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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의 ‘사생결단’ 부른 세무조사(1)

- 조선일보 대해부 5권 - 6장(1)

기사승인 2020.09.02  13:4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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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1년 2월 2일자 조선일보 1면에는 「언론사 정밀 세무조사 / 국세청, 일부 지국 장부 압수」라는 기사가 나왔다.

  21개 신문·방송 등 중앙언론사에 대한 국세청의 세무조사가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국세청은 31일과 1일에 걸쳐 중앙언론사들에 세무조사 서면통지서를 보낸 데 이어, 이날 조사요원을 신문사 일부 지국에 파견해 영업장부를 영치하는 등 본격 조사활동에 착수했다.
  이주석 국세청 조사국장은 1일 “이번에 언론사와 그 사주, 관계사에 대해 예외 없는 세무조사를 벌이겠다”며 “필요할 경우 조사는 60일 이상 연장될 수도 있다”고 밝혔다.
  이 국장은 “세무조사 결과 공표는 조사 결과를 봐 가며 그때 가서 결정하겠다”고 밝히고 “형평을 맞추기 위해 전체 언론사를 조사 대상으로 삼았다”고 덧붙였다. 이 국장은 “세계일보는 99년 특별세무조사를 받았기 때문에 이번 조사에서 제외됐으며, MBN과 디지털타임즈는 각각 매일경제, 문화일보와 함께 조사한다”고 덧붙였다.
  한편 국세청은 조선일보에 5개 반 50명을 배치하는 한편, 동아일보에 5개반 35명, 경향신문과 한국일보에 2개 반 14명, 매일경제에 3개 반 20명, 문화일보에 1개 반 10명의 조사인력을 배치한 것으로 알려졌다. 2개 반이 투입된 중앙일보는 99년 관계사인 보광그룹이 세무조사를 받았기 때문에 이번에는 관계사 조사를 받지 않는 것으로 알려졌다.

 언론사들에 대한 세무조사는 2월 8일부터 시작되었다. 국세청 관계자는 1999년에 실시했어야 할 세무조사를 2년이나 늦게 하게 되었다고 밝혔다. 그러자 특히 조선·동아일보는 김대중 정권의 ‘언론 장악 음모’가 명백하므로 세무조사를 중단하라는 내용의 기사들로 지면을 도배하다시피 했다. “실정법이나 세무행정의 관례로 보면 뒤늦게나마 언론사들에 대한 세무조사를 하는 것은 정당한 처사이니 공정하게 해 달라”고 당부하는 것이 바른 태도였을 것이다. 그러나 조·중·동은 정반대의 논조로 ‘언론장악 음모론’을 밀어붙였다.


 보수언론과 한나라당의 ‘연합전선’

 2월 5일 열린 국회 재경위원회에서 한나라당 의원 손학규는 국세청의 언론사 세무조사와 관련해서 “중앙 신문사의 매출액을 다 합쳐도 2조 원 정도로 재벌그룹 소속 중간 건설업체 한 곳 수준에 불과한데, 서울지방국세청 조사 인력의 절반을 투입하는 것은 납득할 수 없다”고 말했다.

  같은 당 안택수 의원은 “이번 조사는 청와대 지시에 따른 하청 조사”라며 “대통령이 불편해 하는 3대 신문사와 민간방송 한 곳 등을 장악하기 위한 것”이라고 말했다.
  김만제 의원은 “세수 확보 차원에서 실효성도 없는 언론사 세무조사는 세금 추징보다는 언론사주를 협박하기 위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문화관광위원회에서도 한나라당 남경필 의원은 “대통령의 언론개혁 발언에 이어 TV 방송들이 연일 언론개혁 프로그램을 방송한 뒤 세무조사가 나온 것은 사전 계획의 일환이 아니냐”고 물었다.
  안정남 국세청장은 재경위 답변에서 “이번 조사는 언론사의 자진 신고 내용을 분석하는 가운데 일부 탈루 혐의가 발견됐기 때문에 착수한 것”이라며 “조사 결과는 조세법 위반 등으로 검찰에 고발할 경우에 한해 공개할 것”이라고 밝혔다(조선일보 2월 6일자 1면).

 이 기사 밑에는 「“언론개혁은 방송개혁부터” / 언론사 세무조사 관련 야, 국세청장 파면 요구」라는 기사가 자리 잡고 있다.

  (······) 언론사 세무조사와 관련해 (한나라당) 권철현 대변인은 “호남 편중 낙하산 인사의 대표적 기관인 국세청이 이제는 노골적으로 정권의 시녀 역할을 자처하고 나섰다”며 “조세권까지 정권 입맛대로 남용하는 안정남 국세청장을 즉각 파면하라”고 요구했다.
  한나라당 언론장악저지특별위원회(위원장 박관용 의원)는 성명을 내고 “세무조사는 정부에 비판적인 특정 신문을 길들이기 위한 것으로, 권력과 공영방송이 유착돼 여론몰이를 하는 것은 시대에 역행하는 반개혁적, 반언론적 처사”라고 주장했다. 성명은 “정작 언론개혁이 필요한 곳은 언론 본연의 비판기능과 공정보도를 결여하고 있는 공영매체”라며 “특히 방송개혁 없이는 언론개혁이 될 수 없음을 정부는 자각하라”고 촉구했다.

 한나라당 총재 이회창은 2월 6일 국회에서 대표연설을 통해 ‘국민 우선 정치’와 ‘대혁신’을 제안하면서 국민의 정부의 언론사 세무조사를 강하게 비판했다. 조선일보는 2월 7일자 1면에 「정치보복 영원히 추방 / 세무조사는 언론 제압용」이라는 제목으로 이회창의 연설 내용을 보도했다. 이회창이 언론사 세무조사에 관해 언급한 내용은 이렇다. “이 총재는 세무조사와 관련, ‘대통령이 언론개혁을 언급한 바로 그날 밤부터 공영방송들이 연일 일부 신문사를 맹비난하기 시작했다. 대통령 말 한마디에 갑자기 세무조사가 시작됐고, 언론은 지금 크게 위축되고 있다. 이는 언론을 제압하려는 것으로 한나라당은 압박받는 언론이 있다면 항상 같이 싸울 것이다.”


  ‘언론사 옥죄려는 억지 셈법’

 2001년 6월 21일자 조선일보 1면에는 「 23개 언론사 5056억 추징 / 국세청, 단일 업종에 사상최대 세금 부과」라는 기사가  실렸다.

  국세청은 23개 언론사에 대해 세무조사를 실시한 결과, 총 1조3594억 원의 소득 탈루 사실이 밝혀져 5056억 원의 세금을 추징하겠다고 발표했다. 이 같은 추징액은 국세청이 단일 업종에 부과한 세금 추징 금액 가운데 사상 최대 규모이다. 또 국세청이 단일 업종을 상대로 132일 동안 사실상의 특별 세무조사를 벌인 것도 전례가 없는 일이다.
  손영래 서울지방국세청장은 이날 세무조사 결과를 발표하면서, “6~7개 중앙 언론사에 대해서는 조세포탈 혐의가 확인될 경우, 검찰에 고발하는 방안을 신중히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
  이번 세무조사 대상은 총 23개 언론사 및 69개 관련 계열기업과 대주주이며, 국세청은 총 소득 탈루액을 1조3594억 원으로 잡고 있다.
  국세청은 언론사와 계열기업에 총 3229억 원의 법인세를, 언론사 대주주 및 관련인에게는 1827억 원의 양도소득세와 증여·상속세를 부과했다고 설명했다.
  이번 조사에서 국세청은 지금까지 관행으로 인정해 주던 무가지(無價紙)를 과세 대상에 새로 포함시켜, 17개 신문사에 688억 원의 세금을 추징하겠다고 밝혔다.
  손 청장은 “23개 언론사에 모두 세금을 부과했다”며 “일부 언론사는 금융 거래 내역과 해외거래 부문에 대한 추가 조사를 받고 있다”고 설명했다.
  국세청은 경영 상태가 취약한 일부 언론사의 경우, 추징 세액에 대한 징수 유예를 신청할 경우 6개월간 세금 추징을 유예할 방침이다.
  국세청은 지난 2월 8일부터 6월 19일까지 조선·동아·중앙일보와 KBS·MBC·SBS 등 23개 중앙 언론사의 95~99년 매출분을 대상으로 정기 법인세 조사를 실시했다.

  6월 22일자 조선일보 1면에는 공정거래위원회가 13개 중앙 언론사에 대해 모두 242억 원의 과징금을 부과했다는 기사가 나왔다.

  이남기 공정거래위원장은 21일 10개 중앙 일간지와 3개 방송사를 상대로 부당내부거래를 조사한 결과 총 510억 원의 부당지원 사실이 밝혀져 242억 원(신문사 203억 원, 방송사 39억 원)의 과징금을 물렸다고 발표했다.
  언론사별로는 조선일보 33억9000만원, 동아일보 62억 원, 문화일보 29억원 등 그동안 비판적 논조를 유지해온 신문들이 과징금을 상대적으로 많이 부과받았다. 그러나 한겨레신문(1500만원), 대한매일신보(1억4000만원), 세계일보(3600만원)는 상대적으로 과징금 액수가 미미했다.
  방송국도 신문사에 비해 과징금 규모가 상대적으로 적었다. 방송사 가운데는 SBS가 15억 원의 과징금을 부과받았고, MBC와 KBS에는 각각 13억 원과 11억 원의 과징금이 부과됐다.
  이날 주요 신문사들이 공정위로부터 부과받은 과징금 액수는 SK(78억원), 포철(36억 원), 롯데(22억 원), 금호(15억 원), 동국제강(19억 원), 코오롱(14억원) 등 재벌그룹과 공기업이 지난해 이후 부과받은 과징금보다 훨씬 많은 금액이다.
  공정위 발표에 앞서 대부분의 신문사들은 이번 조사의 부당성을 밝히는 소명자료를 제출했으나 전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이에 따라 조선·동아·중앙·한국 등 주요 일간지들은 이의신청과 행정소송을 통해 법적 대응을 해나갈 방침이라고 말했다.

 조선일보는 6월 23일자 사설(「언론사 옥죄려는 억지 셈법」)을 통해 세무조사 결과에 대해 강하게 이의를 제기하고 나섰다.

  최근 잇따라 발표된 언론사에 대한 국세청 세무조사와 공정거래위원회의 부당내부거래 조사결과는 수긍하기 어려운 부분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정부는 ‘조세정의 구현’이나 ‘공정거래질서 확립’을 명분으로 내세우면서 객관성과 적법성을 강조하고 있다. 그러나 그 내용을 들여다보면 법 규정에 대한 자의적인 해석과 비상식적인 주장으로 언론사들을 무리하게 ‘단죄’하려 한 흔적을 엿볼 수 있다.
  그 대표적인 예가 유가지의 20%를 넘는 무가지를 접대비로 간주해 무려 688억 원의 세금을 추징키로 한 부분이다. 이는 세법에도 없는 내용으로 “일정 기준이 넘는 무가지는 접대비로 인정한다”는 국세청 예규를 과도하게 적용한 것이다. 신문은 다른 일반상품과 달리 하루만 지나도 쓸모가 없는 한시적 상품이며, 무가지는 그 성격상 세금 탈루용이 아니라 판촉비용에 가깝다는 점에서 과세의 대상인지에 대해서조차 논란이 있다. 설령 과세한다고 하더라도 무가지 발행에 따른 재료비와 발송비 등 비용을 인정해 이를 제외하는 것이 온당하다.
  국세청은 또 ‘일선 지국장 연수대회’의 경비를 회사 법인카드로 결제했다고 해서 접대비로 처리하고, 신문사가 지국 배달요원들에게 배달용 오토바이와 비옷 구입 경비를 지원한 것도 접대비라고 주장했다고 한다. 신용카드 사용을 권장하면서 사용액을 경비로 인정하지 않는 것이나, 신문사가 배달 요원들을 ‘접대’했다는 식의 주장은 이해하기 어려운 발상이다.
  공정위 역시 마찬가지다. 공정위는 조선일보가 광주·전남지역에 배포하는 신문을 인쇄하는 ‘조광출판인쇄’에 정상가격보다 높은 가격으로 인쇄를 맡겼다는 이유로 23억 원의 과징금을 부과했다. (···)
  국세청과 공정위 조사결과를 둘러싼 논란과 관련해서는 결국 언론사들의 이의신청과 행정소송을 통해 법적인 시비를 가릴 수밖에 없다. 그러나 정부가 언론사들에 천문학적인 액수의 부담을 안겨주기 위해 이 같은 ‘억지춘향식 셈법’을 동원했다는 사실만으로도 이번 조사의 ‘순수성’을 의심케 하는 충분한 근거가 된다는 것을 지적하고자 한다.

 이 사설이 주장하는 대로 국세청과 공정거래위원회의 조사 결과에 관해서는 “언론사들이 이의신청을 통해 법적인 시비를 가릴 수밖에” 없는 일이었다. 그런데 조선일보는 법정 다툼으로 가기 전에 한나라당과 ‘연합전선’을 강화하면서, 사내외 필자를 대대적으로 동원해서 세무조사는 김대중 정권의 언론탄압이라고 주장하는 기사와 사설, 그리고 기고문을 잇달아 내보냈다.
 

  한나라당의 김대중 정권 공격

 김대중 정권의 언론사 세무조사 결과에 대해 가장 먼저 공격의 포문을 연 쪽은 한나라당이었다. 조선일보 6월 25일자 5면에 실린 기사는 다음과 같다.
 
  한나라당은 국세청과 공정거래위원회를 동원한 현 정권의 언론 압박이 탄압의 수준을 넘어 ‘비판언론 압살’의 의도를 명확히 드러내고 있다고 결론짓고, 대응 수위를 높이고 있다.
  이회창 총재는 23일 대학 총학생회장들과 가진 간담회에서 “이번에 국세청이 부과한 금액은 언론사가 살아남기 어려운 액수”라며 “법의 이름으로 언론의 예기를 꺾고 멱살을 잡아서 대통령의 정국 운영에 대한 비판을 못하게 하겠다는 시도를 묵과할 수 없다”고 말했다.
  언론장악저지특위도 23일 긴급회의를 열고 일련의 ‘언론 죽이기’의 배후세력과 그 목적을 밝히기 위한 국정조사를 요구키로 했다. 이에 앞서 이 총재는 박관용 특위 위원장을 따로 불러 “이런 엄청난 액수를 때리고, 정부에 가장 비판적인 언론사 사주를 구속한다면 보통 문제가 아니다. 강력하게 대응해야 한다”고 주문한 것으로 알려졌다.
  박 위원장은 회의 후 가진 기자회견에서 “최근의 언론 세무사찰은 비판적 언론을 죽이고, 자유민주주의의 근간인 독립 언론을 파괴하려는 행위”라며 “국정조사를 통해 이번 언론사태를 조종하는 배후세력을 찾아내고 진정한 목적을 밝혀야 한다”고 발표했다.
  언론장악저지특위 회의에서 의원들은 “배후를 밝혀야 한다” “다음 수순은 야당 죽이기”라며 격한 반응을 보였다.
  권철현 대변인도 24일 “이 정권은 양로원에 무료 배포한 신문을 접대비라며 세금을 추징하고, 99년 ‘악법’이라며 자신들이 폐지시킨 신문고시를 다시 부활시키고, 공정위 조사를 언론사로 확대하는 등 전방위적으로 언론을 핍박하고 있다”며 “궁극적으로 친여 신문은 살리고, 반여 신문은 죽이겠다는 합법을 가장한 ‘제2의 언론통폐합’을 기도하고 있다”고 말했다.

 한나라당은 총재 이회창을 선두로 고위 당직자들이 나서서 ‘세무사찰’의 목적은 ‘비판적 언론 죽이기’라고 단정하면서 1980년에 전두환 정권이 강행한 ‘언론통폐합’에 비유하기도 했다.

  한나라당은 6월 25일 ‘김대중 정부 언론압살음모 등의 진상조사를 위한 국정조사 요구서’를 국회에 제출했다. 한나라당은 요구서에서 “99년 폭로된 언론장악음모 문건 등에 따라 진행된 언론사 세무사찰과 공정거래위의 조사와 신문고시 부활 등 현 정권의 일련의 국정행위가 비판언론을 압살하고자 하는 의도 하에서 이뤄졌다는 국민적 의혹을 규명함으로써 언론자유를 보장하고 민주주의를 지키고자 한다”고 말했다.
  이재오 원내총무는 “이번 국정조사는 압살음모를 기획하고 집행하고 있는 배후세력을 규명하는 데 총력을 기울일 것”이라고 말했다.
  한나라당은 또 기존 언론장악저지특위를 확대개편한 ‘언론압살의혹 규명을 위한 진상조사특위’를 당내에 구성, 현 정권의 언론 공격 전반에 대해 다루기로 했다.
  조사특위는 언론장악문건 작성자, 작성 취지, 보고라인, 언론압살공작팀 배후 실체 규명 등 10대 과제를 선정했다(조선일보 6월 26일자 1면).

 조선일보는 6월 27일자 2면 사설(「언론 매도하는 권력의 언어폭력」)을 통해 김대중 정권을 격렬하게 비난했다. 

  최근 언론사 세무조사 결과를 놓고 집권세력이 전방위로 언론에 퍼붓는 발언들은 흥분의 도를 넘어 이성마저 잃은 언어폭력이다. 마치 언론 매도는 이렇게 하는 것이라는 교과서 같기도 하고 무슨 욕설의 전시장 같기도 하다. 집권당 간부라는 자가 언론을 ‘최후의 독재권력’으로 매도한 것은 정말로 놀랍고 어처구니없는, 그래서 분노마저 느끼게 하는 폭언이다. 또 언론을 ‘조직폭력배’에 비유하는 발상 또한 유치하기 짝이 없다.
  특히 민주당의 공식 논평과 의원들의 회의 내용은 공당의 발언이라기보다는 시정잡배들의 독설과 원한에 찬 욕지거리와 다를 게 없다. 무릇 정치에도 도(道)가 있고 정치인 또한 최소한의 품위를 갖추는 것이 도리이며 정치인의 발언은 되도록 절제돼야 하는 것이 상도인데도 최근 언론에 보도되는 그들의 표현은 ‘막가파’를 방불케 한다. (·····)
  언론도 기업이다 보니 세금문제가 발생할 수도 있고, 언론의 속성상 권력화한 측면도 없지는 않을 것이다. 그 같은 언론의 문제가 과연 집권당과 정부기관까지 나서 온갖 독설로, 그것도 우연치도 않게 동시다발로 규탄할 정도로 심각한 것인가 우리는 국민에게 묻지 않을 수 없다. (·····)
  ‘부패한 언론기업’, ‘민주주의와 개혁을 거부하고 특권세력의 특권적 지위를 누리려는 수구세력’, ‘자사이기주의를 위해 별짓을 다하는 특정언론’…. 어제까지 몰랐던 언론에게서 새삼 이런 것을 발견한 것인가. 정말 속 들여다 보인다.

 이 사설은 ‘집권세력이 전방위로 언론에 퍼붓는 발언들’이 ‘이성마저 잃은 언어폭력’이고, “언론을 ‘조직폭력배’에 비유하는 발상”이 유치하기 짝이 없다고 비난하고 있다. 그러나 그런 평가는 집권세력에서만 나온 것이 아니라 진보적 언론과 시민단체들이 보수언론을 대표하는 조선·중앙·동아일보를 비판할 때마다 사용한 것이었다.

 조선일보는 이 사설에 스스로 인용한 ‘부패한 언론기업’ ‘민주주의와 개혁을 거부하고 특권세력의 특권적 지위를 누리려는 수구세력’ ‘자사이기주의를 위해 별짓을 다하는 특정언론’이라는 표현이 조선일보 자체와 무관하다고 떳떳이 주장할 수 있을까?


  조선일보 ‘보위’에 나선 보수파 사람들

 조선일보 6월 27일자 7면에는 보수논객 김동길(연세대 명예교수)의 ‘시론’(「저 사람들이 제정신인가」)이 나왔다.

  ‘범죄와의 전쟁’이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외국의 경우를 보면 새 정권이 들어서면 해묵은 부정과 부패를 척결하기 위하여 대통령이나 총리는 법무장관이나 검찰총장으로 하여금 우선 으름장을 놓게 한다. 과연 그 전쟁의 성과가 어느 정도인지 측정하기는 어렵겠지만 권력이 전쟁을 해서라도 범죄를 소탕해준다니 국민은 고맙다는 생각을 갖게 마련일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도 ‘범죄와의 전쟁’을 선포한 대통령이 있었다. 그런 구호가 적힌 어깨띠를 두르고 독립문 근처를 서성거리던 젊은이들의 모습이 지금도 내 눈에 선하다. 그들의 그런 ‘전쟁’이 어떤 전적을 올렸는지 알 길은 없다. 그런 일이 있으면 우리나라의 검찰이나 경찰은 과거에 폭력으로 감방 생활의 경험이 있는 자는 모조리 잡아간다. (·····)  그런 전쟁이 가끔 벌어진다는 사실은 익히 알고 있지만 ‘언론과의 전쟁’이 그것도 이 정권의 말기에 이르러 이렇게 표면화된다는 것은 정말 뜻밖의 일이다. ‘국민의 정부’의 하늘에도 석양이 비끼었는데 어쩌자고 이 전쟁을 이제 선포하고 나서는지 나는 그 동기를 잘 이해할 수 없다.
  오늘의 집권층이 야당 시절에 언론 때문에 호되게 당해서 그 원한이 뼈에 사무쳤던 것일까.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 민주화투사로 알려졌던 김영삼 씨와 김대중 씨가 청와대의 주인이 되기까지에는 언론의 도움이 적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어찌하여 김대중 대통령은 이런 전쟁의 사령탑에 서게 된 것일까.
  물론 앞에 나선 투사들은 따로 있다. 야전 지휘관들은 국세청장이나 공정거래위원장의 직함을 가진 사람들이다. 청와대에서는 누가 나오고, 국회에 서는 누가 자원했는지 잘 모르지만 어쨌건 국민의 정부에 충성을 맹세한 병사들인 것만은 확실하다. 23개 신문·방송사에 대한 국세청의 세금추징액이 총 5056억 원이고 공정거래위원회의 조사결과에 따른 과징금도 총 242억 원이나 된다는데 그 돈을 다 내라고 하는 것은 신문사나 방송사를 향해 문을 닫으라는 말이나 다름이 없다. 국세청은 세밀하게 조사했다 할 것이고 공정위는 공정하게 부과했다 하겠지만 추징금·과징금을 언론사 별로 검토해 보면 근자에 정부의 경제정책이나 대북정책을 다소 신랄하게(독자의 입장에서는 좀 시원하게) 비판해온 집들이 호되게 당하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그동안에도 언론을 두고 웃기는 일이 많았다. 대한민국이 민주공화국인데 어떤 신문사의 논조가 마음에 안 맞는다고 그 신문을 규탄하는 시위를 벌이는 나라가 문명세계의 어디에 있는가. 진보가 살기 위해서는 보수도 살아야지, 보수는 다 죽고 진보만 살면 나라는 무슨 꼴이 될 것인가. 대북정책을 비판하면 당장 보수·반동으로 몰리는 이 한심한 정치적 현실의 책임이 누구에게 있는가. 김대중 대통령에게 있다. 여당인 민주당은 지난 25일 언론사 세무조사와 관련하여 “언론은 최후의 독재권력으로 남아 있다”고 했다는데 나는 개인적으로 “저 사람들이 제정신인가” 의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 최근에 발표된 ‘언론학자 107인 선언’을 읽고도 그런 사람들이 여기에도 있구나 나는 생각했다. 국고가 비어서 언론사로부터 추징금·과징금 명목으로 4억657만 달러를 거두려는 것은 아니겠지만 북에 퍼주기만 중단해도 그만한 재원은 쉽게 마련될 수 있다. ‘언론과의 전쟁’에서 누가 이길 것 같은가. 뻔한 일이다. 두고 보라.

 김동길은 “‘국민의 정부’ 하늘에도 석양이 비끼었는데 어쩌자고 이 전쟁을 이제 선포하고 나서는지 나는 그 동기를 잘 이해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2001년 6월 현재 한나라당과 보수언론의 공격, 그리고 연합정부의 한 축을 이루는 자민련의 소극적인 협력 때문에 국민의 정부가 제대로 기능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었다. 그렇다고 해서 국세청이 언론사들의 신고 내용을 바탕으로 정밀한 세무조사를 한 뒤 그 결과를 발표하는 것까지 ‘언론과의 전쟁’이라고 단언하는 시각은 철저히 한나라당과 보수언론의 견해를 대변하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김동길은 “23개 신문·방송사에 대한 국세청의 세금추징액이 총 5056억 원이고 공정거래위원회의 조사 결과에 따른 과징금도 총 242억 원이나 된다는데 그 돈을 다 내라고 하는 것은 신문사나 방송사를 향해 문을 닫으라는 말이나 다름없다”라고 주장했다. 이 문제에 관한 판단은 언론사들이 소송을 통해 해결할 일이지 대통령이나 국세청장이 나서서 ‘세금 감면’을 할 수 있는 사안이 아니었다.

 김동길의 ‘비인도적 시각’과 안이한 현실 인식은 글의 마지막 대목에서 ㅇ실히 드러난다. “국고가 비어서 언론사로부터 추징금·과징금 명목으로 4억657만 달러를 거두려는 것은 아니겠지만 북에 퍼주기만 중단해도 그만한 재원은 쉽게 마련될 수 있다”는 생각이 바로 그것이다. 북한 정권을 상대로 ‘6·15 남북공동선언’을 이끌어낸 김대중 정권이 ‘화해와 협력의 정신’을 백지화하고 북한의 헐벗고 굶주린 동포들을 돕는 사업을 포기하면서까지 언론사들에 대한 추징금과 과징금을 면제해 주라는 뜻인데, 그것을 국민들이 용납할 리는 결코 없었을 것이다.

 7월 들어 소설가 이문열은 세무조사를 둘러싼 ‘전쟁’에서 정부가 물러서라고 ‘권고’하는 글(「신문 없는 정부 원하나」)을 조선일보 7면에 기고했다.

  지금 우리 사회는 같은 철로 위에서 걷잡을 수 없는 투지로 서로를 향해 치닫고 있는 두 대의 기관차를 보고 있는 듯한 위기감에 빠져 있다. 해당 언론사 대다수에는 파산선고나 다름없는 국세청 추징에다 사주 구속을 앞두고 있는 이 나라의 언론과, 그런 조처의 정당성을 홍보하기 위해 총력전을 펼치는 듯한 이 정권이 그러하다. (·····)   지금 이 시점에서는 사태의 본질이나 원칙론적 논의는 말할 것도 없고 방법론과 절차에 대한 시비조차 별 의미가 없어 보인다. 근래 몇 년처럼 정치적 수식어와 화장술이 발달한 적도 없었으며, 홍보의 탈을 쓴 정치적 프로파간다와 소수에 의한 다수 사칭 여론조작, 그리고 논의를 앞세운 언어적 폭력이 공공연하게 자행된 적도 없었다. 논리는 오래 전부터 무력해졌고, 대중의 이성은 혼란에 빠졌다. 거기다가 더욱 고약한 것은 이미 그런 것을 따지기에는 너무 늦었다는 느낌이다. 혁명이 일쑤 파괴적이고 폭력적인 양상을 띠는 것은 패퇴한 세력의 잔여 에너지와 승세를 탄 세력의 농축 에너지가 모두 극대화한 상태에서 충돌하기 때문이다. 그런 혁명의 비극적 소모를 피하기 위해 모색된 것이 점진적 변혁 혹은 개혁일 것이다. 그런데 80년대 이후 우리 사회가 선택한 것은 후자로 보인다. (·····)   (···) 98년 이 정권이 출범했을 때 나는 10년의 세월을 믿었다. 그 완만한 변혁의 기간에 구체제의 잔여 에너지나 대항 세력의 농축 에너지는 거의 소진되었거나 함께 만들 미래에의 이상으로 순화되었으리라 여겼다 .그런데 아니었다. 우리 사회는 더욱 분열되고 대립은 더욱 격화되었으며 이제는 모종의 머지않은 폭발을 예감케까지 한다.   참으로 염려스러운 일은 이번의 충돌이 바로 그 기폭제가 되는 것이다 .이정권과 언론을 중심으로 방향을 달리하는 힘들이 급속하게 재편되고 결속되는 느낌을 떨쳐버릴 수 없다.
  국세청이 언론기업의 탈세 혐의를 검찰에 고발하는 것을 3개뿐인 방송사가 모두 생중계하고 종일 그 뉴스로 화면을 뒤덮는 걸 보면 유태인 학살을 정당화하는 나치의 대 국민 선전 선동을 연상시킨다. 그런가 하면 아직 검찰과 법원의 판단이 남은 상태에서 그걸 바로 여당의 정권 재창출 음모로 단정하고 사생결단으로 나오는 야당에서도 단순한 정략 이상 어떤 방향의 사회력 결집이 느껴진다. 어쩌면 지난 10년 우리 사회는 순화되고 발전해온 것이 아니라 피할 수 없는 비극을 유예해온 것에 불과하지 않은가 하는 두려운 자문이 일기도 한다.   기관사들이여, 이제라도 급제동을 걸어라. 브레이크를 밟아라. 늦었더라도 승객의 피해를 최소한으로 줄일 수 있도록. 하지만 굳이 두 기관차가 충돌로 승패를 가름해야 한다면 나는 언론 쪽의 승리를 기원할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정권은 한 시대의 정치제도가 빚어낸 가변적 현상이지만 언론은 제도 그 자체로서 영구적이기 때문이다. 언론이 없고 정부만 있는 사회보다는 정부가 없고 언론만 있는 사회를 선택하겠다는 말은 바로 이 뜻이 아니었던가.

 이문열은 이 글을 차분한 논조로 펼쳐 나갔다. 그러나 다음의 두 대목이 언론계와 학계의 보수·진보 진영이 맞서는 ‘일대 논쟁’을 일으켰다. “국세청이 언론기업의 탈세 혐의를 검찰에 고발하는 것을 3개뿐인 방송사가 모두 생중계하고 종일 그 뉴스로 화면을 뒤덮는 걸 보면 유태인 학살을 정당화하는 나치의 대 국민 선전 선동을 연상시킨다.” “굳이 두 기관차가 충돌로 승패를 가름해야 한다면 나는 언론 쪽의 승리를 기원할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정권은 한 시대의 정치제도가 빚어낸 가변적 현상이지만 언론은 제도 그 자체로서 영구적이기 때문이다. 언론이 없고 정부만 있는 사회보다는 정부가 없고 언론만 있는 사회를 선택하겠다는 말은 바로 이 뜻이 아니었던가.” 

 이 글에서 이문열이 거론한 ‘3개뿐인 방송사’는 KBS, MBC, 그리고 SBS이다. 이문열은 ‘공영방송’을 표방하는 KBS와 MBC는 물론이고 민영방송으로서 영리를 추구하는 SBS의 보도조차 “‘유태인 학살’(김대중 정권이 주도하는 세무조사를 비유함이 분명)을 정당화하는 나치의 선전 선동을 연상시킨다”고 비난한 것이다. 게다가 그는 미국 제2대 대통령 토마스 제퍼슨의 명언으로서 언론에 자주 인용되는 “나는 신문 없는 정부보다 정부 없는 신문을 택하겠다”라는 말을 자의적로 이용했다. 제퍼슨의 그런 견해는 ‘공정하고 자유로우며 공익에 충실한 신문’을 가리키는 것이라는 학설이 진보적 언론학계의 정설로 되어 있는데 이문열은 ‘정권은 가변적이고 언론은 영구적’이라는 이분법을 만들어내면서 언론은 어떤 잘못을 저질러도 존재가 없어져서는 안 된다는 뜻으로 해석될 수 있는 허황한 논리를 제시했다. 

관리자 freemediaf@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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