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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영미, ‘성추행 괴물’ 실명 밝혔어야

- 〈김종철 자유언론실천재단 이사장ㆍ동아투위 위원장〉

기사승인 2018.02.08  13:43: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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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난히 추운 올 겨울을 뜨겁게 달군 사건들 가운데 날이 갈수록 열기를 더하는 것이 성추행이다. 지난달 30일 창원지검 통영지청 검사 서지현이 자신의 페이스북에 올린 글이 기폭제가 된 것이다. 그는 8년 전인 2008년 10월 30일 한 장례식장에서, 법무부장관을 수행하고 온 법무부 정책기획단장 안태근(나중에 검찰국장)에게 공공연하게 성추행을 당했다고 폭로했다. ‘상명하복’이 철칙처럼 되어 있는 검찰에서 여성 평검사가 ‘우병우 직계’로 엘리트 코스를 밟은 선배검사의 성추행 실상과 검찰 수뇌부의 피해자 탄압을 당당하게 폭로한 것이다. 이 사건이 일파만파로 번지면서 한국사회 전역의 ‘성범죄’ 실상이 적나라하게 드러나고 있던 2월 6일 경향신문과 노컷뉴스에 충격적인 내용의 시 한 편이 소개되었다. 1994년에 나온 <서른, 잔치는 끝났다>라는 시집으로 널리 알려졌던 시인 최영미가 지난해 <황해문집> 가을호에 발표한 시 ‘괴물’이 바로 그것이다. 이 시에 나오는 ‘괴물’은 ‘En선생’으로, ‘100권의 시집을 펴낸’ ‘노털상 후보’로 해마다 이름이 거론되는 인물이다.

최영미는 그 뉴스가 여러 매체와 SNS로 급속히 퍼지는 가운데 6일 저녁 JTBC ‘뉴스룸’에 출연해 앵커 손석희와 길게 인터뷰를 했다. 최영미의 폭로는 한국 문단의 속내를 잘 모르는 시청자들에게 엄청난 충격을 안겼을 것이다. “어떤 여성 문인이 권력을 지닌 남성 문인의 성적인 요구를 거절하면 뒤에 그들은 복수를 한다. 그들은 문단의 메이저 그룹 출판사와 잡지 등에서 편집위원으로 있는데, 자신의 요구를 거절한 (여성) 문인에게 원고 청탁을 하지 않는다. 작품이 나와도 그에 대해 한 줄도 쓰지 않고 원고를 보내도 채택하지 않는다. 문제는 그녀들의 피해가 입증될 수도 없고 ‘작품이 좋지 않아서 거절한 거예요’라고 말하면 하소연 할 곳이 없다는 것이다. 그녀는 작가로서 생명이 거의 끝난다.” 최영미는 이런 말도 덧붙였다. “30대 초반으로 젊을 때 문단 술자리에서 내게 성희롱, 성추행을 한 이들이 한두 명이 아니라 수십 명이었다.”

 

'미투' 운동이 각계로 확산되면서 최영미 시인이 문단 내 성폭력을 비판하면서 작년 말 한 문예지에 발표한 '괴물'이란 시가 주목받고 있는 가운데, 지난 6일 최 시인이 JTBC 뉴스룸에 출연해 인터뷰를 하고 있다. 사진=JTBC 방송화면 갈무리

 

최영미는 ‘괴물’의 성추행을 이렇게 묘사했다. “몇 년 뒤, 어느 출판사 망년회에서 / 옆에 앉은 유부녀 편집자를 주무르는 En을 보고 / 내가 소리쳤다. / ‘이 교활한 늙은이야!’ / 감히 삼십년 선배를 들이박고 나는 도망쳤다.”

최영미가 이 시를 지난해 가을에 발표하게 된 데는 미국에서 불길처럼 번지던 ‘#미투 운동’의 영향이 컸을 것 같다. 그렇다면 그는 미국의 여성 연기인들이나 유명 인물들처럼 성추행을 저지른 가해자(들)의 실명을 명확히 밝혔어야 한다. 해가 바뀐 뒤 언론매체들을 통해 널리 알려진 시 ‘괴물’에 관해 최영미는 <뉴스룸> 인터뷰에서 이렇게 밝혔다. “처음에 누구를 써야겠다고 하고 쓰지만, 시를 전개해 나가는 과정에서 다른 사람이 들어온다. 처음에 자신의 경험이나 사실을 기반해서 쓰려고 하더라도 약간 과장되기도 하고 그 결과물로 나온 문학 작품은 현실과는 별개의 것이다.” 그러나 한국문학을 거의 모르는 사람이라도, 해마다 가을이 오면 언론에 오르곤 하는 노벨문학상 후보(원로 시인)가 바로 ‘괴물’이라고 저절로 떠올리게 될 것이다. 한 언론이 ‘괴물’이라고 표현된 원로시인에게 전화를 하자 그는 이렇게 대답했다. “후배 문인을 격려한다는 취지에서 한 행동이 오늘날에 비추어 성희롱으로 규정된다면 잘못된 행동이라고 뉘우친다.” 최영미는 인터뷰에서 손석희가 이 사실을 알리자 “그 문인이 내가 처음 떠올린 문인이 맞다면 굉장히 구차한 변명이라고 생각한다. 그는 상습범이고 한두 번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이미 극우매체들에는 ‘괴물’의 이름 두 글자가 대서특필되었다. 그가 1970년대 중반 이래 진보적 문학운동을 이끌었을 뿐 아니라 1980년 5월에는 전두환 일파가 조작한 ‘김대중 내란음모 사건’에 연루되어 혹심한 고문을 당하고 모진 옥살이까지 했으니 극우세력이 보기에는 이보다 더 좋은 공격거리가 어디 있겠는가? 그런데 그는 1990년대 중반부터 민주화운동에서 멀어지면서 노벨문학상 받는 것을 인생 최대의 목표로 삼는 듯한 태도를 보였다. 그와 함께 재야운동을 해온 이들이 그의 행태를 비판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을 것이다. 나는 그가 ‘인생의 황혼’에 걸어가는 길을 보면서 씁쓸함을 지울 수 없었지만, 왕성하게 문필활동을 하고 있으니 그나마 다행이라고 생각할 뿐이었다.

최영미의 ‘괴물’은 시가 아니라 산문이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은유에 기대고는 있지만 직설적 표현이 생경하게 드러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차라리 주인공의 실명을 밝히고 그의 행적을 비판하는 한편, 한국 문단의 고질적 성범죄 실상을 고발하는 것이 정공법이라고 볼 수 있지 않을까?

관리자 freemediaf@gmail.com

<저작권자 © 자유언론실천재단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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