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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가부가 추진하고 법무부 반박한 ‘비동의 강간죄’ 근거는

- [기고] 고승우 80년해직언론인협의회 공동대표ㆍ언론사회학 박사

기사승인 2023.01.30  21:4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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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 부처간 이견 속에서 부각된 ‘비동의 강간죄’란 어떤 것인가? 여성가족부가 그 추진을 발표한 뒤 법무부가 반박하자 입장을 철회한 ‘비동의 강간죄’는 강간죄에서 피해자가 동의하지 않는 경우 가해자를 처벌하자는 취지이다. 강간죄 성립 여부를 가릴 때 피해자가 저항했느냐 여부를 중시하는 것이 불합리하다는 이 논리는 어떤 근거로 제기되었는가 하는 점을 우선 살필 필요가 있다.

 

▲ 정부서울청사 여성가족부 복도 모습. ⓒ 연합뉴스

 

스웨덴의 스톡홀름 사우드 종합병원에 근무하는 애나 뮐러 박사 연구팀은 2016년 성폭력 피해를 당한 뒤 1개월 이내에 스톡홀름 성폭력 피해자 긴급치료 센터를 방문한 298 명의 여성을 상대로 성폭행 당시 긴장성 무운동(tonic immobility) 상태를 경험했는지 여부에 대한 진단을 실시했다(http://www.businessinsider.com/r-many-rape-victims-experience-paralysis-during-assault-2017-6).

심리학적으로 긴장성 무운동(tonic immobility) 상태라고 불리는 이 무기력증은 최면과 유사한 상태에 빠져 외부 자극이나 고통에 반응하지 않게 되는데 ‘긴장성 부동화’로도 불리는 이 현상은 곤충, 어류, 파충류, 양생류, 조류 그리고 포유류 등에서 발견된다. 해당 증세를 보이는 동물은 움직이지 않으며, 눈을 간헐적으로 떴다 감았다를 반복한다. 몸이 굳으며 때로는 머리를 든 상태에서 짧게는 수 초, 길게는 수 시간 동안 같은 자세를 지속한다(http://terms.naver.com/entry.nhn?docId=2690928&cid=42411&categoryId=42411).

연구팀은 피해여성들을 상대로 △얼어붙은 듯 마비 상태가 된 것을 느꼈는지, △움직일 수 있는 상태인데 그렇게 하지 못했는지 여부, △고함치거나 비명을 지를 수 없었는지, △무감각 상태에 빠졌는지, △한기를 느끼거나 고립감을 느꼈는지 여부 등에 대한 설문 조사를 실시했다.


성폭행 피해자 70% 긴장성 무운동(tonic immobility) 상태로 저항 불가능 경험

그 결과 298 명의 피해자 가운데 70%는 폭행을 당할 당시 상당한 정도의 긴장성 무운동(tonic immobility) 상태를 경험했으며 이들 가운데 48%는 그 상태가 극심했다. 저항이 아니라 얼어붙어 꼼짝 못하는 상태가 되었다는 것이다. 피해 여성들은 저항하지 못한 자신을 탓하는 경향이 있지만 이들 여성의 70% 정도는 폭행 당시 마비 상태에 빠진 것이다. 특히 과거 성폭행을 당한 경험이 있는 여성이 피해를 입을 경우 처음 겪는 경우보다 두 배 이상의 긴장성 무운동(tonic immobility) 상태를 경험했다. 또한 심각한 폭력을 수반한 성폭행을 당한 경우도 마찬가지였다.

또한 6개월 동안 검진을 받은 189 명 가운데 38.1%는 PTSD를 겪고, 22.2%는 심각한 우울증에 시달렸다. 긴장성 무운동(tonic immobility) 상태는 PTSD를 유발할 위험을 2.75배 높게 만들고 심각한 우울증에 걸리게 할 위험을 3.42배 높게 만들었다. 연구팀은 긴장성 무운동(tonic immobility) 상태가 알려진 것 보다 매우 일반적이라며 이는 성폭력과 관련한 법적 조치와 심리적 치료 등에 유익한 정보가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PTSD 증상은 감정 마비, 트라우마 상황의 기억이 자꾸 떠오르는 플래시백, 각성과민(주위 환경을 강하게 의식하거나 늘 ‘경계’를 취하고 있는 것) 등이 있다.

대부분의 성폭력 피해자들은 폭행을 당할 때 고함치거나 다리를 오므리는 식으로 저항하는 것이 정상적 행동인 것으로 흔히 인식되고 있지만 실제 자기도 모르게 일시적인 무기력 증세에 빠져 저항하거나 비명을 지르지 못하게 되는 것으로 과학자들이 밝혀냈다. 이 무기력증은 외부 공격에 대한 저항이 불가능하거나 다른 수단이 없을 경우 발생하는데 성폭행 피해자의 경우 외상후스트레스장애(PTSD), 심각한 우울증 등과 연관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EU회원국 중 20여 개 국 ‘여성과 가정 폭력 예방과 근절에 대한 선언’ 비준

한편 성범죄에 대한 법적 판단은 피해자의 동의 여부에 따라야 한다는 것은 새로운 것이 아니고 유럽 컨벤션 의회가 2011년 5월 제정한 ‘여성과 가정 폭력 예방과 근절에 대한 선언(The Istanbul Convention)’에서 강조하고 있는 논리다. 이 선언은 여성 폭력에 대항할 가장 포괄적인 법적 조치로 인정받으면서 2018년 1월 현재 EU회원국 중 20여 개 국이 비준했지만 그 절반은 자국 내 강간 범죄의 처벌법을 그에 맞게 고치지 않고 있다(https://www.amnesty.org/en/latest/campaigns/2018/04/eu-sex-without-consent-is-rape/).

유럽연합(EU)에서 15살 이상의 여인이 강간당한 수는 2018년 4월 현재 약 9백 만 명에 달한다. EU 소속 33개 국가 가운데  영국, 웨일즈, 스코틀랜드, 북아일랜드, 아일랜드 공화국, 벨기에, 키프로스, 룩셈부르크, 독일 등 9 개국만이 ‘동의하지 않는 성교는 강간’의 가해자를 처벌하는 법을 제정했다. 이 때문에 여성 성범죄에 대한 법치가 유럽에서도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는 비판이 일고 있다.

유럽의 이런 현상은 성범죄에 대한 일반적인 인식이 여전히 구태의연하기 때문인 것으로 추정된다. 즉 유럽인권위원회가 2016년 실시한 성범죄에 대한 조사에서 동의 없는 성행위로 범죄에 해당하지 않는 경우에 대해 응답자의 1/3은 ‘피해자가 자발적으로 타인의 집에 간 경우, 속옷이 비치는 옷을 입은 경우, 분명히 안돼 라고 말하지 않은 경우, 육체적으로 반항하지 않은 경우’ 등을 들었다. 이른바 피해자가 성범죄를 유발했다는 식의 논리인데 한국의 법정에서도 주로 인용되고 있어 여가부가 문제를 제기한 것이다.

 

▲ 사진=gettyimagesbank

 

동의하지 않는 성이 범죄라는 사실이 법제화 되지 않는 현실이 성 예비범죄자들과 전체 사회에 미치는 영향은 심각하다. 이는 여성 스스로 성폭행을 방어해야 한다는 책임을 뒤집어  씌우면서 되레 성범죄 피해자의 책임을 묻는 식의 반인륜적인 행태가 되풀이 되게 만들고 있다. 이런 관행이나 태도가 극히 위험하고 심각한 문제이며 동의하지 않는 성범죄는 처벌하는 방향으로 시정되어야 한다는 당위성이 2021년 한국에서 국민 환시리에 부정된 것이다.

세계 최대 인권단체 국제앰네스티는 2018년 ‘성범죄에 대한 광범위한 편견이나 피해자 비난논리 등이 성범죄 근절을 가로막고 있는 장애요인’라면서 ‘미 투 운동에서 강조되는 것처럼 강간으로부터 해방되는 것이 인권이라는 점에서 정부는 동의 없는 성행위는 강간이라고 규정하는 법제를 추진할 책임이 있다’고 강조했다(https://www.amnesty.org/en/latest/campaigns/2018/04/eu-sex-without-consent-is-rape/).


여가부와 법무부의 ‘비동의 강간죄’ 논란, 양성평등 추진 역행 비판 초래

여성가족부가 ‘비동의 강간죄’를 검토하겠다고 했다가 법무부가 “계획이 없다”고 반박하자 9시간 만에 입장을 철회하면서 논란이 일고 있다. 여가부와 법무부간의 모습은 정부부처의 행정처리가 문제가 있다는 점을 드러낸 것은 물론 국제적으로 진행되는 강간죄에 대한 전향적 인식변화를 외면했다는 비판을 자초하고 있다.

이번 소동은 여가부가 강간죄를 피해자의 저항 유무로 판단하는 법체계가 문제가 있다며 피해자의 동의 여부를 가해자의 유죄판단 요건으로 보아야 한다는 제안을 하면서 시작됐다. 여가부는 현행는 형법 제297조(폭행 또는 협박으로 사람을 강간한 자는 3년 이상의 유기징역에 처한다)의 강간구성요건을 ‘폭행·협박’에서 ‘동의여부’로 개정을 검토하겠다는 입장을 제3차 양성평등정책 기본계획(2023∼2027년)에 포함시켜 발표했다.

이에 대해 법무부가 “비동의 강간죄 개정 계획이 없다”고 부정적인 입장을 밝히자, 여가부는 9시간 만에 입장을 번복하면서 “제3차 양성평등기본계획에 포함된 비동의 간음죄 개정검토와 관련하여 정부는 개정계획이 없다”고 밝힌 것이다. 여가부는 비동의 강간죄 추진 방침을 사전에 법무부와 협의해 입장을 발표했지만 “법무부가 계획이 없다고 해서 철회했다”고 번복 이유를 밝혔다.

 

▲ 정부과천청사 법무부 청사 모습. ⓒ 연합뉴스

 

두 부처의 행태는 국민의 입장에서 보면  국민의 세금으로 운영되는 행정 부처들의 어처구니없는 해프닝이었다. 정부의 입법추진 협의절차가 관련 부처 간에 사전에 충분치 이뤄지지 못한 것은 물론 국제 사회가 주목하고 있는 비동의 강간죄 도입을 윤석열 정부가 아예 외면하는 듯한 인상을 줘 양성평등 추진에 역행한다는 논란이 일 전망이다. 이번 소동이 윤 정부가 여가부 폐지를 공론화한 것에 따른 것인지 확인되지 않았지만 되풀이 되어서는 안 될 부적절한 행정처리라 하겠다.

이에 대해 ‘강간죄’개정을위한연대회의 222개 단체는 27일 성명을 통해 “제3차 양성평등기본계획은 당일인 1월26일 양성평등위원회에서 이미 의결된 바 있다. 법무부 장관은 양성평등기본법 제11조와 시행령 제8조에 의거한 양성평등위원회 위원이다. 장관이 위원으로 소속된 위원회에서 의결한 계획을 법무부가 나서서 반대한 것은 부당하다”라고 지적했다.

단체는 “한국이 비준하고 있는 국제규약도 한국 정부에 지속적으로 권고했다. 유엔 고문방지위원회는 2006년 제2차, 2017년 제3·4·5차에서, 여성차별철폐위원회는 2011년 제7차, 2018년 제8차 최종견해에서 피해자의 자유로운 동의 여부 중심으로 강간을 정의하고, 배우자 강간을 범죄화할 것을 권고했다.”고 밝히면서 “양성평등기본법은 성평등 국가책무를 담고 범부처의 책무를 체계화한 법인데 법무부는 이를 무시하고 나선 것인가? 비동의 강간죄는 20대 국회 시기, 현 국민의힘 소속 의원들도 발의하여 5개 정당 10개 국회의원실이 대표 발의했던 법안이다. 법무부는 국제협약 권고대로 ‘비동의 강간죄’를 추진하라”고 주장했다.

 

* 이글은 2023년 01월 30일(월) 미디어오늘에 게재된 기고입니다. 게재글 원문 보기 클릭

 

관리자 freemediaf@gmail.com

<저작권자 © 자유언론실천재단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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