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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 혐오하는 언론인, 무지하거나 악의적이거나

- 미디어공공성포럼 주최 ‘노동자가 사라진 한국언론의 불편한 진실’ 토론회 “기초 소양 부족에 악질 왜곡까지”

기사승인 2019.11.21  18:5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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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이 노동 문제를 왜곡 보도하는 이유는 스스로 이해가 부족하거나 노동운동을 고립시키려는 악의에 있다는 지적이 나왔다. 언론인 무지는 교육으로, 악의적 매체는 국민 감시·비판 운동으로 해결해야 한다는 해법이 제시됐다.

미디어공공성포럼은 지난 19일 저녁 서울 중구 전태일기념관에서 시민공개세미나 ‘노동자가 사라진 한국언론의 불편한 진실’을 열고 노동 관련 왜곡·혐오 보도 문제점과 해법을 논의했다. 하종강 성공회대 노동아카데미 교수가 발표를 맡았고 김언경 민주언론시민연합 사무처장, 김형석 민주노총 대변인, 임윤옥 KBS시청자위원 등이 토론에 참석했다. 언론인으론 강혜인 뉴스타파 기자, 강진구 경향신문 기자 등이 함께 했다.

 

미디어공공성포럼은 지난 19일 저녁 서울 중구 전태일기념관에서 시민공개 세미나 ‘노동자가 사라진 한국언론의 불편한 진실’을 열었다. 사진=손가영 기자.


하 교수는 “노동 문제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기사들이 너무 많다”고 짚었다. 법적 절차에 따라 쟁의권을 확보해 파업해도 ‘불법파업’ 프레임을 씌우는 경우가 상당하고 기초 개념을 혼동하는 경우도 잦다. 하 교수는 노동조합 영문명 ‘trade union’을 무역조합이라고 오역한 기사를 두고 “이 기자는 평생 제도권 교육에서 노조를 제대로 배울 기회가 없었을 것”이라 말했다. 

샤넬노조의 ‘공짜노동 소송’ 관련 왜곡 보도는 최근 사례다. 샤넬 직원들은 백화점 개장 전 꾸밈 노동을 비롯해 매장 청소, 재고 정리를 마치기 위해 정식 출근시간보다 30~40분 일찍 출근하는 관행이 있었다. 

노조는 이를 노동시간으로 인정해달라고 소송했지만 1심에서 패소했다. 언론은 이를 “화장인가 노동인가, ‘꾸밈 노동’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샤넬 화장품으로 ‘맘껏’ 화장하는데 30분 일찍 출근했다고 소송?” 등의 헤드라인으로 보도했다. 연장노동 여부가 쟁점인 사안을 ‘화장을 노동으로 인정해달라’는 요구로 왜곡했다. 

확인 취재 없는 보도도 상당하다. 중앙일보 산업부 기자가 쓴 ‘요기요 배달원의 근로자 지위’ 칼럼은 노동계의 거센 비난을 샀다. 이 기자는 배달원 노동 환경을 두고 “이들을 진짜로 걱정한다면 배달원이 가장 부담스러워하는 종합보험문제 개선 등을 생각해야 할텐데, 특정단체 정치투쟁 도구로 이용당하는 것 같아 안타깝다”고 썼으나 이는 허위였다. 특정단체 ‘라이더유니온’의 박정훈 위원장은 “라이더유니온이 라이더들 종합보험을 위해 가장 먼저 싸워온 곳이란 사실은 검색만 하면 바로 나온다”며 “기자님이야말로 중앙일보 신문 지면을 특정단체의 정치투쟁 장으로 이용하지 말라”고 반박했다.

 

미디어공공성포럼은 지난 19일 저녁 서울 중구 전태일기념관에서 시민공개 세미나 ‘노동자가 사라진 한국언론의 불편한 진실’을 열었다. 사진=손가영 기자.

 
악의적 허위 보도는 현대중공업 법인분할을 둘러싸고 노사 갈등이 격화한 지난 5월에도 집중됐다. 현대중공업 노조가 주주총회를 저지하려고 기습 점거 농성에 들어가자 노사가 물리적으로 충돌했고 그 과정에서 ‘사측 직원이 노조 폭력으로 실명위기에 놓였다’는 보도가 나왔다. 조선일보, 동아일보, 중앙일보 등 전국단위 종합지를 포함해 22개 매체가 받아썼으나 병원·경찰 측 취재 결과 사실이 아니었다. 언론은 사측 관계자 말만 듣고 확인없이 보도했다. 

하 교수는 언론인들이 노동운동, 노동문제, 노조의 정치활동에 지나치게 부정적 시각을 갖고 있다고 평가했다. 하 교수는 대부분 선진국에 경찰노조가 있는 사실과 판사도 노조를 결성하는 프랑스, 교장과 행정부 차관도 노조에 가입하는 핀란드, 정보기관 비밀 요원도 노조를 만드는 영국 사례 등을 들었다.

부정적 시각은 편견을 강화했다. 하 교수는 현대자동차 노조에 “계파만 9개”라며 비판하는 언론에 “조합원 수가 5만명이나 되고 생산·영업·정비·사무 직종을 포함하는 사업장이 전국 수백개나 흩어진 노조에 조직 9개 있는 게 잘못이냐”고 물었다. “파업 후 남은 건 분열 뿐”이란 상투적 보도에도 “파업 후엔 언제나 분열이 남는다. 투쟁 성과가 모든 노조에 골고루 분배되는 게 어려워서다. 비판과 평가를 끊임없이 되풀이하면서 나아가는 게 노동운동”이라고 지적했다.

 

“악질 언론은 ‘더는 언론사 못하겠다’ 여길 때까지 비판해야”

토론자로 나선 강진구 경향신문 기자는 “기자들이 왜 그럴 수밖에 없는지 이해도 필요하다”며 “기자 대부분이 노동 이슈를 교육 받지 않고 취재를 시작한다. 노동을 몰라서 실수하는 경우들이 있다”고 말했다. 강 기자는 노동보도 관련 준칙 마련과 충분한 교육을 대안으로 제시했다.

 

미디어공공성포럼은 지난 19일 저녁 서울 중구 전태일기념관에서 시민공개 세미나 ‘노동자가 사라진 한국언론의 불편한 진실’을 열었다. 사진=손가영 기자.

 
강 기자는 광고에 의존하는 구조를 원인으로 강조했다. 강 기자는 “언론 시장은 구독자가 아닌 광고주에 의존하는 구조다. 기자들이 어느 정도 연차가 지나면 자연스레 회사를 걱정한다. 광고주 압력을 내면화하는 셈”이라며 “자본에 불편한 기사를 쓰기 힘든 구조를 바꾸어야 한다. 최근 네이버가 인링크에서 나오는 광고수입을 언론사에 전면 지급하는 모델로 바꾸었는데 클릭 수 경쟁 유발효과가 뻔하다. 시민단체와 기자들이 목소리를 내야 한다”고 밝혔다. 

김형석 민주노총 대변인은 노동계 입장을 반영할 필요도 느끼지 않는 언론의 편향성을 얘기했다. 일례로 민주노총이 지난 5월 노동 보도 준칙을 직접 제정해 언론사에 배포했지만 조선일보, 동아일보 등은 큰 변화를 보이지 않았다. 김 대변인은 “민노총이 아닌 민주노총이라 명기해달라며 보도 준칙 내용을 알렸는데 동아일보는 민주노총 명기율이 15.0%에서 9.8%로 오히려 크게 줄었다”고 밝혔다.

김언경 민언련 사무처장은 “문제는 기초 이해가 부족해서 나오는 오보가 아니라 악의적으로 보도하는 악질 언론”이라며 “기자가 스스로 변하지 않더라. 밖에서 끊임없이 감시하고 혼내고 ‘이렇게 하다간 더 이상 언론사를 못하겠구나’ 생각이 들 정도로 말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 처장은 “고소 하든, 언중위 제소 하든 언론사를 괴롭혀야 한다고 노조에 말한다. 문제 기사가 사실이 아니란 걸 기록으로도 남겨야 한다”며 “기자협회에도 당부한다. 고 설리씨 사망 당시 자살보도 윤리 강령이 전혀 지켜지지 않았는데도 기협에선 경고하자, 자성하자 말 한마디 나오지 않았다. (노동 보도 관련해) 최소한 윤리를 지키지 않은 언론사에 부끄럽다는 선언을 해줘야 한다”고 제안했다. 

강혜인 기자는 ‘출입처 문화’를 원인으로 지목했다. 강 기자는 “기자들이 노동인권 기초 소양이 없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편집국 내 구조적 문화, 출입처 문화 등 영향이 있다”며 “노동, 인권 등을 주제로 출입처가 나뉘는 게 아니라 사회부 사건팀의 ‘중부라인’이 맡는 식이고 6개월~1년 터울로 출입처가 바뀌니 종합적 기사가 나오기 힘들다”고 평가했다.

노동 아이템 기사 수 자체가 적은 현실에 강 기자는 “‘힘이 없는 사람은 고통이 뉴스가 될 수밖에 없다’는 말이 있는데 그 점을 항상 반성하고 부끄럽다고 여긴다”며 “그러나 단순히 내가 관심있는 분야의 노동자들이 힘들다고 기사를 쓸 순 없다. 무엇이 뉴스가 되는지 항상 고민하고 있다”고 밝혔다. 

임윤옥 KBS 시청자위원은 여성노동자, 돌봄노동자, 특성화고 노동자 등 언론 관심이 향하지 않는 사각지대를 더 조명해달라 조언했다. 임 위원은 자기 경험을 기반으로 “노조가 희망이 되는 건 특권층 이야기인 줄 알았다. 대다수 여성 노동자는 노조 생각을 할 수 없는 실정”이라며 “대중매체에 가장 많이 나오는 여성 직업은 가정관리사(파출부)가 아닌가. 이들의 목소리가 없다. 이런 여성 노동자들에 대한 저평가가 바뀌면 좋겠다”고 말했다.

 

* 이글은 2019년 11월 21일(목) 미디어오늘 손가영 기자의 기사 전문입니다. 기사원문 보기 클릭

 

관리자 freemediaf@gmail.com

<저작권자 © 자유언론실천재단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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