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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성’ 헐뜯기

- 동아일보 대해부 1권 - 4장

기사승인 2021.02.10  14:40: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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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본인 친구’에게 보내는 형식의 사설에서 일본제국주의들과 조선총독부를 극찬한 동아일보는 자신의 민족에 대해서는 어떤 견해를 가지고 있었을까? 창간 4개월 남짓 뒤인 1920년 8월 9일자부터 23일자까지 동아일보가 1면 머리에 7회에 걸쳐 연재한 사설 「조선인의 단처(短處)를 논하여 반성을 촉하노라」에는 ‘민족지’라고 자칭하던 동아일보의 ‘민족관’이 여실히 드러나 있다. 연속사설 7편 가운데 핵심적 부분들을 요약해보겠다.


 제1회(「웅장한 기풍이 무[無]함」)

  (···) 사(思)하라 형제여. 타(砣-뱀)는 타를 생하고 와(蛙-개구리)는 와를 생하나니 이는 자연의 대칙(大則)이라. 오인의 기상이 용렬한가, 오인은 반드시 용렬한 국민 됨을 면치 못할 지요. 오인의 원기가 미약한가, 오인은 도저히 쇠잔의 국민 됨을 피치 못할지로다. 보라 로서아를, 로서아의 기상이 유(有)하고 또한 보라  독일을, 그는 독일의 기상을 유하는도다. 일본이 역연(亦然)하며 영미가 역연하여 여하한 국민을 물론하고 능히 그 국가적 사회적 사업에 재(在)하여 그 기상을 탈(脫)치 못하느니 대인은 대인의 기상이 자유(自有)하고 소인은 소인의 도량을 불면(不免)하느니라. 오인은 선인(鮮人)의 광채 있는 과거 역사를 자랑하고자 아니 하노라. 그는 곧 선조의 백골을 자부(自負)함이요, 오인은 조선인의 무한한 장래를 예단코자 아니 하노라. 그는 곧 공중에 누각을 설(設)함이라, 오직 현상을 거(擧)하여 논하고자 하노니 조선인은 성장(盛壯)한 기풍이 무(無)하도다. 그 문예나 철학이나 종교나 도덕에 재하여 과연 조선인은 천하에 우(優)를 쟁(爭)할만한 심원한 자각과 위대한 능력을 표명하였으며 또는 정치나 경제의 실지에 처하여 천하에 웅비코자 하는 하등의 포부와 기망(企望)을 지(持)하였는고. 오인의 관찰하는 바에 의하건대 조선인은 ‘세계적’이란 어(語)를 부지(不知)하여 오직 ‘소중화(小中華)’나 그 같은 종류에 만족하며 ‘모험 진취’란 어(語)를 부지(不知)하여 오직 인후(人後)를 추(追)함에 만족하며 ‘문명의 기여’란 어를 부지하여 오직 인(人)의 조박(糟粕)을 당함으로써 능사를 작(作)하니 이와 같은 결과로 조선은 쇠잔의 조선이 되고 모멸의 조선이 되어 생명과 광영과 번영과 행복을 실(失)하였도다.
  이상이 무(無)한 사회는 반드시 망하고 진취가 무한 민족은 반드시 쇠하나니 이는 자연의 원칙으로 역사가 증명하는 바라. 조선 민족은 무한한 광명의 장래를 희망하며 원대한 목적을 향하여 출발하고자 하는가. (···) 민족성의 쇠약이 일조일석에 내(來)한 바 아니라 기백년 간의 전제와 압박으로 유래하였으니 이제 그 부흥을 희망할진대 오인은 반드시 절대의 노력을 요할지라. 이 의미에 재하여 오인은 2개 희망을 금치 못하노니 (1)은 위인의 배출이요 (2)는 민중의 개명이라. (·····)
  영웅을 작(作)하는 자는 곧 민중이라, 이 오인이 양개(兩個) 희망을 금치 못하는 소이니 조선 민중은 스스로 웅장한 기풍을 양성할 지어다.

 연속사설의 제1회는 조선 민족은 원기가 미약하다고 단정하면서 러시아, 독일, 일본, 그리고 영국과 미국의 기상을 본받으라고 ‘충고’한다. 그리고 선조의 과거를 자랑하는 것은 백골을 자랑하는 것이라고 조롱한다. 게다가 조선인은 문예나 철학이나 종교나 도덕이나 정치·경제에서 웅비하려는 포부와 의욕이 없다고 꾸짖는다. 이렇게 절망적인 상태를 벗어나려면 ‘위인을 배출’하고 ‘민중이 개명’해야 한다는 것이다. 일본제국주의가 철권으로 지배하는 식민지의 백성들에게 ‘웅장한 기풍’이 없다고 나무라면서 위인을 만들어내고, 스스로 개명하라는 뜬금없는 설교를 하는 것이 과연 ‘민족지’가 할 일이었을까?


 제2회(「지속성이 무함」)

  (···) 조선 민족은 강대한 의지를 유하여 만난을 배(排)하고 장구히 노력을 지속하는 대국민적 성질이 유한가, 조삼모사로 이리저리 요동하는 폐(弊)가 유한가. 개인적 경영에 재하여 또 민족적 사위(事爲)에 재하여 그러하지 아니한가. 오인의 관찰하는 바에 의하면 조선인의 ‘회(會)’는 시(始)가 유하되 종(綜)이 유함을 문(聞)치 못하였으며 조선인의 ‘경영’은 계획과 발기가 유하되 실현과 계속이 유하지 못한 것 같도다. 작일(昨日)의 사업열은 금일에 하처(何處)에 거(去)하였나뇨. 개인이 그러할 뿐 아니라 민족 전체에 재하여 또한 그러하니 그에게는 웅장한 기풍이 무하고 또 지속이 무하도다. 이조 5백년 이래에 전제와 압박이 지속된 이외에 하등의 민중적 운동이 계속된 것이 있느뇨. 조선인은 약하도다. 아, 오인은 조선인은 약하다 주장하노라. (···) 조선인은 천리의 행정(行程)을 당하여 모름지기 웅장의 기풍과 아울러 지속의 의지를 양성할 지어다. 이 어찌 일조일석에 가(可)하리오. 오직 극기 면려(克己勉勵) 노력, 고투(苦鬪)로써 습관을 작(作)하여 성(性)을 성(成)할지니라.

 이 글은 자기 민족인 조선인이 ‘회(모임)’를 하면 시작은 있고 끝이 없다고 단정한다. 그리고 조선인은 경영을 계획하고 발기는 하되 실현과 계속이 없다고 비판한다. 역사 이래 모든 조선인이 그러했다는 근거를 제시하지도 않고 그렇게 독단적인 주장을 하고 있는 것이다. 게다가 “이조 5백년 이래에 전제와 압박이 지속된 이외에 하등의 민중적 운동이 계속된 적이 있”느냐면서 조선의 민중이 ‘순종’만을 거듭한 것처럼 역사를 왜곡하고 있다. 대표적인 예로 1894년에 일어난 동학농민전쟁을 들어보자. 셀 수 없이 많은 농민들이 봉건왕조의 폭정과 외세의 침입에 맞서 봉기한 것이 ‘민중적 운동’이 아니고 무엇이었다는 말인가?

 동아일보는 조선인은 약하니 웅장의 기풍과 지속의 의지를 양성해야 한다고 ‘권고’한다. 일조일석에 될 일이 아니니 ‘고투’로 습관을 만들어 민족성을 고치라고 주장한다. 이것이 ‘민족지’라고 자임하는 동아일보가 민족에게 보내는 ‘훈시’였다.

 「조선인의 단처를 논하여 반성을 촉하노라」라는 연속 사설은 제3회(「신앙심이 부족함」)에서 “조선 민중은 위대한 자연에 대하여 심오함을 감(感)치 못하며 경묘(炅妙)한 인생에 대하여 신비함을 깨닫지 못하고 오직 심상(尋常) 다반사의 평범으로써 대하니 그이와 같은지라, 어찌 그 중에서 경각(炅覺)이 생하며 환희가 생하며 경이(驚異)가 생하리오”라고 탄식하고 있다. 우리 민족은 자연의 심오함과 인생의 신비를 깨닫지 못하는 미개인들이라는 뜻이다. 자기 비하가 여기서 더 나갈 수는 없을 것이다. 조선 민족은 그렇게 ‘단처’ 투성이니 일본의 지배를 감수해야 한다고 동아일보의 사설이 강조한다고 밖에는 달리 해석할 길이 없다.

 연속사설 제4회의 제목은 「태타(怠惰)의 폐(弊)가 유함」이다. 조선 민족은 게을러 터졌다는 뜻이다. “조선의 현상을 관찰하건대 노동계급은 여하간 중산계급에 재하는 자기노력을 식(食)하는 자 소(少)하고 다소간의 재산에 의하여 생활하는 자 다(多)하니 조선의 재산상속법은 물론 장자상속법이라 할지나 역(亦) 공화주의를 가미하여 분재(分財)하는 관습이 유하도다. (···) 태타의 원인은 다다(多多)하나 그 1은 노동을 천시하거나 혹 모험성이 부족함이요 그 2는 안일한 생활에 만족함이며 (···) 그 3은 생활 정도의 저급(低級)이니 태타하여도 능히 그 생활을 유지하는 소이라.”

 제5회(「당파열이 심함」)는 조선 민족의 역사가 당쟁으로 얼룩졌음을 도드라지게 강조한다. 제6회(「배관열[拜官熱]이 심함」)는 조선 민족이 관리들을 무조건 숭배한다고 단정한다. 그리고 이 연속사설의 마지막 회(「결론」)는 다음과 같이 끝을 맺는다.

  (···) 오인이 조선 형제에게 고하는 바는 제군의 혐오하는 바 고질의 근거와 제군의 목적하는 바 현실이 결코 용이히 신속히 내(來)치 못할 것이며 단순한 활동으로 인하여 성(成)할 것이 아니니 지성이면 감천이라는 천지감응의 도리를 신(信)하며 의(依)하여 낙망하지 말며 거꾸러지지 말고 오직 지속하여 일보일보 건장하고 아름답고 사랑스럽고 자유스러운 사회를 위하여 노력할 지어다.

 이 연속사설이 조선인의 ‘단처’를 장황하게 지적한 뒤에 기껏 내린 결론은“낙망하지 말며 거꾸러지지 말고 오직 지속하여 일보일보 건장하고 아름답고 사랑스럽고 자유스러운 사회를 위하여 노력”하라는 것이다.

 동아일보의 논설진이 이렇게 극단적으로 조선 민족의 단점만을 부각시킨 까닭은 무엇이었을까? 조선 사람들은 아무리 노력해도 ‘웅장한 기풍’을 일으킬 수 없고, ‘지속성’을 기를 수도 없으며, ‘신앙심’을 가질 수도 없으며, 게을러터진 채로 살 것이며, 당쟁에만 몰두할 것이고, 관리들을 숭배할 것이니 일제의 통치에 순응할 수밖에 없다는 뜻 아닐까?

 

관리자 freemediaf@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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