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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폭’이라는 건설노조 임금체불 다룬 언론은 없었다

- [칼럼] 탁종열 노동인권저널리즘센터 소장

기사승인 2023.01.27  22:5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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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법지대에 있는 조폭이 노조라는 탈을 쓰고 설친다.”

지난 12일 원희룡 국토부 장관은 부산 명문초등학교 건설 현장을 방문해 건설노조를 ‘조폭’에 비유했다. 원희룡 장관의 ‘조폭’ 발언은 윤석열 정부 노동정책의 본모습을 그대로 보여준다. 윤 대통령은 지난해 12월 4일 관계장관대책회의에서 “건설 현장에서 레미콘 등 공사 차량의 진입을 막고 건설사들에 돈을 요구하거나 불법 채용을 강요하는 등 불법과 폭력 행위가 판을 치고 있다”라고 말했다.

경찰은 지난달 8일부터 집단 위력을 과시한 업무방해와 폭력, 조직적 폭력‧협박을 통한 금품 탈취, 특정 집단의 채용이나 건설기계 사용 강요 등에 대한 특별단속을 시행해 현재까지 186건(929명)을 수사해 23명을 송치(7명 구속)했고 890명에 대한 수사를 진행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어 경찰은 지난 19일 민주노총 건설노조 서울경기북부지부 등 14곳을 압수수색했다. 경찰 관계자는 “지난해 8월 말쯤 내사를 통해 건설 현장 불법행위에 대한 첩보를 입수했다”라며 “몇몇 피의자나 일부 노조 지부의 일이 아니라 노동조합 차원의 조직적인 범행 가능성이 있다고 보고 수사 중”이라고 밝혔다. 이 관계자는 “확보한 자료를 통해 노조 상부로 자금이 어떻게 흘러갔는지 등을 추적할 것”이라며 수사의 최종 목표가 ‘건설노조’임을 분명히 했다.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이 12일 부산 강서구 명문초등학교에서 공사 현장을 점검하고 있다. Ⓒ연합뉴스

 

경찰이 압수수색에 나선 날, 국토교통부는 “건설사 118곳이 노조에 1,686억 원의 월례비‧노조전임비 등 지급을 강요당했다”라는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국토부가 발표한 실태조사는 국토부 주관으로 대한건설협회, 대한전문건설협회, 한국주택협회 등 12개 건설 관련 유관협회에서 조사 양식을 회원사에 배포 후 취합하는 방식으로 이뤄졌다. 다음주부터는 협회별로 익명 신고 게시판을 설치하여 온라인으로 신청받을 예정이라고 한다. 국토교통부는 ▲강요에 의한 노조전임비 ▲타워크레인 월례비 ▲채용 강요 ▲장비사용 강요 등을 방지하기 위한 법률 조문 검토 등 구체적인 제도 개선 방안을 논의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건설노조 탄압은 윤석열 정부의 ‘지지율 상승’이란 나비효과를 불러오며 장기간 이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윤 대통령은 지난 1일 신년사에서 노동‧교육‧연금 개혁을 밝히면서 “가장 먼저 노동 개혁을 통해 경제 성장을 견인해 나가야 한다”라고 밝혔다. 하지만 노동 개혁 방안으로 정책보다는 노조의 회계 투명성 강화나 건설 현장의 불법행위 척결 등을 내세우는 등 노동조합과 전면전을 선택했다.

윤 대통령의 적대적 노동정책은 ‘재벌언론’의 왜곡된 보도가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최근 건설노조와 관련한 이들 신문의 보도에는 자극적인 노조 혐오가 그대로 드러난다. 

 

한국경제신문 1월 20일자 기사
조선일보 1월 20일자 기사

 

“상납하듯 뜯기는” “건설노조에 뜯긴 돈” “보복 두려워” “‘건달노조’ 행패” “돈 내라” “조폭 같은 노조” “조폭들의 ‘삥 뜯기’”

이들 신문에 저널리즘의 기본 원칙인 ‘사실 확인’과 ‘균형’이란 남의 일일 뿐이다. 국제신문 최혁규 기자는 [기자수첩]을 통해 “부산 명문초등학교 개교 지연은 화물연대 파업만이 이유가 아니다”라고 밝혔다. 최 기자는 “지난해 5, 6월 레미콘 파업과 화물연대 파업(1차) 당시 한 달간 명문초 공정률은 각각 1.91%, 2.44%”였지만 “오히려 화물연대 파업(2차, 지난해 11월 24~12월 9일)이 진행되던 지난달의 공정률은 7.91%를 기록했다”라며 파업이 공기에 미친 영향은 미미했다고 밝혔다. 최 기자는 “명문초등학교와 비슷한 규모의 다른 학교의 공사 기간은 통상 24개월 정도”인데 명문초는 일반적인 경우보다 8개월이나 짧은 공사 기간이 계획돼 있었다며 “명문초 개교 지연은 누구의 책임입니까”라며 따져 물었다.

원희룡 장관 방문을 계기로 대표적 비리 현장으로 거론되는 창원 LH 행복타운 현장은 어떨까? 정순복 경남건설기계지부장은 “그 현장은 작년 7월부터 12월까지 임금체불이 상습적으로 발생한 곳이었다. 그래서 건설노조는 현장을 찾아가 체불 사태를 해결하라고 사정도 하고 부탁도 해보았다”며 “노동조합이 ‘체불임금 해결하라’라고 집회한 것이 불법행위냐”고 항의했다. 하지만 창원 LH 행복타운의 체불임금 문제를 다루는 언론은 없었다.

언론이 건설 현장의 여러 문제를 다루면서 그 책임을 전적으로 민주노총 건설노조에 묻는 것도 문제다. 한국일보는 사설 <드러난 건설노조 불법 실태, 뼈를 깎는 반성부터>에서 “정권과 건설업계가 합심해 기획한 공안 탄압”이라는 민주노총 건설노조의 반발에 대해 “다수 민심은 노조를 개혁 대상으로 생각한다”라며 직접 ‘민주노총 건설노조’를 겨냥했다. 하지만 같은 날 한국일보 기사에서 거론된 구체적 사례는 모두 한국노총 전국건설산업노조(건산노조) 압수수색 영장이 근거인데, 사례로 거론된 간부 A, B, C씨는 건산노조 소속이지만 사설에서는 민주노총 건설노조만을 지목했다. 한국일보는 지난 19일 경찰이 압수수색을 한 곳은 민주노총 건설노조 5곳과 한국노총 건산노조 3곳, 한국연합 등 군소노조 6곳이라고 보도했다. 

 

전국건설노동조합 조합원들이 11일 오후 서울 지하철 4호선 삼각지역 인근에서 윤석열 정부를 규탄하며 구호를 외치고 있다. Ⓒ연합뉴스

 

건설노조 관계자는 경향신문과의 인터뷰를 통해 “돈을 더 벌기 위해 월례비를 높게 요구하는 일부 일탈행위가 있는 것은 사실”이라면서도 “노조는 오히려 월례비를 받지 않는 대신 하지 않아도 될 작업을 시키지 말라고 요구하며, 과도한 일탈은 자체 징계하고 있다”라고 해명했다. 또한 “잘못된 관행을 해결하는 과정에서 징계받고 제명된 조합원들이 실체 없는 다수의 노동조합 명함을 만들어 현장 질서를 파괴하고 있다”라고 했다.

정부가 밝힌 채용 강요, 월례비 등의 사례는 일반적인 기업 시스템에서는 상상조차 할 수 없다. 하지만 건설 현장에서 이런 사례가 발생하는 이유는 근본적으로 건설 현장의 다단계 하도급 체계에서 비롯된다. 건설회사는 건설 기계장비와 타워크레인을 직접 소유해 운영하면 막대한 투자 비용과 관리비용이 든다는 이유로 이를 모두 외주화했다. 또한 산업재해 책임을 회피하기 위해 인력 관리 책임을 전문건설업체와 외부(오야지)에 떠넘기면서 효율적인 생산관리시스템을 스스로 포기했다. 최근 발생한 광주 현대산업개발 아파트 붕괴 사고와 잇달아 발생하는 물류창고 화재 사고 등 대형 참사와 건설업계의 산재 사망사고는 이러한 다단계 하도급 체계에서 발생했다.

지금과 같은 하도급 체계에서는 주먹구구식의 관리 방식에서 벗어날 수 없다. 건설 현장에서 새로운 생산관리와 숙련과 인력관리시스템을 마련하려면 무엇보다 건설노동자와 건설노조와의 협의가 필요할 텐데, 이들 모두를 ‘적’으로 돌리고 나면 건설 현장에서 ‘안전’은 누가 지킨단 말인가.

 

* 이글은 2023년 01월 25일(수) 미디어스 탁종열 칼럼에 게재된 글입니다. 게재글 원문 보기 클릭

 

관리자 freemediaf@gmail.com

<저작권자 © 자유언론실천재단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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