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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4대 대선-‘김영삼 대통령 만들기’(1)

- 조선일보 대해부 4권 - 40장(1)

기사승인 2020.03.11  13:5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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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2년 3월 28일 김영삼은 민자당 대통령 후보 경선 출마를 공식 선언했다. 불과 며칠 전인 24일 치러진 14대 총선에서 민자당이 전체 237개 선거구 중에서 116석밖에 얻지 못하고 전국구 33석을 합쳐도 과반수 의석인 150석에 1석 모자라는 참패를 당한 것에 대해 자신에게 돌아오는 책임론을 정면 돌파하기로 한 것이다.


무조건 김영삼을 키워라

조선일보는 3월 29일자 1면 머리에 김영삼의 경선 출마 선언 소식을 큼지막하게 실었다. 그리고 「민자당 대권 경쟁 시동」이라는 사설을 통해서도 아래와 같이 주장했다.

(···) 민심은 지금 정부·여당의 경제 실책과 역량 부족, 그리고 안기부원의 흑색 개입에 분통을 터뜨리고 있는데도 청와대나 김영삼 대표, 그리고 박태준 씨와 김종필 씨 등 민자 각 계파는 국민 앞에서 대죄를 하는 겸허한 자세를 보이기보다는 저마다의 대권 전략에만 집착한 채 추한 떠넘기기 싸움만을 일삼았다. (…) 민자당은 이렇게 해서 14대 총선에 나타난 국민의 분노를 대권 게임 시작이란 쇼로 긴급히 피해가는 것 같으나, 국민을 그렇게 어리숙한 존재로 착각해선 안 된다. (···) 그러나 어쨌든, 이왕에 터질 일이라면 빨리 터져버린 것은 괜찮다. 김영삼 씨가 경선 출마를 선언했으니 박태준 씨나 이종찬 씨도 무대 뒤가 아닌 무대 위에서 공개적으로 겨뤄야 할 것이다. 한 가지 당부하는 것은 청와대도 안기부도 민자당 각 계파도, 모두들 치사한 방법의 싸움은 하지 말라는 것이다.
 
조선일보는 3월 30일자에 「반YS계 단일후보 진통 / 민자 연쇄 접촉 뚜렷한 결론 못내 / 이종찬 씨 금명 독자 선언 / 박태준·박철언 씨도 내달 초 입장 표명」「김 대표 청구동 방문 / 어제 밤 김 최고위원과 30분간 단독 요담」, 4월 1일자에 「민정계 친김 9명 첫 회동 / 김영삼 후보 추대위 추진 / 반김 진영선 6인협 구성 / 개별 출마 잠정 유보 합의」, 4월 2일자에 「민자 5월 19일 전당대회 / 각 계파 전략 재조정 / 개별 접촉 통해 결속 강화 / 오늘 노·김 회동 경선문제 논의」같은 기사들로  연일 1면 머리에서 민자당 내 움직임을 중계하다시피 했다. 조선일보의 그런 보도는 김영삼이 민자당 대통령후보로 선출된 5월 19일이 한참 지날 때까지 계속됐다.

5월 15일 정주영이 국민당 대통령후보로 선출되자 조선일보는 16일자 1면 머리기사로 보도했으나 편집이 아주 특이했다. 「이(종찬) 후보 금명 최종 입장 표명 / 핵심 측근 “요구 회답 시한 연기 가능” / 18일 합동연설만 수용 김 후보」「한양, 민자 연수원 매입 취소 긴급 임원회의 / “특혜 의혹 불식” 어제 가계약 파기 통고」등 민자당 관련 소식들이 정주영에 관한 머리기사보다 지면을 더 크게 차지한 것이다.

조선일보는 5월 26일 김대중이 민주당 대선후보로 결정됐을 때도 기사를 27일자 1면 머리에 올렸다. 그러나 「민자 후속 인사 오늘 발표 / 총재 비서실장 김덕용-대변인 박희태 씨 등」「김영삼 대표 6월 방미 검토」같은 기사들이 1면에서 눈길을 끌게 편집했다.

정주영이 후보로 선출되자 조선일보는 「대통령후보의 조건」이라는 사설을 실었다.

 정 대표가 수락연설에서 강조한 다 함께 잘 사는 새로운 국가의 틀은 앞으로 시간을 갖고 지켜볼 만하다. 분야별로 세부화를 당장 기대하기는 어렵다 하더라도 틀의 윤곽만은 가까운 시일 안에 내놓을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 정 후보는 이 같은 과정을 통한 자질 발휘와 정책 발표를 통해 국민의 정면 심판을 받겠다는 각오를 할 것으로 기대한다. 행여 여당도 싫고 야당도 싫다 는 국민의 일시적 정서를 이용, 어부지리로 표를 얻겠다고 생각한다면 이것은 출발부터 잘못되었음을 지적한다.

이 사설은 정주영에게 축하 대신 고언을 더 많이 보내고 있다. 김영삼이 5월 29일 민자당 후보로 결정된 뒤 내보낸 사설(「민생이 곧 대선이다」)과는 크게 다르다. 조선일보는 김영삼이 여당의 역대 어느 후보보다도 불리한 출발점에 서 있다며 그에 대한 보수세력의 경계의 눈초리를 불식시키고 당내 화합을 이루라는 등 극진한 훈수를 아끼지 않았다.

(…) 결국 그는 오늘날 비록 집권당의 후보가 되었지만 과거 야당 때의 프리미엄은 잃고 여당의 프리미엄은 아직 미지수인, 불리한 상황에 놓여 있는 것이다. 김영삼 씨의 출발점은 그래서 전당대회 모습만큼 화려하지 않다. 낙관할 수도 없다.
그런 김 후보의 활로는 오직 하나다. 국민을 보는 정치다. 민생을 아는 정치다. 그가 전당대회 이후 즉각 착수해야 하는 것은 탈 대권 정치 무드이다. 우리의 정치를 대통령선거가 있는 12월까지 7개월간이나 싸움의 와중에 방치할 수는 없다.
그것은 노태우 대통령과의 빈틈없는 관계를 유지하고 당을 파쟁의 연속으로 내몰지 않는 단호한 통제 능력에 의해서만 가능하다. 그는 대통령을 비롯한 집권세력의 상징들과 충돌하는 우를 범해서는 안 된다.
그것은 김 후보 혼자서 가능한 일은 아니다. 노 대통령과 김 후보는 즉각 당체제, 내각체제를 정비해야 한다. 두 사람은 긴밀한 협조 아래 지난날 오랜 기간의 당내 파쟁으로 방치됐던 국정과 민생을 추스리기 위한 일대 정비작업을 빠른 시일 안에 끝내야 한다.
그래서 정치싸움에 진저리를 내며 민자당을 질타해온 민심의 방향을 되돌리는 일에 전념해야 한다. 그것이 바로 집권당의 대통령 선거운동이다.
집권당의 대통령후보 탄생이 진정 의미가 있으려면 그것이 국민과 무슨 관계가 있으며 우리의 미래와 어떤 연관이 있느냐가 전제돼야 한다. 이제부터 민자당의 정책, 김 후보의 발언은 그 모두가 대통령시험에 들어간다. 그리고 그 시험관은 결코 민자당에 호의적이지 않다는 것부터 아는 것이 중요하다.(…)

‘김대중 후보 대한 5월 27일자 사설(「언·행 일치 지켜 볼 터」)은 살벌하기 짝이 없다. 김 후보의 변신 노력에 진심이 담겨 있는지, ‘얄팍하다’는 비판자들의 지적에 어떻게 대처할 것인지, ‘3수’라는 진부성을 어떻게 벗어날 것인지, 호남 인맥에서 벗어날 수 있는 여건을 어떻게 만들 것인지 지켜보겠다는 것이다. “통일방안을 비롯, 후보로서 원숙함을 기대한다”고 한 대목에서는 조선일보가 결국 김대중을 잘 믿을 수 없고 특히 통일문제에 있어서는 미숙하다고 본다는 느낌이 묻어나는데, 이 사설이 후보 김대중을 부르는 호칭은 ‘김 씨’였다.


정주영의 반격

언론의 불공정 보도에 시달리던 국민당은 9월 9일과 10일 거의 모든 일간지 1면에 ‘공무원과 언론은 공명선거를 가늠하는 두 잣대입니다’ 라는 광고를 게재했다. 며칠 전인 8월 31일 전 충남 연기군 군수 한준수가 14대 총선에서의 관권선거를 폭로한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한 것이었다. 물론 대선 국면에서 점차 노골화하는 언론의 개입을 저지하기 위한 몸부림이기도 했다. 이 광고는 「언론은 더 이상 정권의 도구가 아닙니다」라는 아래 “언론계에는 ‘김영삼 장학생’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조직적으로 신문·방송에 영향력을 심고 있는 것은 이제 비밀이 아닙니다”라고 폭로하면서 “공정보도는 국민의 힘으로 지켜야 한다”고 호소했다.

이에 대해 조선일보는 9월 11일자 사설(「국민당 광고와 언론」)에서 “그런 말(언론계에는 ‘김영삼 장학생’이라는 말이 있습니다)은 가십거리나 구전으로는 있을 수 있으되, 공당이 그것을 객관화시키고 사실인 것처럼 내외에 천명하고자 할 때는 명백한 근거가 있어야 한다. 이 광고는 그런 말이 있다고 자신의 거증 책임을 피해 가면서 비밀이 아니다라고 덧붙임으로써 그것을 기정사실화 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논리적으로도 아주 빈약한 것이며 보기에 따라서는 마타도어적 수법이라는 비판을 받을 수 있다”고 반박했다.
사설은 또 “언론계 사람들도 정견이 있는 한에는 김영삼 씨에 투표할 사람도 있을 것이고 정주영 씨에 투표할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때 정 씨에 호의적인 사람은 그렇다면 일괄 정주영 장학생이라고 불러야 할 것인지도 한 번 따져볼만 한 일이다”라는 이상한 논리를 펴면서 “국민당이 현대를 전 사원의 당원화로 이용하려 해서는 안 될 것이며, 재벌이 언론매체를 소유해서는 안 된다고 한 정주영 씨의 발언도 실천적으로 입증돼야 할 것이다”라고 국민당과 현대, 문화일보를 싸잡아 비판했다.


헌정 사상 초유의 중립내각 출범

헌정사상 첫 중립내각이 1992년 10월 성립되었다. 8월 말 전 충남 연기군수 한준수가 그 해 3월 총선에서 광범위한 관권선거가 이루어졌다고 양심선언을 한 덕분이었다. 김대중은 그 해 말로 다가온 대통령선거에서 또 다른 관권 개입을 방지하려면 ‘중립내각’을 구성해야 한다며 국회 일정을 전면적으로 보이콧했다. 노태우 정권으로서는 탈출구를 찾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었다.

민자당 총재 김영삼도 9월 16일 중립내각 구성 의지를 표명했다. 한준수의 양심선언으로 인한 위기를 수습하고 대선에서는 공정선거를 치루겠다는 의지를 과시하기 위해서였다. 조선일보는 9월 19일자 사설(「국정 표류만은 없어야」)에서 “대통령의 초당적 자세의 견지도 선거기간에는 결코 무의미한 것이 아니다”라고 중립내각 요구를 인정하면서도 “문제는 그렇게 해서 출현한 중립내각의 중립성은 과연 얼마나 힘 있는 행정력을 발휘할 수가 있겠느냐”고 우려했다.

이 사설은 “자칫 잘못하면 나라 관리의 해이와 혼미가 있을 우려가 있는 것이다”라면서 생뚱맞게도 “그러나 더 큰 문제는 야당의 반응 여하다. (…) 정치는 서로 주고받는 것이다. (…) 지금 나라는 분명 표류하고 있다. 그리고 국민은 지쳤으며 심란해 하고 있다. 더 이상의 극한 대결은 배를 산으로 가게 만들고, 두 김 씨 모두에 대한 유권자의 냉담 폭은 더 넓어질 것임을 알아야 한다”며 부정선거에 대한 항의와 대책 마련을 요구하는 야당에 일정 부분 국정 혼란의 책임을 묻고 있다.

조선일보가 9월 22일자에 보도한 공보처의 여론조사 결과에는 국민의 81.5%가 중립내각 구성 선언을 “잘한 일”이라고 평가했다과 나와 있었다. 조선일보는 개각이 임박한 10월 2일자에 「중립 내각의 조건」이라는 사설을 싣고 “중립내각은 일단 발족이 되면 최소한 선거가 끝날 때까지는 내각 책임제 하의 내각에 비견될 수 있는 권한을 갖도록 해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 사설은 중립내각의 총리는 그 책임과 권한으로 보아 평가받을 만한 행정경험이 있어야 하며  도덕적으로 강해야 하고, 과거 특정 정당에 크게 편향되거나 출신지역적 성격이 두드러지는 인물이라는 인상을 주는 인사가 아니어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그런데 이튿날인 10월 3일자에 나온 ‘류근일 칼럼’(「만만한 게 총리냐」)은 앞의 사설과는 논지가 달랐다. 그는“대통령 중심제 하의 대통령직은 그야말로 막강하고 막대하다”며 “지금까지 관권선거가 자행된 (…) 가장 큰 이유는 대통령이 관권선거를 적극 막지 않았던 탓”인데 왜 실권자도 아닌 총리를 두고 왈가왈부하느냐고 딴 소리를 했다. 하지만 역시 결론은 “굳이 중립이란 간판의 내각을 출범시키기로 했다면 그 경우 중요한 것은 중립총리나 중립내각에 대해 상당한 정도의 선거관리 재량권을 주어야 한다는 점이다” 였다.

‘중립내각’이란 초유의 메가톤급 이슈에 대해 조선일보는 10월 4일자 사설(「개각의 초점」)을 통해 안기부장을 반드시 개각에 포함시켜야 한다고 강조하면서 “비록 개각 대상에 거론되고 있는 부서의 장들이 개인적으론 공명선거 실시에 부담이 되지 않는다 하더라도 이미 지적한 과거와의 단절 ,미래에 대한 보장이라는 두 측면에서 하자가 있다면 과감히 개편 대상에 포함돼야 할 것이다”라고 훈수했다.

안기부장 교체를 망설이던 대통령 노태우는 결국 10월 9일 안기부장을 포함해서 내무·법무·공보처·정무 1장관을 포함한 헌정사상 최초의 중립 선거관리 내각을 출범시켰다. 안기부장에는 대통령 경호실장 이현우를 임명했다.    그러고 나서 노태우는 “공명선거에 대한 나와 새 내각의 결의는 매우 단호하다. 이번 대통령 선거에서 모든 선거 관계법은 엄정히 집행될 것이며 법을 어기는 행위에 대해서는 어느 누구를 막론하고 법대로 다스릴 것”이라는 담화문을 발표했다.

그러나 안기부가 대선을 앞두고  ‘남로당 이래 최대의 간첩 사건’을 발표한 데다, 민자당 의원 김복동의 탈당 및 납치 사건에 개입했다는 비판이 거세짐으로써 안기부의 중립 선언은 허울뿐이라는 사실이 드러났다. 안기부는 김기춘이 소집한 부산 ‘초원복국집’ 모임에도 얼굴을 내밀었다.

 

관리자 freemediaf@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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