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사의 생존과 저널리즘 소명에 왜 이렇게 괴리를 느껴야 하는가 계속 고민”
“소통이 줄어든 기자 사회…언론으로서 본질을 지키고 있느냐부터 짚어갈 수밖에”
▲ 1974년 10월24일 자유언론실천선언문을 발표하는 동아일보 편집국의 모습. 사진=자유언론실천재단 |
“자유언론실천선언, 특히 ‘연행된 동료가 귀사하기 전까지는 퇴근하지 않는다’는 정신은 연대의 하나의 방안이자 표현이다. 그런데 지금 그런 것들이 가능할까? 환경이 바뀐 부분들이 있지 않나 생각한다. (…) 이는 지금의 고민과도 맞닿아 있다. 나조차 구성원들에게 모든 것을 걸고 싸우라고 얘기할 수 있을 것인가.”(박상현 전국언론노동조합 KBS본부장)
1974년 10월24일, 180여명의 기자들이 동아일보 편집국에서 자유언론실천선언을 발표했다. 권력으로부터 언론 자유를 지키겠다며 집단으로 행동에 나선 사건이다. 중앙정보부가 광고탄압으로 대응하자 시민들은 격려 광고로 지면을 채웠다. 이듬해 동아일보에서 131명, 조선일보에서 33명의 언론인이 해직됐다.
50년이 지난 2024년 자유언론실천선언이 한국의 언론자유에 갖는 의미는 무엇일까. 각 세대와 신문·방송 현장 언론인들이 17일 한국프레스센터 서울클럽 라운지에서 ‘자유언론실천선언 50년과 2024년 한국언론’을 주제로 세미나를 열었다. ‘자유언론실천선언 50주년 사업준비위원회’가 세미나를 주최했다.
▲ ‘자유언론실천선언 50주년 사업준비위원회’가 17일 한국프레스센터 서울클럽 라운지에서 ‘자유언론실천선언 50년과 2024년 한국언론’을 주제로 세미나를 열었다. 사진=김예리 기자 |
기자들은 자유언론실천선언에서 △신문방송잡지에 대한 어떤 외부세력의 간섭도 배제 △언론사에 상주하던 정부기관원 출입 거부 △언론인 불법연행 거부를 선언했다. 이는 31개 언론사로 퍼졌다. 당시 언론사들은 박정희 유신정권을 탄생시킨 3선 개헌안 날치기 통과와 유신헌법 개정을 찬양했다. 동아일보 언론노동자들이 언론계 첫 노조를 결성하자 유신정권은 더 큰 탄압으로 눌렀다. 대통령 긴급조치 1호로 유신헌법에 대한 비판 보도를 비롯한 ‘비방 행위’ 일체를 금지했다.
2024년의 현장 언론인들에게 자유언론실천선언은 믿기 어려운 사건이다. 박상현 언론노조 KBS본부장은 “90년대 학번으로 대학언론을 했다. 당시 자유언론실천선언을 접했을 땐 단순히 올곧고 멋있는 사람들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생활인으로 현업을 뛰니, 생계와 자기 업의 본질, 즉 모든 것을 건 싸움임을 다시 느꼈다”고 했다.
고정현 언론노조 SBS본부 공정방송실천위원장은 “‘언론인의 불법연행을 일절 거부한다. 만약 어떤 명목으로라도 불법연행이 자행되는 경우 그가 귀사할 때까지 퇴근하지 않는다’는 대목이 인상 깊다”며 “지금 과연 우리 동료들은 같은 회사 안에서 부당한 일을 겪었을 때 같이 행동하고 나설 수 있나 회의감이 든다. 나는 과연 나설 수 있을까. 그러지 못했던 과거의 기억을 생각한다”고 했다.
▲ 박상현 언론노조 KBS본부장. 사진=김예리 기자 |
현업 기자들은 언론 독립과 자유를 지키기 위한 언론인들의 연대는 더욱 어려워졌다고 했다. 박상현 본부장은 “50년이 지난 지금 정치권력에 더해 자본권력이 비대해졌다”며 “자본주의가 고도화되며 각자도생에 길들여지고, 그렇게 교육받은 이들이 언론인이 된다. 언론 내부에 공동체의식과 연대의식이 약해졌다”고 했다.
“일례로 ‘MZ노조’ 친구들과 얘기하면, 시민사회와 연대가 필요하다는 명제에는 동의한다. 다만, 민주노총을 싫어한다고 한다. 민주노총에 덧씌워진 프레임도 있겠지만, 조합원이란 이유로 기사나 프로그램이 폄훼되는 일이 일어나는 게 싫단다. 연대를 위해 상급조직이 있고, 연대를 이유로 피해를 본다면 적극 맞서야 내 성과도 지키고 민주노총 동료들의 명예도 지키는데 그 부분에 큰 관심이 없다. 조합만 보더라도 자신의 업무성과로 평가받기를 원하지, 회사가 평가하지 않는 조합활동은 주저한다. 노조 중앙위원, 대의원을 구하기도 힘들다.” (박상현)
정부가 비판 언론에 가하는 탄압은 50년 전과 본질적으로 달라지지 않았다. 김희원 한국일보 뉴스스탠다드실장은 “기자에 대한 수사와 압수수색, 방송통신위원회와 방송통신심의위원회를 통해 규제하고 과징금을 내게 하는 억압의 정도가 극심해졌다. 이게 군사정권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 아이러니를 많이 느끼고 있다”고 했다.
▲ 조선일보 기자로 1974년 유신정권 옹호 보도에 항의했다가 해직된 신홍범 전 조선자유언론수호투쟁위원회 위원장(왼쪽)과 동아방송 PD로 자유언론실천선언에 참여하고 해직된 김학천 동아자유언론수호투쟁위원. 사진=김예리 기자 |
다변화한 미디어 환경에서 기자들이 받는 압박은 다양하고 교묘해졌다. 정철운 미디어오늘 편집국장은 “과거에는 기관원이 편집국에 상주했다. 타도의 대상이 눈앞에 실재했다. 이젠 과거에 비해 압박의 주체가 다양해졌다”며 자본과 정치권력에 의한 압박뿐 아니라 극렬 정치팬덤에 의한 압박, 온라인 성폭력을 예로 들었다.
고정현 공방위원장은 “(압박이) 세련되고 치밀하게 들어온다”고 했다. 그는 “데스크가 기사를 못 쓰게 하는 이유는 1부터 100가지가 있고, 그걸 뚫으려면 지쳐 죽는다”는 후배 기자의 말을 들었다. 고 위원장은 “‘정권이 하지 말랬다’며 직접 쓰지 말라고 하는 경우는 없어졌다. 그러나 기사가 나오기 어렵도록 ‘더 취재해 오라, 논리에 허점이 있다’며 부족한 기사인 것처럼 가스라이팅한다”며 “기사를 아예 안 쓰는 방향으로 중립을 맞추려 하는 사풍이 만들어진다는 자괴감도 내부에 쌓이고 있다”고 했다.
이들은 보도가 상품으로만 소비되는 환경에서 언론인의 열패감이 쌓인다고도 밝혔다. 최우리 한겨레 국제뉴스부 기자는 “1면 기사를 써도 시민들이 기사를 읽고 영향을 받는다는 자신이 없다. 유통이 더 중요하고, 열심히 취재해 보도한다는 의미가 퇴색되는 안타까운 현실”이라며 “이런 열패감은 선배들의 사회에 대한 분노와는 또다른 부정적 감정”이라고 했다.
그는 “자유언론실천선언의 역사를 보며 가장 부러운 것은 젊은 기자들이 열의가 있고, 모두가 적극적으로 자기 이야기를 한다는 것”이라며 “기자 사회가 경직돼가고 있음을 하루가 다르게 느낀다. 구심점도 찾기 어렵고, 리더십도 기대하기 어렵다. 소통이 줄었다. 그 안에서 여전히 고민하는 기자들이 많다”고 했다.
▲ 최우리 한겨레 국제뉴스부 기자. 사진=김예리 기자 |
그러나 조성호 자유언론실천재단 이사장은 권력에 굴하지 않는 언론의 역할은 어느 때보다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한국일보 저연차 기자일 당시 자유언론실천선언 현장에 있었던 조 이사장은 “지금이야말로 자유선언 의미를 되새기고 그 정신을 실천해야 할 때”라며 “당시는 수시로 긴급조치를 발동해 모든것을 구속시키는 무법의 시대였다면 지금은 법 제도를 악용한 검찰 전횡 폭거 시대다. 이 정권에 의한 방송장악, 언론침탈 공작이 위험한 지경에 이르고 있다”고 했다.
김희원 실장은 “정보의 유통이 독점적이던 시대와 달리 지금은 인터넷이 있다. 1인 미디어와 SNS를 통해서 뉴스를 보는 시대가 되면서 언론사들의 경제적인 생존 양태가 많이 바뀌었다”며 “언론사의 생존과 저널리즘 소명에 왜 이렇게 괴리를 느껴야 하는가를 계속 고민하고 있다”고 했다. 그는 “기자들 개인이 할 수 있는 걸 다 하자고 저는 얘기하지만 그 이상의 뭔가가 있어야 한다. 오너와 경영진이 뚜렷한 비전을 가지고, 좋은 저널리즘으로 기업적으로 성공할 수 있는 사례를 보여야 한다”고 말했다.
최우리 기자는 “선배들이 쓰신 책 ‘자유언론실천선언 50년’에도 나온 권력 감시, 언론으로서 본질을 지키고 있느냐부터 짚어갈 수밖에 없다”고 했다. “AI 시대가 와도 기자는 남아있다고 믿고 싶다. 그 이유는, 누군가 질문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적절한 시기에 좋은 질문을 잘 해야 한다. 그리고 누구에게 질문해야 할지도 직업언론인이 습득한 역할이다. 누구에게 언제, 어떤 질문을 할 것인가를 놓치지 않아야겠다는 생각으로 버티고 있다. 그 본질이 독자로부터 위임받은 권력임을 잊지 않고, 언론이 먼저 손을 내밀어야 하는 것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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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글은 2024년 10월 18일(금) 미디어오늘 김예리 기자의 기사 전문입니다. 기사원문 보기 클릭
관리자 freemediaf@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