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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혁정책에 딴죽 걸기-금융실명제를 맹공

- 조선일보 대해부 4권 - 41장

기사승인 2020.03.25  19:05: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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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권 초반 김영삼의 개혁 드라이브는 대단했다. ‘김영삼 신드롬’이라 불릴 만 했다. 2월 25일 제14대 대통령으로 취임한 그는 3일 만인 27일 자신의 재산을 먼저 공개하면서 공직자 재산 공개를 추진했다. 동시에 군부 내 하나회 척결을 감행했고 금융실명제를 도입하는 데 이르렀다.

김영삼의 개혁 의지를 확인한 조선일보는 3월 2일자 사설(「형식 아닌 실질 개혁을」) 사설에서 “(김영삼 정부 들어) 이미 공직사회에서 구체화되고 있는 개혁 바람은 점차 사회 각 분야로 확산될 것이 틀림없어 보인다. 그것은 김 대통령이 다짐하고 있는 신한국 건설의 선결과제이기 때문이다”라며 개혁 바람을 인정하는 전제로 “새 정부도 과거의 실행 경험을 되풀이하지 않으려면 새로운 각오와 의지, 그리고 종래와 다른 구체적인 계획과 청사진을 마련한 뒤 차근차근 끈기 있게 추진해야 할 것이다”라고 당부할 정도였다.

공직자 재산 공개에 대해서는 “본인뿐 아니라 배우자와 직계 존·비속의 재산이 모두 포함되어야 한다. 공개 대상 재산은 지금까지 추세를 보면 부동산과 어업권, 광업권 등이 주류를 이루는 경향을 보이고 있으나 은행예금과 모든 유가증권은 물론 일정 금액 이상의 서화, 골동품, 귀금속 등도 모두 공개해야만 한다. 문제는 재산의 공개로 그쳐서는 안 된다. 해당 공직을 그만둘 때 재산 변경 신고를 해 공직 재임기간 중의 재산 증감 여부를 검증받는 절차를 거쳐야만 재산공개의 의의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3월 6일자 사설)라고 부추기기까지 했다.

김영삼은 3월 8일 재산 등의 문제로 장관 3명을 해임하고 서울시장까지 바꾸는 김에 육군 참모총장 김진영과 기무사령관 서완수(육사 19기)을 보직해임하고 후임에 연합사 부사령관인 육군대장 김동진(육사 17기)과 육군소장 김석윤(기무사 참모장 육사 22기)을 9일자로 각각 임명했다. 본격적으로 ‘하나회’를 손보기 시작한 것이다. 3월 말에는 민자당 소속 국회의원들이 여러 명 사퇴했고 국회의장 박준규까지 물러났다.

김영삼은 4월 15일 “개혁을 하다보면 저항도 따르고 이를 역류시키려는 움직임도 있을 수 있으나 흐르는 물을 막을 수 없다”면서 우리 역사상 처음 주어진 진정한 개혁의 기회를 놓치면 역사가 우리를 외면할 것이라고 강조하는 등 자신감을 보였으며, 16일에는 신경제계획위원회의 민간 위원들과 함께 한 자리에서 “앞으로 토지나 건물 등 부동산을 갖고 있는 것이 고통이 되도록 재산세 상속세 증여세 등에 관한 세법을 개정하는 것을 포함, 제도를 개혁함으로써 부동산에 관한 국민의 의식을 바로잡도록 하겠다”고 장담하기도 했다.

이러한 개혁 드라이브에 대한 국민의 지지는 명확했다. 조선일보가 4월 17일자에 발표한 여론조사에서도 “김 대통령 개혁 잘 한다”가이 90%, “경제 좋은 영향”이 75%, “재산 공개로 물의를 빚은 여당 국회의원 5명이 국회의원직을 사퇴하거나 민자당을 탈당한 데 대해 만족한다”가 56.4%로 나왔다. 다만 개혁의 속도에 대해서는 다소 빠르다고 보는 응답자가 52.8%로 절반을 넘었다.

“개혁 속도가 너무 빠르다”는 불만과 불안은 개혁의 전체는 아니더라도 최소한 금융실명제에 대한 조선일보의 입장과 상통하는 것이었다. 조선일보는 김영삼이 대통령에 취임하기 전부터 금융실명제를 민감하게 주시하면서 2월 19일자에 「예탁금 줄고 거래량 반감 / 실명제 조기 실시설 등 영향」〉이란 기사를 싣기도 했다. 주가가 연일 큰 폭의 하락세를 보이면서 증시가 침체 기미를 보이고 있고 이와 함께 고객 예탁금과 거래량, 거래대금이 동반하락하는 이른바 ‘증시 3저 현상’이 뚜렷해지면서 증시를 이탈한 자금이 부동산 쪽으로 흘러들어가는 조짐을 보이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기사에 인용된 전문가들은 “미국 통상 압력이 강화되고 국내 경기 회복 전망이 불투명한 것도 최근 주가 하락의 큰 원인” “실물경기 회복 전망이 불투명한 상황에서 주가는 당분간 약세 흐름을 면치 못할 것” “지난해 10월 이후 4개월 동안 강세가 지속됐기 때문에 어느 정도 하락세는 예견됐던 일” “부패 방지 부조리 척결 등 신 정부의 개혁 의지가 가시화 되면서 보수 성향의 투자자들에게 불안감을 안겨주는 것 같다”고 분석했는데 이 기사는 느닷없이 “신 정부의 금융실명제 조기 실시설에 자극 받으면서 투자심리를 극도로 위축시키고 있는 것”으로 풀이하면서 제목으로 뽑은 것이다.

그러나 불과 3일 후 주가가 22포인트나 껑충 뛰자 조선일보는 이것이 “실명제 실시에 앞서 상당한 보완책이 선행될 것이라는 소문이 퍼지면서 예상 외의 강세 국면을 나타냈다”는 전문가의 분석을 인용했다. 불과 3일 동안에 보완책이 마련되면서 소문이 퍼졌다는 이야기다.

3월 17일자 ‘기자수첩’(「새 경제팀 난관」)의 필자는 “새 경제팀이 개혁의 핵심 과제인 금융실명제 실시방안을 둘러싸고 삐걱거리고 있다”고 했다. 같은 날짜 사설(「실명제와 이 부총리」)은 “부의 공정한 배분이나 검은 돈으로 인한 정치적·사회적 부패를 막기 위해서도 실명제가 반드시 실시되어야 한다는 데는 누구나 공감하고 있다”면서도 “경제가 어려움을 겪고 있고 경제 회생이 시급한 과제가 되고 있는 현재의 여건을 감안할 때 실명제 실시에 신중한 접근이 필요한 것은 사실”이라고 신중론을 폈다.

이어 “국민이나 기업이나 모든 경제주체들이 가장 우려하는 것은 바로 경제정책의 불확실성”이라고 전제하고 “국민들에게 실명제 실시와 이에 따른 금융자산 소득에 대한 종합과세에 대해 충분히 알려” 줄 것을 요구하고 있다. “실명제에 거는 국민의 과잉기대는 실시 후에도 정부에 커다란 부담이 될 것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후 금융실명제는 즉각 실시를 요구하는 야권과 노동권, 경실련 등 시민단체와, 실시를 늦추더라도 최대한 부작용을 방지할 수 있는 대책 마련이 우선이라는 재계의 입장이 팽팽히 맞서면서 언제 실시될지 기약 없이 흘러가는 형국이었다. 전면 실시와 단계적 실시도 맞섰다. 조선일보에서 재계의 목소리가 더 크게 들렸음은 물론이다. 하지만 금융실명제는 대세였다. 대통령김영삼은 취임 100일을 맞은 6월 3일 기자회견에서 “대통령선거 때 국민에게 약속한 대로 반드시 금융실명제를 실시할 것이지만 현 시점에서 그 시기와 방법을 말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말했다. 그는 15일 야당 대표와의 회담에서 “금융실명제는 반드시, 그리고 조속히 실시돼야 한다. 한은 독립, 세제 개혁도 빨리 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야당 대표에게 “다 준비하고 있다. 금융실명제도 반드시 실시한다. 다만 실시 시기는 나에게 일임해 달라”고 대답했다.

그런데 금융실명제는 의외로 빨리 실시됐다. 8월 초부터 실시 임박설이 나돌기는 했지만 12일 김영삼이 전격적으로 발표하는 시점은 조선일보도 전혀 눈치 채지 못하고 있었다. 조선일보 8월 13일자 1면 머리에는 「금융실명제 전면 단행 / 대통령 긴급명령 발동 / 어제 저녁 8시 발효 / 가명거래, 두 달 내 실명 전환해야 / 3천만 원 이상 인출 국세청 통보 / 실명 때 5천만 원까지 조사 면제 / 오늘부터 모든 부동산 거래 자금 조사 / 오늘 금융기관 영업 오후 2~8시, 주식시장은 오후 2시 10분~4시 10분」이라는 통단 제목 아래 기사가 실렸다. 그날부터 이제 모든 금융 거래는 실명으로만 이루어지게 된 것이다.

조선일보는 1면뿐 아니라 2, 3, 4, 7, 23면을 털어서 금융실명제를 대대적으로 보도하면서 각계의 반응을 전했다. 23면(사회면)면에는 「경악·우려·환영 / 실명제 전격 실시 시민·전문가 “박수” “경제정의 실현 계기 되기를” / 금융 비리 일소 기대-실패하는 일 없도록 앓던 이 빠진 기분 / 부동산 투기붐 걱정 / 중기 지원·금융거래 비밀보장 뒤따라야」라는 기사가 나왔다.
금융실명제에 대한 조선일보의 우려 섞인 반감은 8월 15일자부터 지면에 나타나기 시작했다. 3면에 실린 「8·12 명령을 보는 시각들」이라는 해설기사 제목은 「“과연 긴급사태였나” 위헌성 논란」이었다. 그 기사는 ‘법조계 일각서 발동 요건 불충족 제기’라는 뉴스를 전했다.

같은 면에는 「중기가 더 고통 받아서야」라는 사설이 올랐다. 금융실명제의 전격 실시로 증권시장이 크게 동요하고 사채시장이 사실상 마비 상태에 빠지는 등 금융시장의 혼란이 계속되고 있어 중소기업의 자금난이 발생하고 있다는 것이다. 결론은 “실명제 규정을 보다 신축적으로 운용하는 것도 충분히 검토”해야 하며 “실명제 시행 규정 중에서 필요 이상의 규제와 강제적인 방법은 충분히 재점검해보아야 할 것”이라는 것이다.

혁명적인 개혁 조치에는 부작용이 어쩔 수 없이 따른다. 시행 중에 오히려 약자의 피해가 두드러지게 나타날 수도 있다. 이를 걱정하고 이에 대한 대책을 요구하는 것은 언론의 덕목이지만 그것을 과도하게 강조하는 것은 뭔가 다른 뜻이 있기 때문이 아닐까.

8월 17일자 1면 머리기사(「실명제 불경기 장기화 조짐」)가 바로 그렇다. “금융실명제 실시에 따라 경제성장률이 급격히 하락하는 등 경기 침체가 장기화할 조짐을 보이고 있다”는 내용인데 불과 며칠 만에 성장률이 급격히 하락했다는 것도 우습거니와 그 기사가 인용한 전문가들은 럭키금성경제연구소 대표, 삼성경제연구소와 대우경제연구소 소장 딱 세 사람으로, 금융실명제에 호의적일 수 없는 재벌 경제연구소 관계자들이었다. 같은 날짜 2면 ‘기자수첩’의 제목은 「실명제 공포」였고 3면 머리의 해설기사 제목은 「실명제 문제점」이었다.

8월 18일자 ‘홍사중 칼럼’(「야당도 말이 없는 이유」)은 “실명제의 날벼락이 떨어진지 벌써 닷새가 넘는다. 그러나 지금 온 나라를 통틀어 단 한 명의 반대 목소리도 들리지 않는다”로 시작된다. 특히 “재계며 기업계는 실명제가 몰고 올 경기 침체가 비록 일시적이라 해도 경제 발전을 얼마나 후퇴시킬 수 있는지를 누구보다도 절감할 수 있어야” 한다며 실명제로 인한 경기 침체를 속단하고 있다.

논설주간인 홍사중은 은 “부도를 내고 도산한 영세상인들, 아파트 계약금을 날리게 된 봉급생활자들”도 있을 텐데 그들의 비명도 들리지 않는다고 한탄하더니 급기야 야당을 향해서도 “반대를 하지 않는다”고 분노를 터뜨린다. 그동안 즉각적인 전면 실시를 요구해 온 것이 야당인데 무슨 반대를 하라는 건가.

홍사중은 경제학자들은 물론이요 경제를 모르는 오피니언 리더들까지도 합세해 실명제는 정치를 맑게 하고 경제정의를 실현시키고 돈 없는 사람들의 근로 의욕을 돋워주는 만병통치의 영약처럼 믿게 만들었다면서 “대통령은 단순한 하수인일 뿐이라 할 수도 있다”고 주장했다.
바로 그  대목에서부터 그이 본심이 나온다.

(…) 정부는 오히려 사람들을 때로는 기득권자로 몰며 겁주고 때로는 반개혁파라며 혼내주고 입을 틀어막으려 하기만 했다. 실명제 실시를 발표한 다음에도 정부는 세무조사니 특별관리 하겠다느니 고액 인출자 자금 출처조사하겠다며 계속 보통사람들까지도 불안스레 만들고 있다. 실명제는 과거를 들춰내고 혼내주자는 게 아니라 밝은 내일을 위해 경제정의를 실현하자는 데 목적이 있을 것이다. 그것이 전혀 보이지 않는 것이다.
 (…) 오늘의 야당이 해야 할 일이 또 하나 있다. 그것은 정부가 자주 편승하고 있는 국민 정서의 허상을 바로 잡는 일이다. 그러기 위해 과감히 소수 의견의 대변자가 되고 건전한 토론을 위한 관용의 광장을 확보, 확대해나가 는 일이다. 정부가 과거만을 들춰내는 부정적인 작업에 몰두하고 있는 듯이 보일 때 활짝 열린 사회를 건설하는 긍정적인 작업에 앞장 서야 한다.

이 칼럼은 조금은 과격하게 실명제를 비판하는 듯하다가 과거를 묻지 말자는 결론을 내렸다.
8월 19일자치 사설 제목은 「중산층까지 불안치 않게」였다. 제목은 물론 본문까지 ‘불안’과 ‘불편’으로 점철된 내용이었다.

(…) 금융실명제 실시에 따른 일반 국민의 불안감과 불편함이 여전히 계속되고 있는 것은 우려할만한 일 (…) 금융거래 위축 현상이 지속되고 있는 것은 바로 실명제 불안감이 여전함을 (…) 중산층과 소상인들도 어느새 불안해진 것이다 (…) 당장 국세청에 통보된다니 불안해하는 것은 당연하다. (…) 규제 위주의 조치가 필요 이상으로 불안 심리를 확산시킨 셈 (…) 일반 국민들의 불편함도 만만치 않은 실정 (…) 금융기관 일선 창구의 경직적인 운용이 불편을 더해주고 있는 것 (…) 이런 정도의 보완조치로 불안감이 사라지고 불편이 해소되리라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 사정기관들이 경쟁이나 하듯 나와 가지고는 국민의 불안을 해소해 줄 수 없고 (…) 실명제에 대한 국민의 불안감과 불편이 남아있는 한 (…) 성실하게 정상적인 금융거래를 해온 국민들을 조금이라도 불안하게 하고 불편을 겪게 해서는 안 된다.

주필 김대중은 8월 22일 ‘김대중 칼럼’(「존 구도의 변화」)에서 “김영삼 대통령이 충격적인 조치들을 발표할 때마다 우리 사회는 이상하게 (…) 가진 자와 안 가진 자라는 극단론으로 구분되기도 하고 기득권과 비기득권이라는 단순론으로 성격지어지기도 한다. 또는 보수층과 리버럴 계층으로 분류되는 경우도 있고 심지어는 3·5·6공 때 참여한 세력과 재야·운동권을 포함한 범반대진영의 대립으로 이해되는 경우도 없지 않다. (…) 김 대통령은 말하자면 기득권층·보수계층· 가진 자(상대적이기는 하지만)·현실유지파들의 표에 의해 집권이 가능했다는 것을 부인할 사람은 없을 것”이라고 금융실명제의 정치적 파장을 해석하면서 “국민들은 새 정부, 새 대통령의 일련의 정책이 과연 어디까지를 다룰 것이며 어떻게 어떤 방법으로 추진돼서 궁극적으로 무엇을 목표로 한 것인지에 관심을 갖게 된다”고 했다.
그는 이어 9월 2일자 「세(勢) 싸움」이란 칼럼에서 김영삼 정부와 금융실명제를 싸잡아 비판했다.

(신문 보도에 대한 정부 관리들의 반응이 전 같지 않은 것은) 위에서 하라고 해서 하는 것이지 그 정책에 신명이 나서 자기들의 소신을 걸고 나서지 않는 분위기를 반영하는 것이다. (…) 청와대 주변에서는 때로 우리를 놀라게 하는 발언들이 들려오곤 한다. 실명제에 대한 비판에 대해 실명제로 손해 보는 몇몇 기득권세력의 반발이라는 소리도 나왔다. 또 실명제를 반대하는 사람들이 드러내놓고 못하니까 실명제 부작용을 침소봉대한다는 소리도 들렸다. (…) 이제 실명제 부작용을 더 이상 얘기하면 반(反) 실명분자가 되기 십상이다. 부정과 부패의 척결은 반드시 이루어져야 한다. 정직한 금융거래는 반드시 실현돼야 한다. (…) 문제는 그것의 속도, 정도, 접근방식을 보는 시각과 관점의 차이에 있을 뿐이며 이것들이 비판의 형식을 통해 자유롭게 개진되는 우리의 열림에 있다. (…) 한 술 밥에 배부를 수 없듯이 현실을 감안해가면서 단계적으로 개혁을 추진하라고 주장하면 금방 부패기득권세력에 매수됐느냐며 과거 권위주의 시절에 난무했던 익명성의 모욕적 욕설들이 날아든다. (…) 깊은 병을 고치는 데는 시간이 걸리는 법이다. 5년 안에 어떤 기본이 정립되기만 해도 그것은 훌륭한 성과다. 오래된 병을 고치는 데는 과정이 필요한 법이다. 그것은 마치 잠수함에서 바닷속으로 나가기 위해서는 수압에 적응하는 중간 탱크를 거쳐야 하는 이치와 같다. 그것은 타협이나 굴복이 아니다. 고질적인 병을 고치는 데는 의사와 환자의 어떤 확신이 있어야 한다. (…) 너도 나도 박수친다고 해서 그대로 따라가 는 대중적 요법으로는 그 병을 고칠 수 없다. 거기에는 고도의 전문성이 요구되는 것이다.
지금 관건이 되고 있는 실명제의 성패 여부도 세 싸움에 달렸다. 실명제가 성공하려면 악질적인 금융거래자, 검은 돈의 소유자들을 되도록 소수화해서 그들의 설 자리를 없애야 한다. 그러지 못하고 실명제로 인해 작은 손해 나마 입게 되는 중산층의 숫자가 많아지면 많아질수록 진짜 철퇴를 맞아야 할 소수의 악질 비실명자들은 그 숫자를 자기편으로 만들어 그들의 세를 등에 업고 그야말로 부패기득권의 목소리를 높이게 된다. 이 세 싸움은 반드시 옳고 그름만으로 판가름 나지 않는다. 흠이 있는 대로 다수를 차지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다.

금융실명제가 시행되는 과정에서 조선일보가 펼친 일관된 의견은 “지금이라도 하지 말자”까지는 아니더라도 최소한 “과거는 묻지 말자” “하더라도 좀 천천히 하자”였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조선일보는 금융실명제에 대한 반감을  ‘중산층 걱정’으로 가렸다. 조선일보가 어떻게 해 보기에는 금융실명제에 대한 여론의 지지가 너무 강고했던 것이다.

 

관리자 freemediaf@gmail.com

<저작권자 © 자유언론실천재단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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