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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6대 대선-‘노무현 죽이기’(1)

- 조선일보 대해부 5권 - 7장(1)

기사승인 2020.09.16  13:45: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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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2년 12월 19일로 예정된 제16대 대통령 선거는 김대중에 이어 야권 후보가 승리하느냐, 아니면 한나라당이 ‘정권 탈환’을 이루느냐를 판가름하는 결전으로서 나라 안팎에서 큰 관심을 일으켰다.


 16대 대선 보도에 관한 조선일보사의 자화자찬

 1997년 제15대 대통령 선거에서 한나라당 이회창 후보와 새정치국민회의 김대중 후보가 치열한 접전을 벌였을 때 보수언론을 대표하는 조선·중앙·동아일보가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이회창을 직·간접으로 지원한 것은 명백한 사실이었다. 16대 대선이 다가오자 진보적 언론과 정치전문가들은 이번에는 조·중·동이 여권과 야권 후보에 대해 어떤 보도와 논평을 할 것인지를 두고, 15대 대선 때보다 보수언론이 야권 후보인 이회창을 더 적극적으로 지지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왜냐하면 김대중 정권이 2001년 초 언론사 세무조사를 시작한 뒤 특히 조선과 동아의 실질적 사주들이 구속되는 ‘굴욕’을 겪은 사건이 결정적 원인이 되어, 김대중의 후임으로 개혁을 추구하는 후보가 당선되는 일을 필사적으로 막으려 들 것이라고 보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정작 조선일보가 펴낸 ‘공식 기록’에는 이런 구절이 나온다.

  2002년 대통령 선거는 김대중 정권 5년의 뒤를 이어 또 다시 좌파 세력을 기반으로 한 정권이 들어설 것인가, 아니면 보수우파 정권이 들어설 것인가를 판가름하는 선거였다. 그래서 그 어느 선거보다도 두 진영은 뜨거운 선거전을 펼쳤다. 치열한 선거전 속에서 조선일보는 흔들림 없이 대통령 선거와 정치의 진정한 의미를 독자들에게 줄기차게 환기시켰다. 대선 주자들이 오로지 승리만을 위해 원칙도 신념도 없이 이합집산 할 때마다 이를 매섭게 질타하며 “대통령 선거란 국가 지도자를 뽑는 절차”임을 환기시켰다(<간추린 조선일보 90년사>, 408~409쪽).

 이 기록은 첫 문장부터 읽는 이를 혼란스럽게 한다. 2002년 대통령 선거가 (김대중 정권의 뒤를 잇는) ‘좌파 세력’과 ‘보수우파’의 대결이라고 전제한 것이 그렇다. 김대중 정권은 ‘좌파’라기보다는 민주주의와 시장경제주의를 주창한 데다 자민련이라는 보수우파와 손을 잡고 연합정부를 구성하지 않았던가?

 그리고 자타가 공인하는 보수언론의 대표 격인 조선일보가 좌파와 우파의 ‘치열한 선거전 속에서’ “흔들림 없이 대통령 선거와 정치의 진정한 의미를 독자들에게 줄기차게 환기”시킬 수 있었을까?

 조선일보가 16대 대선 과정에서 어떤 기사와 논설 또는 논평을 실었는지를 지금부터 상세히 짚어보기로 하겠다.


 민주당의 ‘국민경선제’를 폄하

 2002년의 대선에 앞서 민주당은 사상 처음으로 국민경선제를 도입하기로 결정했다. 조선일보는 국민경선이 시작되기도 전에 그 제도를 헐뜯는 기사를 2월 27일자 5면에 실었다.
 
  민주당의 첫 대선후보 경선지인 제주에서 378명을 뽑는 국민선거인단 공모에 6만5000명의 신청자가 몰려 172 대 1의 경쟁률을 기록했다.
  이는 제주지역 유권자의 5분의 1에 달하는 숫자다. 민주당은 “예상 밖 성과”라며 고무된 분위기다. 막판에 신청서가 수만 장 몰리는 바람에 25일 저녁에 하려던 컴퓨터 추첨이 26일 오전 10시 30분으로 연기됐다. (·····)
  각각 752명, 956명을 뽑는 울산과 광주지역도 26일 밤 11시 현재 8만 5600명, 10만3800명이 접수, 100 대 1을 넘어섰다.
  그러나 이런 실적은 대부분 ‘동원’에 의한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각 캠프의 주장에 따르면, 제주의 경우 이인제 고문 측이 2만명, 노무현 고문 1만 5000명, 김중권 고문 7000~8000명, 정동영 고문 5000명, 김근태 고문 측은 3000명 정도 모은 것으로 전해진다. 한화갑 고문 측은 일절 함구하고 있지만, 1만~1만5000명은 족히 넘을 것이란 관측이 많다. 울산·광주지역도 이인제·한화갑·노무현 고문 등은 1만~3만 명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와 관련, 각 주자 캠프에선 상대방 캠프의 신청서에 대해 “충성도가 낮아 표로 연결되지 않을 것”이라고 폄하하고 있다. 각 캠프에서 주장하는 상대측 ‘허위 신청서’의 종류도 여러 가지다.
  응모자 1명이 여러 캠프에 신청서를 써주는 중복 신청서, 응모자가 입당은 하지 않겠다는 조건을 전제로 써준 신청서 등이 존재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하단의 “이 신청서는 입당원서로 사용될 수 있다”는 문구가 지워진 채 접수된 신청서가 발견돼 적법성 논란이 제기됐으나 당 선관위는 일단 ‘유효’ 판정을 내렸다. (·····)
  한편 일부 주자 진영에선 25일 밤늦게 배달된 신청서 2만장에 대해 의문을 품고 진상조사를 벌이고 있다. 제주도 지부 관계자도 “25일 하루에 700~1000장 뭉치로 2만장이 들어왔으며, 이 중 1만장은 오후 5시 이후에 왔다”고 말했다.

 조선일보 2월 28일자 사설(「경선인가원인가?」)은 위의 기사를 바탕으로 민주당의 당원 경선에 강한 비난을 퍼부었다.

  당원이 아닌 일반국민도 참여시키는 민주당의 대선후보 당내 경선은 첫 경선지인 제주에서 ‘국민대표’ 378명 공모에 무려 6만5000명이 몰리는 성황을 이뤘다고 한다. 무려 172 대 1의 경쟁률이다. 그러나 이런 대단한 외형과 달리 진작부터 당내 후보들 사이에 ‘강제동원’ 시비가 일어나, 정당사상 최초임을 자랑하는 ‘국민경선제’는 출발점에서부터 시끄러운 소리를 내고 있다.
  민주당의 ‘국민경선’은 전체 선거인단 7만 명 중 3만5000명을 전국 16개 광역시·도의 ‘국민’들로 충원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각 후보 진영은 지역별 ‘국민대표’ 추첨 때 ‘자기 쪽’ 국민들을 많이 당첨시켜야 하기에 가급적 최대한의 국민대표 ‘후보’들을 추첨에 참여시키는 데 매달릴 수밖에 없다. 그러나 이러한 참여가 자발적인 것이 아니라, 도를 넘는 ‘권유’ 또는 향응·금품을 미끼로 한 것이라면 이 제도는 기본취지를 상실할 수밖에 없다.
  제주 경선의 경우엔 6만5000명 신청자의 26%인 약 1만7000명이 중복신청으로 밝혀져 추첨에서 제외됨으로써 중대한 문제점을 드러내고 말았다. 4명 중 1명꼴로 중복이 있었다는 사실은 각 후보 진영의 ‘동원책’들이 얼마나 극성스럽게 뛰고 무리를 범했느냐를 말해주는 것이기 때문이다. 선거인단 참여는 하되 ‘당원’으로 입당하는 것은 마다하는 ‘국민’들을 위해 신청서 하단(下端)에 있던 “이 신청서는 입당원서로 사용될 수 있다”는 문구를 지워버린 것도 발견됐다고 한다.
  각 후보 진영은 “당첨되면 해외여행을 시켜준다고 했다더라” “호텔 룸살롱을 전세냈다더라”며 상대측의 ‘불법’을 고발하고 있다. “국민경선제가 처음이니 어쩔 수 없는 일 아니냐”고 한다지만, 진솔하지 못한 국민경선제는 국민을 곤혹하게 하는 ‘쇼’로 일탈할 수도 있음을 유의해야 할 것이다.


 노무현 무시하기

  조선일보는 3월 9일 민주당의 제주 국민경선이 시작되기 전부터 특히 노무현을 ‘무시’하는 듯한 보도 태도를 드러냈다. 그리고 경선 초기에 한화갑, 이인제, 노무현, 정동영, 김중권, 유종근, 김근태 7명의 후보 가운데 노무현이 예상을 뒤엎고 약진을 하자 그를 주목하기보다는 ‘혼전’으로 평가했다. 3월 11일 제주와 울산의 경선에서 노무현이 종합 1위를 차지했는데도 1면 머리에는 「여 대선후보 경선 대혼전」, 4면에는 「민주당 경선 초반 혼전 / 5강 구도 ‘살얼음판’」이라는 기사를 내보냈다. 조선일보가 이인제와 노무현의 ‘2강 구도’를 처음으로 보도한 것은 3월 18일 대전에서 이인제가 압승을 거둔 뒤였다.

 조선일보는 3월 18일자 사설(「‘대세론’과 ‘대안론’」)에서 대통령 김대중의 마음(‘김심[金心]’)이  노무현에게 쏠려 있을 수도 있음을 암시했다.
 
  전국 16개 시·도를 돌며 차례로 진행되고 있는 민주당 대선후보 경선은 그동안 제주·울산·광주를 거쳐 어제 대전 행사를 마치면서 뚜렷한 양강(兩强) 구도를 드러내고 있다. 물론 아직은 초반을 벗어나지 못한 단계이기는 하다. 그러나 현재 종합 1·2위의 이인제·노무현 씨가 나머지 다른 후보에 비해 상당한 표차를 보이는 데다 지역별로도 선두권을 유지하고 있어 양강 구도가 두드러지고 있다.
  그동안의 지역별 경선에서 특히 주목되는 것은 광주와 대전의 경선 결과라 할 수 있다. 광주의 경우, 지역 연고가 있는 한화갑 씨가 비호남인 노무현 씨에 비해 20%나 뒤지는 득표로 3위에 머물렀다. 2위인 이인제 씨와도 10% 이상 차이를 보인다. 이는 종래의 단선적(單線的)인 지역 출신 선호 현상이 상당한 변화를 보였다는 해석을 낳게 한다. 이와 함께 지난 1~2년 동안 각종 조사를 통해 이인제 씨에게 기울었던 호남 여론의 향배에 새삼 시선을 모으게 한다.
  대전 경선의 경우 이인제 씨의 1위가 예상된 것은 사실이나 2위인 노무현 씨를 무려 50% 이상 앞선 결과를 드러냄으로써 종래의 지역 연고의 위력을 새삼 과시했다. 이런 가운데서도 노무현 씨는 나머지 후보들과는 상당한 득표 차이를 보여 대전지역에서도 상대적 강세를 나타냈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흐름은 이른바 ‘이인제 대세론’, ‘노무현 대안론’이 팽팽히 경합하고 있음을 말해준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이른바 ‘김심(金心)’의 향배가 끝까지 주목받을 것이다. 최종적으로는 선거인단이 각기 1만5000명인 경기도와 서울에서 대세가 결정될 것이다.


 ‘청와대 음모론’ 부풀리기

 2002년 3월 4일 조선일보는 주필 김대중을 편집인으로 발령하고 논설주간 류근일을 그의 후임으로 임명했다. 편집인 김대중은 3월 19일 김영삼 정부 시기 장차관들의 모임인 ‘마포포럼’이 주관한 조찬회에 참석해서 ‘언론이 본 정치 전망’을 주제로 강연을 하며 이런 요지의 말을 했다. “김대중 대통령이 민주당 경선 후보 가운데 노무현 후보를 도와주는 것 같다. 조만간 김 대통령이 부산에 갈 것으로 보인다. 최근 방송사들의 여론조사에서 노무현 후보가 가 크게 앞서고 있는데 김 대통령의 노 후보 밀어주기와 연관이 있는 것 같다.”(미디어오늘 3월 21일자 1면).

 편집인 김대중의 이런 주장은 대통령 김대중이 노무현을 은밀히 지원한다는, 이른바 ‘청와대 음모론’의 불씨가 되었다.

 조선일보 3월 25일자 4면에는 민주당 후보 이인제가 “연일 청와대를 겨냥해 각종 음모론을 퍼붓고 있다”는 내용의 기사가 나왔다.

  이 후보는 22일 대전에서 열린 TV토론에서 노 후보에게 “박지원 특보를 2월 19일과 27일 만난 적이 있느냐? 올해 들어 한 번도 안 만났느냐?”라며 음모론과 관련, 특정인물을 처음 거론하기 시작했다. 이 후보는 이어 23일 충남지역 경선 연설에서 “유종근 후보가 사퇴할 때 청와대의 어느 분이 사퇴 압력을 넣었다”면서 “청와대에서 대통령을 빙자한 어떤 분이 (경선에) 간여하고 있다면 대통령 곁에서 축출해야 한다”고 말했다. (·····)
  이날 노무현 후보는 “음모론을 우리 당에서 주장하는 것은 해괴한 일이다. 국민을 모욕하는 일이다”라며 연설시간의 상당 부분을 음모론 반박에 할애했다.
  한편, 이인제 후보 진영 내부에서 음모론의 주역으로 거론돼온 P·K·L 씨는 일부 신문에 자신들의 실명이 보도되자, 23일 음모론을 공식 부인했다.
  이 후보 측이 각종 음모론과 노 후보의 정책 성향 등에 대해 융단폭격을 가하고 있는 까닭은 지난 16일 광주 경선 이후 상승세를 탄 ‘노무현 바람’을 막기 위한 고육지책 같다는 것이 당내외의 대체적인 분석이다.
  이 후보가 김대중 대통령의 분신이나 다름없는 박지원 특보를 직접 겨냥한 것도 최근의 노 고문 지지 급상승이 ‘김심(김 대통령 마음)’ 때문이라는 점을 은연중 강조함으로써, 노 후보에 대한 표 쏠림 현상을 사전에 막으려는 것으로 보인다.

 3월 25일자 조선일보 4면에는 이인제가 노무현을 향해 ‘광기(狂氣)’ ‘운동권’ 같은 용어를 동원해 공격을 퍼부었다는 기사가 실렸다.

  23일 충남, 24일 강원 등 3주째를 맞은 민주당 대선 후보 경선에서 이인제 후보는 ‘광기’ ‘운동권’ ‘돌풍’ 등의 용어를 동원, 노무현 후보를 극단주의로 몰아붙이며 맹공을 가했다.
  노 후보는 “민주주의 원칙을 한 번도 깬 적이 없는 나를 독재자에 비유하는 것은 말이 안 된다”며 이 후보를 겨냥한 듯 “경고한다. 민주당을 배신하지 말라. 국민은 두 번 배신하면 결코 용서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 후보는 24일 강원 연설에서 “돌풍에 놀라지 말라. 돌풍은 백해무익한 것이며, 지도자는 자질과 역량, 비전을 보고 선택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 후보는 이에 앞서 23일 충남 연설에서 “독일의 나치 정권, 아르헨티나 페론 정권 등 광기로 해서 망한 나라가 많다. 1주일에 대통령이 3번이나 바뀌기도 했으며, 국민은 거리를 헤매고 있다”며 “지금 특정 후보가 광기와 분노의 불꽃 위에 올라 있다”고 말했다.
  이 후보는 또 “민주당은 합리적 진보세력과 건강한 보수세력이 결집된 중도개혁 정당”이라며 “결코 극단적인 운동꾼들이 안방을 차지할 수 있는 정당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이 후보는 “운동권은 사회 변혁을 선도하는 세력으로 소중한 가치를 갖지만, 민주당은 4500만 국민 전체를 견인해야 하며, 운동권 출신들이 구름처럼 다니면서 경선의 판도를 좌우하는 일이 없도록 판단해 달라”고 말했다.

 이 기사가 실린 조선일보 3월 25일자 2면에는 「‘음모론’ 무엇이 진실일까」라는 사설이 올랐다.
 
  김대중 대통령 측근이 민주당 경선 과정에 개입하고 있다는 ‘음모론’, 이른바 ‘김심’ 시비가 경선 구도를 뒤흔들고 있다. 이인제 후보는 23일의 충남대회를 전후해서 “대통령의 측근 실세들이 어떤 형태로든 경선에 개입하고 있다면 참으로 중대한 문제”라고 ‘음모론’의 한 자락을 펼치고, “사실이라면 그 인사는 대통령 근처에서 밖으로 나와야 한다”고 요구했다.
  그는 또 TV토론에서도 노무현 후보에게 “2월 19일과 27일 박지원 특보를 만난 적이 있느냐”고 실명을 들어가며 ‘음모론’을 거론했다. 그러나 이 공방은 “그런 일이 전혀 없다”는 노 후보의 부인으로 싱겁게 끝나고 말았다. 물론 지금의 ‘음모론’은 “…하고 있다면”이란 가정(假定)을 전제로 하고 있긴 하지만, 일이 여기까지 번진 이상 없는 일로 치부하고 갈 수는 없게 됐다.
  우선 ‘김심’ 개입이 사실이라면, 그것은 김 대통령이 ‘정치 초연’의 약속을 정면으로 뒤엎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청와대는 ‘근거 없는 말’이란 소극적 해명에서 나아가 “왜 근거가 없는가”를 적극적으로 밝히는 자세가 필요하다.
  다음으로 ‘음모론’은 경선의 공정성 시비나 정당성 시비를 유발시키는 당내 문제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대선 정국의 투명성 여부에 직결되는 국가적 문제로 확산될 수 있다. 그렇다면 이 후보는 “누가 뭐라고 했지 않느냐” “이상하지 않으냐”는 식의 정황론만 띄울 것이 아니라 자기 주장의 구체적 근거를 적시(摘示)해야 할 책임이 있다.

 많은 유권자들의 눈길이 쏠린 가운데 민주당의 후보 경선이 막바지에 이르자 조선일보는 3월 27일자 2면에 「민주 경선 이렇게 막 내리나」라는 사설을 내보냈다.

  민주당의 대선 후보 경선이 휘청거리고 있다. 당원이 아닌 일반 국민도 참여하는 ‘국민경선제’의 도입 속에 화려하게 출발한 전국 순회 경선 레이스였지만, 채 중반에 들어가기도 전에 경선이 자체 소멸될지 모르는 상황으로 급전하고 있는 것이다. 그동안 선거인단 수를 가장 많이 확보해 선두에 있는 이인제 씨가 선거운동을 중단해 버렸다는 사실이 경선 전선의 갑작스런 이상(異狀) 정황을 한마디로 말해 주고 있다.
  이번 경선은 애초부터 여러 곡절을 보여줬다. 각 후보 진영의 선거인단 확보 경쟁 속에서 일련의 과열 논란이 빚어졌고, 김근태 씨의 정치자금 관련 ‘고해(告解)’ 파문이 생겨났다. 이런 가운데 ‘국민대표’로 뽑힌 선거인단의 절반 가까이가 막상 후보에 대한 투표 당일에는 불참하는 등 부실한 모습도 드러냈다. (···)
  그동안 7명으로 출발한 전체 후보 가운데 절반이 넘는 4명이 물러났다. 경선레이스에서 약체 후보가 도중 사퇴하는 것은 결코 이상한 일이 아니다.
  그러나 이 와중에서 권력에 의한 ‘외압’ 논란이 시작됐다. 소위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한 음모설은 지금 선두인 이인제 씨 측이 그 배후로 청와대 박지원 특보를 거명하는 등 강하게 주장하고 나섰다. 물론 그 진위는 아직 밝혀지지 않았지만 음모설이 사실이라면 이번 경선은 스스로 의미를 상실한다.


 노무현에 대한 ‘색깔 공세’

 ‘청와대 음모론’과 더불어 조선일보가 노무현을 공격하는 데 ‘활용’한 주요 소재는 ‘색깔론’이었다. 3월 22일자 4면을 도배하다시피 한 「이인제·노무현 정면 격돌 / 사상 논란」에 조선일보의 그런 의도가 여실히 드러나 있다.

  21일 춘천 KBS 주최 강원지역 민주당 대선 후보 합동토론회에서는 이인제·노무현 두 후보가 정책노선을 놓고서도 정면 충돌했다. 두 후보는 후보 자신은 물론, 측근 간 공방에서도 정치적 성향의 차이를 극명하게 드러냈다. 그동안 노 후보가 이 후보의 정체성 등을 공격하던 양상과 달리, 이날은 이 후보가 공세를 취했다.

  · 국가보안법 논란

  토론에서 이인제 후보는 “노 후보께선 국가보안법을 전면 폐지해야 한다고 주장하셨는데, 저는 남북관계의 변화에 맞게 점진적으로 개선해야 한다고 생각한다”면서 포문을 열었다.
  이 후보는 “보안법을 전면 폐지하면 북한을 위해 활동하고 선전하는 사람들을 규제할 수 없게 돼 (국가에) 혼란과 위협이 올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자 노무현 후보는 “국가보안법은 반민주 악법이다. 이 법은 문명사회의 수치이고, 전 세계적으로 부끄러운 일”이라며 “폐지해도 관계없고, 필요하면 대체입법으로 보완해야 한다”고 말했다. 노 후보는 “한 사람의 정치인으로서 의견을 말하면, 국가보안법은 민주주의를 짓밟은 상징적인 법이고, 이로 인해 많은 사람이 피해를 입고 공포를 느끼고 있다. 반문명적인 법”이라고 말했다.

 · ‘파괴적 개혁세력’논란

  노 후보는 지난 주말 대전 경선 직후 이 후보가 자신을 겨냥해 ‘국민을 혼란하게 만드는 파괴적 개혁세력’이라고 한 발언에 대해 이날 역공을 취했다. 노 후보는 토론 도중 “이 후보는 저를 겨냥해서 급진·과격으로 평가하고 파괴적이라고 말했다. 한국 국회에 들어와 여러 선거에서 검증받아 최고 위원과 부총재가 된 사람 수준에서 파괴적 정치가 있었다면 사례를 말해달라”고 물었다.
  이에 이 후보는 노 후보의 ‘언론과의 전쟁’ 발언을 예시하며 “노 후보가 상대를 너무 무자비하게 부정하고 폄하하는 태도가 도처에서 보인다”고 말했고, 노 후보는 “언론사의 범죄에 대해 말한 것에 대해 (과격성향이라고 말하는 것은) 악의적 표현”이라고 대응했다.

 조선일보는 3월 30일자 2면에 「후보 검증 철저히 해야」라는 사설을 올렸다.

  나라의 대통령이 되겠다면서 표를 구하는 정치인으로서 자신의 정치철학을 비롯해 공·사(公·私)의 모든 것을 숨김없이 사실대로 드러내는 것은 국민 심판에 앞선 기본 의무이다. 지금 민주당 대선 후보들 간에 벌어지고 있는 이념·정책 검증 논쟁은 그런 의미에서 더욱 그 추이에 관심을 모으게 한다.
  우리의 선거사에서 각 정당·후보들은 언필칭 ‘정책 대결’을 언제나 내세워 왔다. 그러나 실제에서는 각기 내세운 ‘정책’이란 것이 결국은 당장의 득표에 유리하게끔 서로 모방하고 베끼는 식으로 물 타기가 되어버린 채 지역감정 촉발이나 인신공격, 물량공세 위주의 후진적 행태로 시종했던 게 사실이다. 이러한 행태가 지금 변화를 맞고 있는 것이다.
  그러한 변화가 보다 의미를 지니려면 후보들에 대한 검증작업이 글자 그대로 철두철미하지 않으면 안 된다. 당장 한 후보가 과거에 주장했다는, ‘법은 정당하지 않을 때는 지키지 않아야’나 ‘노동자가 주인이 되는 세상’이라든지 ‘재벌주식이나 토지를 노동자·농민에게 분배하는 정책’의 의미가 과연 무엇인지 등은 나라의 앞날에 있어 실로 중대한 문제가 아닐 수 없는 것이다. 이 발언들에 대해 당사자는 “상징적인 정치연설이었다” “비유적 야유 발언이었다” “지금은 생각이 다르다” 등으로 해명하고 있는 것으로 돼 있다. 또 “현장 논리라는 게 있다”라고 설명되기도 했다고 한다.
  그러나 이런 식으로 구체성이 결여된 채 소극적·회피적으로 ‘검증’이 종료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 공인의 발언이 ‘현장논리’라는 것 하나만으로 모든 문제를 덮을 수 있다는 것인지, ‘지금 생각은 다르다’면 과거 시점과 현재 사이의 그러한 변화는 어떻게 해서 가능케 됐는지 등 보다 구체적·논리적 거증이 필요하다. 이러한 이념·정책 공방이 왜 경선 중반인 이제서야 발화됐는지도 생각해 볼 대목이다. 만약 도중 ‘세불리(勢不利)’가 없었다면 이를 주도적으로 제기한 후보 측이 그냥 지나갔을지도 모른다는 얘기가 되기 때문이다.

 이 사설이 문제로 삼고 있는 ‘한 후보’가 노무현이라는 사실은 의심할 나위도 없는 사실이다. 조선일보는 그런 식으로 노무현에 대한 ‘색깔 공세’를 자행했다.

 

관리자 freemediaf@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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