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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 대중매체가 가야 할 길

- 한겨레신문의 내부 비판을 지켜보며
[기고] 고승우 80년해직언론인협의회 공동대표ㆍ언론사회학 박사

기사승인 2021.02.02  15:43: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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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신문이 ‘법조기사가 정치적 이해관계에 따라 쓰였다’라는 내부 비판과 그에 따른 일련의 움직임을 보면서 오늘의 대중매체 위상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된다. 21세기의 대중매체가 처한 환경은 자본주의 체제 속에서 상업지가 나온 이래 가장 심각한 상황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대중매체는 신문, 라디오, TV로 이어지면서 독자적인 영역인 4부의 역할을 자임하면서 20세기 후반까지 사회적 권력의 하나로 군림할 수 있었지만 오늘날 그것은 과거의 이야기가 되고 있다. 제 4부는 정치, 경제적 권력으로부터 독립해 사회의 소금과 목탁역할을 하는 것으로 정의할 때 대중매체의 위상은 그 빛이 흐려지고 있다.

시대에 따라 대중매체의 사회적 책무 등은 변화할 수 밖에 없다는 점을 고려하면 21세기 대중매체가 지켜야 할 4부 영역은 어떤 것이어야 하나? 이에 대한 답변은 쉽지 않지만 정보화시대의 역기능적 측면을 주목할 때 가짜뉴스를 다루지 않는다는 것을 첫째 원칙으로 삼아야 할 것 같다. 정치와 자본 권력의 압력을 배제한 작업환경 속에서 사실전달·논평에 주력하고 가짜뉴스 판별 작업, 공익과 공공의 공간을 넓히는 의제설정에 노력해야 할 것이다. 대중매체가 비대중매체가 아닌 미디어들과 비교되는 차별성을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대중매체는 정치, 경제, 사회의 일부 세력들이 자기들의 부당이익을 위해 양산하는 거짓말이나 가짜뉴스가 정교해지고 있어 그것을 팩트 체크를 통해 걸러야 하는 책무의 비중이 나날이 커지고 있다. 대중매체가, 가짜뉴스를 생산하는 주체들과의 차별성을 강화하는 것이 21세기 정보환경에서 매우 긴요해지고 있다. 언론이 건강한 공론의 장이 되어야 한다는 중요성을 주목할 때 더욱 그러하다.

 

▲ 텔레비전. 사진=gettyimagesbank

 

대중매체의 사회적 역할을 강조하기 위해서 국내 대중매체의 한국적 특성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서구에서 등장한 자본주의 체제에서의 대중매체는 정치가 최우선이라는 틀이 만들어진 상태에서 국내에 유입된 뒤 불행한 과정을 거쳐야 했다. 해방이후만 보아도 친일 미 청산과 미군정에 의한 우익언론일색화, 이승만의 국가보안법에 의해 언론과 표현의 자유공간의 협소화, 박정희의 동아, 조선 기자 불법 해직, 전두환의 80년 언론학살, 군사정권 시절의 보도지침 강요를 손꼽을 수 있다. 또한 87년 6월 항쟁이후에도 노태우의 신문시장 과당경쟁 체제 유발, 이명박의 종편 채널 양산으로 방송시장 과열체제 조성 등이 뒤따랐다.

국내 대중매체는 이상의 여러 요인들이 구조화되고 복합적으로 뒤엉켜 상호작용하고 있어 제 4부 영역을 고수하는 정체성 확립 유지가 쉽지 않았다. 군사독재 시절까지 신문을 예로 들면 1면 머리기사는 대통령이나 최고 통치권자의 그것을 다루는 것이 당연시 되었고 TV의 경우도 땡전 뉴스라는 비아냥이 일반화될 정도였다. 대중매체의 사주는 편집편성권을 장악해 족벌언론이라는 말이 회자 되었다.

평화적 정권교체, 촛불혁명 이후 민주주의 공간이 확대되는 추세지만 신문, 방송 시장이 정치권의 제도 변경 속에서 경쟁이 심화되어 대중매체는 자본의 통제를 심하게 받고 있다.  그러면서도 대중매체가 제공하는 정보의 우선순위가 바뀌는 변화를 보여 정치와 자본의 기사가 연성화 되고 흥미위주로 변했다. 예를 들면 최고 권력자의 기사가 신문 1면에 스포츠, 연예 등의 기사아래에 실린 것이다. 이를 언론학자들은 대중매체의 코페루니쿠스적 혁명이라 불렀다. 기사가 사회의 계급, 계층구조를 힘의 논리에 의해 반영하던 시대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면서 스포츠 전문지, 무가지 등이 등장했다가 사라졌다. 기사의 연성화가 대중매체의 기본 포맷의 하나가 되면서 마이너 매체들을 고사시킨 것이다.

21세기 들어 지구촌 정보환경은, 유튜브와 패이스북, 팟케스트 등이 그런 것처럼 정보 공급과소비가 뒤섞이는 식으로 엄청난 변화를 겪고 있고 한국도 마찬가지다. 그 가운데 대중매체는 전통적으로 정보생산과 유통에서 누리던 영역과 영향력이 급격히 위축되고 있다. 수많은 플렛폼, 포털은 물론 1인 미디어, 스마트폰 등을 이용한 SNS 등장 등이 정보공급과 소비의 매개체로 등장하면서 정보홍수 시대가 열리게 된 것이다.  거대 플랫폼과 스마트폰에 의한 정보 생산과 소비 형태에 혁명적 변화가 발생했고 정보 생산과 소비가 대중에게 공개된 거대 사이버 공간인 유튜브는 미디어 최강자가 되었다. 그러나 이런 상전벽해의 변화 속에서 대중매체의 대표주자격인 신문, TV가 여전히 정보생산에서 소비자의 접근권을 확대하지 않는 전통적인 태도를 바꾸지 않고 있다.

정보생산과 유통은 대중매체가 전담해왔는데 그 영역이 확대된 것은 시민권, 표현의 자유 등의 측면에서 인류역사상 최초의 일이었다. 특히 인터넷의 보급을 통한 정보생산과 유통이 무한대의 사이버 공간에서 이뤄지면서 대중매체의 독보적 위상은 크게 위축됐다. 이런 상황에서 정치적, 경제적 부당이익을 챙기려는 가짜뉴스가 등장해 영국의 브렉시트 국민투표, 미국의 2016년 대선 등의 판세를 바꿨다는 주장도 제기됐다. 여론의 향배를 조작하거나 조정할 수 있는 사이버 공간의 역기능이 고도화되면서 대중매체의 위상은 더욱 위협받게 된 것이다.

21세기 정보환경 변화를 최대한 활용한 대표적 인물이 트럼프 전 대통령이다. 트럼프는 대중매체를 아예 무시하고 SNS인 트윗으로 자신의 의사를 직접 전달하는 방식을 썼고 이에 유권자는 열광했다. 과거 정치인들은 대변인을 두거나 대중매체를 통해 대중에게 잘 정리된 자신의 말을 전하는 방식이었는데 트럼프가 그것을 깨면서 대중적 인기를 누린 것이다. 트럼프는 재임 중에 대중매체가 자신의 견해와 다르거나 자신을 비판하면 가짜뉴스라고 매도하면서 자신의 정당성을 강변했다. 그는 하룻밤 사이에 수십 통의 트윗을 날릴 정도 정열적이었는데 그 과정에서 거짓이거나 엉터리인 것도 생기기 시작했다.

그는 지난해 대통령 재선을 노렸지만 낙선하자 아무 근거도 없이 부정선거가 자행됐다는 트윗을 계속 날리면서 지지자들을 선동하는 말을 지속했다. 결국 바이든 대통령 당선인을 의회에서 인준하는 날 수많은 트럼프 지지자들이 의사당에 폭도로 난입해 사상자가 발생하는 불상사가 생기고 말았다. 트럼프는 내란선동 혐의로 하원에서 탄핵되어 임기 중에 두 번이나 탄핵당한 대통령이 되었다. 트윗 등 포털사이트에서도 그를 요주의 인물로 보고 그의 계정을 중단시켰다.

그는 퇴임 후에도 정치 재개 의사를 보이고 있고 워싱턴 정가의 여야를 불문한 기득권층에 식상한 유권자들이 아직도 그의 지지 세력으로 남아 있다. 미 상원이 최근 실시한 그의 탄핵 절차와 관련한 표결에서 공화당 의원 50 명 가운데 5명만이 찬성표를 던졌다.  45명이 트럼프의 탄핵 절차에 반대한다는 입장을 밝힌 것이다. 세계 최강 국가 대통령이 내란에 가까운 범죄를 선동하는 언행을 한 것과 함께 심각한 거짓말쟁이였는데도 소속 정당에서 손바닥으로 해를 가리는 행위를 하고 있는 것이다. 정치권의 당리당략적 셈법이 어떤 식으로 표출되는지를 나타내는 대표적인 사례의 하나라 하겠다.

한국의 경우 지난해부터 심화된 정치권과 시민사회의 진영논리 몰입 속에서 진실 여부보다 유·불리를 따지거나 내로남불의 부정적 행태가 심화되면서 대중매체도 그 여파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일부 대중매체가 유튜브나 페이스북, 트윗 등에 나온 몇몇 독설가, 험담가 등이 생산하는 무책임한 정보를 대서특필하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이는 대중매체가 진영논리의 도구로 스스로를 추락시키는 심각한 현상이라 하겠다.

뉴스메이커를 주목하던 대중매체의 과거 타성에 의하면 주요인물의 언행은 사실보도의 대상이 된다. 그러나 트럼프의 경우처럼 일국의 대통령도 정치적, 경제적 목적 등으로 거짓말도 서슴치 않는 현실을 고려한다면 대중매체는 ‘사람이 개를 무는 식의 파격’이라 해도 그에 대한 팩트체크를 앞세워 보도한다는 기준을 중시할 때가 된 것이다. 미국 언론이 지난해 11월 대선에서 정치인의 발언에 대해 보도하기 전에 팩트책크를 우선했다는 점은 참고할 만하다. 신속한 사실보도라는 논리의 함정은 중량감 있는 뉴스가 지닌 폭발적 효과를 노리는 세력에게 악용될 소지가 크다.

 

▲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 연합뉴스

 

정치와 대중매체의 관계는 여러 각도에서 보아야 하겠지만 그 가운데 하나는 사회적 진화론이 힘을 잃은 것과 관련된 것이다. 진화의 주체인 인간의 속성에 대한 것인데 역사적 진보를 낙관했던 소련의 볼셰비키 세력이 영구혁명을 내걸었다가 그 진영의 내부 부패 등으로 1990년대에 국가사회주의 붕괴와 함께 좌절된 사례가 대표적이다. 마르크스가 인간의 DNA에 부패에 취약한 요인이 있다는 사실에 무지해 비현실적인 이론을 주장한 것이 결정적 결함 요인의 하나였다. 현존 인류는 20만 년 전 존재했던 한 조상의 후손이라는 점에서 보수, 진보진영의 퇴행이나 역주행 가능성도 상존한다는 점을 인정해야 한다. 이런 점에서 자본주의 체제의 대중매체가 정치와 거리를 두고 감시자, 비판자의 역할을 할 때 그 생존과 사회 기여의 공간이 크게 열린다 하겠다.

그러나 오늘 한국적 현실은 대중매체와 정치는, 교과서적으로 볼 때 그 영역이 서로 다르고 불가근불가원이라고 하는 불문율이 힘을 잃고 있는 비합리적인 현상이 심화되고 있다. 신자유주의 쪽으로 치닫는 자본주의 체제 속에서 대중매체가 필사적으로 제 4부의 영역을 지키려 노력하지 않으면 정치세력에 예속되거나 그 선전기구로 전락하게 되는 길을 피하기 어렵다. 정치에서 3권 분립이 강조되지만 잘 지켜지지 않는 듯이 비춰지듯이 대중매체의 4부 영역 고수도 비슷한 측면이 있다.

대중매체가 지녀야 할 4부의 영역은 스스로 지켜야지 외부에서 보장해주지 않는다. 대중매체 외부의 세력은 대중매체를 이용해 자신들의 이익을 부풀리려 혈안이 되어 있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오늘날 정보 생산은 다양한 방법에 의해 이뤄지고 있다는 점에서 대중매체는 사실관계가 확인된, 그래서 신빙성 있는 정보만을 보도한다는 원칙을 실천해서 그런 이미지가 대중에게 각인되어야 한다. 한겨레신문을 포함한 대중매체 전체가 이를 위해 노력하면 최선이겠다. 그런 목표로 가기 위해서 우선 개별 언론사 차원에서 자본주의 체제속의 대중매체의 역할과 기능에 대해 깊이 성찰하고 언론 소비자에게 최대의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는 정도가 무엇인지를 찾아 실천해야 할 것이다.

 

관리자 freemediaf@gmail.com

<저작권자 © 자유언론실천재단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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