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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4 남북 정상 선언’에 재 뿌리기

- 조선일보 대해부 5권 - 14장

기사승인 2020.11.11  11:33: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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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7년 10월 2일 오전, 노무현은 대한민국 국가원수로서는 처음으로 육로를 통해 평양에 도착했다. 그는 판문점 군사분계선을 걸어 넘으면서 “금단의 벽을 허물고 민족의 고통을 해소하고, 고통을 넘어서서 평화와 번영의 길로 가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조선일보는 10월 3일자 1면에 ‘평양 발’로 ‘공동취재단’의 기사를 실었다.

  노무현 대통령과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이 2일 평양에서 첫 만남을 가졌다. 두 정상은 이날 환영식장에서 간단한 악수와 인사를 나눈 것 외에는 별도 만남을 갖지 않았다. 
  이날 오전 9시5분 군사분계선을 걸어서 통과한 노 대통령은 전용 승용차 편으로 평양∼개성 고속도로를 달려 공식 환영식장인 평양 시내 4·25문화회관에 12시쯤 도착, 김 위원장과 함께 12분 간 환영식에 참석했다. (···)
  노 대통령은 3일 오전과 오후 각각 한 차례씩 김 위원장과 공식적인 회담을 한 뒤 합의문 작성을 시도할 것으로 알려졌다. 합의문은 빠르면 3일 밤 나올 것으로 예상된다.


 조선일보 사설, 남북 정상회담 방식에 이의 제기

 조선일보는 10월 4일자 35면에 실은 사설(「 남북 정상회담의 정상화(正常化)가 필요하다」)을 통해 회담의 방식과 내용에 대해 비판적인 주장을 펼쳤다.
 
  청와대와 여권 관계자들은 이번 남북 정상회담에 대해 회담 정례화의 길을 열었다는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 지난번엔 김대중 정권에서, 이번엔 노무현 정권에서 이렇게 정권을 거르지 않고 회담이 열렸다는 뜻인 듯하다.
  그러나 회담 정례화 못지않게 중요한 것이 회담의 정상화다. 남북 정상회담은 지난 2000년 처음 열렸을 때부터 비정상으로 출발했다. 대북 불법 송금으로 회담을 성사시킨 것부터 그랬고, 정상회담 하루 전에 회담이 연기되는 전대미문의 일도 벌어졌다. 평양에서 남측 대통령이 한동안 경호 공백 상태에 빠지는 상황이 벌어졌는가 하면, 북측은 예정에 없이 김일성 묘소를 참배하라고 요구하기도 했다.
  이번 두 번째 회담에서도 정상적 정상회담이라고 볼 수 없는 문제가 한둘이 아니다. 김정일 위원장은 3일 오후 정상회담 도중 갑자기 노 대통령에게 “평양에 하루 더 머물러 달라”고 제의했다. 지난번엔 회담을 연기하자면서 그 이유도 대지 않아 구구한 억측을 낳았다. 그러더니 이번엔 회담을 하루 연장하자고 했다. 두 번 모두 일방적, 기습적이다. 김 위원장이 이런 제의를 한 이유는 이날 평양에 비가 내려 아리랑 집단체조에 어려움이 있기 때문일 것으로 짐작만 할 뿐이다. 정부는 이 제안을 받아들이지 않기로 했고, 북측은 아리랑을 강행했다. 아리랑 때문이든 아니든 남측 대통령을 하루 더 잡아놓겠다는 북측의 태도를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가.
  정상회담은 양측에서 번갈아 열리는 것이 외교의 상식이고 관례다. 남북은 2000년 회담에서 그렇게 하기로 명백히 합의했다. 그 합의는 지켜지지 않았다. 이런 식으로 남북정상회담이 정례화된다면 다음 대통령도 또 평양에 가서 김 위원장을 만나야 한다. 앞으로 한 번만 더 이렇게 되면 정말 ‘알현’이라는 말이 나오지 않을 수 없다.
  김 위원장이 어디에 언제 나타나는지도 알 수 없다. 첫날 노 대통령을 영접하는 장소도 몇 시간 전에 갑자기 바꿔버렸다. 그 자리에 김 위원장이 나온다는 것도 그 직전에야 남측에 알려줬다. 김 위원장은 3일 정상회담장에도 예고 없이 일찍 나타났다. 아무리 그가 신변 안전에 피해의식을 갖고 있다고 해도 회담 상대방을 조금도 고려하지 않는 행태다. 정상회담에서 초청측 환영만찬을 정상이 주재하지 않고 대리인을 내보낸다는 것도 상식 밖의 일이다.
  남북정상회담 정례화는 중요한 문제다. 그러나 이런 식의 회담이 굳어지는   것은 비정상의 정례화일 뿐이다. 남북정상회담은 이제 정상화돼야 한다.


  ‘국민과 다음 대통령 어깨에 지울 짐’

 ‘대한민국 대통령 노무현’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국방위원장 김정일’은 10월 4일 ‘남북관계 발전과 평화 번영을 위한 선언’(2007 남북 정상 선언)을 발표했다. 두 정상의 선언에는 8개 합의사항이 담겨 있었다.

 1)남과 북은 6·15 공동선언을 고수하고 적극 구현해 나간다.
 2)남과 북은 사상과 제도의 차이를 초월하여 남북관계를 상호 존중과 신뢰 관계로 확고히 전환시켜 나가기로 하였다.
 3)남과 북은 군사적 적대 관계를 종식시키고 한반도에서 긴장 완화와 평화를 보장하기 위해 긴밀히 협력하기로 하였다.
 4)남과 북은 현 정전체제를 종식시키고 항구적인 평화체제를 구축해 나가야 한다는 데 인식을 같이하고 직접 관련된 3자 또는 4자 정상들이 한반도지역에서 만나 종전을 선언하는 문제를 추진하기 위해 협력해 나가기로 하였다.
 5)남과 북은 민족경제의 균형적 발전과 공동의 번영을 위해 경제협력 사업을 공리공영과 유무상통의 원칙에서 적극 활성화하고 지속적으로 확대 발전시켜 나가기로 하였다.
 6)남과 북은 민족의 유구한 역사와 우수한 문화를 빛내기 위해 역사, 언어, 교육, 과학기술, 문화예술, 체육 등 사회문화 분야의 교류와 협력을 발전시켜 나가기로 하였다.
 7)남과 북은 인도주의 협력사업을 적극 추진해 나가기로 하였다.
 8)남과 북은 국제무대에서 민족의 이익과 해외 동포들의 권리와 이익을 위한 협력을 강화해 나가기로 하였다.

 세계 유일의 분단국가라는 ‘불명예’를 떨치지 못하고 있는 한반도에서 통일로 가는 길은 험난할 수밖에 없다. 한국전쟁이라는 동족상잔의 비극이 남긴 상처가 아직도 가시지 않은데다 평화공존을 보장하는 종전협정이 아직도 맺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남한과 북한을 지배하는 정권이 체제 강화를 위해 남북 대화를 이용한 전례(박정희와 김일성의 ‘7·4 남북 공동성명’)도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통일을 이루지 못하면 민족의 화합과 공존은 영원히 불가능할 것이므로 험난한 길을 거쳐 분단의 장벽을 허무는 일은 가장 중요한 과업이다.

 이런 ‘통일관’을 지닌 동포들이라면 김대중 정부 시기인 2000년에 나온 ‘10·4 남북 공동선언’을 이어받은 2007년의 ‘6·15 선언’이 통일의 디딤돌이되리라고 믿었을 것이다.

 한겨레 2007년 10월 5일자 사설(「평화와 번영은 멀리 있지 않다」)은 ‘10·4 남북 정상 선언’을 “남북 관계와 한반도 평화의 새로운 이정표를 제시한 역사적 문건”이라고 평가했다.

 그런데 조선일보는 이런 평가와는 정반대로 가는 사설(「다음 대통령과 국회는 10·4 선언 철저히 검토해야」)을 10월 5일자 39면에 실었다.
 
  노무현 대통령과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이 4일 남북공동선언에 합의했다. 이 선언의 가장 큰 특징은 실질 임기 두 달 남은 정권으로선 책임 있게 감당하기 힘들 것이 분명한 긴 대북 지원 약속 목록이다. ‘언제’ ‘어떻게’가 명시되지 않은 이 목록은 결국 국민과 다음 대통령 어깨에 지울 짐 명세서인 셈이다.
  그러면서 선언문은 북핵 문제와 관련해선 “한반도 핵문제 해결을 위해 9·19 공동성명과 2·13 합의가 순조롭게 이행되도록 공동으로 노력하기로 했다”고 한 것이 전부다. ‘북핵 폐기’라는 수사(修辭)조차 한 마디 없다. 노 대통령은 “김 위원장의 핵 폐기 의지를 확인했다”고 했지만, 두 사람이 과연 북핵 폐기와 관련해 의미 있는 대화를 나누기나 했는지 의문이다. 북핵은 우리 머리 위에 있는데 한반도의 두 당사자가 이런 겉핥기 한 마디로 핵을 덮어버린다면 도대체 한반도의 주인은 누구라는 말인가. 선언문에 나온 ‘평화체제 구축’이란 말이 공허하게 들릴 수밖에 없다. (·····)
  선언문은 “서해에 공동어로수역을 지정하고 이 수역을 평화수역으로 만들기 위한 문제를 협의하기 위해 남북 국방장관 회담을 연다”고 했다. 공동어로수역과 평화수역에 따른 북한 선박의 NLL 자유 통과는 결국 북방한계선(NLL) 무력화로 가는 징검다리가 될 가능성이 있다. 이제 공동어로수역의 위치가 쟁점이 되겠지만 어떤 경우든 우리 옹진군 주민들의 생존권이 위협 받고 북한이 NLL을 밀고 내려오는 단초가 될 수 있다.
  선언문은 “남북은 남북관계를 통일 지향적으로 발전시키기 위해 각기 법률적·제도적 장치들을 정비해 나간다”고 했다. 남과 북의 집권세력은 합동으로 이 조항을 국가보안법 폐지를 추진하는 지렛대로 활용할 가능성이 다분하다. 앞으로 우리 국보법과 북한의 노동당 규약 관련 조항이나 관련법을 동시에 폐기하자고 나올 수 있다. (···)
  선언문에 나온 대북 경제 지원은 열거하기에도 숨이 찰 지경이다. 해주 경제특구 건설, 개성~신의주 철도 보수, 개성~평양 고속도로 보수, 안변·남포 조선협력단지 건설, 백두산 관광, 농업·보건·환경 협력사업, 자연 재난 지원 등이다. 하나하나가 엄청난 돈이 들어가야 하는 사업들이다. 개성~신의주 철도 보수, 개성~평양 고속도로 보수에만 정부는 7000억 원 정도 든다고 하지만 막상 일을 시작하면 1조 원이 넘을 것으로 보는 전문가들도 많다. 대북 경제 지원 항목을 보면 지난 6월 “내가 어음 발행하면 후임이 결제해야 한다”던 노 대통령의 얘기가 빈말이 아니었음을 실감한다. 앞으로 두 달 후면 새 대통령 당선자가 나오는 상황에서, 노 대통령은 북한에 이런 어마어마한 액수의 어음을 끊어줬다. (·····)
  이제 두 달 뒤면 새 대통령이 나온다. 차기 대통령은 10·4 남북공동선언을 다시 검토해서 국기(國基)를 흔들 수 있거나 국민에 감당 못할 부담을 지울 수 있는 사안을 가려내 국민에게 그 실행 여부를 물어야 한다. 국회도 이번 남북 공동선언 내용 중 안보 관련 조항과 국민에 중대한 부담을 지우는 조항에 대해선 헌법과 법률에 따른 철저한 심의를 통해 동의 여부를 결정해야 할 것이다.


 ‘10·4 공동선언’에 재 뿌리기 ‘시리즈’

 조선일보는 10월 6일자부터 ‘10·4 공동선언’을 비난하거나 폄하하는 사설과 기사를 내보내기 시작했다. 그 내용을 요약하면 아래와 같다.

 · 사설(「NLL, 국보법, 김 답방, 북 인권은 어떻게 한 건가)」(10월 6일자)
 
  남북정상회담을 마치고 돌아온 노무현 대통령은 5일 임시 국무회의를 소집해 자신의 견해를 밝혔다. 그 일성(一聲)의 요체는 “10·4 선언이 다음 정부에서 흐지부지되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자신이 북에 끊어준 어음을 다음 정부가 결제하지 않을 수 없도록 만들어야 한다는 얘기다. 노 대통령이 잘하는 말로 ‘대못질’을 하겠다는 것이자, 어음의 규모가 그래야 할 정도로 크다는 것이기도 하다.
  대북 지원만의 얘기가 아니다. 북방한계선(NLL)도 노 대통령이 북에 내준 어음일 가능성이 있다. 김장수 국방장관은 “이번 정상회담에서 NLL을 지킨 것이 성과”라고 했다. 그러나 이재정 통일부장관은 “우리가 NLL을 고집하는 상황에서 보면 서해 긴장 완화는 상당히 어렵다”고 NLL을 고집하면 안 된다는 식으로 전혀 다른 말을 했다. 김 장관은 정상회담에 배석하지 못했고, 이 장관이 배석했다. 어느 쪽 말에 무게가 실리는지는 자명하다. (·····)
  노 대통령과 김정일 위원장이 10·4 선언의 ‘내부 문제 불간섭’과 ‘통일지향으로 법률·제도 정비’ 조항을 무엇을 염두에 두고 만들었는지도 보통 문제가 아니다. 많은 사람의 짐작대로 북한 인권 문제 제기 포기와 국가보안법 폐지를 위한 것인가. 이 두 조항은 앞으로 두고두고 우리 발목을 잡을 가능성이 있다. 노 대통령은 “북한 사람들이 개혁·개방이란 말을 싫어하더라. 나부터, 우리 정부부터 앞으로 그런 말을 안 쓰겠다”고 했다. 그럴 정도라면 핵 폐기와 인권, 국군포로·납북자 문제를 어떻게 얘기했을지 보지 않았어도 알 것 같다.

 · 기사(「“경협 비용 국회 비준 받아야” /  한나라 “정상회담 1분당 416억   들어간 셈”」)(10월 8일자 4면)

  한나라당 나경원 대변인은 7일 “10·4 남북 정상회담에서 합의된 남북 경제협력을 위한 천문학적 비용이 논란이 되고 있다”면서 “노무현 대통령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만나 회담한 시간이 4시간 남짓이니, 경제협력 비용을 최소 10조 원만 잡아도 회담 1분당 416억6000여만 원의 비용이 들어가는 셈”이라고 지적했다.
  나 대변인은 이날 논평을 통해 “경협 비용에 대해서는 적게는 10조 원에서 많게는 60조원의 막대한 자금이 들 것으로 정부기관이나 민간경제연구소 등이 분석하고 있다”고 전제, 이같이 말했다. 나 대변인은 “한나라당은 해주 특구 건설 등 경협 사업에 총 30조5300억 원이 들 것으로 보고 있다”며 “한나라당의 경우처럼 총 비용을 30조 원으로 잡는다면 회담 1분당 비용은 1250억여 원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  사설(「‘종전협상 개시 선언’은 또 무슨 쇼인가」) (10월 9일자)
 
  남북 정상회담 공동선언의 “직접 관련된 3자 또는 4자 정상들이 한반도에서 만나 종전을 선언하는 문제를 추진한다”는 조항과 관련된 혼선이 이어지고 있다.  
  정상회담 공동선언답지 않은 ‘3자 또는 4자’라는 비정상적 표현이 결국 중국의 반발을 불러왔다. 청와대 대변인이 “중국은 빠질 수도, 포함될 수도 있다”고 말한 것이 계기가 됐다. 중국 외교부 고위 당국자는 “중국은 엄연히 미·북과 함께 정전협정의 당사자로 이의 변경에 관한 선언이 중국을 배제하고 이뤄진다는 것은 생각할 수 없는 일”이라고 말했다. 중국은 주한 중국대사관에 청와대 대변인 발언의 진의 파악을 지시했다고 한다. 중국의 반발은 북핵 6자회담의 앞길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는 일이다. (·····)
  북한이 핵을 포기한다면, 6·25 전쟁의 당사자인 남북한과 미국·중국의 정상들이 한반도에 모여 완전한 종전을 선언하는 것은 역사적 의미를 가질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조급하게 서둘러 북핵을 건너뛴 채 ‘가짜 평화’ 쇼를 벌일 생각은 그만둬야 한다. 되지도 않을 일에 주변국 반발이나 사는 것도 문제이고, 또 그런 무리를 해서 나라에 무슨 출혈을 불러올지도 모른다.

 · 시론(「현실 무시, 명분 없는 문서의 장래」) (10월 9일자 39면) 
 
  핵, 생화학 무기 등 대량살상무기와 강력한 재래식 무기로 무장한 북한은 우리에게는 한반도 전체를 공산화하고자 하는 적대세력인 동시에 상생 공영을 위하여 끝까지 대화를 해야 하는 동족들이 사는 곳이다.
  그러나 10월 4일자 ‘2007 남북 정상 선언’과 평양에서의 2박3일 간 우리 대표단의 동선은 한반도 현실을 무시하였고 우리가 지향하는 명분과도 거리가 멀다.
  ‘현실 무시’의 첫째는 북한이 주한미군 철수와 ‘공산주의로의 높은 단계 연방제 통일’을 우리와 합의했다고 끈질기게 주장하는 ‘6·15 남북 공동선언’을 적극 구현하고 이를 기념하는 방안을 강구하기로 한 것이다.
  둘째는 앞으로 북한이 국가보안법 철폐를 주장할 근거가 될 “남북관계를 통일 지향적으로 발전시켜 나가기 위하여 각기 법률적·제도적 장치들을 정비해나기로 하였다”라는 조항 합의이다.
  결국 북한은 이 문서의 제1~2항에서 대남 공산화 전략과 통일정책인 자주(미군 철수), 민주(공산당 활동 자유화를 위한 국가보안법 철폐), 통일(연방제) 방향을 확인하는 개가를 올렸다.
  셋째는 10월 3일자 베이징 합의가 북측의 기존 핵무기, 핵 물질과 우라늄 농축프로그램이 연내 불능화와 신고 대상에서 제외되었음에도 김정일의 핵 폐기 의사의 진정성을 확인하지 않은 것이다.
  넷째는 한반도의 긴장 완화와 평화 보장 문제를 긴밀히 협력하기로 합의하면서도 남북한 국방장관들이 11월 중 평양에서 서해 평화협력지대와 각종 협력 사업에 대한 군사적 보장 장치라는 부분만을 논의하기로 한 것이다.
  다섯째는 공동어로수역 설정 등 서해평화협력지대 합의는 북방한계선을 사실상 남쪽으로 끌어내림으로써 영해 포기, 서해 5도 어민의 생존터전 축소는 물론, 수도권에 미치는 안보 위협을 무시한 것이다.
  여섯째는 개성공단 확대와 해주경제특구 건설 합의로 개성공단 진출 기업의 81%가 적자 상태인 현실과 쉽게 개선될 수 없는 북한 제도를 외면한 것이다.

 · 사설(「북에서 온 송이를 보며」) (10월 11일자)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남북 정상회담에서 노무현 대통령에게 준 선물이 북한 칠보산 송이 4t이었다. 청와대는 이를 국내 인사 3800여명에게 나눠 주었다. 대부분은 별 생각 없이 그 송이를 맛봤을 것이지만, 엊그제 한 신문에 탈북자 출신 기자가 쓴 북에서의 송이 채취 경험담은 선물로 받은 그 송이에도 어김없이 북한 주민들의 고난과 눈물이 배어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해준다.
  그는 2000년 8월 북한 직장에서 ‘충성의 외화벌이조’로 칠보산 송이 채취에 동원됐다. 수많은 사람들이 계곡에서 잠을 자고 새벽이면 송이를 찾아 우르르 흩어지는 피난민 같은 생활을 했다. 그도 하루 열 시간 이상 일주일 동안 산을 탔지만 할당량을 채우지 못하고 자기 돈으로 메웠다고 한다. 김 위원장이 2000년 첫 번째 남북 정상회담 뒤 추석 때 남한에 선물로 보낸 송이는 아마 그때 캔 송이일 것이라고 했다.
  남북 정상회담 개최 직전 평양 시민들은 평양 길을 물걸레로 닦아야 했다. 우리 대표단이 지나갔던 깨끗한 길은 그런 길이었다. 노 대통령은 아리랑 집단체조 공연장에서 코트를 입었다. 비 온 뒤 날씨는 그만큼 쌀쌀했다. 그래도 매스게임에 동원된 어린 학생들은 “수령님 고맙습니다”라고 함성을 지르며 발을 굴렀다. 그 아이들은 한겨울 야외에서 회초리를 맞고 옷 입은 채로 소변을 보며 하루 10여 시간의 훈련을 받고 매스게임 기계로 만들어졌다. 그래도 영양 부족으로 쓰러지는 아이들이 속출하는 여름 훈련보다는 겨울이 낫다고 한다.
  노 대통령이 귀로에 들른 개성 공업단지도 그 이면에는 북한 주민들의 눈물이 흐르는 곳이다. 이곳의 북한 근로자들이 받는 월급은 57달러다. 그나마 당이 중간에서 절반 이상을 떼어 간다. 나머지도 어떻게 되는지 정확히 알려져 있지 않다. 그래도 이곳에 오려고 북한 주민들은 뒷돈을 쓰고 ‘빽’을 동원한다.
  노 대통령은 그 개성공단에서 “개성공단은 북을 개혁·개방시키는 곳이 아니다”라고 했다. 김 위원장이 그 말을 싫어한다는 것이다. 통일부는 즉각 부처 홈페이지 개성공단 부분에서 개혁·개방이란 말을 없앴다. 상대를 자극하지 않겠다는 생각이 전혀 일리가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통일부 사람들이 그들이 보고 또 밟고 온 북녘 땅의 뒤에 주민들의 어떤 눈물이 흐르고 있는지를 생각한다면 이렇게 재빠르지는 못할 것이다. 무슨 용어를 쓰고 없애더라도 북한 주민들도 인간답게 살 수 있어야 한다는 우리의 목표만큼은 절대로 흔들릴 수 없다.

 ‘10·4 공동선언’은 남과 북이 신뢰를 가지고 실천하면 통일로 가는 디딤돌이 될 수 있는 소중한 역사적 합의였다. 그러나 노무현의 중요한 업적 가운데 하나로 평가되는 그 선언을 실천하기에는 그의 임기가 4개월 남짓밖에 남지 않았다는 것이 문제였다. 결국 그 해 12월의 17대 대통령선거에서 한나라당 후보 이명박이 당선됨으로써 ‘10·4 공동선언’은 실천의 주체를 잃어버리고 말았다. 가깝게는 민족의 화해와 평화 공존, 그리고 멀리는 통일을 향해 나가는 역사적 사업이 좌절된 것은 민족공동체의 크나큰 손실이었다.

 

관리자 freemediaf@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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