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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만의 국가보안법 활용법

- [고승우의 국보법 연재(19)] 학문의 자유를 가로막는 국보법 민족 공동체를 망친다

기사승인 2022.08.29  12:00: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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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보안법이 만들어진 시대 상황과 오늘날을 비교하면 이 법이 왜 21세기에 부적절한 것인지 자명해진다. 이 법이 제정된 1948년은 소련이 동구권에 위성국가를 세우는 등 영향력이 비대해지고 중국에서 모택동 혁명이 성공을 목전에 두어 미국을 중심으로 한 자본주의 진영이 사회주의에 대한 공포에 휩싸여 있던 상황이었다.

소련이 원자폭탄 개발에 성공하고 중국 대륙이 홍군으로 가득 차기 직전이었다. 칼 마르크스가 제시한 진화론에 의해 자본주의 체제가 사회주의 체제로 전환되지 않나 하는 공포가 전 세계 자본부의 진영에서 지배적이었다. 미국에서 현대판 마녀사냥 ‘빨갱이 소동’인 매카시즘이 나오기 직전이었다.

국보법이 머릿속으로 상상하는 차원의 고무, 찬양, 동조 등을 범죄로 탄압하려 한 것은  당시 지구촌을 휩쓸던 사회주의에 대한 무한 공포 속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이승만 정권은 사회주의는 일단 접촉했다 하면 헤어날 수 없는 엄청난 마력을 지닌 것으로 보고 아예 상상 속에서 생각지도 말라는 식의 사상과 표현의 자유를 억압한 것이다.


사회주의에 대한 무한공포 속에 만들어진 국보법 21세기에 부적절

국보법은 1948년 만들어진 뒤 74년이 흐르면서 국내에서는 해묵은 익숙한 환경이 되어 그 존재 자체에도 무신경한 분들이 적지 않다. 이 법이 만들어지기 두 어 달 전인 1948년 10월 발생한 여순사건에 대한 이승만 대통령의 초강경 담화에서 이 대통령의 이념에 대한 비상식적 적개심과 공포가 확인된다. 그는 이념이 다를 경우 어떻게 할지에 대한 지침을 다음과 같이 내린 것이다.

“반란세력은 모든 지도자 이하로 남녀 아동까지라도 일일이 조사해서 불순분자는 다 제거하고 조직을 엄밀히 조사해서 반역적 사상이 만연되지 못하게 하며, 앞으로 어떠한 법령이 혹 발포되더라도 전 민중이 절대 복종해서 이런 비행이 다시는 없도록 방위해야 될 것이다.”

이승만 대통령의 이런 반인륜적 지침은 국보법 제정에 그대로 반영되었다. 그 결과 여순 반란과 민중봉기사건의 원인이 공산주의, 좌익세력에 있다며 ‘아동’까지 포함한 철저하고 무자비한 탄압이 강조되면서 진압군이 잔혹하게 민간인을 집단학살하는 계기가 되었다. 이승만의 지시는 히틀러가 1941 소련을 침공한 뒤 레닌그라드 포위작전을 벌이던 독일군에게 내렸던 학살명령과 유사했다.

“모스크바와 레닌그라드가 지상에서 사라지게 만들어야 한다. 그곳 주민들은 전멸시키거나 굶어죽게 만들어라. 이는 나치 독일이 시도하는 위대한 동방점령계획의 일환이다.”

히틀러의 명령은 독일군에 의해 집행되었고 그 결과 1944년 끝난 레닌그라드 포위전은 사상 최장의 것으로 기록되면서 4백 만 명이 넘는 사상자가 발생했다. 나치 독일패망 후 수년 뒤에 이승만은 피를 나눈 동포인데도 어린아이일지라도 이념이 다르다면 제거하라는 천인공노할 학살 명령을 내렸다. 히틀러는 이민족인 러시아인을 전멸시킬 대상으로 지칭하고 이승만은 이른바 빨갱이를 집단학살 대상으로 지목한 것이다.

여순사건이 진압된 후 이승만 정부는 국보법을 만들었고 1949년 한 해 동안 전국 교도소 수용자의 70%에 달하는 11만 8천 명이 이 법에 적용될 만큼 광범위하게 악용되었다. 무엇보다 이승만은 여순사건이후 공산주의자를 민족과 국민의 범주로부터 추방함으로써 6·25 전쟁 전후 보도연맹 및 민간인 학살 사건이 전국적으로 발생하게 만드는 계기를 제공했다.

국보법이 만들어진 뒤 이승만의 조봉암 선생, 박정희의 민족일보 조용수 사장 법살 사건이 발생했다. 박근혜 정권에서 통합진보당 해산이 강제됐다. 이런 과정을 거치면서 국내에서 이른바 진보세력은 제거되고 약화되면서 정강정책에 큰 차이가 없는 두 개의 거대 정당이 여의도 정치를 좌우하고 있다. 군소정당이 존재하지 못하는 것도 사상과 상상의 자유를 불허하는 국보법의 탓이라 하겠다.

 

▲ 정부 수립 경축식에 참석한 한미수뇌들. 왼쪽부터 미진주군사령관 하지, 태평양미육군 총사령관 맥아더, 한국 초대 대통령 이승만. ⓒ 연합뉴스

 


정신적 자유 억압하는 국보법 민주주의 국가에서 상상도 할 수 없는 악법

세상은 하나지만 그것을 바라보는 시선은 여러 가지다. 세상을 해석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어떤 경우 동일한 것에 대해 정 반대로 해석하기도 한다. 세상을 보는 시각만이 아니라 진리, 또는 진실이 무엇이냐에 대해서도 생각이 다르다. 이런 시각차는 한 집단, 국가에 항상 존재했고 지금도 마찬가지다. 세상 또는 진리를 서로 다르게 보는 사람들이 다투는 일은 흔하다. 때로는 전쟁도 일어난다. 그렇지만 대부분 어울려 지내고 같은 공동체의 일원이 되어 살아간다. 이런 일은 과거와 현재도 그러했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정신적 자유를 부정하는 국보법은 오늘날 당연히 없어졌어야 할 정신적 족쇄다. 이 법이 상상의 자유나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고 학문의 세계를 재단하려 한 것은 사후 검열과 같은 것으로 이는 민주주의 국가에서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다. 법의 집행자들이 학문이라는 바다와 같이 넓은 영역에 대해 고문 기구와 같은  국보법을 가지고 덤벼들어 만행을 저지른 것은 역사적 수치다. 재독 사회학자 송두율 교수와 강정구 전 동국대 교수를 괴롭힌 경우가 해당된다.

송두율 교수는 독일 사회학자이자, 대화와 타협을 주목하는 공론의 철학자로 불리는 위르겐 하버마스의 총애를 받는 세계적인 석학이다. 송 교수는 2003년 국보법 위반으로 구속 기소되었다가 2009년 대법원에서 무죄판결을 받았다. 송 교수는 한 언론과의 인터뷰를 통해 수사당국이 북한을 바라보는 자신의 이론적 방법론중 하나인 ‘내재적-비판적 접근’이 국보법에 위반된다며 끊임없이 물고 늘어졌다고 전했다.

송 교수는 이 문제로 공안당국과 보수논객들에게 곤욕을 치렀다. 송 교수의 ‘내재적-비판적 접근’의 골자는 북한 내부의 문제는 북한의 관점에서 바라봐야 한다는 것으로 북쪽 사회가 어떤 사회이고 어떤 사회를 지향하고 있는지 그들 자신의 언어로 이해하고 나서 현실과 이상 사이에 걸린 문제가 무엇인지 비판적으로 검토해야 한다는 관점이었다<위클리 서울 2008년 5월 20일>. 사회과학적 성과물인 이런 관점을 놓고 국보법으로 왈가왈부하려 한 것은 지독한 야만행위였다.

 

▲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기소됐다 집행유예로 석방된 송두율 교수가 2004년 8월5일 오후 독일로 출국하며 석방운동을 벌여온 대학생들로부터 선물을 건네받고 있다. ⓒ 연합뉴스

 

강정구 전 동국대 교수는 ‘6·25전쟁은 통일전쟁’이라는 취지의 글을 언론매체에 실은 혐의 등으로 기소되었다가  대법원으로부터 2010년 12월 징역2년(집행유예 3년) 확정판결을 받았다. 강 교수는, 사회과학은 역사 구조적 설명 또는 사회형성론을 중심에 놓고 사회현상을 설명한다는 관점에 따라 구조 중심의 사회 형성론적 접근으로 6·25전쟁의 설명을 시도했다며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다음과 같이 밝혔다(위클리 서울 2007년 12월6일).

-- ‘역사 현상의 인과요인을 사람중심이 아니라 구조중심으로 설명할 경우 6·25의 경우 남북 지도부 모두 전쟁목적을 통일로 삼았기에 당연히 통일전쟁일 수밖에 없다.

다른 한편 남측으로서는 사회주의를 괴멸시키기 위한 목적도 가졌으니까 이념전쟁이고, 북측은 민족해방, 계급해방, 사회주의 적화 등도 목적으로 삼았으므로 민족해방전쟁, 계급전쟁, 이념전쟁 등일 수 있다. 이처럼 전쟁성격은 주체에 따라 다양하고 또 시기에 따라 그 성격이 변화할 수 있다. 통일전쟁론을 문제 삼는 것은 방법론적 공약을 부정하는 것으로 학문자체의 성립을 부정하는 폭거이다.

통일은 사전적으로 두 개로 나눠진 것이 하나로 결합되는 것이다. 이 기준에 따르면 우리가 좋아하든 싫어하든, 또 방식이 무력이든 평화든, 결과가 사회주의든 자본주의든, 남이든 북이든, 견훤이든 궁예든 상관없이, 전쟁주체가 통일을 지향한 전쟁목표를 가졌다면 그 전쟁은 통일전쟁일 수밖에 없다.---만약 어떤 집단과 조직의 이해득실, 국민정서와 같은 여론, 국가보안법의 찬양고무 규정에 따라 학문연구 결과가 좌우되거나 달라진다면 이 학문결과는 학문의 생명이라고 볼 수 있는 객관성도, 신뢰성도, 설명력도 없어지게 된다.

이는 더 이상 과학적 지식이나 학문이 아니고, 진실과 진리를 배반하고 학자의 양심을 파는 것이며, 곡학아세해 지식인 자신을 파멸로 이끄는 자기부정이며, 학문의 존립기반 자체를 허무는 것이다. 바로 이 때문에 국보법 7조의 찬양·고무라는 사법적 잣대는 원초적으로 학문자유와 양립될 수 없다.’ --

두 학자의 경우처럼 하나의 현상에 대한 학문적 견해는 다양하다. 현실을 보는 눈이 다 제 각각이기 때문이다. 이런 점을 존중해 사상과 양심, 표현의 자유를 인정해야 사회가 건강하고 그리고 내실 있게 발전한다. 국보법은 이런 원칙을 원천 부정하고 있다. 국보법은 21세기에 존재해서는 안 될, 벌써 역사의 무덤 속으로 들어가야 했을 야만적인 법체계다. 국보법을 고집하는 것은 민족의 현재와 미래를 불안전하게 만드는 것이고 지구촌 차원에서 엄청 수치스런 일이다.


국가사회주의 해체이후 국보법 무엇을 위해 존재하나?

오늘날 사회주의는 어떻게 되었나를 살피면 국보법의 위상은 더욱 분명해진다. 국가사회주의는 소련이 해체되면서 실패했다는 평가가 대세다. 중국의 경우 정치는 사회주의, 경제는 자본주의를 채택한 절충식 체제의 모습을 취하고 있다. 북한의 경우는 엄격한 의미의 사회주의체제인가 하는 것에 논란이 있다.

왜 이렇게 되었을까? 그것은 칼 마르크스의 이론에 중대한 오류가 있었기 때문이다. 즉 마르크스는 무산자가 인류 해방자로 등장해 자본주의체제대신 지상낙원을 만들 수 있다는 낙관론적인 이론을 제시했다. 하지만 그것은 국가 사회주의 실험을 통해 실패로 일단락됐다.

 

▲ 칼 마르크스.

 

무산자가 소련 등 사회주의권에서 궁극적인 해방자가 되지 못한 것은 사회주의 지배층의 부정, 부패 때문이었다. 마르크스는 자신의 이론에 대한 연구 과정에서 무산자나 유산자 모두 인간에게 보편적인 무한한 잠재력의 유전인자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파악치 못하고 인류의 진보가능성을 확신하는 오류를 범했다. 마르크스도 당시의 자연과학과 사회과학의 한계 속에서 자신의 이론을 완성해야 하는 한계를 벗어나지 못한 것이다. 그가 생존했던 당시는 유전학 등 인간생체학에 대한 지식이 초보 단계였기 때문에 그런 오류는 피할 수 없었다.

마르크스가 추구한 영구혁명은 그 추진 세력이 공익적 차원의 사상과 실천력으로 무장해야 하는데 인간의 DNA적 속성은 그런 것과 무관하다. 정도에서 벗어나거나 천박한 욕망 추구의 유혹에 빠지는 유전적 취약점에서 자유로울 수가 없다. 그러다 보니 사회주의 체제의 절대 권력자는 부패하고 초심을 잃어버리는 실패자로 전락하는 과정을 벗어나지 못했다.

인간의 이성과 감성은 시대와 장소에 따라 매우 다양한 모습으로 발현되는 특성이 있어서 사회과학도 그런 한계를 벗어나지 못했다. 그러다가 20세기 후반 들어 오늘날 현존 인류, 호모사피엔스는 조상이 하나라는 고고인류학적 사실이 밝혀졌다. 이런 발견으로 현존 인류는 인종을 불문하고 모든 무한한 유전적 잠재력을 지닌 공동체라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인공지능과 같은 첨단과학 기술이 앞으로 더욱 발전하면 인간의 유전적인 모든 속성을 포함시킨 사회과학이 등장할지도 모를 일이다.

인류의 역사를 보면 종교인, 철학자, 정치인, 지식인 등은 인간의 불행을 축소하고 행복의 가능성을 크게 하는 논리를 개발하거나 확산시키려 노력해왔다. 즉 구도자, 구원자, 메시아의 모습이 그들에게서 발견된다. 마르크스도 그런 부류에 속한다. 그런 노력은 사회과학이라는 이름으로 다양하게 제시되었지만 시대와 사회에 따라 다른 논리와 방법론이 등장했다. 사회과학은 인간의 됨됨이 즉 인문학과 같이 가야하는데 인간에 대한 연구는 아직도 진행 중이기 때문에 사회과학은 여전히 완전치 못하다.

흔히 사회적 동물인 인간을 진보와 보수로 나누듯이 세상에 대한 해석은 여러 가지다. 세상을 협동과 조화로 보는가 하면 정반대로 갈등과 싸움의 장으로 보기도 한다. 이뿐 아니라 사회라는 구조를 무시하고 개인과 개인의 관계로만 보는 이론도 존재한다. 이런 다양한 사회과학 이론은 다 제 나름대로의 타당성을 지니고 있지만 하나의 이론만으로는 사회 전체를 만족스럽게 설명하지 못한다. 여러 이론이 공존하거나 서로의 부족함을 메우는 식으로 상부상조하면서 인간들에게 봉사하는 것이다.


여야가 국보법 논의 2024년까지 미루기로 합의한 것, 국민 무시 처사

국보법은 너무 시대착오적이고 비이성적이다. 같은 민족인데도 북한주민 전체를 반국가단체 소속 원으로 규정하고 있어 북한에 부모 형제가 있다 해도  소통, 왕래, 물물 교환 등을 할 수가 없게 만들었다. 특히 이 법 7조가 북한에 대한 고무찬양동조를 금하고 있어 남북문제에 대해서는 누구나 이 점을 조심해야 한다는 점은 상식에 속한다.

한국에서 국보법에서 자유로운 사람은 대통령이 유일하다. 통치권 차원에서 이 법의 제재를 받지 않는 것이다. 21대 국회는 국보법 개정안이 발의되자 거대 여야 합의로 2024년까지 논의를 미루기로 합의했다. 국민의 힘이나 민주당 모두 국보법의 개폐를 논한다는 것에 정치적인 부담을 느낀다는 점에서 일치한 것이다. 한국형 민주주의가 얼마나 후진적이며 주권자인 국민을 철저히 무시하고 있는지를 드러낸 대표적 사례다.

 

 

관리자 freemediaf@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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