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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민주화 투쟁

- 조선일보 대해부 4권 - 35장

기사승인 2020.02.05  16:06: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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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대의 첫 정치적 충격파는 1월 22일 느닷없이 닥쳐왔다. 그날 민주정의당 총재이기도 한 대통령 노태우, 통일민주당 총재 김영삼, 신민주공화당 총재 김종필이 청와대에서 회동한 후, 3당 합당 공동선언문을 발표한 것이다. 그들은 현재의 4당 구조로는 나라 안팎의 도전을 효율적으로 헤쳐 나가면서 앞날을 개혁할 수 없다면서 “자유와 민주의 이념과 정책노선을 같이 하는 정치세력이 뭉쳐, 당파적 이해로 분열, 대결하는 정치에 종지부를 찍기로 했다”고 선언했다.

놀라운 일이었다. 군사정권에 맞서 민주진영을 이끌어 온 ‘민주투사’ 김영삼이 뒷전에서 군사정권의 적자와 은밀한 거래 끝에 결국 그 품에 안겨 버린 것이다. 5공 청산과 공안정국을 맞바꾸기로 한 1989년 12월 15일의 청와대 대타협 이후 4당 구조의 긍정적 측면을 치켜세웠던 노태우는 1월 10일 연두회견에서도 “어느 특정 야당과 제휴를 하거나 또 다른 무엇을 하는 것은 검토하지 않았다”고 밝혔던 터다. 그 후 불과 12일 만에 3당 대표는 한국 정치의 지형을 송두리째 뒤바꾸는 합당을 발표한 것이다.

조선일보는 1월 23일자 1면 머리에 그 소식을 다음과 같이 전했다.

(3당 총재는) 22일 오전 10시부터 약 9시간 동안에 걸친 청와대 회담을 통해 이 같이 합의하고 각 당별 5인씩 모두 15명으로 창당준비위원회를 구성, 곧바로 통합신당 창당 작업에 착수키로 했다. 노 대통령은 “통합신당은 온건 중도의 민족 민주세력의 통합을 통한 새로운 국민정당이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통합신당은 전당대회를 치를 때까지 3당 총재가 공동대표를 맡게 되나, 노 대통령이 앞으로 신당의 총재직을 맡되, 실제 당 운영은 김영삼 민주, 김종필 공화 총재와 박태준 민정당 대표위원, 신진 영입세력 대표 등으로 구성되는 5인 최고위원에 의해 집단지도체제 방식으로 이끌어질 것으로 알려졌다. 김 민주 총재는 대표최고위원으로 추대될 것으로 보인다. 현재의 원내의석 분포대로라면, 통합신당은 총 2백21석(민정 1백27, 민주 59, 공화 35)을 확보, 개헌선을 훨씬 넘게 된다.
노 대통령과 두 김 총재는 회담에서 이번 국회 말인 91년 정기국회 무렵 내각제 개헌을 실현시키기로 의견을 모았으나, 이를 발표하지는 않았다. 청와대 당국자는 이와 관련, “새 당의 정강정책이 아직 결정되지 않은 단계이나 내각제 개헌 문제는 앞으로 국민과 각계각층의 의견을 들어 결정할 것”이라고 밝혔다.

조선일보는 같은 날짜 2~6면에 관련 기사를 실었다. 3면에는「정계 대개편에 대한 당부〉라는 통단사설을 싱고, 「‘여야 통합’ 헌정 사상 최대 변혁 / 개헌선 넘은 대여 ‘정치의 힘’ 발휘 / 호남세 영입 여부 ‘당위성’ 판가름 / 지방의회 선거·대학가 의식 개편 서둘러」라는 제목으로 〈통합정국〉 시리즈 1편을 시작했다. 어디에도 비판이나 우려의 목소리는 찾을 수 없었다. 4면에서는「“신당 합류” “딴 살림”의 기로」라는 제목으로 최형우·김정길·노무현 등 민주당 내 야권 통합파 의원들의 거취문제를 다뤘다. 8면에는 “정국안정 기대로 어제 주가가 25.9%포인트 올라 900선에 육박했고 일부 업종은 매물이 부족하다”는 내용의 경제기사를 실었다.

당연히 통합반대운동도 일어났다. 1월 24일자 1면에는 평민당이 23일 의총 등에서, 전날 총재 김대중이 제의한 전 의원 총사퇴 및 총선 실시가 받아들여지지 않을 경우 통합 반대 1천만명 서명운동 등 장외투쟁을 벌이기로 결의했다는 소식을 전했다. 2면에 각 당 표정을 전하는 스케치 기사 중 평민당에 관한 부분은 다음과 같다.

(외톨이가 된 평민당의) 23일 비공개로 진행된 이날 회의는 김대중 총재가 인사말에서 정치적으로 어려울 때마다 늘 사용하던 인동초 론을 다시 펼치고 대부분 의원들도 김 총재를 중심으로 단결하자는 요지의 발언을 하는 등 사뭇 비장한 분위기 속에서 진행.
김 총재는 30여분에 걸친 긴 인사말 서두에서 “어제까지 같이 야당을 했던 지도자가 노태우 대통령 양쪽에 서 있는 모습을 보고 처참함을 느꼈다”며 두 김 총재를 비난하고 “인위적인 개편은 없다고 공언한 바로 그 다음날부터 개편작업에 들어갔다”고 노 대통령도 공격.
김 총재는 특히 의원들의 이탈 가능성을 의식해서인지 “현재 평민당을 붕괴시키기 위해 온갖 공작이 당에 침투되고 있다”고 주장하고 “후일에 늦게 깨달아 후회하는 일을 하지 말라”고 경고성 호소.
채영석 의원은 평민당이 3당의 전격통합 합의 정보에 깜깜했던 것과 관련 “총무 한 사람만 중용하는 것보다 여러 사람을 통해 다양한 정보를 들을 필요가 있을 것 아니냐”고 김 총재에게 건의 겸 김원기 총무를 겨냥.

3당 합당에 대한 조선일보의 속내는 1월 23일자 사설(「정계 대개편에 대한 당부」)보다 24일자 3면에 실은 「평민당의 진로」라는 제목의 사설에 더 확실히 드러나 있다. 평민당이 느끼고 있을 당혹감과 불쾌감, 그리고 비장감을 이해한다는 전제를 깐 이 사설은 이렇게 ‘권고’했다. “(평민당이) 그야말로 유일한 원내 야당으로서의 자긍심에 바탕해서 보다 냉철한 안목으로 향후의 야당의 진로와 태세를 가다듬을 때가 아닌가 한다. 첫째로, 평민당은 이 기회에 그 나름대로 지역당이 아닌 전국당으로서의 이미지를 주지시킬 어떤 획기적인 조치를 취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둘째로, 평민당은 이제 김대중 총재 개인의 당이라는 일반의 인식 또는 오해를 씻어줄 공당으로서의 대대적인 구조 개혁을 단행할 때라고 여긴다. 셋째로, (평민당의 노선문제에 있어) 보수적인 당료들과 진보 취향의 신입자들의 양안을 끼고서 그동안 중도임을 주장해온 바 이제는 그 중도 라는 것의 정체성을 보다 분명하게 구체화시켜서 국민이 보기에 평민당이 과연 신 여당에 비해 어떤 노선의 당인지를 확실하게 구분하고 분류할 수 있게끔 할 필요가 있다.”

말인즉 구구절절 옳지만 3당 합당의 핵심 이유가 3개의 지역을 기반으로 한 ‘1인 정당들’이 야합해 평민당을 고립시키려 꾸민 것이 분명한 상황에서, 그 피해자로서 공황 상태에 빠져 있는 야당에게 쉽게 던질 얘기는 아니다. 이는 마치 때리는 시어머니 옆에서 며느리가 더 잘 해야 한다고 훈수하는 것과 흡사한 꼴이다.

조선일보 사설의 속내는 “혹시 운동권 등과 제휴해서 장외투쟁이라도 벌일 듯한 심정이 있는지 없는지는 모르지만, 그런 유혹에 빠지는 것은 평민당을 오히려 더 곤란하게 만드는 것임도 아울러 첨언한다”라는 결론에서 분명히 드러난다.

조선일보는 1월 26일자 2면에 「21세기 주체세력 자임 결속 다져」라는 제목으로 15인위 청와대 오찬 이모저모를 전했다.「모두들 “새 여당 모습 보이자”」 「노 대통령 “우리가 해냈지만 세계사에도 기록적인 일”」「YS, 언론 염두 입조심 당부, JP는 동질화 거듭 강조」「상당수 “청와대 처음 온다”」「우리 호칭 서툴러 폭소도」「다들 모이니 번듯해」등등 잔치 분위기를 물씬 풍기는 소제목들을 붙였다.

반면 조선일보가 1월 30일자 18면 구석에 실은 「개신교 원로 시국선언」 기사는 딱 두 문장뿐이었다. “강희남·김관석·박형규·조남기 목사 등 개신교 원로 10명은 29일 시국선언문을 내고, ‘민정·민주·공화 3당 합당은 5공의 죄과를 얼버무리고 민중의 정치적 진출을 봉쇄하려는 술책’이라고 비난했다. 이들은 ‘지금은 모든 민주세력이 하나의 정권대체세력을 형성, 민중을 탄압하는 세력에 대항해야 할 때’라며 다음달 13일 기독교성직자 전국대회를 열어 국민운동방안을 제안하겠다고 했다.”

그날은 민주당이 통합을 위해 해체를 결의하는 전당대회를 연 날이기도 했다. 의원 노무현이 결의에 찬 얼굴로 “이의 있습니다”며 손을 번쩍 들고 토론을 요구하는 사진이 역사에 남은 바로 그 전당대회다. 그 이튿날짜 조선일보는 「박수·고함 소란 속 30분 만에 “당 해체”」라는 제목의 3면 기사를 통해 그 정경을 아래와 같이 전했다.

30일 당사에서 열린 민주당의 합당 결의 전당대회는 당초 통합반대파에 의한 상당한 충돌 사태가 일부 예상됐으나, 찬성박수 속에 야유가 함몰되는 가운데 30분 만에 간단히 종료.
인사말에 나선 김 총재는 “30년 이상 독재와 싸워온 내가 3당 통합을 결정하는 데 얼마나 고뇌했는지 모른다”고 심경을 피력한 뒤 “집권당의 간판을 내리고 3당이 합당하게 된 것은 구국 차원의 위대한 결정이요 혁명”이라고 역설.
이날 대회는 하이라이트인 합당 결의 부분에서 일차 소란. 황명수 부총재의 “지난번 정무회의 결의대로 3당 합당을 정무회의와 김 총재에게 위임하자”는 동의에, 의장이 “찬성하는 분은 박수를 쳐 달라”고 하자 김상현 부총재와 노무현 의원 등이 벌떡 일어나 “찬반토론도 없는 회의가 어디 있냐”며 거칠게 항의. 그러나 김 총재 지지파들로부터 재청 삼청에 이어 박수가 쏟아지자, 정 의장은 “만장일치로 합당결의가 통과됐다”고 선언.

3당 합당은 구 보수세력에 보수 성향을 지닌 민주화세력 중 주요 보수가 결합한 것이며, 경상북도와 경상남도의 정치세력이 결합한 것이지만, 그 결과는 민주화세력의 결정적이고도 영구적인 분열, 김대중을 중심으로 한 호남의 고립으로 나타났다.

관리자 freemediaf@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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