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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한미동맹과 국보법에 갇힌 구조적 한계 극복해야

- 진보언론, 보도 공간의 확대로 제 4부의 위상 확립에 노력할 때
[기고] 고승우 80년해직언론인협의회 공동대표ㆍ언론사회학 박사

기사승인 2021.02.17  10:4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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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현장 기자 41명이 법조기사 보도가 문제가 있다고 성명을 낸 것과 관련한 문제제기는 편집국 내부 토론으로 이어지는 등의 움직임으로 가시화됐다. 흔히 그렇듯 조직에서 불통의 문제가 제기되는 것은 평소 내부 소통이 제대로 안 된다는 것으로 그 해법 찾기가 쉽지 않다. 한겨레 구성원들이 효과적인 해결책으로 사회적 공감을 얻는다면 제2 도약의 계기가 될 수도 있어 보인다. 그렇게 되려면 문제에 대한 접근이 적절해야 한다.

속담에 물의 속도를 알려면 일단 물 밖으로 나와 봐야 한다는 말이 있다. 물속에 몸을 담그고 있는 것보다 물밖에 나왔을 때 그것이 좀 더 확연히 가늠이 된다는 뜻이다. 한겨레 기자들이 지적한 법조기사 문제도 마찬가지다. 그에 대해 미시적인 시시비비를 덮어놓고 그런 문제가 제기된 구조적 원인에 대해 객관적으로 조망하듯 살펴보자는 것이다. 문제는 여러 방향과 높이에서 접근할 수 있고 접근 방식에 따라 여러 결론이 나올 수 있다. 이 글에서는 한겨레에서 제기된 문제를 법조기자실을 통한 정보제공과 진보, 보수언론의 보도 영역과 그 한계에 대한 분석을 통해 접근하고자 한다.

먼저 법조기자실 문제다. 이곳은 법원과 검찰이라는 구조가 자체 생산한 정보를 외부에 공식적으로 내놓는 정보의 창구다. 이 창구로 무엇이 나올 것인가. 대부분의 법조 관련 정보는 흠결이 없는 것이겠지만 일부는 법조계의 지금까지 드러난 체질로 보아 국민에게 무한 봉사하는 원칙을 실천하면서 내놓는 투명하고 무결점인 생산물로 보기 어려운 점이 있다. 법조계의 조직이기주의나 부적절한 의도가 개입된 경우 등이 있어왔다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바로 여기에서 문제가 생기게 된다.

기자실은 수동적으로 법조계가 제공하는 정보를 받는 입장이라는 점이다. 법조계가 자기 보신이나 특정 세력에 기운 정보를 내놓을 경우 언론은 그 전달통로로 전락하게 된다. 언론사간 속보경쟁이 자심해진 상황은 그것을 부채질 하게 된다. 이런 경우가 과거에 적지 않았고 향후 그럴 가능성이 상존하고 있다고 할 것이다. 이쯤해서 검찰, 법원과 법조기자실의 관계는 우리 사회 여러 부분에 존재하는 기자실 시스템과 흡사하다는 점을 살펴보아야 한다. 기자실은 이 사회의 정치, 경제 등 제반 분야의 지배세력과 또 다른 권력인 언론이 일상적으로 접촉하거나 상호작용하는 장소다. 자본주의 체제의 지배구조는 정부기관과 자본, 언론 등 여러 권력이 상부상조하면서 형성한다는 비판을 자초하는 부분이다.

 

▲ 주요 수사 브리핑이 열리는 서울고검 검찰 기자실. 기자단 소속이 아닌 기자의 출입은 제한된다. 사진=민중의소리


최근 다양한 미디어가 출현하면서 기자실 출입도 일정한 심사과정을 거치게 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어 언론권력의 서열화나 세분화 현상이 심화되는 모습으로 비춰지고 있다. 과거 일부 언론이 출입처와 기자실 출입이라는 관행을 깨고 독자적 취재원칙을 시도해보았지만 시행과정에서 덜 생산적이라는 이유로 백지화된 적이 있다. 출입처와 기자실의 연계관계가 취재대상과 언론의 접합점이 되고 그것이 갖는 기능적 측면이 강해서 단일 언론사가 그것에 도전하다가 중단한 것이다.

이상에서 간략히 살핀 바와 같이 국내 언론과 취재대상은 기자실을 매개로한 관계로 굳어져 있다. 이런 구조 속에서 언론사간의 경쟁은 보도자료 범위 밖에서 일어나야 하는 한계를 지닌다. 진보, 보수 언론이 같은 기자실을 이용해 취재 대상과 동일한 관계를 맺고 있다 보니 엇비슷한 기사가 지면을 장식하거나 방송전파를 타게 되는 경우가 많다. 진보, 보수 언론의 차이가 미세해 지거나 애매해지는 쪽의 보도현상이 심화되고 있다고 하겠다. 이런 점을 한겨레는 어떻게 돌파하거나 개선하려 할지 궁금하다.

두 번째는 언론의 보도 영역이 협소하다는 점을 들 수 있다. 기자실 등 언론외부 환경이 어떤 특성을 지녔든 간에 언론의 정체성은 언론 스스로 확보 또는 쟁취해야 한다. 언론의 정체성은 외부에서 만들어주거나 보강해 주지 않는다. 언론의 정체성을 진보와 보수로 나눈다 할 경우 오늘날 두 언론의 보도 영역은 동일한 공간에 갇혀 있어 협소하다는 공통점을 지니고 있다. 언론이란 목탁과 같아서 사회의 문제, 국제정세 등 주요 사안을 공론화하는 기능이 중요한데 우리 언론은 진보 보수 할 것 없이 한미동맹이나 국가보안법이라는 굴레 속에서 안주하거나 지극히 소극적인 경쟁만을 하고 있다.

한미동맹의 경우 지난 수십 년간 이를 문제 삼는 것은 이적행위로 국보법의 적용 대상이라는 식의 통제가 심했던 탓인지 21세기가 되어서도 언론, 정치권, 학계 등은 침묵하고 있다. 최근미국이 중국을 포위하려는 전략을 추진하는 등 동북아 정세가 급변하고 한반도 비핵화 문제 등이 심각해서 민족의 장래가 어찌될지를 가늠키 어려워 보이지만 진보, 보수 언론은 이를 정식으로, 진지하게 다루는 법이 별로 없다. 보수 세력은 현재의 한미관계와 국보법의 존재가 최선이거나 불가피하다는 식인데 세상사 다 그렇듯이 모든 것은 변화하고 있고 완전무결한 것은 없는 법이다. 특히 한미동맹이나 국보법 모두 1950년대 중반 이전 냉전이 한참이던 시절에 만들어진 것이라서 21세기에 걸맞지 않은 측면이 있다. 오늘날 그로 인한 모순이 심각할 정도로 커지고 있다고 볼 수도 있다.

진보나 보수 언론이 한미동맹과 국보법을 바라보는 시각차가 있지만 그것을 전향적 시각에서 공론화하거나 의제화해서 정치권, 학계에 영향을 미치거나 선도하려는 시도는 하지 않고 있다. 일부 보수 언론은 수구적 시각을 가지거나 맹목적 반공, 친미를 앞세우고 그것을 비판, 반대하는 것을 친북, 이적행위로 폄훼하는 보도를 상습적으로 반복해 왔다. 언론시장도 반공적 경향이 높은 것이 현실이라서 진보 언론도 이를 극복하는 것은 쉽지 않았다. 그러나 진보를 표방하면서 닫힌 현실에 안주하거나 미래를 향한 대안 모색을 중단하는 것은 스스로의 생존영역을 좁히는 것과 다를 바 없다는 문제가 있다.

언론이 환경에 수동적으로 반응하는 것에서 벗어나 적극적으로 환경에 경종을 울리고 방향을 제시하는 기능의 하나가 의제설정이다. 진보, 보수 언론이 한반도, 동북아 문제에 대해 심도 있는 보도를 할 경우 다뤄야 할 문제들이 너무 많다고 할 정도로 해야 할 상황이지만 마치 남의 나라 일인 양 시늉만 내거나 지극히 소극적인 태도로 보도하는데 그치고 있다. 한미동맹은 운동장이 미국 쪽에 너무 심각하게 기울어져 있는 불평등 상태로 군사적 주권이 상실된 국치스런 상황이다. 국보법은 표현의 자유, 언론의 자유를 원천적으로 가로막고 있고 기자들의 기사 작성에서 일상적인 자기검열을 해게 만드는, 세계의 양심이 지탄하는 악법이다.

미중 패권경쟁 심화와 한반도 비핵화, 남북관계 경색 등에 대해 언론이 제 4부의 역할을 할 때 언론의 보도 영역이 확대되고 진보, 보수의 차별성이 확인될 것이다. 동시에 정치적 사안에만 언론계 전체가 올인 하는 것에서 벗어나 외교 안보 통일 분야의 정치발전을 견인해 내거나 추동할 수 있을 것이다. 정계는 흔히 그렇듯이 정치적 승리에 올인 하면서 언론 등을 이용해 유권자를 확보하는데 혈안이 되어 있다. 정치권력이 언론을 이용하는 방식이 전 방위적이어서 언론이 중심을 잡지 못할 경우 거기에 휘둘리기도 한다. 정치권이 여야가 바뀌면 과거의  논리를 뒤집거나 진영논리와 확증편향, 내로남불의 작태를 반복하면서 언론이 그에 대해 도토리 키를 재거나 스포츠 중계를 하는 식의 보도 경쟁을 벌이는 것은 언론의 위상을 스스로 짓밟는 것에 다름 아니다. 정권은 유한하되 언론은 그렇지 않다는 점에서 정체성 확립에 노력해야 할 것이다.

오늘날 국내 언론이 처한 환경을 살필 때 그것은 심각한 과도기적 현상이라고 규정할 수 있다. 모든 것이 급변하는 시대다. 특히 정권교체가 반복되면서 우여곡절을 겪지만 민주주의 공간이 확대되는 추세여서 과거 독재정권 시절부터 그늘에 가려졌던 부분들이 공론화되고 있다.

이런 점을 진보언론이 정확히 인식하고 정략적 이익에 매몰되기 쉬운 정치권을 경고하고 선도하는 위치를 고수하면서 사회 전체의 선구자 역할을 하는 길을 찾는다면 어떻게 될까. 그렇게 된다면 진보 언론이 보수언론보다 보도 영역을 확대해 양적 질적인 면에서 공론화, 의제 설정에서 우위에 설 수 있을 것이다. 나아가 진보와 보수의 차별성을 확실히 하게 되어 지금처럼  기자실에 얽힌 문제로 갈등하는 일도 줄어들지 않을까.

오늘날 언론 환경은 급변하고 있고 이에 대한 객관적 상황 인식이 절실하다. 한국의 국력이, 경제력은 세계 12~13위권이고 군사력은 세계 6위이다. 북한이 핵무기를 개발했다고는 하나 그 외에 매년 국방예산도 남측이 북측에 비해 수십 배가 되는 상황이다. 미국의 군사적 종속이나 예속이 심화된 상태를 어떻게 정상화할지 남북의 평화적 교류협력과 통일은 어떤 방식이 될 것인지 등에 대한 전 방위적인 공론화가 필요한 시점이다. 진보언론이 한때 한미동맹, 국보법 문제를 다루다가 시장에서 반응이 부정적이어서 중단했는데 오늘날은 오프라인보다 온라인에 주력할 필요성이 커지고 있다는 점에서 정밀한 시장 점검이 필요하다. 한반도와 동북아 평화와 안전에 기여하는 언론의 역할을 자임하는 자세를 가져야 할 것이다.

건전한 보수와 진보는 사회를 바라보는 시각과 미래 청사진의 차이가 분명히 존재해야 하고 그것이 사회 발전에 필수적이다. 기자실 문제는 언론이 국민에게 알릴 의무와 권리를 행사할 수 있는 조건을 충족시킬 수 있는 방향으로 개선되는 것이 필요하다. 진보언론은 바람직한 미래를 지향하는 보도를 하면서 보수언론과 다른 점이 무엇인지를 보여줄 여건 확보에 힘써야 할 것이다. 오늘날의 시대적 여건을 고려할 때 진보언론은 보수, 수구언론과 공유하고 있는 안보 통일 분야의 냉전적 보도 프레임에서 시급히 벗어나야 한다. 전체 언론이 외면하는 공간이 한반도 평화통일과 동북아 평화 안정에 역행한다는 점에서 더욱 그러하다.

 

관리자 freemediaf@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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