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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원자율화 조치와 교황의 방한

- 조선일보 대해부 4권 -17장

기사승인 2019.09.25  12:30: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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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두환 정권은 미국과의 관계 증진 등 여러 가지 면에서 자신을 얻었는지 1983년 12월 21일 이른바 ‘학원자율화’ 조치를 발표했다. 미국 행정부의 권고에 따른 것이었다는 설도 있었지만 어쨌든 학원에 대한 획기적 유화정책이었다. 1984년 5월로 예정돼 있던 로마 가톨릭 교황의 한국 방문과 1986년 아시안게임, 그리고 국내적으로는 1985년 2월 12일의 총선거도 그 배경이라는 해석이 나왔다.

조선일보는 ‘학원자율화’ 조치에 관한 기사를 12월 22일자 1면 머리에 올리고 2, 3, 10, 11 면에서는 해설과 칼럼 등을 통해 대학의 면학분위기를 강조했다. 그 조치를 아주 높이 평가한 2면 사설의 주요 내용은 다음과 같다.

학원 사태로 제적된 대학생들의 복교를 허용하기로 한 21일의 정부 조치는 세밑 추위를 잊게 하는 일대 낭보가 아닐 수 없다. (…) 우리는 이번 조치에서 두 가지 괄목할 특징을 발견한다. 하나는 복교 대상을 80년 5·17 이후 제적된 1천3백63명 전원으로 하여, 이미 복역을 마쳤거나 현재 복역 중이거나 또는 재판 계류 중인 학생, 그리고 최근 검거되어 기소 이전의 단계에 있는 학생까지 포함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 괄목할 특징 중의 다른 하나는 복교 여부를 대학 총학장 재량에 완전 일임하고, 향후 학원문제도 종래와 같은 처벌 위주 방식을 지양하여 학교 책임 아래 선도토록 하는 방향으로 전환키로 한 사실이다. 복교 여부를 결정함에 ‘개전의 정이 뚜렷한 사람’이라고 하는 단서가 붙긴 했으나, 정부 측의 관여 없이 학교에 일임했다고 하는 것은 학원의 자율성과 관련하여 썩 잘한 일이며, 학교 책임 하의 선도 또한 맥락을 같이하는 것으로 칭송할 만하다.
(…) 학원의 자율화는 물론 정부의 의지 없이 이룩될 수 없다. 그 이유를 설명할 필요는 없다. 우리가 여기에 힘주어 강조하는 것이 바로 그것이며, 또한 그런 점에서 우리는 이번 정부 조치를 높이 평가하는 것이다. (…) 아무쪼록 모처럼의 쾌사가 우리의 학원 풍토를 쇄신하는 계기가 되기를 간절히 기원한다.

그렇다고 전두환정권이 학원에 대해 손을 놓은 것은 아니었다. 대학으로 하여금 선도위원회와 홍보위원회 등을 설치하여 학생시위에 대처하도록 하는가 하면 학교당국은 시위가담자들의 적극·소극 가담자들을 분류해 단과대학별 집단지도나 수시지도, 가정방문지도 등을 하도록 했다. 그러나 그러한 통제는 별 효과가 업었다. 1984년 학생회의 부활로 광주문제가 수면 위로 떠오르면서 학생운동의 불꽃이 타올랐기 때문이다.

전두환 정권은 노동운동가 등을 현장에서 배제하기 위해 1984년부터 이른바 ‘블랙리스트’를 만들어 각 단위사업장에 배포했다. 그 블랙리스트는 정부와 기업 및 국가정보기관이 합작해 만든 것으로 1백25개 사업장의 해고자 6백81명, 복직자 60명, 재취업자 57명에 대한 신상명세서를 한눈에 파악할 수 있게 정리한 것이었다.

학원에 대한 감시와 통제도 계속됐다. 3월 국회에서 국방부는 학원소요와 관련해 입대한 학생들의 숫자가 4백65명이라고 밝혀 여전히 강제입영이 지속되고 있음을 자인했다. 학생시위가 계속되는 가운데 이러한 문제들에 대한 언론 보도는 거의 눈에 띄지 않았다. 언론은 여전히 권력의 주구 노릇을 하고 있었던 셈이다.


교황의 방한과 시국

1984년 5월 3일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4박5일의 일정으로 한국을 방문했다. 그 해는 한국 천주교 200주년 행사와 함께 1백3위 순교자에 대한 시성(諡聖)미사가 열리는 중요한 해였다. 그러나 교황의 방문 행사 내용을 둘러싸고 천주교 내부에서 논란이 일어났다. 특히 함세웅(신부)이 가장 강력하게 항의를 했다. 그는 <암흑 속의 횃불> 제6권 서문에 다음과 같이 썼다.

(…) 무엇보다 교황의 한국 방문은 사목자로서의 방문임에도 그의 방한은 국빈방문으로 온통 정치적 방문을 방불케 한 것이었다. 광주의 아픔이 채 가시기도 전에 억울하게 숨져간 이들의 외침이 여전히 하늘을 향해 솟구치는 그 시간, 불의한 독재 권력자들이 국민을 짓밟고 총칼로 다스리고 있는 그 때에 교황은 전두환 대통령의 마중을 받고 그와 악수하며 담소를 나누었고 이 장면이 전국에 TV방송으로 전해졌다. 이보다 더 기막힌 일이 있는가.

조선일보는 교황의 방한을 크고 화려하게 다루었다. 사목자로서보다는 국빈으로서의 방한에 방점을 두었기 때문일까.  ‘교황의 역사적 방한’소식과 함께 전두환이 공항에 나가 그를 직접 영접한 뒤 정상회담을 가진 사실을 요한하게 보도했던 것이다.

조선일보는 5월 4일자 1면 머리기사(「남북대화 재개 촉구」)에서 요한 바오로 2세와 전두환이 정상회담을 통해 북한에 대화를 촉구하는 9개항의 공동발표를 했다고 전하고 이산가족의 재결합이 절박하다고 강조했다. 그리고 1면에 정상회담 공동발표문 전문을 싣고, 「북한주민 신앙생활 박해에 우려」「이산가족 재결합 필요성을 강조」같은 부제목들을 붙임으로써 마치 대북 정치공세와 같은 인상마저 주었다. 또 2, 3, 4, 10, 11면에 관련기사들을 올리고, 사설을 통해 교황이 ‘화해의 메시지’를 강조했다고 전했다.

가톨릭 교황 요한 바오로 3세가 3일 오후 2시 10분 김포공항에 도착, 한국 땅을 밟았다. 가톨릭 교황으로서는 처음으로 우리나라에 온 요한 바오로 2세는 공항에서 전두환 대통령과 김수환 추기경 등의 영접을 받았으며, 이 날 오후 청와대로 전 대통령을 예방해 공동관심사를 논의한 데 이어 한국 천주교 2백주년을 기념하는 역사적인 한국 방문 4박5일간의 사목활동에 들어갔다.
전 대통령과 요한 바오로 2세는 정상회담에서 한반도의 평화적인 통일을 위해 남북한이 조속히 대화를 재개, 한반도에서 긴장을 완화시켜야 한다는데 의견을 같이했다. 오후 5시 10분부터 1시간 동안 계속된 정상회담이 끝난 뒤 나온 공동발표문은 “교황은 남북한 이산가족이 겪고 있는 고통에 관심을 표명하고, 이들이 하루속히 재결합되어야 할 절박한 필요성을 강조했다”고 밝히고 “양 지도자는 한반도의 다른 한쪽인 북한 내의 주민들이 겪고 있는 신앙생활의 애로에 대하여 우려를 표명하고, 이들에게 신앙의 자유가 보장되도록 공동 노력하자는 데 의견을 같이했다”고 말했다(5월 4일자 1면 머리기사).

‘이 땅에 빛을’이란 열망에 불타는 한국의 천주교 신자들에게,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어떤 메시지를 전하려 왔는가. 그리고 국토 분단에 이른 고난의 역사를 살아온 이 땅의 민족에게 교황은 또한 어떤 메시지를 가지고 왔는가. 이 물음에 대해 교황의 도착인사는 참된 평화와 정의, 그리고 사람이 사람답게 존중돼야 한다는 원칙을 선포했다.
(…) 아울러 우리는 교황의 인사말에 포함된 역사적인 화해의 메시지에 주목하고자 한다. 교황은 유교와 불교 등 우리의 전통사상과, 타 종교, 타 종파에 대해 따뜻한 악수의 손을 내밀었다. 이것은 1백3위의 순교성인을 낸 지난 시대의 불관용의 역사를, 극적인 화해의 시대로 전환시키려는 의도로 해석된다. 이 화해의 정신이 우리는 이 땅의 모든 불화와 반목과 미움과 갈등과 단절의 제 현장에 골고루 확산되고 역사하기를 기원한다. 그러나 화해와 평화는 정의의 구현에 의해서만 가능하다(2월 4일자 2면 사설).

조선일보가 정상회담에서 나온 북한과 관련된 문제와 화해를 유난히 강조한 까닭은 무엇일까. 그 대답은 함세웅이 앞의 책 서문에서 교회를 향해 던진 질문 속에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교황의 그 어느 강론에서도 주교들의 그 어떤 언급에서도 불의한 정권에 대한 분명한 지적과 질타는 찾아볼 수 없었다. 글쎄 이것이 교회의 한계일까? 사목의 포용일까? 불의한 체제 앞에서 목숨을 건 순교자들 앞에서 그리고 십자가의 예수님 앞에서 신앙인이 다짐해야 할 결단과 실천은 과연 무엇일까? 이러한 현실적 고뇌가 이어지고 있다.

 조선일보는 5월 6일자 2면 사설에서 교황의 광주 방문과 관련헤 다시 용서와 화해를 강조했다.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의 방한 의식을 어느 한 가지 시각에서만 바라보는 것은 의미가 없을 것이다. 교황직이나 가톨릭교회는 전통적으로 보편성을 중시하기 때문에, 교황의 일거수일투족이 어떤 당파적인 기대에 부합하기를 바란다는 것은 무리한 일이다. 그럼에도 교황의 해외여행은 항상 세계의 관측자들에게 구구한 정치적 평가의 대상으로 간주되곤 한다. 그러나 그것은 거의 부질없는 일이었다. 교황은 그럴 때마다 보수와 진보의 균형 갖춘 통합에 기초해서, 현실을 순수한 성서적 입장에서만 설명하려 했기 때문이다.
(…) 교황은 이 복음적 원칙에 입각해서 우리나라를 방문한 동안 각계각층의 인사들을 만나보았다. 전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에서는 ‘경제·사회의 발전에 있어서의 도덕적 가치의 동반’을 함께 강조했고, 한국 천주교회가 ‘종교의 테두리 안에서 평화·정의의 사회를 이룩하는 일에 협조할 것’을 피력했다. 아울러 북한의 ‘침묵의 교회’에 대한 애정과 관심을 표하고, 우리의 평화적인 통일노력에 공감을 표해주었다.
(…) 교황은 아픈 상처의 도시 광주를 찾아 ‘원한으로부터의 자유로워짐’과 위대한 용서의 능력에 대해 설파했다. 진정으로 고통에서 해방되는 길은, 고통의 위력 자체까지도 무력화시키는 전능한 용서의 힘, 화해의 힘, 그리스도적 치유의 힘임을 침통하게 역설했다. 이것은, 십자가 위에서 발휘되었던 그리스도적 화해에 대한 절절한 상기였다.

그 시기에 전두환 정권은 ‘정의사회 구현’을 강조하면서 광주 학살 등에 대한 사과와 반성은 고사하고, 그 관련자들과 가족들을 탄압할 뿐 아니라 노동자와 학생들을 연행하는가 하면 정권안보를 위한 간첩·용공 조작을 서슴지 않고 있었다. 그런 무렵에 교황의 한국 방문과 관련된 문제들이 불거진 셈이다.

조선일보 5월 6일자 1면에 보도된 「종교 소명 벗어나지 말라」는 제목의 기사가 그 일단을 보여준다. 로이터 통신을 인용한 보도의 내용은 교황의 강론과 관련된 것이었다.

[대구=로이터연합] 로마 가톨릭 교황 바오로 2세는 5일 전 세계 사제들에게 종교적 소명의 테두리를 벗어나는 활동을 삼가라고 당부했다.
교황은 방한 3일째인 이날 대구에서 거행된 사제 서품식에서 이같이 요청했는데, 한 교황청 소식통은 사견임을 전제, 교황의 이러한 발언이 엘살바도르와 필리핀 등의 반정부 게릴라들에 대한 사제들의 지원활동을 지칭하는 것일 수도 있다고 전했다. 당국자들은 교황의 이 같은 메시지가 한국의 반정부 활동자들을 지원해온 일부 가톨릭 사제들에게도 적용될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조선일보는 이 기사를 보도한 지 이틀 만인 5월 8일자 1면에 내보낸 2단 기사에서 주한 바티칸 대사관을 인용해서, 교황이 “종교 소명 벗어나지 말라”는 발언을 한 적이 없다고 전했다. 5월 6일자에 돋보이게 편집한 로이터통신 인용 기사와 달리 이 기사는 되도록 독자들의 눈에 띄지 않게 하려는 편집 의도를 드러내고 있다. 기사 내용의 양에 비해 제목도 작고, 위치도 좋지 않다. 그 내용도 장황한 느낌을 준다.

전두환 정권이 교황의 한국 방문을 어떻게 이용하려 했는가 하는 속내를 읽을 수 있게 해주는 정황이다. 이런 점에서 조선일보의 로이터통신 인용기사는 많은 것을 생각게 한다. 특히 광주 학살의 책임문제에 대해서는 일언반구도 없이 교황의 ‘용서와 화해’만을 강조한 조선일보의 사설이 의도하는 바도 분명히 읽을 수 있다. 교황이 ‘종교의 소명 벗어나지 말라’고 했다는 로이터통신의 보도 내용을 부인하는 기사는 다음과 같다.

주한 바티칸 대사관은 6일 한국 천주교 보도본부를 통해 5일 로이터통신이 ‘바티칸 당국자의 견해’로 보도한 기사 내용을 부인했다. 바티칸 대사관은 어떤 바티칸 당국자도 대구의 교황 말씀에 대해 “성직자는 종교적 소명의 테두리를 벗어나는 활동을 삼가라고 당부했다”고 말하지 않았으며, 한국 교회 사제들의 활동과 연관시켜 해석한 적도 없음을 분명히 한다고 말했다.

바티칸 대사관은 로이터통신이 언급했던 대구에서의 교황 말씀 중 몇 구절은 “다른 어떤 말에도 비록 그것이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선포될망정 속아 넘어가지 말아야 합니다. 여러분은 누구든지 자기 목숨을 사랑하는 사람은 목숨을 잃을 것이며 이 세상에서 자기 목숨을 미워하는 자는 영원히 생명을 누릴 것’(요한복음 12장25절)이라고 하신 그리스도의 역설의 증인으로 불린 것입니다”라는 부분이라고 밝혔다.

관리자 freemediaf@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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