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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합제와 연방제 논의 준비할 때

- 민족 자주·자결의 길 활짝 연 ‘평양공동선언’
〈김종철 자유언론실천재단 이사장ㆍ동아투위 위원장〉

기사승인 2018.09.21  21:35: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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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이날 밤 ‘5월1일 경기장’에서 '빛나는 조국'을 관람 후 연설이 끝난 뒤 환호하는 평양 시민들에게 손을 들어 인사하고 있다. ⓒ 평양사진공동취재단

 

문재인 대한민국 대통령과 김정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국무위원장이 북녘 땅에서 가진 사흘 동안의 만남은 감동적이면서도 충격적인 드라마를 잇달아 만들어냈다. 김 위원장이 순안공항에 도착한 문 대통령을 최고급 ‘국빈’으로 영접한 것을 시작으로, 온 세계에 생중계된 TV 화면에는 놀라운 장면들이 잇달아 나타났다. 그 드라마의 절정은 문 대통령과 김 위원장이 지난 20일 오전 백두산 천지에 올라 손을 치켜 잡고 환하게 웃는 장면이었다. 문 대통령은 “첫 걸음이 시작됐다”고 말했고 김 위원장은 “새로운 역사를 써나가야겠다”고 화답했다. 나는 두 정상의 말 서두에 ‘통일의’라는 말이 들어 있다고 해석하고 싶다.

지난 19일 두 정상이 발표한 ‘9월 평양공동선언’은 민족 자주와 자결의 길을 활짝 여는 역사적 문건이었다. 이 선언은 크게 보면, 1972년 7월 4일 발표된 ‘남북 공동성명서’의 조국통일 3대 원칙(자주·평화·민족대단결), 2000년 6월 15일에 나온 ‘남북공동선언’에 명시된 ‘우리 민족끼리의 자주적 통일’, 2007년 10월 4일자 ‘남북관계 발전과 평화번영을 위한 선언’이 밝힌 ‘공동선언 고수 및 적극 구현’과 맥락을 같이 하고 있다. 그러나 박정희·김대중·노무현 정부 시기에 나온 세 선언이 실질적 효과를 내지 못한 데 비해, 이번의 평양공동선언은 발표 직후부터 빛을 발하기 시작했다. 민족의 자주와 자결을 위한 실천 방안이 구체적으로 제시되어 있기 때문이다. ‘판문점선언 군사분야 이행합의서’를 평양공동선언의 부속 합의서로 채택함으로써 ‘한반도를 항구적인 평화지대로 만들기 위한 실천적 조치들’을 명기한 대목이 대표적 보기이다.

평양공동선언이 민족의 자주와 자결을 얼마나 중시하고 있는지는 6개 주요 항목에서 여실히 드러난다. 앞의 4개 항목(1.한반도 전 지역에서의 실질적인 전쟁위험 제거와 근본적인 적대관계 해소, 2.상호호혜와 공리공영의 바탕 위에서 교류와 협력 증대, 3.남북 이산가족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기 위한 인도적 협력 강화, 4.우리 민족의 기개를 내외에 과시하기 위한 다양한 분야의 협력과 교류), 그리고 맨 나중(6번째)의 ‘김정은 위원장 서울 방문’이 ‘우리 민족끼리’에 관한 것이고 5번째 항목에서 비로소 미국이 강력히 요구해온 ‘비핵화 문제’가 언급된 것이다. 두 정상은 “남과 북은 한반도를 핵무기와 핵위협이 없는 평화의 터전으로 만들어 나가야 하며 이를 위해 필요한 실질적인 진전을 조속히 이루어나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사흘 동안의 북한 방문을 마치고 돌아온 문 대통령은 서울 동대문디자인플라자의 프레스센터를 곧장 찾아가 내외신 기자들에게 “우선 전쟁을 종식한다는 정치적 선언을 먼저 하고, 그것을 평화협정 체결을 위한 협상의 출발점으로 삼아야 한다”고 말했다. “북한이 완전한 비핵화를 이룰 때 평화협정을 체결함과 동시에 북미가 관계를 정상화한다는 게 우리가 종전선언이라는 말을 사용할 때 생각하는 그런 개념”이라는 것이다. 1953년 7월 27일, 판문점에서 북한과 미국·중국이 서명한 휴전협정은 그로부터 65년 동안 한반도에 ‘휴전 상태’가 지속되게 했고, 실제로 미국은 그것을 빌미로 미군을 주둔시키면서 대한민국의 군사적 주권을 앗아가다시피 했다. 이승만 정권 이래 장면, 박정희, 전두환, 노태우, 김영삼, 김대중, 노무현, 이명박, 박근혜가 수반으로 있던 그 어떤 정권도 ‘군사적 종속’에서 벗어나려고 적극적으로 노력하지 않았다. 그러나 문재인 대통령은 올해 초 김정은 위원장이 발표한 ‘신년사’를 계기로 남북정상회담을 적극적으로 추진한 끝에 마침내 지난 4월 27일 그를 남측으로 초청해 역사적인 ‘판문점선언’을 함께 발표할 수 있었다. 그것이 이번의 평양 정상회담에서 민족의 자주와 자결을 위한 역사적 동행의 첫 걸음으로 나타난 것이다.

평양공동선언에는 “북측은 동창리 엔진시험장과 미사일 발사대를 유관국 전문가들의 참관하에 우선 영구적으로 폐기하기로 하였다”, “북측은 미국이 6·12 북·미 공동성명의 정신에 따라 상응 조치를 취하면 영변 핵시설의 영구적 폐기와 같은 추가적인 조치를 계속 취해나갈 용의가 있음을 표명하였다”고 명시되어 있다.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즉각 환영의 뜻을 밝혔다. 그러나 트럼프가 과연 종전선언과 대북한 제재 해제 같은 ‘상응 조치’를 신속히 취할 수 있을까? 나는 전망이 밝지 않다고 믿는다. 왜냐하면 그는 현재 미국은 물론이고 중국, 유럽연합 등지에서 신뢰할 수 없는 지도자라는 격한 비난을 받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트럼프는 러시아게이트 특검의 강도 높은 수사, 워터게이트 사건을 단독 보도한 바 있는 워싱턴포스트의 밥 우드워드(현재 부편집인)가 최근 펴낸 책(<공포·백악관의 트럼프>)이 일으킨 열풍, 그가 연방대법관 후보로 지명한 브렛 캐버노의 고교 시절 성추행 미수 사건 폭로때문에 벼랑 끝으로 몰리고 있다. 지지율도 30% 대로 떨어졌고, 오는 11월 6일의 중간선거에서 민주당이 하원을 장악할 가능성이 크다는 보도가 잇달아 나오고 있다. 공화당이 하원에서 야당으로 전락한다면, 트럼프가 한반도 종전선언에 동의한다 해도 민주당과 미국 주류 언론의 반대를 물리칠 힘이 없어질 것은 물론이다. 평화협정은 말할 나위도 없다. 그렇게 되면 북한이 ‘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불가역적인 비핵화’(CVID)를 이행할 가능성은 전혀 없을 것이다.

그때 남한과 북한은 어떻게 해야 할까? 나는 ‘민족의 자주와 자결’이 유일한 길이라고 확신한다. 판문점선언과 9월 평양공동선언에서 명확히 밝혔듯이, ‘우리 민족끼리’ 종전선언과 평화협정을 성사시키는 작업이 바로 그것이다. 남한과 북한이 유엔군사령부와 미군의 철수를 요구하지 않는다는 데야 트럼프 행정부나 민주당이 어떻게 이의를 제기할 수 있겠는가?

1991년 9월 18일, 대한민국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은 별개의 주권국가로서 유엔에 동시 가입했다. 159개 회원국이 만장일치로 승인한 것이다. 남한과 북한 가운데 어느 쪽이 한반도의 유일한 합법 정부인가에 관한 논란은 그 이후 국제사회에서 사라져버렸다.

지난 14일, 판문점선언에 따라 개성공단에서 남북 공동연락사무소 개소식이 열렸다. 남한의 통일부 차관과 북한의 조국평화통일위원회 부위원장이 각각 연락사무소장을 맡아 1년 365일 24시간 연락을 주고받게 되었으니 대사를 파견한 셈이나 마찬가지이다. 앞으로 서울과 평양에 대표부가 설치되면 정식 외교관계가 수립될 것이다. 그러나 민족의 자주와 자결을 위해 남과 북이 먼저 추진해야 할 과업이 있다. 2000년 6월 15일에 발표된 ‘남북공동선언’ 제2항에 나오는 ‘합의’가 바로 그것이다. “남과 북은 나라의 통일을 위한 남측의 연합제안과 북측의 낮은 단계의 연방제안이 서로 공통성이 있다고 인정하고 앞으로 이 방향에서 통일을 지향시켜 나가기로 하였다.”

연방제 통일방안은 1960년 8월 15일, 해방 15주년 경축대회에서 김일성 주석이 처음 제안한 이래, 1989년 3월 방북한 문익환 목사를 그가 만난 자리에서 ‘낮은 단계의 연방제 통일안’으로 수정된 바 있다. 김 주석은 1991년 신년사에서 그것을 공식으로 발표했다. 김영삼 대통령이 1994년 8월 광복절 경축사를 통해 남북 사이의 체제경쟁이 끝났다고 선언하면서 자유민주주의체제로 통일되어야 한다고 주장하자 북한은 그를 격렬하게 비판했다. 그런 우여곡절 끝에 2000년 6월 김대중 대통령이 김정일 위원장에게 연합제를 제안했던 것이다. 이재봉 교수(원광대 정치외교학과)는 2014년 8월 26일 프레시안에 기고한 글(‘연방제 통일에 대한 오해와 진실’)에서 다음과 같이 정의했다.

“두 통일 방안의 가장 큰 차이점은 국가연합이 대외적으로 두 개의 국가인 데 반하여, 낮은 단계의 연방제는 대외적으로 하나의 국가라는 점이다. 즉, 연합제는 연립주택처럼 2개의 독립국가가 나란히 붙어서 협력하는 형태인 ‘2국가 2정부 체제’라고 할 수 있고, 낮은 단계의 연방제는 한 지붕 두 가족처럼 밖으로는 1개의 독립국가를 이루면서 안으로는 2개의 지역정부가 협력하는 형태인 ‘1국가 2정부 체제’라고 말할 수 있다.”

현재 상황에서 남한도 북한도 상대방을 ‘흡수통일’ 할 수 있는 방법은 전쟁밖에 없다. 서독이 동독을 흡수한 사례는 한반도에 적용될 수 없는 모델임이 분명하다. 그러므로 트럼프가 종전선언과 평화협정을 전제로 한 북한의 비핵화를 관철하지 못할 경우에 대비해서 남과 북은 연합제나 낮은 연방제를 통한 통일의 길을 진지하게 모색해야 할 것이다.

 

* 이글은 프레시안에 함께 실렸습니다.

 

관리자 freemediaf@gmail.com

<저작권자 © 자유언론실천재단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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