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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동치는 남북관계

- 동아일보 대해부 4권 - 24장

기사승인 2023.03.08  15:1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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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94년의 남북관계는 이미 봄부터 심상치 않은 분위기였다. 북한은 1993년 3월 핵확산금 조약(NPT)을 탈퇴하면서 핵 개발을 공식화했고 미국은 당연히 그것을 막으려고 기를 쓰고 있었다. 


 ‘서울 불바다’ 발언이 일으킨 전쟁 위기

 그러던 중 1994년 3월 19일 남북 특사 교환을 위해 실무 대표들이 만난 자리에서 북측 단장 박영수가 거침없이 말을 터뜨렸다. 동아일보 3월 20일자 1면 현장 스케치기사(「“전쟁 나면 서울 불바다” 북 단장 폭언 / 남북 실무접촉 험악한 분위기」)는 다음과 같다. 
 
  19일 판문점 남측지역 평화의 집에서 열린 특사 교환 8차 접촉은 시작부터 덕담도 생략하는 등 심상찮은 분위기를 풍기더니 결국 ‘전쟁 불사’ 발언까지 나온 뒤 회담 시작 55분 만에 완전 결렬됐다. 이날 회담에서 북측 대표는 ‘서울은 불바다’ 등 극언을 서슴지 않는 등 분위기가 시종 험악했다.
  북측 박영수 단장은 오전 9시 45분경 남측지역 평화의 집에 도착, 냉랭한 표정으로 2층 회담장 옆 북측 대기실로 직행. 박 단장은 평화의 집 앞에 마중 나온 송영대 대표가 악수를 청하며 인사를 건넸으나 대꾸도 하지 않아 이날 접촉의 분위기를 예고.
  이날 북측 박 단장은 첫 발언을 통해 “남측은 우리가 그간 밝혀왔던 패트리어트미사일 남조선 배치 금지 등 4개 조건을 철회한 걸로 아나본데 결코 철회한 게 아니니 이 자리에서 태도를 밝히라”며 특사 교환 조건으로 내세웠던 4개항을 재론.
  이에 남측 송 대표가 “북측이 국제원자력기구 사찰에 성의를 보이지 않아서 유엔안보리 제재 등이 논의되고 있다”고 언급하자 박 단장은 ‘전쟁 불사’ 운운하며 흥분. 박 단장은 “우리에 대한 제재를 논의해도 좋다”며 “우리는 대화에는 대화, 전쟁에는 전쟁으로 대응할 만반의 준비가 돼 있다”고 강조했는데 남북회담사상 회담 석상에서 전쟁 불사 발언이 나온 것은 이번이 처음. 박 단장은 특히 “서울은 여기서 멀지 않다. 전쟁이 나면 서울은 불바다가 될 것”이라는 협박성 발언까지 서슴지 않아 험악한 분위기가 고조. 박 단장은 특히 송 대표를 가리키며 “전쟁이 나면 당신도 살아남기 힘들 것”이라고까지 극언. 송 대표는 “회담하러 나온 사람이 전쟁이란 말을 쓸 수 있느냐”고 격앙.

 같은 날짜 1면 머리기사(「특사 실무 접촉 완전 결렬 / 남북관계 긴장 국면/ 북 대표 “전쟁 불사” 일방 퇴장 / 정부 곧 고위회담 중대 결단」)는 “남북한은 지난 해 10월부터 판문점에서 남북 특사 교환을 위한 실무접촉을 벌였으나 19일 8차 접촉을 끝으로 회담이 결렬, 남북 특사 교환도 무산됐다”며 남북관계가 경색 국면으로 접어었다고 보도했다. 이 기사 바로 밑에는「미 2개 항모전단 한반도 근해 배치」라는 워싱턴 발 로이터통신의 기사가 2단으로 나왔다. 바야흐로 한반도에 전쟁의 먹구름이 몰려오기 시작한 것이었다. 
  3면 기사(「쌓이는 불신… 남북 다시 냉기류 / 북핵 협상서 한국 제외 속셈 드러내 / 미·북 관계 불투명…대화 재개 먹구름」)는 ‘특사 접촉’ 결렬 배경과 전망에 관한 내용이었다. 

 같은 날짜 사설(「북한이 막가고 있다」) 요지는 다음과 같다.  

  (…) 북한은 범칙선을 넘어섰다. 게임에는 규칙이 있고 그 규칙이 깨지면 게임은 치러질 수 없다. (…) 남북회담의 지난날을 회고해보면 범칙선을 넘어서도 그대로 묵과된 일이 많았다. (…) 그러나 이번의 경우는 범칙선을 넘어선 배경이 단순치 않음을 느끼게 한다. 북한 대표의 발언은 사뭇 협박이었다. 그는 북한이 제재를 받으면 남쪽도 무사하지 못할 것이라고 하면서 “서울이 불바다가 될 것”이라고 위협했다. 이성적인 판단으로는 도무지 용납될 수 없는 극한적인 용어였다. (…)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는 자명하다. 평화를 지키고 안보를 튼튼히 하기 위한 모든 대책을 강구해야 한다. 대화 분위기를 고려한다는 이유로 더 이상 물러설 수 없다. (…) 국제적인 공조체제를 더욱 굳혀야 한다. 대화의 문은 열어놓되 그렇다고 유화에 급급하는 대응은 이 시점에서 적절치 않다. 도대체 남한을 어떻게 보았기에 서울을 불바다로 만들겠다고 막말을 할 수 있겠는가. (…)
  한미관계를 강화하고 긴밀한 협조관계를 새롭게 구축해야 한다. 한국에 대한 어떠한 침략도 미국에 대한 침략으로 간주한다는 미 클린턴 대통령의 공약이 재강조되기를 바란다. 팀스피리트 훈련은 재개되고 주한미군의 패트리어트미사일 반입도 합의돼야 한다. 평화를 지키기 위해서는 어떠한 전쟁 위협에도 굴복하지 않겠다는 확고한 의지와 강력한 억지력이 요청된다.  

  
 오로지 한미관계의 강화를 통해 사태를 대비하자는 강경한 논조는 22일 사설(「위기에 대처하는 길」)에서도 한껏 강조되었다. 

  (…) 북한이 핵 재처리시설에 대한 전면 사찰을 다시 받아들이고 남북대화에 실질적인 성과를 기대할 수 있는 획기적인 전환이 없는 한 사태의 호전 가능성은 없어 보인다. 더구나 ‘서울이 불바다가 될 것’ 이라는 막말을 하고 있는 북한당국의 비정상적인 태도로 인해 국민적인 우려와 분노가 심각해지고 있다. 북한은 이어 폭언의 당사자를 통해 남한의 반정부 투쟁을 선동하는 성명까지 냈다.
  북한이 ‘전쟁 불사’라고 위협하고 있는 마당에 정부가 남북대화 우선 정책을 전면 재조정하고 있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다. 정부의 긴급 안보장관회의에서 팀스피리트훈련을 재개키로 결정하고 패트리어트 요격미사일의 주한미군 조기 배치 문제를 미국과 협의키로 한 것도 적절한 판단이다. 북한 핵 문제가 우리의 직접적인 안보문제로 비화된 이상 방위력 강화를 위한 모든 조치는 피할 수 없는 선결과제로 부상됐기 때문이다.
  북한이 당장 도발해올 가능성은 희박하다고 하지만 (…) 위기 가능성에 대한 정부의 인식이 보다 확고해야 한다. 물론 정부의 신중성은 필요하다. 그리고 위기의 가능성을 피할 수 있도록 역량을 다하는 것도 정부의 중요한 책무다. 그러나 상황 판단에 정확을 기하지 못한다거나 지금까지의 정책에 연연한 나머지 우유부단하다면 오히려 불안 제공의 원인이 된다. 정부는 대북정책의 재조정은 물론 국론을 통일해야 한다. 국론통 일에는 정부와 여야가 따로일 수 없다. ‘서울이 불바다가 될 것’이라는 극단적인 협박을 받고서도 무감각이나 냉소주의에 빠져 있고 또는 자신의 정치적 입지나 강변하고 있다면 그것은 또 하나의 위기다. 


 ‘안보 불감증’과 ‘안보 과민증’

 처음에는 국민들도 앞뒤 맥락을 자른 ‘불바다’ 직격탄을 맞은 것 치고는 담담한 표정이었다. 비근한 예로 현충일이 낀 6월 첫 연휴 기간의 분위기를 들 수 있다. 동아일보 보도만 보더라도 연휴가 시작된 5일자 사회면 머리기사 제목은「현충일 연휴 ‘향락’ 대이동 / “탈 서울”… 고속도 엉금엉금 / 대전까지 6시간 명절 귀성 방불 / 평소 주말보다 60% 이상 몰려 / 주요 관광지 숙박업소 초만원」이었다. 연휴가 끝난 7일자 사회면 기사 제목은「“멀고 먼 서울…” / 연휴 귀경 차량 / 고속도 구간 따라 심한 체증」이었다. 8일자 사설(「6월에 생각한다」)은 그런 세태를 다음과 같이 걱정했다. 
 
  (…) 우리는 요즘 다른 사람들로부터 “샴페인을 너무 일찍 터뜨렸다”고 빈정거림을 당할 정도로 긴장이 풀어져 있는 것이 아닌가 생각해볼 일이다. 지난해 3월 북한의 핵개발 의혹이 본격적으로 문제화된 이후 외신들은 자주 한반도 위기설을 보도하고 있다. 최근에는 북한에 대한 제재가 시간문제처럼 되고 북한은 어떠한 제재도 선전포고로 간주하겠다고 위협적인 대응을 하고 있다. 어떻게 보면 전쟁 냄새마저 풍기는 불길한 조짐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도 우리 국민들은 마냥 ‘태평’이다. 그래서 일부 외신들은 이 ‘태평’인 서울 표정을 의아스럽게 보도하기도 한다. 
 
 같은 날짜 ‘오늘과 내일’(「한반도의 위기 수준)도 그 문제를 다뤘다.

  사회분위기를 보면 다행스럽게도 심각하게 우려를 나타내는 징후는 없다. 동요한다든지 생활을 근신하고 자제하는 모습도 없다. 일부에서 라면이나 쌀 등 비상식량을 충동 구매하는 사람도 있긴 하지만 정말로 심각한 불안감에서 나타나는 현상으로 보이진 않는다. (···) 위기다, 또는 전쟁이 일어난다 한들 현 생활 상태에서 어떤 대안이 있겠느냐는 심리인 것 같다. (···) 의도적인 위기감의 증폭이나 혼란의 조장과 편승도 없어야겠지만 의도적인 낙관이나 외면도 없어야 한다. 앞으로의 전쟁이 남북한의 공멸을 가져온다는 점을 생각하면 정부는 이를 피할 수 있는 모든 지혜를 모아야 하고 국민은 침착성과 냉정함을 가져야 한다. 적어도 낭비적인 생활을 절제하는 자세와 고통을 분담할 각오 등 그런 사회 분위기는 있어야 한다. 배운 사람이 솔선해야 한다.
 
 논설위원 남중구도 ‘동아광장’(「한반도의 전쟁과 평화」)에서 “한때는 안보 불감증이 문제시되더니 며칠 사이 이번에는 안보 과민증이 새롭게 거론되고 있다”면서 “시시각각 긴박감을 더해가는 북핵 위기의 마지막 귀착점은 어디이며 한반도를 뒤덮고 있는 긴장의 먹구름의 정체가 과연 무엇인지 누구도 이 시점에서 그것을 자신 있게 말해 줄 사람은 없다”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딱 부러지게 장담하기는 아직 이르다 해도 돌아가는 상황을 종합 분석해 보면 현재로서 북한이 전쟁을 도발해올 가능성은 의외로 그리 크지 않다는 것이 안보문제 전문가들의 지배적인 견해”라면서 그럼에도 전쟁이 발발할 때는 여러 변수가 있으니 “적당한 긴장과 경각심 속에 무슨 일이 생겨도 처변불경 하겠다는 용기와 마음가짐이야 말로 북의 도발을 억지할 수 있는 최선의 지름길”임을 명심하자고 제언했다. 

 설마 전쟁이 나겠느냐고 생각하면서도 혹시나 전쟁이 나면 어떻게 하냐는 두려움을 안고 사는 한국민들의 기묘한 상황을 작가 최일남이 6월 19일자 ‘아침을 열며’(「축구를 보며 전쟁을 생각함」)에 실감나게 묘사했다. 그 무렵 월드컵대회가 한창 열리고 있었다. 

  우리는 어제 아침 텔레비전 수상기 앞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제각기 고조된 흥분을 누르고 아슬아슬 마음 졸이며 환성과 탄성을 번갈아 질렀다. (…) 그런데 이런 사람들의 머리 위로 막가는 전쟁놀이 상상도가 한때 펼쳐졌다. (…) 그들의 전쟁시나리오대로라면 수천 수만 명의 한국인이 이미 죽었다. 서울을 겨냥한 북한의 대규모 포격으로 개전 초에 벌써 많은 희생자를 내는 걸로 대부분의 시나리오가 짜여 있는 모양이다. 고맙게도 남한의 승리는 전제되어 있는 셈이다. 평양은 미구에 박살이 나고 파탄에 직면한다는 결말 역시 대개 비슷하다. (…)
  이래저래 외국 언론의 무책임한 부풀리기 보도를 탓할 것이 없다는 생각이다. 어차피 그들은 남이고 과객일 따름이다. 한국 언론은 과장을 안 했나. 위기의식 조장의 혐의가 짙은 말과 글발로 언제는 국민들의 안보의식 결여를 나무라더니 이제는 불안감 확산을 염려한다. 위기설이 한참 강조되기 시작하던 저지난 주의 어떤 신문은 같은 날짜 신문의 사설과 사회면 머리기사가 너무 달랐다. 앞에서는 안보 불감증을 질책한 반면 뒤에서는 조금도 동요하지 않는 성숙한 국민의식을 칭찬하고 든든해했다.
  정부의 태도 역시 매일반이다. 우선 순서를 잘못 매겼다. 위기 국면이 오면 국민을 안심부터 시키는 것이 상식인데 대뜸 성난 얼굴로 안보 불감증을 탓하고 나섰다. 북한의 국제원자력기구 탈퇴 선언을 계기로 가시화된 사재기가 차츰 확대될 기미가 보이자 뒤늦게 진정하려 들었다. 경제에 미칠 악영향 염려도 작용한 것 같은데, 스스로 성급하고 자체 내 혼란을 자극한 격이다. (…)

  상황은 다시 급전직하, 전쟁의 열기를 가득 내뿜던 분위기가 조금 진정될 조짐이다. 미국과 베트남의 전후 처리 방식에서 보았듯이 미군의 유해 찾기 얘기가 나오면 웬만큼 교섭의 실마리를 잡은 걸로 파악할 만하다. 그건 좋은데 여전히 미국의 손에서 모든 일이 결정된다는 걸 기막히게, 그리고 전쟁에 대비한다면서 실제로는 부추기는 듯한 형세로 나댔던 국내 ‘주전파’를 의식한다. 심리학자가 다 된 북한 정권이 그래서 미국만을 상대하며 우리 정부를 따돌리는 셈이다.
  여론의 나라 미국이 결국 온건파를 업었는가. 강경파가 득세하면 전쟁이 터지고? 그때 죽는 건 누군데? 잿더미가 되는 땅은 어느 땅인데? 아무튼 다행이라는 마음으로 가슴을 쓸어내리는 눈에, 어쩐지 ‘실망’하는 표정인 정부의 허둥지둥 대책이 걸린다. (왔다갔다 핵정책에 정작 실망할 사람은 누군데) 돌아서는 눈길로, 우리 세대는 동족상잔의 전쟁을 겪었다만 너희들은 끝끝내 전쟁을 모르고 굳세게 자라기 바란다며, 어린 자식의 등을 쓰는 어버인들 이 순간 없을 손가.  


 김일성의 갑작스런 죽음

 1994년 6월 15일 판문점을 통해 북한에 들어간 전 미국 대통령 지미 카터 가 4일만에 ‘남북 정상회담’이란 귀한 선물을 가져왔다. 한반도를 둘러쌌던 전쟁의 먹구름이 싹 가셨다. 일부 극소수 전쟁광들을 제외하곤 모두가 축하할만한 일이었다. 동아일보는 7월 1일자 1면에 「‘체제 인정·불가침’ 명시; 정부 / ‘남북정상회담 합의서’ 추진」등 임박한 정상회담 관련 기사를 실었다. 4면에는「“김일성은 이런 사람” / 국내외 방북인사들의 ‘내가 만난 북한주석’」처럼 새삼스럽게 김일성에 대한 호기심을 자극하는 기사들이 무더기로 등장했다. ‘남북 정상 대화 가까워진 서울∼평양’이라는 시리즈도 시작되었다. “2차 정상회담 반드시 실현돼야”라고 주장하는 기사도 나왔고, 남북고위급 2차 회담 때 한국 국무총리로서는 처음으로 김일성과 단독 요담한 재 강영훈 인터뷰 기사도 실렸다.   

 1994년 7월 초의 한반도는 무척 더웠다. 남북이 정상회담 준비로 정신없이 돌아가는 상황에서 김일성은 7일 남한 대통령이 묵게 될 묘향산 초대소를 직접 찾아 가 침실과 욕실은 물론 심지어 냉장고에 광천수를 충분히 넣어 두었는가를 직접 확인할 정도의 열성을 보였다. 정상회담 준비로 수일 간 과로를 한 그는 그날 저녁식사를 마친 후 심한 피로감을 느꼈다. 얼마 후 그는 심장발작으로 쓰러졌다. 8일 새벽 2시 그의 사망이 확인됐다. 

 김일성의 사망은 34시간 동안 비밀에 부쳐졌다. 7월 9일 낮 12시에야 북한중앙방송을 통해 김일성 사망 소식이 전해졌다. 10일자 동아일보는 1면 전 부를 김일성 사망에 관한 기사들로만 채웠다. 그리고 2, 12, 23, 26, 27면에 걸쳐 관련 기사들을 실었다. 1면 머리기사는「김일성 사망 / 북 “8일 새벽 2시 심근경색으로” 방송 / 김정일 승계 시사…체제 굳힐지 주목 / 25일 남북 정상회담 사실상 무산 / 17일 장례식… “외국 조문사절 안 받는다” 발표」였다. 1면의 주요 기사는「자연사일까… 피살일까 / 미일 정보소식통 쿠데타 배제 안 해 / 사망 시기 미묘… “암살 가능성” 시각도」「북·미 제네바회담 일단 중단」「북 “김정일 각하” 호칭」「김 대통령 전군 특별경계령」「미군 경계태세 돌입」등이었다. 

 이밖에도 동아일보는 전문가 긴급좌담(「북 ‘카리스마 재등장’은 어렵다 / ‘김일성 사후’를 전망한다」)과 해설 및 전망, 스케치, 시리즈(「남북한관계 등 대전환 불가피 / 김일성 사후 한반도 풍향:1」), 세계의 반응 등 온갖 기사들을 한꺼번에 쏟아냈다. 

 ‘주석’이란 호칭을 사용한 같은 날짜 사설(「김일성 사망」)은 “미국과의 관계 정상화 시도와 남북 정상회담 제의는 어쩌면 그의 생을 정리하려는 최후의 의욕이었다. 그러나 그는 결말을 못보고 82세의 나이로 생을 마쳤다”면서 “비록 생의 마지막 단계에서 이산가족의 바람에 호응하는 듯했으나 너무 늦었다. 남북 정상회담이라는 기대되는 역사적 사건으로 한반도의 평화 정착에 일말의 희망을 갖게 했으나 결과적으로 그것도 너무 늦었다”고 평가했다.

  이제 그는 북한에 권력 승계의 위기를 유산으로 남기고 떠났다. (…) 일당 독재는 반드시 붕괴된다는 역사적 필연성과 왕조체제의 기이함, 이 두 가지 사실이 북한 정권의 앞날에 어두운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음을 부인할 수 없다. 김일성의 카리스마가 사라진 권력의 공터 위에 김정일의 카리스마가 들어설 것인가. 우리의 북한 동포들은 대를 이은 독재자에게 또다시 충성해야 하는 괴로운 여정을 밟아야 하는가. (…)
  북한에서 발생한 돌발 사태가 북한 핵문제 해결과 남북관계에 어떻게 작용할 것인가를 두고 우려하는 견해가 많다. 권력을 승계한 것으로 보이는 김정일이 북한의 핵확산금지조약(NPT) 탈퇴를 결정한 장본인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한 김을 가리켜 북한의 선전매체들은 ‘통 큰 지도자’라고 자랑한다. 그 통 큰 지도자가 바로 핵개발의 주도세력인 군부를 장악해 왔다. 군부가 권력기반인 그가 군부의 사업을 무시하고 ‘카터 김일성 대화’ 국면을 그대로 유지하며 진전시킬 것인지는 의문이다. 그리고 북한의 새로운 체제는 적어도 그들의 내부가 정리될 동안 문을 닫고 외부와의 관계를 두절할 가능성이 많다. 그 사이 북한의 경제는 더욱 어려워질 것이다.
  새 지도체제의 불안정에 경제적 위기까지 겹친다면 그것은 한반도의 긴장으로 확대될 수 있다. 남북 정상회담과 제네바의 미·북한 3단계 회담으로 안정 국면으로 접어든 한반도의 상황이었지만 ‘통 큰 지도자’의 위기 탈출 의식과 오판에 따라서는 심각한 사태도 예견될 수 있다. 더욱이 북한에서 권력투쟁의 양상이 빚어질 경우 남북관계의 전망은 예측을 불허한다. 이에 대한 철저한 대비책이 필요할 뿐이다. (…)
  아울러 새로운 북한 당국은 분명히 알아야 한다. 남한은 북한의 돌발 사태를 이용해서 사태를 악화시키려하는 의도를 갖고 있지 않다. (…) 김 주석의 사망을 새로운 출발의 전기로 삼으려는 중대한 결단만이 북한을 살리고 민족의 공영을 기약할 수 있다. (…) 북한의 모습이 달라져야 하는 것은 역사의 필연이다. 참으로 긴 세월 동안 한반도에는 일당독재와 개인 우상숭배가 지속돼 왔다. 역사의 필연을 역행하려는 또 다른 독재 시도는 더 큰 불행을 자초한다. 한반도에는 새로운 역사가 시작됐다.

 몇몇 신문들이 호전적인 남북대결주의자들처럼 김일성에 대한 마지막 ‘증오’와 그의 죽음에 대해 느끼는 ‘속시원함’을 마음껏 토해내는 분위기에 비추어 보면 상당히 균형 잡힌 사설이었다. 7월 11일자 21면에는「김일성 사망 보는 시민 눈 달라졌다」라는 기사가 실리기도 했다.「86년 사망설 땐 “잘 죽었다” 환호 축배 일색/  이번엔 한반도 영향 분석 등 성숙한 반응」이라는부제를 단 이 기사는 “국민이 지난 86년 ‘김일성 사망설’ 때 보인 반응과 지금의 표정은 상당한 차이가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전했다. 

  지난 86년 11월 16일 한때 세계를 깜짝 놀라게 했던 김 주석 사망 소식은 비록 이틀 만에  근거 없는 뜬소문으로 밝혀졌지만 이 때 대부분 국민은 “진작 죽었어야 할 민족사의 죄인이 죽었다”며 기쁘게 받아들였다. 만세를 부르며 환호하거나 술집에서 축배를 드는 사람들도 많았다. 그러나 이번에는 우선 기쁨을 표시하면서도 남북 정상회담과 이산가족 교류 무산에 대한 아쉬움과 향후 북한이 어떻게 변화될 것인가에 대해 걱정하는 마음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 (…)
  서울대 정치학과 길승흠 교수는 “지난 86년에는 국민이 민족상잔의 전범자로서 김일성의 사망 자체에 비중을 뒀지만 이번에는 한반도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지에 보다 마음을 쓰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며 “우리 체제에 대한 자신감과 국민이 국제 정세를 보는 안목이 그동안 높아져 이 같은 변화가 온 것으로 분석된다”고 말했다.  


 ‘매카시즘의 화신’ 박홍

 싫든 좋든 남북 정상이 만나 한반도의 평화와 통일을 논하자는 희망의 들뜸은 김일성의 급작스런 사망과 이어진 조문 파동을 겪으면서 급속히 냉각됐다. 방금 전까지 외교의 파트너로 존중했던 인물이 사망했으니 조문이라도 해야 하지 않겠느냐는 일부 야당 의원들의 제안은 우익단체들을 앞세운 수구세력의 광기 서린 공격에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었다. 일부 언론이 이를 부추겼음은 물론이다. 그런 현상을 더욱 격화시킨 것이 바로 서강대 총장 박홍(신부)의 선동이었다. 

 조문 파동이 한창인 가운데 박홍은 7월 18일 대통령과 전국 14개 대학 총장의 청와대 오찬 회동에서 “학생운동권 배후에 사노맹, 사노총, 김정일이 있다. 그들은 북한 노동신문이나 팩시밀리를 통해 지령을 받는다”는 폭탄발언을 했다. 19일자 3면에「“주사파 배후 사노맹→북 사로청→김정일” / 김 대통령·­대학총장 대화록」을 상세히 전했던 동아일보는 20일자 사설(「그래도 교수가 나서야」)을 통해 박홍의 발언을 적극 옹호하고 나섰다. 

  (…) 박홍 서강대 총장은 김영삼 대통령 주재로 열린 대학총장 간담회에서 주사파 뒤엔 사노맹, 그 뒤엔 북한 사노청, 그 뒤엔 김정일이 있다고 밝혔다. 김일성 사후 대학가에 심상치 않은 징후가 불거져 나오고 있다. 애도 대자보가 나붙더니 김일성 빈소가 차려졌는가 하면 김의 장례일인 19일엔 애도 플래카드가 내걸렸다. 박 총장 발언이 아니더라도 최근 운동권 학생들의 구호와 유인물 등을 보면 이들이 북한의 대남전략에 놀아나고 또 영합하는 작태를 알 수 있다. 어쩌다 우리 대학생들이 이 꼴이 돼버렸는가.
  이렇게까지 된 데에는 우리 모두에게 책임이 있다. 언론이나 사회 각계에도 책임이 없지 않지만 그중에도 정부의 책임이 무겁다. 북한과 똑같은 주장을 하는 주사파의 동태를 정확히 파악하고 신속히 대처했어야 하는데 그러지를 못했다. 물론 권위주의 시대처럼 정권안보적 수사 태도는 옳지 않지만 문민정부로서 대학을 좀먹고 사회적 안정을 해치는 학생들의 실체를 파헤쳐 엄단했어야 했다.
  그러나 이 문제는 본질적으로 대학 자체가 앞장 서 나서야 한다. 총장과 교수들이 학생들에게 올바른 통일관을 심어주고 우리 사회의 파괴와 분열 작업을 일삼는 북측의 간계를 깨우쳐 주어야 한다. 물론 주사파 학생들이 교수들의 가르침을 얼마나 받아들일 것인지는 의문이다. 그렇지만 교수들은 그 일을 해야 한다. 이미 오염돼 버린 학생은 몰라도 오염 우려가 있는 학생은 구제할 수도 있지 않겠는가.
  일부 운동권 학생들의 시대착오적 성향이 아무리 강하고 교수들의 일깨움이나 설득력이 아무리 약하더라도 이 일은 결국 교수들이 맡아야 하고 또 해결 방법이 없는 것도 아니다. (…)  오늘의 어려운 시기를 당하여 먼저 교수들이 방관자적 자세에서 벗어나 참된 용기와 결단으로 대학의 교육 환경을 바꿀 적극적 자세를 보여야 한다. 북의 지령에 좌우되는 일부 운동권의 행태를 바로잡기 위한 성명서도 발표하고 이 시대에 맞는 북한관과 안보관도 정립, 대학이 나아가야 할 올바른 방향을 우선 제시해야 한다.  

 같은 날짜 동아일보는 31면 기사(「“팩스전화로 북과 운동방향 논의” / 서강대 박홍 총장이 밝히는 주사파 실상 / “남한서 보낸 팩스종이 수북하다” / 김일성대 교수 얘기 북경서 들어 / “공산당 입당 학생 2백∼3백명”」)로으로 전날 박홍의 기자회견 내용을 전했다. 박홍의 ‘이야기’만 있었지 증거는 그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었다. 

 대통령 김영삼은 “주사파를 엄단하겠다”고 밝혔고 한국대학총학생회연합(한총련)은 박홍이 공식적인 사과와 해명을 하지 않으면 검찰에 고소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동아일보는 7월 22일자 사설(「박 총장 발언의 경구」)을 통해 다시 한 번 박홍에게 힘을 실어 주었다. 그의 발언에는 증거가 필요 없다는 주장도 곁들였다. 

  (…) 박 총장의 발언은 한마디로 학생운동권 내부를 잘 아는 지식인이 명예를 걸지 않으면 할 수 없는 결단에 찬 발언이라 할 수 있다. (…) 그동안 학생운동을 주도해온 주사파의 시대착오적 현실 인식과 맹목적 전술전략은 뜻있는 계층의 깊은 우려의 대상이 돼 왔다. (…)  북한 ‘구국의 소리’ 방송을 통해 전략전술을 지령받는 주사파야말로 이제 단호히 배격 색출해야 할 반국가세력이라는 인식이 강화돼 온 것이다. 이러한 시점에서 김일성 사망 이후 애도 문제를 둘러싸고 박 총장 발언이 나온 것은 어쩌면 시대적 요구의 한 표현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사정이 이러하다면 박 총장 발언에 증거와 해명을 요구하는 것은 구차한 일이다. 경찰은 이미 19일 새벽 한양대 총학생회 사무실에서 ‘구국의 소리’ 방송 녹취문을 압수하고, 20일에는 전남대에서 한총련이 산하 각 학생회에 배포한 선전지침서를 압수했다. 이 지침서는 항일무장투쟁과 조국해방투쟁 등 우리 근현대사를 이끈 김일성을 전쟁범죄자·습독재자로 모는 것은 미 CIA와 안기부이며, 한국 전쟁은 엄밀하게는 미국과 한민족 간의 해방전쟁이라는 북한 측 주장을 그대로 복창하고 있다.
  박 총장은 이러한 사정을 양식 있는 지식인의 이름으로 고발했다. 그의 고발 내용의 진위는 검찰의 주사파 수사에서 밝혀질 것이다. 차제에 검찰은 주사파의 정체를 한 점 의혹 없이 밝히기 바란다. 그리고 박 총장을 어떤 신변 위협으로부터도 안전하게 보호해야 한다. 김영삼 대통령도 “정당한 얘기를 한 사람이 위협을 받는 일은 용납될 수 없다”고 말했다. 그를 보호하는 일은 이 사회의 양식과 체제를 보호하는 일이다. 
 

 8월 19일자 동아일보는 인터뷰를 통해 박홍을 다시 불러냈다. 인터뷰에 ‘긴급’을 붙인 회견문의 제목은「“지금은 공권력 결핍시대”」, 부제목은「주사파 실상 관훈토론회 등서 밝힐 용의 / 북 지령 안 받아도 이용당하는 경우 있어」였다. 그는 인터뷰에서 “(특정 야당에 상당수의 주사파가 있다는 발언은) 여야를 막론하고 정계에 자생적 공산주의자나 주사파가 있다는 말이다. 7백50명이라는 수는 각계에 퍼져 있는 주사파를 모두 일컬은 것이다”라고 주장다. 그는 여당 쪽에도 주사파가 있으며 “현직 국회의원 중에 주사파가 있는 것은 확인 못했으나 국회의원 보좌관·비서관등 정가에 상당수가 있으며 이들은 정계 진출을 노리고 있다”는 발언까지 했다. 

 그는 증거 문제와 관련해 “내가 만났던 사람들과 내가 겪은 경험 그리고 대학 총장에 취임한 이후 연구한 결과를 토대로 한 발언이다. 내 앞에서 공산주의자 또는 주사파라고 떳떳이 밝힌 사람들도 많이 만났다. 다만 의사가 히포크라테스 선서를 지키듯이 나도 사제로서의 선서를 지켜야 하기 때문에 사람들을 구체적으로 지목할 수는 없다. 그러나 검찰 조사에서는 그 외의 근거들은 구체적으로 밝히고 있다”고 말했다. 

 동아는 “여야에 주사파 있다”는 박홍의 인터뷰 발언 때문에 정가가 어수선한 분위기에 휩싸여 있다면서, 검찰이 박홍을 조사한 사실을 철저히 숨겨 온 것을 ‘기자의 눈’을 통해 비판하기도 했다. 검찰은 방문 조사를 시인하면서 주사파에 관한 새 자료는 없다고 밝혔다(8월 20일자 1면). 

 하지만 최일남은 동아일보 8월 21일자 칼럼(「7백50명이라는 숫자」)에서“박홍 서강대 총장의 주사파 발언 시리즈는 결국 허망하게 끝나고 말았다”고 선언했다. “호텔로 박 총장을 방문 조사한 사실을 철저히 숨기며 이런저런 구실을 달아 연막을 치던 검찰마저 아무 소득 없이 물러”서지 않았느냐는 것이다. 

  (…) 스스로 의도했건 안 했건 한 달 남짓 이 사회를 들었다 놓듯이 불안하게 몰고 간 주인공의 퇴장 치곤 후유증이 너무 크다. ‘국민의 경각심을 불러일으키기 위해 발설했다’는 말에 상처와 공허가 뻥 뚫린 셈이다. 다른 건 다 그만 두고 도덕적 훼손감이 심하다.
  어떻게 그럴 수 있는가. 대학 총장이자 사제의 신분으로 폭로한 까닭에 한층 무게가 실렸을 것으로 생각한 건 당연했다. 어지간한 사람이 그런 말을 하면 건성으로 들어 넘기기 쉬울 테지만, 박 총장의 위치가 위치인 만큼 충격과 파문이 크게 확산되리라는 예상을 누구나 할 수 있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주목할 사실은 박 총장이 제시한 숫자다. 주사파가 많다 적다를 떠나 똑떨어지게 적시해서 발표한 7백50여명의 의미가 전례 없이 컸다. 숫자는 구체적인 사실의 엄연한 반영이다. 따라서 종교인이나 인문사회 지식인들은 경제나 과학 분야 지식인과는 달리 숫자의 나열에 익숙지 못하다. 하물며 누군가의 인생을 당장 거덜나게 만들지도 모를 사안을 두고 세 자리 숫자로 정확히 표현하다니 감히 상상하기 어렵다. 그런데도 박 총장은 대뜸 그렇게 꼽았다. 그만한 단정을 서슴없이 내릴 때는 나중에 뒷감당을 하고도 남을 만한 자료를 쥐고 있겠거니 여기는 게 상식이다. 이번 주사파 파동의 ‘매력’ 포인트가 여기 있다.
  한데 공안 수사의 전문가들에게조차 금시초문 수준의 정보 수집력을 가졌는지 모른다고 짐작했던 ‘슬픈 호기심’은 깨끗이 무산되었다. 주변에서 들은 얘기나 유인물이 증거의 대부분이며, 그중에는 고해성사를 통해 알게 된 것도 있다고 했다. (…) 의사가 히포크라테스 선서를 지키듯이 사제로서의 선서를 지켜야 하기 때문에, 증언해 준 사람들을 구체적으로 지목할 수 없다는 말에 동의한다. 마땅한 일이다. 하지만 정치인·언론인·종교인 가운데 이 정도의 주사파가 있다는 막연한 지적에 상당히 구체적으로 피해를 본 쪽에 대해 무슨 말이 있기는 있어야 할 차례다. (…)

 주사파 소리는 한 십년 전부터 슬슬 등장했으며 그들은 운동권 안에서조차 공안 한파의 빌미를 제공한다는 측면이나 국민 대중의 현실 인식과 너무 동떨어진다는 점에서 환영받지 못했다. 그러므로 대학 총장이 주사파를 토스하듯 뒤늦게 띄워 올리자 공안당국이 이를 재빨리 치는 형식은 바람직스럽지 않다. 불법은 법에 맡기고 총장은 제자를 상대로 최대한 토론하고 확립된 권위로 다스려야 총장답다. 그런 모습이 아름답다. 유신 시절 이래 그처럼 용기 있는 총장이 드물었다. 관의 입김을 쐰 집회의 결의문에 눈도장이나 찍는 총장님이 적지 않았다. 

 이 칼럼이 예상한 대로 박홍의 ‘주사파 발언’에 대한 역풍이 일기 시작했다. 민주당은 박홍의 발언을 공안 정국에 이용하고 있다며 검찰총장 퇴진을 요구하기도 했다. 하지만 전·현직 방송인들의 모임인 ‘여의도클럽’ 토론회에서 “주사파 발언 관련 곧 입장 표명/ 정치권 파문 초래 책임지겠다”(21일자 2면)던 박홍은 정작 25일 ‘여의도클럽’ 토론회에서 “87년부터 7년 동안 대학이 배출한 주사파를 1만5천명에서 3만명 정도로 추정하는 사람도 있다”며 “이 학생들이 졸업 후 언론·교육·사회봉사계 등에 진출하고 특히 정계로 많이 들어갔다. 학생회장이 주사파면 통상적으로 간부들도 주사파로 봐야 하지 않겠느냐. 정확한 통계는 없지만 이는 이 기간 동안 총학생회장을 맡은 5백51명과 부회장 등을 합치고 학교별로 20~30명씩 잡아 나온 숫자”라고 주장함으로써 계속 파문을 키웠다.

 8월 26일자 동아일보는 1면 기사(「“주사파 1만5천∼3만명 설도” 박홍 총장 / 87∼94년 대학 학생회 간부 거의 포함 / 여의도클럽 토론회서 밝혀」)에서 박홍의 발언 내용을 비중 있게 전하면서 그가 “학생들의 민주화운동 과정에서 일부 학생들이 80년대 후반 들어 자유민주화운동의 수준을 넘어서 이미 용도 폐기된 사회주의 사상에 깊이 빠져든 것을 보고 교육계에 몸 담고 있는 사람으로서 우리 사회와 학생들에게 경각심을 불러일으키기 위해 이 같은 발언들을 하게 됐다고 밝혔다”고 보도했다. 이에 대해 민주당 대변인 박지원은 “구체적 증거와 사실을 명시하지 못한 채 무책임한 발언을 계속한 것은 대단히 잘못된 일”이라고 비판하면서 박홍 발언의 진위를 조기에 규명하지 않은 검찰총장 등 책임자의 문책 해임을 정부에 거듭 요구했다.  

 동아일보사 고문 박권상은 27일자 ‘동아시론’(「말을 아껴 써야 한다」)에서 “정부나 사회 지도층이 사려 없이 마구 하는 말과 말의 감정 대결이 얼마나 국민을 분열시키고 나라를 뒤흔들고 있는지 헤아릴 길이 없다”면서 ‘북핵 문제’에서 “외교안보를 다루는 정부 고위층에 이견 불화가 있고 그런 견해 차가 거침없이 언론에 공표된 것은 이해할 수 없다”고 개탄하면서 ‘박홍 파문’을 언급했다. 

  (…) 이번 사건에서 새삼스레 느낀 것이지만, 누구나 책임 있는 사람들은 말을 삼가고 아껴 써야겠다는 것이다. 특히 고위 정책수립자들은 공개 발언에 신중을 기하고 그런 발언이 빚어내는 결과의 중요성을 미리 헤아려야 한다. 학자 아닌 정치가의 통찰력이다.
  이 점은 비단 대통령이나 각료 등 정부지도자에 국한된 일이 아니다. 미치는 영향력의 차이는 있지만 국회의원이나 고급관리, 그리고 기타 사회지도층 인사에도 해당된다. 예컨대 박홍 서강대 총장의 잇따른 주사파 발언은 친북한 파괴 세력의 발호를 경계하려는 충정으로 이해, 인정한다. 기차를 멎게 하고 경찰관서를 습격하는 그런 폭력분자는 엄한 법의 제재를 받아야 한다. 그러나 구체적 증거 제시 없이 각계에 7백50명의 주사파가 침투되어 지방선거에 나설 채비를 하고 있다는 따위의 발언으로 세상을 시끄럽게 하는 것이 과연 온당하고 사려있는 언동이었는지 깊이 헤아릴 일이다. (…)
  지금은 시야가 매우 혼미스러운 불확실성의 변동기다. 이럴 때일수록 책임있는 사람들의 말은 신중하여야 하고 지혜롭고 냉철해야 한다. 자유의 이름 아래 무책임한 말을 함부로 하고 말의 싸움판이 확대 재생산되어 행여 ‘말만 하다 망한 조국’ 꼴이 되지 않을는지. 그렇게까지는 되지 않겠지만 적어도 자유로운 발언의 가치에 대한 국민적 회의를 불러일으킬 수 있지 않을까 우려된다. 

 독자들은 신문 제작 과정에서 한 발 비켜 서있는 이들의 칼럼을 통해 이런 소리들을 듣는 것보다는 동아일보의 일선 언론인들 자체가 처음부터 박홍을 더 강하게 내 주기를 바랐을 것이다. 더구나 때가 너무 늦었다. 박홍이 일으킨 매카시즘의 광풍은 이미 한바탕 나라를 휘저어, 국내 정치·사회 상황을 비정상적·비이성적인 상태로 만들어 놓았다. 
 

관리자 freemediaf@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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