법은 북한에 대해 상상도 하지 말라는, 지극히 반민주적인 통제를 강제하고 있어 한반도 비핵화, 남북공존과 공동 번영을 위해 시급히 손을 봐야 한다.

동시에 불평등한 한미관계는 한반도를 포함한 동북아 평화정착을 어렵게 한다는 측면에서 필리핀 정도의 평등한 관계 등으로 정상화 되어야 한다. 이런 작업은 이른바 진보진영에 속하는 구성원들의 몫이다. 조국사태는 과학적으로 깔끔하게 정리하고 지나가야 한다. 다수 촛불이 화를 내기 전에 진보진영 일부에 뿌리내린 부적절한 사회화를 도려내도록 해야 한다. 진보진영이 조국사태와 함께 다른 중대한 문제도 동시적으로 관심을 갖고 풀어나가야 할 중차대한 시점이다. 참고로 사법살인을 당한 조봉암 선생이 1956년 대선에서 이승만 정권을 위협할 만큼 다수 득표를 했을 때 조 선생이 앞장선 진보정치가 내건 정강정책의 하나가 평화통일 정책이었다. 6.25 전쟁 종전 3년 후 멸공통일 구호만이 요란한 상황에서 진보정치를 내건 조 선생에 몰표가 던져진 것은 우리 민족의 저력이 어떤 것인가를 확인시켜 주는 하나의 예에 불과하다. 그 뒤 4.19혁명, 1980년 서울의 봄, 1987년 6월 항쟁, 1998년 평화적 정권교체와 2017년 박근혜 탄핵 등으로 이어진 과정을 볼 때 2020년 총선에서 개혁입법을 가능케 할 결과가 나올 가능성을 상정할 수 있다. 진보세력은 이에 대한 준비를 서둘러야 할 것이다.

관리자 freemediaf@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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