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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 ‘압승’과 조선일보의 ‘축하 잔치’

- 조선일보 대해부 5권 - 16장

기사승인 2020.11.25  17:2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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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7년 12월 19일 치러진 제17대 대통령 선거의 개표 결과, 한나라당 후보 이명박은 대통합민주신당 후보 정동영을 압도적으로 누르고 당선되었다. 투표율은 역대 대선 가운데 가장 낮은 63.3%였다. 이명박은 유효투표의 48.7%인 1149만여 표, 정동영은 26.1%인 617만여 표를 얻었다. 무소속 후보 이회창은 355만여 표, 창조한국당 후보 문국현은 137만여 표를 받았다. 1위와 2위의 득표 차이는 역대 최대였다.
 

 ‘당선자는 감격을 국민 모두의 것으로’

 조선일보는 12월 20일자 39면에 김대중·노무현 당선 때와는 정반대로 이명박을 찬양하고 격려하는 사설(「이명박 대통령 당선자의 사명」)을 내보냈다.
 
  제17대 대통령 선거에서 이명박 한나라당 후보가 48.4%(밤 12시까지 개표결과)의 압도적 지지율로 당선됐다. 시장에서 청소를 하면서 공부했던 젊은이가 35세 대기업 사장이라는 샐러리맨의 신화를 만들었고, 이제 경제 규모 세계 13위 국가의 대통령이 됐다. 두 번 연속 대선에서 패하면서 끝없이 추락했던 한나라당은 마침내 10년 야당의 멍에에서 벗어나게 됐다. 당선자와 한나라당엔 감격스러운 순간일 것이다.
  이제 당선자는 그 감격을 모든 국민의 것으로 만들어 가야 한다. 대통령 당선자가 선거가 끝나고서도 지지자와 반대자를 갈랐던 선거 때의 울타리에 갇히게 되면 나라는 끝없이 반목과 불화를 거듭하게 된다. 국가를 미래로 밀고 나갈 국민적 에너지를 고갈시켜 버린다. 이 국민의 지난 5년 세월이 그랬다. 당선자의 첫 발걸음은 추위에 얼어터진 손등 같은 국민의 그 마음을 어루만지고 보듬어 안는 것이어야 한다.
  당선자의 발걸음을 가장 먼저 붙잡는 것은 역시 특검의 조사다. BBK 사건은 이번 대선에서 가장 큰 이슈였다. 그러나 당선자는 대통령 직선제 부활 이후 실시된 다섯 번의 선거에서 가장 높은 수준의 국민 지지를 받았다. BBK 사건으로 이 후보를 공격했던 2·3위 후보와의 표 차는 두 배, 세배에 달했다. 대선 사상 최대의 표차다. 그렇다면 당선자에 대한 특검을 의결했던 국회의 뜻은 당선자를 과반에 육박하는 표로 당선시킨 국민의 뜻과 배치되는 것으로 볼 수밖에 없다.
 더구나 김경준도 엊그제 검찰에 나와 검사가 당선자에게 유리하게 진술하라고 회유·협박했다는 자신의 메모가 사실이 아니라고 실토했다고 한다. 특검의 근거 자체가 흔들리는 것이다. 노무현 대통령은 이 상황에서 끝내 특검법을 공포하는 것이 나라에 무슨 도움이 될지 생각해야 한다. 국민의 뜻에 어긋나게 특검을 강행해 새 정부의 출발을 어지럽히는 것이 이제 야당이 된 대통합민주신당에 과연 도움이 될지도 의문이다. (·····)
 국민이 당선자를 대통령으로 부른 것은 당선자 스스로 시대정신이라고 불렀던 경제 회생에 대한 갈구 때문이다. 국민의 그런 목마름이 당선자의 허물을 덮어 주고 감싸 준 것이 이번 선거 결과였다. 당선자는 우리 경제에 “이제 한 번 해 보자”는 심리적 파도를 만들어 내야 한다. 지난 5년 간 우리가 앓아 온 성장 장애 증후군을 치유하는 길도 거기서부터 열리게 된다. (·····)
 당선자는 서울시장으로서 청계천 복원과 대중교통 혁명을 이뤄냈다. 그런 실적이 큰 힘이 됐음은 물론이다. 그러나 노무현 정권에 대한 국민의 절망과 경제 회생에 대한 갈구가 없었다면 당선자가 지난 1년 간 그렇게 쏟아진 집중 포화 속에서 살아남기 어려웠을 것이다. 당선자 스스로 말했듯이 국민이 당선자를 지켜 준 것이다. 당선자가 얻은 과반에 육박하는 국민 지지가 스스로 만든 것만은 아니라는 얘기다. 이런 지지는 쉽게 무너질 수 있다.
 당선자는 혼자 힘으로 일어선 사람이다. 그런 자신감은 종종 오만과 독선으로 변질될 수 있다. 국민은 역대 대통령들에게서도 그런 사례들을 보았다. 당선자가 그 길로 들어서지 않으려면 “국민이 나를 지켜 주셨다”는 오늘의 초심을 잃지 않고, “매우 겸손하고 낮은 자세로 국민을 섬기겠다”고 한 당선 소감의 약속을 끝까지 지켜야 한다. 모든 일의 성패는 결국 여기에 달려 있을 것이다.

 12월 20일자 조선일보 지면에서는 ‘이명박 압승 축하 잔치’가 질펀하게 벌어졌다. 잔칫상에 오른 기사들을 차례로 살펴보자.

 · 「왜 압도적 표차 났나 / 노 정권 실정에 민심 완전히 등 돌려」(2면)
 
  이명박 대통령 당선자의 압승은 일찌감치 예고됐다. 작년 9월 북한 핵실험 이후 1년 4개월 간 줄곧 지켜온 여론조사 1위가 19일 표심(票心)에서도 최종 확인됐다.
  노무현 정권의 실정과 국정 파탄을 심판하겠다는 민심, 김대중·노무현 정권으로 이어진 10년 ‘좌파 정권’을 “이번엔 바꿔야 한다”는 대다수 국민의 열망이 그에게 쏠렸기 때문이다. 과거 어느 때보다 치열한 경선과 본선을 거치면서 대선판이 요동치고 BBK 사건을 비롯한 숱한 악재가 그를 위협했지만 잠시 그때뿐이었다. 이 당선자를 이탈했던 표는 다시 결집했고, 한나라당의 50% 안팎 지지율도 1년여 동안 지속됐다. (·····)
  샐러리맨 신화와 청계천 성공 스토리를 바탕으로 이 당선자가 내세운 ‘일하는 경제 대통령론’은 다른 후보들이 제기한 모든 담론을 선거 기간 내내 압도했다. (···)
  선거 사흘 전 “BBK를 설립했다”는 이 당선자의 육성이 담긴 동영상이 공개된 후 대통합민주신당은 이 당선자의 사퇴를 촉구하며 도덕성을 맹공했으나 반노(反盧) 정서와 경제 대통령론의 두터운 벽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정동영 신당 후보와 이회창 무소속 후보 측이 선거막판에 판세를 뒤집을 수 있을 것처럼 선전한 것이 바람을 일으키기보다는 오히려 이 당선자 지지자들에게 경각심을 준 측면이 있다는 게 선거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결과적으로 BBK 사건 자체가 이 당선자의 득표에 큰 영향을 미치지 못한 것이다. 
  이 당선자가 압승한 또 다른 이유는 범여권이 후보단일화에 실패하면서 과거 김대중 대통령 지지표와 노무현 대통령 지지표가 사방으로 분산됐기 때문이다. 이번 대선이 역대 가장 낮은 투표율을 기록한 데는 낙담한 일부 범여권 성향의 유권자들이 투표장에 가지 않은 것도 일조한 것으로 추정된 다. 또 대다수 보수 우파 유권자들은 뒤늦게 뛰어든 이회창 후보 대신 제1 야당의 정통 후보인 이명박 당선자에게 표를 몰아 주었다. 두 사람의 득표율을 합치면 과반을 훨씬 넘는 64%에 이르렀다.

 · 「여론조사 공표 금지 6일 간 지지율은… / BBK 동영상’ 터졌지만 “그래도 이명박”」(2면)

  지난 16개월 동안 지지율 선두를 달려온 한나라당 이명박 당선자는 여론조사를 공표할 수 없었던 지난 1주일 동안에도 2위와 20%포인트 가량 차이로 1위를 지켰다. 하지만 선거를 사흘 앞두고 ‘BBK 관련 광운대 강연 동영상’이 공개된 직후에는 잠시 판세가 흔들리기도 했다.
  선거 1주일 전인 12일 각 언론사가 마지막으로 실시한 여론조사를 종합해보면 이명박 후보 45%, 정동영 후보 17%, 이회창 후보 13%가량이었다. SBS가 TNS코리아에 의뢰해 여론조사 공표가 금지된 13일부터 선거 하루 전인 18일까지 전국 유권자 3000명씩 총 5차례 실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이 기간에도 이명박 후보는 독주를 지속했다.
  그러나 선거를 사흘 앞둔 16일 “BBK를 설립했다”는 이명박 후보의 육성이 담긴 광운대 강연 동영상의 공개는 이명박 후보 지지율을 6%포인트 가량 끌어내렸다. 동영상 공개 직전(14일)의 43.3%에서 직후(17일)에는 37.1%로 낮아졌기 때문이다. 17일 조사에서 막판 최대 돌발변수였던 ‘BBK 동영상’ 공개에 대해 유권자들은 “막판 판세 전환을 노린 폭로전일 뿐이다”(42.8%)와 “검찰의 수사 잘못을 입증할 새로운 증거다”(41.2%)란 의견으로 팽팽히 맞섰다. 하지만 다음날인 18일에는 40.8%로 곧바로 3.7%포인트 반등했다. TNS의 이상일 이사는 “이명박 후보를 지지하다가 ‘BBK 동영상’ 공개 직후 잠시 부동층으로 돌아섰던 유권자들이 막판에는 ‘그럼에도 이명박’이라고 생각한 것 같다”고 분석했다.

  · 「잔칫집 한나라당 / “이런 날 올까 싶었는데…”  / 감격, 또 감격」(3면)

  10년 만에 정권을 되찾게 된 한나라당은 19일 감격과 흥분에 휩싸였다. 저녁 6시 투표가 마감되고 각 방송사가 출구조사를 통해 이명박 후보가 50% 안팎의 득표율로 당선이 유력시된다고 발표하는 순간, 여의도 당사 안팎은 ‘들썩’ 했다. 당사 2층에 마련된 개표상황실에서 방송을 지켜보던 강재섭 대표 등 주요 당직자들도 환한 웃음과 함께 박수를 쳤다. 일부는 일어서 “만세”를 외쳤다. 당사 밖에서 대형 TV 화면을 지켜보던 지지자와 당원 1000여명도 제자리에서 뛰며 환호했다. 만나는 이마다 서로 얼싸안고 “축하한다” “고생했다” “고맙다”고 했다. 밤 8시쯤 TV에 ‘당선 확실’ 자막이 뜨자 지지자들은 선거 로고송을 틀고 춤을 추며 축제에 돌입했고, 9시 45분 이 당선자가 여의도 당사에 도착하자 “이명박 대통령”을 외치며 분위기는 최고조에 달했다. 밤이 깊도록 여의도는 한나라당을 상징하는 푸른 목도리와 푸른 풍선의 물결이었다. (·····)
  이날 한나라당 사람들은 “실감이 안 난다”는 말을 되풀이했다. 특히 당에 오래 몸 담으며 지난 두 번 대선 패배를 겪어본 사람들은 기쁨을 나누면서도 믿기지 않는다는 표정이었다. 한 주요 당직자는 “10년 간 야당생활을 해서 그런지 얼떨떨하다. 진짜 좋아해도 되는 거냐”고 했다. 한 의원 보좌관은 “이런 날이 정말 올까 싶었다. 막상 이기니 맥이 탁 풀린다”고 말했다.
 
 · 「이명박이 걸어온 길 / 뻥튀기 팔던 소년, 성공 신화 쓰고 청와대로」(8면)

  야간학교를 다니면서 뻥튀기 장사를 하던 소년이 ‘샐러리맨의 신화’를 이룬 뒤 서울시장을 거쳐 대통령까지 됐다. 이명박 당선자의 삶은 마치 한 편의 성공 드라마였다.
  이 당선자를 당 경선 때부터 도왔던 최시중 선대위 고문은 “이명박을 미는 이유는 가난과 배고픔을 제대로 경험해본 후보이기 때문”이라고 했다. 1941년 일본 오사카에서 태어난 뒤 포항에서 자란 이 당선자는 아버지 이충우(1981년 작고) 씨가 목부(牧夫)로, 어머니 채태원(1964년 작고) 씨는 과일 행상으로 일했지만, 좀처럼 가난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한때 방 한 칸에 15 세대가 모인 곳에서 살기도 했다. 학교엔 도시락을 싸갈 형편이 안돼 물로 배를 채웠고, 등록금을 못 내 학교에서 쫓겨나기도 했다. 그는 초등학생 때부터 뻥튀기 장사도 하고 성냥개비에 황을 붙여 팔았다. 군부대 철조망 밖에서 김밥과 밀가루떡을 팔다가 헌병에게 잡혀 맞았다.
  그러면서도 하루 왕복 4시간을 걸어 학교를 다녔다. 당초 고교 진학은 엄두를 못 냈지만, 중학교 때 선생님이 어머니를 설득해 동지상고 야간부에 들어갔다. 장학금을 받기 위해 낮에 일하면서도 전교 1등을 유지했다. 그는 “내가 머리가 좋아서가 아니라 다들 공부를 안 해 그렇게 된 것”이라고 했다. “고졸보다는 대학 중퇴가 더 나은 직장을 구할 수 있지 않겠나”라는 생각에 고교 졸업 이후 서울에서 막노동을 하며 대학 입시를 준비했다. 결국 또래 학생들보다 1년 늦은 1961년 고려대 경영학과에 입학했다. (·····)
  이 당선자는 인생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사람으로 자신의 어머니를 꼽는다. 평소에도 자주 어머니 얘기를 한다. 그는 “사춘기 시절 뻥튀기 장사하는 게 부끄러워 큰 밀짚모자를 눌러쓰고 장사를 하다가 어머니에게 눈물나도록 혼났다. ‘왜 얼굴을 숨기느냐. 도둑질한 것도 아니고 네 힘으로 일해 돈 버는 건 떳떳한 것’이란 말씀을 잊을 수 없다”고 했다. 한·일 국교정상화 반대 운동으로 서대문형무소에 있을 때도 어머니가 면회를 와 “아들아, 소신대로 행동해라. 어미는 널 위해 기도하고 있다”면서 이 당선자를 격려했다. 이 당선자는 “내 인생의 성공은 다 어머니의 가르침을 따랐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그는 지난 7일 전 재산 사회 환원을 발표하면서도 “이는 내 어머니와의 약속을 지키는 것”이라고 했다. 어머니는 1964년 이 당선자가 출감한 지 한 달 만에 세상을 떴다.

 · 「생활기록부 속의 이명박 / “적극적” “결단력 강함” 주요 과목은 모두 ‘수’」(8면)
 

  이명박 당선자의 꿈은 중학교 때부터 ‘관리(공무원)’가 되는 것이었다. 그가 졸업한 동지상고 생활기록부에는 ‘학생 희망 직업’과 ‘학부형의 희망’ 모두 ‘관리’로 적혀 있다. ‘중학교 때 희망 직업’도 ‘관리’라고 기록돼 있다.
  고교 담임교사는 “활동 적극적”, “성격은 착실, 결단력 강함”, “학업이 우수하고 타의 모범”, “장래가 기대됨”이라고 평가했다. 자주성·책임감 등 ‘행동 발달 상황’ 평가에서도 대부분 우수 등급인 ‘가’로 기재돼 있다. 포항중학교 학적부도 “성격 명랑” “적극성 유(有)”다. 다만 초등학교 2학년 때는 “경솔하다”고 적혀 있으며, 고교 2학년 때는 ‘판단 경향’ 평가 항목의 ‘신중성’란에 ‘X’표시가 돼 있다.
  성적은 어떠했을까? 이 당선자는 고교 3년 내내 국어, 도덕, 수학, 영어, 독어 과목에서 ‘수’를 받았다. ‘미’를 받은 건 모두 네 번이었다. ‘상업경제’(1학년), ‘상업부기’(1학년), ‘주산’(1·3학년) 과목에서였다. 1학년 때는 전체 20개 과목 중 ‘수’가 10개, ‘우’가 7개였고, 2학년 땐 23개 과목 중 ‘수’ 19개, ‘우’ 4개였다. (······)
  낮에는 일을 하면서 야간 고등학교를 다닌 것을 감안하면 출석도 양호했다. 1학년 때 4일, 3학년 때 5일 결석했고 2학년 때는 개근했다.

 · 「말보다 일, 서열보다 전문성… / 실천은 ‘불도저’」(10면)

  이명박 대통령 후보의 당선으로 헌정 사상 처음으로 ‘CEO 대통령’ 시대가 열렸다. 기업에서 잔뼈가 굵은 이명박 당선자는 그 이전 군인, 정치인 출신 대통령들과 차별화되는 리더십을 보여줄 것인가. 그는 선거 기간 내내 “대한민국이 어렵게 된 가장 큰 이유는 리더십의 부재 때문”이라며 “말보다 실천, 일 잘하는 대통령이 되겠다”고 했다. 대통령이 되려는 이유에 대해서도 “모두가 열심히 일하면서 살아가는 즐거움을 누리는 편안한 세상을 만들고 싶다”고 했다. 이런 리더십 철학을 이 당선자 측은 ‘실용주의 리더십’으로 설명한다.
  이 당선자는 서울시장 취임 일성으로 “시 행정에 기업 경영 마인드를 도입해 서울을 세계 일류 도시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도시로 만들겠다”고 밝힌 뒤 재임 기간 내내 대형 프로젝트를 실천했다. 청계천 복원 사업, 대중교통 개혁, 서울 숲 조성 등 목표를 정해놓고, 이를 하나하나 실천하면서 시민을 최고의 ‘고객’으로 서비스하는 ‘프로젝트(기획) 리더십’이 이 당선자의 특성이라는 것이다. (·····)
  이 당선자가 평소 잘 쓰는 말도 ‘실용’에 관한 것이 많다. “정치가 아니라 성과 중심으로 사고하라” “돈 함부로 쓰지 마라” “왜 술 마시며 얘기하나, 차 마시며 얘기하면 되지” 하는 식이다. ‘이명박 특검’이 국회에서 통과된 지난 17일 전북으로 향하는 KTX 내에서 그는 내내 교수들과 정책 공약을 위한 숫자 싸움을 했다. 정치 얘기는 한마디도 꺼내지 않았다고 한다. (·····)
  이 당선자는 참석자들이 만장일치로 찬성하면 일부러 반대 의견을 내거나 딴죽을 걸곤 한다. 아이디어 없이 회의에 참석했다 혼이 난 이들도 적지 않다. 한 참모는 “당선자가 회의 도중 수시로 전화 통화를 하면서도 회의 내용을 놓치지 않고 듣고 있어 놀랄 때가 많다”고 했다.
  사석에서 이 당선자는 ‘근엄형’보다는 ‘소탈형’에 가깝다. 젊은 참모들의 직설적인 비판도 수용하는 편이며, 얘기가 된다 싶으면 즉각 채택한다. (·····)
   이 당선자는 ‘불도저’라는 별명 대신 ‘컴도저’라고 불러달라고 한다. ‘컴퓨터+불도저’의 복합 이미지를 선호하는 것이다. 청계천 복원 사업에 대해서 도 “IT기술이 없었다면 불가능했던 첨단 복원사업”이라고 말한다.

 · 「청와대 새 안주인 김윤옥 여사 / 남편 생일·결혼기념일에 겹경사 / 어제 아침 미역국 대신 뭇국 올려」(15면)

   19일은 이명박 대통령 당선자의 66번째 생일이자 부인 김윤옥(60) 씨와의 37주년 결혼기념일이다. 이 당선자 부부는 투표 후 서울 가회동 자택에서 세 딸 내외와 아들, 손자 손녀들과 함께 아침식사를 했다. 부인 김 씨는 이날 아침 생일미역국 대신 뭇국을 끓였다. “미역국을 먹으면 미끄러진다”는 속설 때문이었다.
  김 씨는 이날 밤 남편의 대통령 당선이 확정되자 “어머니와 같이 넉넉한 품으로 국민을 사랑하고 통합하겠다. 소외되고 어려운 사람들을 살피고, 아이 키우는 데 좋은 환경을 만들도록 하겠다”고 한나라당을 통해 밝혔다. 김씨는 또 “무엇보다 대통령이 최상의 컨디션에서 올바른 판단을 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
  이 당선자가 35세에 사장이 되자 주변에선 아직 20대인 김 씨를 보고 “이명박 사장이 젊은 ‘세컨드’와 산다”는 소문이 퍼져, 그의 친정 아버지가 직접 확인에 나섰다가 딸과 맞닥뜨린 일도 있다고 한다. 이 당선자가 기업 CEO에서 국회의원, 서울시장, 대통령 후보까지 오는 동안, 김 씨도 각종 ‘네거티브(음해 비방)’에 상당히 단련이 됐다는 것이 주변의 평가다. 서울시장 선거 때 “이 후보에게 숨겨둔 아이가 있다”는 소문이 돌자 김씨가 “있으면 데려와 봐라, 바쁜데 일 좀 시키게”라고 맞받았다는 일화는 유명하다. (·····)
  김 씨는 선거운동 기간 중 주로 복지시설과 재래시장, 이 당선자가 미처 가지 못하는 중소도시를 다녔다. 남편과 함께 모습을 드러내는 일은 최소화 했다. 자꾸 나서는 모습이 좋지 않다는 주위의 권유 때문이었다고 한다.
  김 씨는 이 당선자에게 녹즙과 배즙을 챙겨주고, 격려를 담은 편지와 문자 메시지도 종종 보냈다. 이 당선자가 “집안 내 야당”이라 할 정도로 쓴 소리도 자주 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김 씨는 유세에서 “이 후보의 작은 눈이 멀리 내다보는 안목이 있는 눈”이라고 남편의 ‘약점’을 유머로 넘기는 등 재치로 유권자의 호감을 샀다.

 · 「“단칸방 책벌레가 드디어 해냈다” / 이 당선자 고향 포항 덕실마을에 태극기 물결」(15면)
 
  경북 동해 바닷가에 승리의 함성이 울려 퍼졌다. “이겼다~” 하는 함성과 함께 축포가 하늘을 갈랐고, 주민들은 “이명박, 대통령”을 연호했다. 이내 바닷가 시골마을은 태극기 물결을 이뤘다.
  이명박 대통령 후보의 당선이 확정된 19일 밤 10시 50분쯤, 그의 고향 마을인 경북 포항시 북구 흥해읍 덕성1리 덕실마을 마을회관 앞마당. 대형 TV에서 ‘당선 확정’ 소식이 나오자, 주민들은 일제히 함성을 지르며 서로를 얼싸안았다. 흥해농협 풍물단의 풍악이 울려 퍼졌고, 주민들은 어깨춤을 추며 손에 든 태극기를 쉴새없이 흔들었다. 방문객들을 위해 국밥 등 음식을 준비하고 있던 주부 10여명도 한꺼번에 뛰어나와 풀쩍풀쩍 뛰었고, 서로 부둥켜안은 채 눈시울을 붉히는 주민도 있었다. 주민 최상식(64) 씨는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나 고생 고생해서 결국 대통령까지 됐으니 서민들에게 희망을 안겨줬다”며 감격을 감추지 못했다. 31가구 67명이 사는 이 마을에는 이날 오전부터 이 후보 친·인척 및 출향인 300여명과 취재진 100여명이 모여들어 개표상황을 지켜봤다.
  이 당선자의 사촌 형수인 류순옥(76) 씨는 “어릴 적부터 성격이 올곧고 하고자 하는 일은 꼭 해내는 사람이어서 (대통령 당선을) 해낼 줄 알았다”고 했고, 초·중학교 시절 같이 자랐다는 7촌 질녀(姪女) 이용이(74) 씨는 “단칸방에 쪼그리고 앉아 열심히 공부만 하던 ‘책벌레’였는데… 국민 손과 발이 돼 경제를 살리는 훌륭한 대통령이 되길 바란다”며 말을 잇지 못했다.
  이 당선자의 출신학교인 포항시 북구 죽도동 영흥초등학교와 용흥동 동지 고등학교(옛 동지상고)에도 각각 동문 200여명씩이 모여 축하잔치를 벌였다. 고교 동창인 최근국(66) 씨는 “입학 때부터 줄곧 1등 자리를 놓친 적이 없는 성실한 친구였다”면서 “학교의 자랑, 고향의 자랑이며 대한민국의 자랑”이라고 기뻐했다.
  이날 포항시내 곳곳에서는 축하행사가 늦은 밤까지 이어졌다. 오후 6시 출구조사 결과가 발표되자 북구 용흥동 도로 절개지에는 전등으로 꾸민 대형 태극기가 밝혀졌고, 포항 최대 번화가인 북구 상원동 중앙상가에서는 시민 3000여명이 모여 샴페인 100개와 축포 2000발을 터뜨리며 ‘포항시민 화합 잔치’를 펼쳤다. 박승호 포항시장은 “포항뿐 아니라 우리나라 전체의 비약적 발전을 선도해 영원한 포항인으로 기억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위에서 보았듯이 조선일보는 이명박이 대통령 선거에서 압승을 거둔 데 대해 온갖 찬사를 동원했다. “국민이 당선자를 대통령으로 부른 것은 당선자 스스로 시대정신이라고 불렀던 경제 회생에 대한 갈구 때문” “샐러리맨 신화와 청계천 성공 스토리를 바탕으로 이 당선자가 내세운 ‘일하는 경제대통령론은 다른 후보들이 제기한 모든 담론을 선거 기간 내내 압도” “뻥튀기 팔던 소년, 성공 신화 쓰고 청와대로” 등등.

 조선일보가 감격에 겨워 찬양한 대로 이명박은 임기 5년 동안 경제를 발전시키는 ‘CEO 대통령’이 될 수 있었을까? 그리고 국민들이 진실하고 성실하게 사는 사회를 이룰 수 있는 대통령 노릇을 할 수 있었을까? 나중에 벌어진 일들을 보면 그것은 모조리 허망한 기대였음이 여실히 드러났다.


 이명박 정부의 ‘고소영’과 ‘강부자’ 

 2008년 2월 25일 이명박은 여의도 국회의사당 광장에서 열린 제17대 대통령 취임식에서 “지난 10년, 더러는 멈칫거리고 좌절하기도 했지만, 실패의 아픔까지도 자산으로 삼아야 한다. 새로운 대한민국 60년을 시작하는 첫 해인 2008년을 대한민국 선진화의 원년으로 선포한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은 이어 “대한민국 선진화를 이룩하는 데에 나와 네가 따로 없고, 우리와 그들의 차별이 없다”며 “협력과 조화를 향한 실용정신으로 계층 갈등을 녹이고 강경투쟁을 풀고자 한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은 ‘선진화의 길, 다 함께 열어갑시다’라는 제목의 취임사에서 “다음 60년의 국운을 좌우할 갈림길에서 국민 여러분이 더 적극적으로 변화에 나서 주실 것을 요청한다”고도 했다. 그는 “변화를 소홀히 하면 낙오한다. 어렵고 고통스럽더라도 더 빨리 변해야 한다”면서 ‘개방과 자율, 창의’를 변화의 방향으로 제시했다.
  이 대통령은 연설 초반 상당 부분을 우리 역사와 국민들에 대한 자부심을 일깨우는 데 할애했다. 그는 “세계 역사상 최단 기간에 산업화와 민주화라는 과업을 우리 의지와 힘으로 동시에 이뤄냈다”며 “남들은 이를 기적이라 부르지만, 이는 우리가 다 함께 흘린 피와 땀과 눈물의 결정”이라고 말했다. 이 대통령은 국민들에게 5가지 약속도 했다. 국민 섬기기, 경제 발전과 사회통합, 문화 창달과 과학기술 발전, 튼튼한 안보, 국제사회에서의 책임 다하기 등이었다. 이 대통령은 경제 살리기와 관련, 신성장 동력 확보, 일자리 창출을 언급하면서, 작은 정부, 공공부문 경쟁 도입, 세금 감면 등을 약속했다.
  대외관계에 있어서는 ‘글로벌 외교’와 ‘실용적 남북관계’가 주요 내용이었다. 이 대통령은 “한미관계는 미래 지향적 동맹관계로 발전시키겠다”고 했고, “북한이 핵을 포기하고, 개방하면, 10년 안에 북한주민 소득이 3000달러에 이르도록 돕겠다”고 했다.
  이 대통령은 국민들에게 기회와 꿈을 강조하는 것으로 취임사를 마쳤다. 그는 “끼니조차 잇기 어려웠던 시골 소년이 대통령이 됐다. 국민 모두가 꿈을 갖고, 희망이 있는 나라를 만들고자 한다”면서 “한강의 기적을 넘어, 한반도의 새로운 신화를 향해 함께 나아가자”"고 말했다(조선일보 2월 26일자 1면).

 그러나 이명박이 ‘취임사’에서 제시한 장밋빛 꿈은 첫 내각 후보자들이 발표되자마자 허황한 약속으로 드러났다.

 이명박 정부는 2008년 2월 25일 출발하기 전부터 여론의 거센 비판에 부닥쳤다. 대통령이 2월 18일 발표한 국무위원 후보자 15명 가운데 다수가 숱한 결함을 지니고 있었기 때문이다.

 인터넷에는 ‘고소영’과 ‘강부자’라는 신조어가 등장했다. ‘고소영’은 고려대 출신, 소망교회 신도, 영남 출신의 앞 글자를 따서 만든 말인데 이명박의 모교인 고려대, 그가 장로로 있는 소망교회, 그리고 그의 고향인  영남 출신들이 대통령과 함께 ‘대한민국을 접수’하려고 한다는 뜻이었다. ‘강부자’는 ‘강남 땅 부자’의 약어로 이명박은 물론이고 국무위원 후보자 다수가 강남에 비싼 집이나 부동산을 지니고 있음을 뜻했다. 그래서 이명박을 적극적으로 지지하던 조선일보조차 2월 23일자 35면에「장관 청문회, 재산 형성 불·탈법 샅샅이 가려내라」는 사설을 내보낼 정도였다. 그 사설의 요지는 아래와 같다.
 
  새 정부 각료 후보자들이 인사청문회를 위해 국회에 제출한 재산 내역서를 보니 이춘호 여성부장관 후보자와 장남은 전국에 40건의 부동산을 갖고 있었다. 재산 가액은 45억8000만 원 정도이지만 그 내용이 아파트, 사무실, 공장, 점포, 단독주택, 오피스텔, 대지, 주차장, 논, 임야, 도로 등 마치 부동산 백화점을 보는 듯하다. 장녀와 차남의 재산은 공개하지 않았는데도 이렇다. 이 후보자측은 "재산 대부분은 부모와 사망한 남편으로부터 상속받은 것"이라고 했지만 이 갖가지 형태의 부동산 취득 과정이 궁금할 수밖에 없다.

  새 정부 각료 후보자들의 평균 재산은 39억 원에 이르고 15명 중 12명 이 오피스텔을 포함해 집을 2채 이상 소유하고 있었다. 노무현 정부 초대 내각의 평균 재산은 11억 원이었다. 5년 동안 부동산 공시가의 현실화율이 높아졌고 물가가 올랐다 해도 큰 차이다. 당장 야당으로부터 ‘강남 부동산 부자 내각’이라는 소리가 나오고 있다. 실제 내각의 전체적인 모습에 균형 감각이 부족한 것이 사실이다. 이를 보는 국민들 마음이 편할 리 없다. (·····)
  이 어려운 문제의 해답은 돈 많은 사람이 공직을 맡는 경우 그 재산 형성 과정에 불법과 탈법이 없었는지를 샅샅이 검증하는 것이다. 그 가혹한 검증을 통과하면 더 이상 재산이 문제돼선 안 된다. 당선자 대변인은 “법적으로 세금을 착실히 내고 재산을 정당하게 보유하고 있으면 문제 삼을 수 없다”며 “(15명 후보자들은) 자체 정밀 검증 과정에서 문제가 없었다”고 했다.

 대통령 당선자의 대변인이 문제의 국무위원 후보들은 “법적으로 세금을 착실히 내고 재산을 정당하게 보유하고 있으면 문제 삼을 수 없다”라고 주장했으나 국회 청문회에서는 일부 후보들의 불법과 탈법, 부당한 축재 사실이 잇달아 드러났다. 지위를 이용해서 얻어낸 정보를 바탕으로 한 땅 투기, 자녀를 강남학군에 전학시키기 위한 주민등록 위장 전입, 학위 논문 표절, 경력 허위 기재, 본인과 아들의 병역 기피와 특혜, 재산 편법 증여 등 일일이 열거할 수 없을 정도로 부정과 비리의 종류가 다양했다.

 이명박이 대통령으로 취임하기 전날인 2월 24일 여성부장관 후보 이춘호가 대통령직인수위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힘차게 출발해야 할 이명박 정부에 걸림돌이 되지 않기 위해 물러나고자 한다”며 사퇴 의사를 밝혔다.

  그러나 “제가 소유한 부동산 대부분은 선대(先代)로부터 상속을 받았거나 먼저 세상을 떠난 남편으로부터 물려받은 것”이라며 “저로서는 이런 비판을 받아들이기 어렵다”고 투기 의혹은 부인했다. 이 후보자의 사퇴는 장관 후보 확정 발표 6일(143시간40분) 만이다. 농지 투기 의혹이 제기된 박은경 환경부장관 후보자는 그동안 “동생뻘 친척이 땅 매입을 권유했고, 형편이 어려운 친척이 농사를 지어왔다”고 해명했으나 사실과 다른 것으로 확인됐다. 박 후보자의 부동산 거래를 알선한 조 모(60) 씨는 “문제의 김포 땅을 사면 장기적으로 오를 것이라며 내가 땅 매입을 권유했다”고 했고, 박 후보자의 김포 땅에서 8년째 농사를 지어온 전 모(53) 씨는 “박 후보자의 친척이 아니다”라고 부인했다(조선일보 2월 25일자 1면).

 통합민주당은 “남주홍 통일·박은경 환경부 장관 후보자에 대해서는 청문회 자체를 ‘보이콧’ 하기로 했다. 민주당 장관인사청문회 태스크포스(TF)팀의 임종석 단장(원내 수석부대표)은 이날 남주홍·박은경 두 후보자에 대해서는 이미 언론청문회를 통해 부적격자로 확인이 된 만큼 국회 청문회를 열어야 할 필요를 느끼지 못한다”고 했다(조선일보 2월 26일자 1면).

 그러자 조선일보는 2월  25일자 사설(「민주당 장관 청문회 보이콧은 빗나간 총선 대책」)을 통해 민주당을 비난했다.
 
  통합민주당이 남주홍 통일부, 박은경 환경부 장관 후보자에 대한 국회 인사청문회를 거부하기로 했다. (···)
  남 후보자에 대해서는 부인의 경기도 오산과 포천 땅 보유, 자녀들의 미국 시민권·영주권 보유 문제 등이 불거져 있다. 박 후보자도 직접 농사를 지어야만 소유할 수 있는 경기 김포시의 절대농지를 대리 경작시키고 있는 사실이 드러났다.
  그러나 이런 문제들은 아직은 말 그대로 의혹일 뿐이다. 재산이 많다고 무조건 돌을 던진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실제로 이들 후보자보다 훨씬 많은 재산을 가진 민주당 의원도 적지 않을 것이다. 문제의 핵심은 이들이 재산을 형성하는 과정에 불법과 탈법을 저질렀는지 여부다. 이들이 불탈법을 저질렀는지는 아직 분명하지 않다. 당사자들은 “부동산 취득 때 어떤 불·탈법도 저지르지 않았다”고 부인하고 있다.
  인사청문회는 이런 경우에 국민 앞에서 사실을 규명해보자고 만든 제도다. 민주당이 정말로 두 후보자에 결정적인 흠이 있다고 판단한다면 청문회에서 증거와 자료를 통해 이를 입증해야 한다. 그러나 민주당은 두 후보자와 관련한 의혹들에 대해 지금까지 뚜렷한 자체 증거 자료 하나 내놓은 게 없다. 그런 점에서도 야당은 자신들의 주장을 입증할 확실한 증거 제시로 국민 대신 장관 후보들을 철저히 검증해야 하는 의무를 다해야 한다.
  민주당은 국회가 장관 후보들에 대해 부적격 판정을 내려도 대통령이 장관 임명을 강행할 수 있으니 청문회가 필요 없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민주당이 청문회에서 장관 후보자들의 불·탈법 사실을 입증하면 국민이 먼저 그 후보자를 거부할 것이고, 대통령도 이런 국민의 뜻을 거스르기 어려울 것이다.
  민주당은 ‘언론 청문회’ 운운과 같은 이치에 맞지 않는 핑계를 대지 말고 청문회에 참석해야 한다. 청문회 참석 정도가 아니라 청문회를 주도하라는 말이다. 만약 민주당이 끝내 청문회를 보이콧한다면 국회 제1당으로서의 책무는 제쳐두고 총선용 정치 공세만 한다고 볼 수밖에 없다.

 조선일보의 이 사설이 무색하게도 통일부장관 후보자 남주홍과 환경부장관 후보자 박은경은 2월 27일 자진 사퇴했다. 이명박이 지명한 15명의 장관 후보자들 가운데 3명(20%)이 국회 인사청문회에 나가보지도 못한 채 물러난 것이다.

 2월 28일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문화체육부장관 후보자 유인촌은 ‘140억원 대의 재산 형성 과정’에 관해 의원들의 질문 공세에 부닥쳤다. “새 정부 장관 후보자 중 ‘재산 1위’인 그는 일본 국채 매입과 예금 축소 신고 등의 의혹과 관련, “아내가 2005년 증권사의 추천으로 일본 국채를 샀고 당시 나는 그 사실을 몰랐다”며 “2005년 서울문화재단 대표 취임으로 재산 신고를 하는 과정에서 배우자 명의의 예금 내역서를 제출했으나 엔화를 원화로 잘못 신고해 12억1600여만 원의 차액이 발생했다. 이후 정정했다”고 해명했다(조선일보 2월 29일자 5면).

 조선일보는 2월 29일자 35면에 「장관 후보자는 ‘재산 헌납’까지 약속해야 하나」라는 사설을 올렸다.
 
  유인촌 문화체육관광부 장관후보자가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통합민주당 손봉숙 의원으로부터 “사재(私財)를 출연해 열악한 연극계를 도울 재단을 만들 의사가 있느냐”는 질문을 받고 “그럴 의사가 충분히 있다”고 대답했다.
  유 후보자는 신고 재산이 140억 원으로 장관 후보자들 가운데 제일 많다. 청문회에서도 재산과 관련한 추궁을 집중적으로 받았다. 손 의원 질문도 그런 과정에서 나왔다. 그러나 두 사람의 질문 답변은 정상이라고 볼 수가 없다. 우선 장관이 되겠다고 청문회에 나온 사람이 “재산을 내놓을 뜻이 있느냐”는 질문을 받고 그 자리에서 “못 하겠다”고 하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의원의 질문은 사실상 ‘재산 헌납’을 강요한 것이나 다름없다.
  청문회는 공직 후보자가 공직에 적합한 능력과 도덕성을 갖췄는지 가려내는 자리다. 재산이 많다면 그 재산을 쌓는 과정에서 불법·탈법은 없었는지, 세금은 제대로 냈는지 밝히고 추궁하면 된다. 유 후보자는 “35년 간 배우로 활동하며 열심히 저축했고 한 푼의 세금도 탈루한 적이 없다”고 했다. 단지 재산이 많다는 이유로 법을 또박또박 지키며 벌어온 재산을 사회에 바치라고 강요한다면, 재산 많은 사람이 장관이 되려면 몸값을 내야 한다고 하는 것과 다를 바가 없다. (·····)
  국회의원들이 재산 많은 사람에 대한 보통사람들의 막연한 반감에 편승해 장관 후보자들을 몰아세우는 것은 인간적 측면에서도, 자유시장경제의 건전한 발전을 위해서도 도움 되는 일이 아니다. 문화부장관 인사청문회장에서 오간 재산 헌납 문답은 우리 정치수준뿐 아니라 부(富)에 관한 사회 인식이 얼마나 왜곡돼 있는지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장면이었다.

 이 사설은 논리의 비약이 아주 심하다. 유인촌이 35년 동안 “배우로 활동하며 열심히 저축했고 한 푼의 세금도 탈루하지 않았다”고 주장한 사실만으로는 그의 축재 과정을 납득하기 어렵다. 그와 비슷한 경력을 가진 배우들이 그런 거금을 모은 사례는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국회의원이 “사재를 출연해 열악한 연극계를 도울 재단을 만들 의사가 있느냐”고 질문한 것인데, 조선일보 사설은 “단지 재산이 많다는 이유로 법을 또박또박 지키며 벌어온 재산을 사회에 바치라고 강요한다면, 재산 많은 사람이 장관이 되려면 몸값을 내야 한다고 하는 것과 다를 바가 없다”고 단정하고 있다. 이명박 정부의 장관 후보자를 감싸는 논리로는 설득력이 전혀 없다.

관리자 freemediaf@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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