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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존 인류의 조상은 하나 - 국보법의 좁은 시각

- [국보법 연구(11)] 고승우 80년해직언론인협의회 공동대표ㆍ언론사회학 박사

기사승인 2020.06.26  10:38: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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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이성과 감성은 시대와 장소에 따라 매우 다양한 모습으로 발현되는 특성이 있어서 사회과학도 그런 한계를 벗어나지 못했다. 20세기 후반 들어 오늘날 현존 인류, 호모사피엔스는 조상이 하나라는 고고인류학적 사실이 밝혀지면서 인간에 대한 좀 더 밀도 있는 연구가 가능해졌다. 또한 인간 유전의 비밀을 캐기 위해 인간이 가진 모든 유전자의 위치와 염기서열을 알기 위한 게놈 프로젝트 연구 결과가 2003년 발표됐는데 지구상의 모든 사람의 DNA는 99.5%가 동일했다. 이 세상에 똑같은 사람이 없는 것은 그 차이를 일으키는 0.5%의 게놈에 따른 차이였다. 인간 조상이 하나라는 고고학적 연구결과가 검증된 것이다.

인간 유전학을 연구하는 최신 이론은, 인간을 둘러싸고 있는 환경이나 행동 및 자발적 선택이 세포 안의 유전정보에 영향을 끼치고 더 나아가서 후손의 유전정보에도 영향을 끼칠 수 있을지 모른다는 ‘후성유전학(epigenetics)’이다. 인간에 대한 다양한 과학적 연구 결과가 제시되면서 현존 인류를 바라보는 시각이 변해야 한다는 필요성과 함께 인간이 무한한 유전적 잠재력을 지니고 있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코로나바이러스가 전 세계를 강타하면서 일부 지역에서 인종주의를 앞세워 혐오와 공격 등이 발생하고 있고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흑인 인권문제에 대해 역시 인종주의를 앞세운 편 가르기를 노골적으로 하고 있으나 이는 대단히 부적절한 행위라 하겠다. 국가보안법도 남북한 주민이 마치 민족의 동질성을 상실한 것 같은 착각을 남한 사회에 일반화시키고 있다는 점에서 그 폐해가 크다 하겠다.

현존 인류의 아프리카 기원설은 찰스 다윈이 1871년 ‘인간의 유래(The Descent of Man)’라는 책에서 처음 기술한 이후 1980년대까지 근거가 모호한 추론으로 여겨졌다. 하지만 그 후 인류의 DNA 미토콘드리아 연구와 고대 인류에 대한 고고학적 연구와 인간유전체를 규명하는 게놈 연구를 바탕으로 그 타당성이 인정되었다(주1). 현존 인류는 인종, 국적, 종교 등에 관계없이 약 20만 년 전 아프리카의 한 여인의 후손이라는 것이 1990년대를 전후해서 밝혀졌고 게놈 연구 등을 통해 직간접인 검증이 이뤄지면서 오늘날 정설로 굳혀진 상태다. 유전자 및 화석 연구를 통해 고대 인류는 10만-20만년 사이에 남서아프리카의 나미비아와 앙골라 해안 지방에서 살던 단일 조상으로 해부학적으로 진화했으며 그 후손이 6만 년 전 아프리카를 떠나 타 지역으로 이동하면서 네안델타르인과 같은 고대 인류를 대체했다는 것이다.

현존 인류는 동일한 조상에서 출발한 뒤 동서양, 아프리카, 아메리카 등지에서 각각 특색 있는 민족으로 진화하면서 독특한 문화를 창조했고 그 작업은 지금도 진행되고 있다. 인간의 유전적 잠재력은 다양한 환경 속에서 찬란한 문화, 언어, 예술, 철학, 제도, 의상, 가구, 건축을 발전시켰으며 이는 동서양에서 고대 이래 국가나 민족의 흥망성쇠 역사에서 발견된다.

이런 엄청난 자질을 지닌 인간의 이성과 감정 능력은 두뇌에서 주로 발현되는데 인간의 뇌는 유사이래의 기록을 살필 때 지난 수 천 년 동안 아주 미세한 변화에 그쳤다. 뇌의 크기가 청동기 시대 이후나 지금이나 거의 동일하다고 고고학자들은 말한다. 게놈 연구 결과 인간 유전체는 0.5%만이 차이가 있는데도 지역과 시대에 따라 다양한, 그러면서도 찬란한 문화와 문명을 이룬 것은 인간이 대단히 신비하다는 추정이 가능하다. 국가나 개인은 경쟁 관계 속에서 우열을 나타내고 무한한 잠재력 가운데 우세한 형질이 발현되면 그렇지 않은 국가나 개인을 지배하게 되고 그 반대의 현상도 역시 나타난다. 인류의 역사는 지역에 따라 다양한 형태로 발현했고 지금도 동일한 현상이 계속 이어지고 있다.

지구촌의 5대양 6대주에서는 고대사회, 중세사회, 근대사회, 현대사회로 이어지면서 갖가지 형태의 사회가 명멸했다. 시기별로 비슷비슷하다 해도 깊이 들여다보면 동일하지 않고 서로 다르다. 그 무수한 사회들은 다 나름대로의 질서 체계를 갖추고 흥망성쇠의 과정을 거쳤거나 현재 그러고 있다. 이런 현상은 오늘날에도 계속되고 있고 미래로 이어질 전망이다. 이는 놀라운 일로 인간이 신비한 존재라는 추정을 더욱 크고 무겁게 만들고 있다. 남북의 한민족도 역시 그 뿌리가 동일한 존재라는 점에서 전 인류의 공통점에서 예외가 될 수 없다. 사상과 이념이 다르다 해서 적대시 하고 배제하는 것은 어리석고 야만적이다.

하지만 남북한의 갈등이 현존하듯 지구촌에서도 유사한 현상이 존재하고 있는 것은 매우 안타까운 일이다. 오늘날 지구상의 인구가 70억에 달하면서 인구 폭발, 과잉 인구라는 말이 흔해진 탓인지 사람을 소중하게 여기거나 인간 자체가 매우 신비하다는 감정은 매우 희박하다. 오늘날에만 그런 것 같지 않다. 과거에도 그랬다. 고대 사회로부터 등장한 계급제도, 노예제도 등은 같은 인간이 동시대의 동반자인 다른 인간을 착취하고 학대한 끔찍한 사례다. 종교가 다르면 처단하거나 박해했고 이는 오늘날 일부 지역에서 여전하다. 인종이 다르면 같은 인간으로 보지 않으려 하는 것은 오늘날에도 광범위한 지역에서 발견된다. 그러나 법으로 인종차별과 같은 대립 또는 적대감을 권장하는 경우는 국보법이 거의 유일한 듯하다. 이 법은 남북한 간에도 같은 민족이지만 사상과 이념 차이가 더 의미 있고 결정력이 있으며 이를 받아들이지 않으면 처벌한다는 흉측한 내용의 공포적인 악법이다. 즉 이념이 민족을 우선한다는 식의 반민족적이고 반역사적인 억지를 강요하고 있는 것이다.

인간은 무엇이며 올바른 삶이란 어떤 것인가? 이 질문은 유사 이래 지속되었고 현재에도 여전히 많은 사람을 고민스럽게 만들고 있다. 아마 미래에도 비슷할 것이다. 남북 분단 상황에서 인간에 대한 질문은 심각한 것이 되었다는 점은 큰 비극이다. 남북 어느 곳에서 태어났느냐에 따라 사람이 왜 태어났으며 어떻게 살아야 하느냐에 대한 해답이 달라진다. 그 중에 하나는 인간의 뿌리에 대한 것이다. 남북한은 20세기 분단 이전 1300여 년 동안 통일된 상태였다. 그러나 분단이후 같은 민족이 아닌 양 적대적이 되었다. 이런 모습을 한반도 통일시대의 조상님들이나 먼 훗날 통일된 뒤의 후손들이 어떻게 볼 것인가? 이는 분단 시대를 살아가는 남북한 동포들이 공통적으로 지녀야 할 부끄러운, 그래서 반드시 청산해야 할 그런 적폐이다.

한반도가 언젠가 통일 또는 통합 될 것이라는 당위성을 추구하다보면 남북한은 같은 민족이라는 점과 함께 지구촌 전체 주민과 한 가족이라는 현실을 만나게 된다. 그러니 남북한이 다시 하나가 되는 것은 너무 자연스런 현상이라 하겠다. 하지만 현실은 어떤가? 과거나 현재나 국가나 지역 간 경쟁과 약육강식이 벌어지고 있고 같은 공동체내의 개인 간에도 서로가 경쟁관계이거나 갈등의 혼란 속에 있다. 인간의 DNA 속에 이런 하등동물적인 속성이 내재해 있다는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같은 조상으로 그 뿌리가 동일하다는 엄연한 사실을 부인할 수는 없다. 인류사를 볼 때 인간이 국가나, 지역, 단체 등에 애착과 소속감을 갖고 산다는 DNA도 분명 존재하는 것이다. 이는 스포츠에서 자기편이 승리하는 것에 열광하는 것, 나라를 빼앗겼을 때 국권을 회복하려 싸우는 그런 것에서 확인된다. 인간은 지구촌이라는 큰 공동체의 일원이면서 자기가 태어나거나 애착을 갖게 된 단체, 국가에 대한 강력한 열정, 애착심 등을 지니는 면이 강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접하는 세계사는 서양이 18세기를 전후해 식민지를 약탈, 강점한 것을 미화시킨 것이 많고 그에 따른 백인우월주의가 짙게 묻어 있다. 그러다 보니 하나의 조상에서 비롯된 인류의 세계사라는 인식을 하기 어렵다. 서구와 그 외의 지역에서 전개된 다양한 민족, 다양한 문화와 역사가 약육강식의 틀 속에서 전개되는 식으로 묘사되어 있다. 민족 간의 충돌, 침략이나 동서양의 교류나 정복, 지배와 피지배가 강조되면서 지구촌의 다양한 역사와 문화가 같은 핏줄의 조상이나 형제자매에 의해 만들어진 것으로 학습하기 어렵게 되어 있다. 남북에 대한 역사적 서술이나 해성 등도 마찬가지다. 국보법은 남북한 주민의 동질성을 부인하고 이질성을 심화시키는 악역을 하고 있다.

이제 이런 잘못된 관행과 고정관념에서 벗어나야 한다. 고고학 및 첨단과학의 연구 결과에 따른 결론을 바탕으로 한 새로운 관점에서 인문학이 정립되어야 한다. 그것은 호모사피엔스로 불리는 현존 인류의 조상이 하나이며 인간의 DNA 차원의 잠재력이 무한한 하다는 관점에서 출발해야 한다. 그러면 인간의 본질에 대한 설명과 미래 설계, 그리고 지구상에서의 대립, 갈등, 반목, 전쟁을 피할 수 있는 새로운 공동체 철학과 방법론을 제시할 수 있을 것이다. 남북한도 마찬가지로 6.15공동선언에서 선포한 국가연합 또는 낮은 단계의 연방제를 시도해야 한다.

현대사를 배울 때 자기 공동체 외의 6개 대륙에 대한 것은 다른 인종의 것인 양 인식하게 된다. 이런 시각과 관점은 이제 70억 인류는 같은 어머니의 후손이라는 생물학적 결론이 출발점이 되어야 한다. 즉 인문학의 출발점이 이것이어야 한다. 그러나 현재 제시된 여러 인문학적 관점이나 설명에 이런 과학적인 결론을 바탕으로 한 것은 아직 정리되지 않았다. 현재 많은 종교 교리나 철학, 인생 지침 등에 단편적으로 인류의 존재 의미에 대한 해답이 주어져 있지만 그것은 앞으로 더욱 탐구하고 완성해야 할 것들이다. 국보법은 이런 새로운 관점에서의 인문사회과학에 대한 접근이나 연구를 가로막는다.

인간의 역사는 인간DNA의 발현의 역사라 하겠다. 오늘의 현실이 그렇듯 미래도 인간의 잠재적 자질의 표출일 것이다. 오늘날 과학 기술이 발달하면서 미래학자들은 3년 뒤의 미래 예측이 불가능하다고 말한다. 이는 인간이 지닌 잠재력의 깊이와 폭에 대해 인간이 아직 그 전모를 파악치 못했다는 것과 같은 말이 아닐까. 인간은 잠재력은 천사와 악마처럼 상반된 갖가지 가치판단을 하는 성향이 공존하는 특성을 지녔다. 이런 상반된 요인이 한 인간 내에서 혼재해 있는 것은 인간의 이중성을 다룬 로버트 루이스 스티븐슨의 소설 ‘지킬 박사와 하이드’에서 잘 표현되어 있다. 인간은 그 내면에 이중성만을 지닌 것이 아니라 다양한 성격 등을 지닌 다면적 존재이기도 하다. 이른바 다중인격이 그것이다. 인간의 성격은 다면적이고 복잡하기 그지없어 그로 인한 자기모순을 겪는 고통도 심각하다. 이토록 인간의 내적 잠재력은 형언할 수 없을 정도로 다층적이고 다면적이어서 그것이 과연 축복인지, 저주인지가 애매할 지경이다. 그러나 단순한 것보다 복잡한 것이 더욱 묘미가 있다는 점에서 무한한 내적 잠재력은 축복이라고 보아야 하겠다. 국보법은 이런 측면을 부정한다. 국가나 정권이 제시하는 방식과 범위에서 사고하고 행동하도록 강요하고 있다. 이는 남한 사회라는 공동체의 발전 가능성을 심각하게 훼손, 축소하는 부작용을 낳고 있다.

인간의 특성 가운데 하나는 이성과 감정의 동물이라는 점이다. 인류의 지성들은 감성에 좌우되는 것을 피하고 이성적이 되도록 노력했고 후학들을 그렇게 가르쳤다. 이런 후천적 교육 탓인지 오늘날까지 감정에 대한 연구는 이성에 대한 것보다 매우 미흡하다. 누구나 경험하지만 감정은 예측 불가능하다. 사람의 기분은 눈앞의 파리 한 마리에 의해 크게 동요하기도 한다. 역사에 큰 발자취를 남긴 리더들의 주요 사안에 대한 결정은 감정에 좌우된 측면이 적지 않다는 것이 조사에서 밝혀지는 등 감정이 일상생활에서 미치는 영향은 지대하다. 그러면서도 사람은 자신이 감정의 노예가 된 것처럼 보이는 것을 극력 피하려 한다. 감정은 이성에 비해 변덕이 심하고 예측이 불가능하다는 점에서 연구가 어렵다. 그러나 향후 인공지능에 의한 감정연구가 활성화 될 지 알 수 없다.

상상하고 공상하는 능력과 잠재력의 차이는 이른바 진보와 보수의 차이로 나타날 수도 있다. 개개인은 현실에 불만 하는 정도나 미래를 그리는 욕망의 정도에 차이가 나서 전체 사회로 볼 때 진보와 보수로 갈리게 된다. 진보나 보수는 어느 쪽이 더 좋거나 바람직스럽다고 쉽게 말하기 어렵다. 제 나름대로의 장단점이 있다. 깊이 볼수록 아리송해지는 인간의 모임인 사회 또한 그러하다. 인간의 잠재력이 지대한 탓인지 모든 사회를 설명할 수 있는, 즉 도깨비 방망이 같은 사회 과학 이론은 존재치 않는다. 사회과학은 특정 시대, 특정 사회에 대한 설명에 국한되는 경우가 적지 않다. 한국의 정치, 경제학이 미국, 북한에서 통용되지 않는다. 같은 과학이라는 이름이 붙지만 사회과학이 자연과학과는 크게 다른 점이다. 이런 점을 살펴 현실과 미래를 살피는 시야를 좁게 만드는 국보법을 없애고 남북이 동시에 미래를 설계하는 지혜를 모아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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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
1) 
https://en.wikipedia.org/wiki/Homo_sapiens#cite_note-Wolpoff1988-15

 

 

 

관리자 freemediaf@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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