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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중 정권을 위기에 빠뜨린 ‘옷 로비 사건’

- 동아일보 대해부 5권 - 3장

기사승인 2023.05.17  22:59: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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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민의 정부가 출범한 지 1년 3개월 만인 1999년 5월 25일 보수언론의 촉수에 김대중 정권을 공격하기에 딱 좋은 소재가 걸려들었다. 김대중은 5월 24일 제2기 내각을 구성하면서 검찰총장 김태정을 법무부장관에 임명했는데, 바로 그 이튿날 정권을 위기에 빠뜨리게 되는 ‘옷 로비 사건’이 터진 것이었다.


 ‘야, 잘 터졌다··· 여, 웬 날벼락’

 동아일보 1999년 5월 26일자 1면에는 「고위층 부인에 고급 옷 / 최순영 씨 부인 로비설」이라는 기사가 실렸다. 

  한나라당은 25일 최순영 신동아그룹 회장 부인 이형자 씨가 장관 등 현  정부 고위층 인사의 부인들을 상대로 값 비싼 옷을 선물하며 남편 구명 로비를 했다는 의혹을 제기하고 나섰다.
  한나라당은 이날 총재단 주요 당직자 연석회의를 열어 최 회장 부인의 로비 의혹 실체 규명 방안을 논의하기 위해 26일 긴급 의원총회를 소집하기로 결정했다. (·····)
  이부영 원내총무는 이날 “최 회장 부인이 고급의상실에서 1억원어치의 의상을 사서 대통령 부인을 비롯한 각부 장관 부인들에게 상납했다는 일부 보도가 있다”며 이런 얘기로만 그치지 않는 심각한 얘기들이 있다고 볼 수 있으므로 국회 활동을 통해 현 정권 핵심 실세들의 부정부패 비리 의혹을 밝혀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이 기사 밑에는 「지난 1월 관련자들 내사 / 청와대 ‘혐의 없어 종결’」이라는 기사가 나와 있다. 그리고 5면 머리에는 「야 ‘잘 터졌다’···여 ‘웬 날벼락」이라는 제목으로 정치권의 반응이 보도되었다. 

 같은 날짜 5면 사설(「재벌·장관 부인 ‘옷 뇌물’ 의혹」)은 아래와 같다.

  “장관 도지사 국회의원은 집안에 돈을 쌓아두고, 그것도 모자라 권세와 명예를 누리며, 가족 사랑은 남달라서 부인은 과소비로 달래주고, 귀여운 자식은 군대 안 보내는데···.”
  얼마 전 관가에 나돌았던 ‘괴문서’의 한 구절이다. 일선 공무원이 장관 등 고위 공직자들에 대한 원망과 비판, 냉소를 쏟아낸 것으로 보이는 이 ‘괴문서’에 대해 우리는 착잡함과 동시에 큰 우려를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비록 일부 ‘힘 있는 자들’의 행태가 그렇게 비칠지언정 고위 공직자들의 도덕성을 확실한 증거도 없이 한 목에 싸잡아 매도하는 것은 사회적 불신을 조장할 위험성이 크기 때문이다.
  그런 터에 들려오는 재벌회장 부인과 장관 부인들의 ‘옷 거래 의혹’은 우리를 실로 당혹스럽게 한다. 외화 해외 도피 혐의로 구속된 처지의  한 재벌 회장 부인이 현직 장관 부인들에게 한 벌에 수백만~수천만 원씩 하는 고급 의상을 선물하며 남편의 구명운동을 벌였다는 것인데, 당사자인 장관 부인들은 물론 이미 조사를 했다는 청와대 측도 사실무근이라고 부인하고 있으니 현재로서는 그 진상이 어떤지 잘라 말하기 어렵다. 
  그러나 이번 ‘추악한 거래 소문’의 와중에서 여러 장관 부인들이 떼 지어 강남의 고급 옷가게를 들락거린 것이 사실로 밝혀졌고, 심지어 한 장관급 인사의 부인은 “재벌 총수 부인들이 장관급 이상 부인들에게 옷 등을 선물하는 것은 관례”라는 말까지 했다고 한다. 드러난 사실만으로도 도덕불감증의 극치요, 지탄받아 마땅한 행태이다. (·····)
  ‘국민의 정부’는 국민의 신뢰를 바탕으로 했을 때만 존재할 수 있다. 국민의 신뢰를 잃으면 개혁도, 제2건국운동도, 정권 재창출도 허사일 수밖에 없다. 그렇잖아도 국민은 지금 이 정부가 내년 총선을 앞두고 개혁을 지속하느냐 마느냐의 기로에 서 있다고 보고 있다. 그런 점에서도 정부는 이번 ‘장관 부인 옷 거래’의 진상을 철저히 밝혀야 할 것이다. 어물어물 덮으려 한다면 민심이 등을 돌릴 것이다. 

 동아일보는 5월 28일자에도 ‘옷 로비 의혹’에 관한 사설(「정치 공방 아닌 진실 규명을」)을 실었다.
 
  도대체 누구 말이 옳단 말인가. 최순영 신동아그룹 회장 부인 이형자 씨가 장관 부인들을 상대로 벌였다는 ‘옷 로비 의혹’ 관련자들의 말이 서로 달라 이 사건을 보고 듣는 일반 국민은 헷갈리다 못해 분통이 터질 판이다. 옷을 거래했다는 재벌 회장 부인과 장관 부인들 간의 말만 다른 게 아니다. 이미 내사를 종결했다는 청와대 측의 말과 검찰 관계자, 심지어 옷가게 주인의 말까지 제각각이다. 
  (···) 옷값에서부터 옷을 구입했다는 시점, 장소에 이르기까지 관계자들의 말을 들어보면 일치하는 부분이 거의 없을 정도다. 
  그런데도 청와대 측은 내사 결과 사실무근으로 밝혀졌다고 김대중 대통령에게 보고했고, 김 대통령은 엊그제 신임 장차관급에게 임명장을 주는 자리에서 공직자 부인들이 몸가짐에 조심하라고 당부했다. 그러나 이미 국민적 의혹을 받고 있는 이번 일이 대통령이 당부하는 선에서 마무리 될 수는 없다는 게 우리의 생각이다. 우선 청와대 측은 사실무근이라는 내사 내용을 공개해야 한다. 그리고 검찰은 의혹이 불거진 만큼 별도 수사로 사실 관계를 철저히 밝혀내야 한다. 피해자 측의 고소가 있어야 한다면 그렇게 하도록 해야 한다. 관련 장관 부인들은 정말 억울하다면 상대방을 정식으로 고소, 진실을 규명하는 데 앞장서야 한다. 이번 의혹은 몇몇 장관 부인들만의 문제가 아니라 현 정부의 도덕성과 직결되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 여야가 나서서 정치 공방을 벌이는 것은 오히려 사실을 밝히는 데 장애가 될 수 있다. 더구나 여당 측이 맞대응을 한답시고 야당 쪽의 누구누구 부인도 어느 옷가게에 가 얼마치의 옷을 샀다면서 실명까지 거론하는 것은 정치사찰의 의혹을 낳을 수 있다. 사찰을 안 하고서야 야당 인사 부인들이 옷가게 가는 것까지 어떻게 알 수 있단 말인가. 그렇다고 야당인 한나라당 측이 떼 지어 청와대 앞으로 몰려가 소리를 질러대는 것도 볼썽 사납다. 이번 의혹은 정치적으로 떠든다고 풀릴 일이 아니다. 누구 말이 옳은지 사실을 밝혀내야 한다.


 ‘옷 로비 사건’ 관련 사설 한 주 내내 계속 

 동아일보는 5월 29일자부터 6월 4일자까지 6일 동안(일요일인 5월 30일자 제외) ‘옷 로비 사건’에 관한 사설을 무려 아홉 편이나 내보냈다(하루 두 편을 낸 적도 사흘). 날마다 김대중 정권에 대해 십자포화를 퍼부은 것이었다. 그 사설들 가운데서 주요한 내용을 간추려 보겠다.

  「김 대통령 ‘빨간 등’ 보아야 」(5월 29일자)

  민심이 크게 흔들리고 있다. 재벌 회장 부인과 장관 부인들 간 ‘옷 로비    의혹’에서 보이는 고위층의 부도덕성과 ‘3·30 재보선 50억 사용설’ 등이 맞   물리면서 국민은 이제 ‘국민의 정부’임을 내세우는 현 정권의 정체성과 도덕성에 심각한 의문을 품기 시작했다. 이 정권이 외치는 개혁은 무엇인지, 과연 그들에게 개혁을 주도할 만한 자격이 있는 것인지, 이대로 가다가는 ‘IMF 위기’보다 더한 ‘제2의 위기’가 오는 것은 아닌지 의구심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이러한 의문과 불안을 증폭시킨 가장 큰 이유는 그동안 불거져온 권력 내부의 여러 위험 징후에 대해 정부 여당이 한결같이 ‘눈 가리고 아옹 식’ 대증요법이나 우선 덮고 보자는 미봉책으로 일관한 데 있다. (·····)
  검찰이 수사에 나선 이상 우리는 김태정 장관의 거취에 주목할 수밖에 없다. 법리를 떠나 고소 당사자의 남편이 검찰의 최고 지휘감독자인 법무장관 자리에 그냥 앉아 있는 것은 모양이 이상하다. 더구나 김 장관은 검찰총장 재임 시 검찰의 정치적 중립 문제와 관련, 탄핵소추까지 받을 뻔한 인물로 그의 입각은 아직도 여론의 비난 대상이다. (·····)
  지금까지 이 정부는 밖으로만 개혁을 요구해왔다. 그러나 이제는 권력 내부 개혁으로 눈을 돌려야 한다. 구조화된 대량 실업과 심화되는 빈부 양극화 속에 되풀이되는 ‘위기 극복의 노래’는 민심이 돌아설 경우 리더십에 대한 총체적 불신으로 변할지 모른다. 김대중 대통령은 더 늦기 전에 ‘권력 내부에 켜진 빨간 등’을 보아야 한다. 권력 내부의 개혁 없이는 민심 수습도 어렵다. 

  「수사 기밀이 부인 통해 샜다?」(5월 31일자)

  나라 안을 온통 뒤집어놓다시피 한 재벌 회장 부인·장관 부인들 간 ‘옷 로비 의혹’에 대한 검찰 수사 결과가 이번 주 초 발표될 예정이다. 애초 수사 착수에 미온적이던 검찰이 여론의 비난과 러시아를 방문 중인 김대중 대통령의 엄정 수사 지시에 ‘초특급 수사’로 돌아선 것이다. 이는 현 정권의 도덕성 문제로까지 비화되는 파문을 가능한 한 빨리 가라앉히려는 의도로 보인다. 또 눈앞의 6·3 재선거에서 여당 측에 미칠 악영향도 고려됐음직하다. (·····)
  이번 사건에서 특히 우리가 주목하는 부분은 김 장관 부인 연 씨가 남편이 검찰총장 재임 시 수사 중이던 신동아그룹 최 회장의 구속을 사전에 알고 그것을 주위에 흘렸다는 사실이다. 이에 대해 연 씨는 부인하고 있으나 이 사건을 내사한 이른바 ‘사직동팀’(경찰청 조사과) 팀장 최광식 총경은 야당 의원들에게 그런 사실이 있다고 증언했다. 한마디로 검찰총장 남편이 아내에게 수사 기밀을 누설한 셈인데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는지 납득하기 어렵다. 검찰은 이 부분도 명확히 밝혀야 할 것이다. 

  「바닥 민심 읽어야」(6월 1일자)

  김태정 법무부장관의 거취가 물러나는 쪽으로 가닥이 잡혀가는 것 같다. 김대중 대통령이 오늘 러시아·몽골 순방에서 귀국하는 대로 김 장관의 사퇴 여부가 판가름날 것으로 보인다. (·····)
  청와대와 정부 여당 일부에서는 김 장관이 입각한 지 일주일밖에 안 된 지금 물러난다면 임명권자인 김 대통령의 통치권에 누가 된다며 반대한다고 하지만, 이는 나무만 보고 숲은 보지 못하는 단견이라 아니 할 수 없다. 숲은 바로 현 정권에 실망하고 등을 돌리는 민심이 아닌가. (·····)
  (···) 첫 단추를 잘못 끼우게 된 근본 요인은 현 정권이 언제부터인지 민심의 동향에 눈을 돌리지 않는 독선과 오만에 빠져온 데 있다고 본다. 그들은 걸핏하면 자신들에 대한 비판에 대해서는 ‘반개혁’이요, ‘수구적 기득권 세력의 저항’이라고 몰아세웠다. 이번 ‘옷 로비 의혹’ 관련 언론 보도에 대해서도 ‘마녀 사냥 식 여론 몰이’라고 보는 식이라면 현실을 몰라도 너무 모르는 것이다.

  「‘만장일치’ 지지였다니···」(6월 2일자)

  러시아·몽골 순방을 마치고 어제 오후 귀국한 김대중 대통령은 빠른 시일 내에 ‘옷 로비 의혹 사건’으로 빚어진 민심 이반을 추스르고 국정을 쇄신하기 위한 고단위 수습책을 밝힐 것으로 전해졌다. (·····)
  김 대통령은 ‘옷 로비 의혹 사건’ 고소 당사자의 남편인 김태정 법무장관에 대한 퇴진 여론이 높다는 지적에 대해 “여론조사 결과도 보고받았는데 (언론 보도와) 차이가 있다. 지금은 어떤 선입견을 말하지 않는 게 좋겠다”고 답했다. (···) 김 대통령이 그 여론조사 결과에만 집착한 나머지 다른 여론을 의식적으로 외면하려 하거나, 언론 보도를 ‘마냐 사냥 식 여론 몰이’쯤으로 생각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걱정스러울 뿐이다.
  김 대통령은 김 장관이 임명 과정에서부터 (검찰총장 재직 시 평검사들의) 항명 파동 등 여러 문제점이 있었지 않았느냐는 물음에 대해서는 “검찰에서 일부 말썽이 있었으나 막판에 (김 총장을) 만장일치로 지지 결의했었다”고 말했다. 그러나 김 대통령이 말한 ‘지지 결의’의 실상은 2월의 ‘검란(檢亂)’ 당시 검찰 수뇌부와 평검사들이 ‘수뇌부 용퇴’ 등을 놓고 11시간의 마라톤회의 끝에 평검사들이 일단 수뇌부의 검찰 개혁 약속을 지켜보기로 잠정 합의한 것에 불과하다. 이를 발표문 형식만 보고 당시 검찰총장에 대한 평검사들의 ‘지지 결의’로 받아들였다면 이는 사실을 잘못 인식한 것이라고 할 수밖에 없다.

  「민심은 왜 떠났는가」(6월 3일자)

  검찰이 발표한 수사 결과대로라고 하면 그동안 온 나라 안을 시끄럽게 한 ‘옷 로비’ 의혹 사건은 몇몇 고위층 ‘사모님들’이 철없이 저지른 ‘실체도 불분명한 실패한 로비’에 지나지 않는다. 한마디로 별일도 아닌 것을 언론이 ‘마냐 사냥 식 여론 몰이’로 부풀려 민심만 흉흉하게 만들었다는 식이다. 당연히 ‘죄 없는 법무부장관’이 자리를 물러나서는 안 된다. 과연 그런가. 
  김대중 대통령과 이 정부가 정말 그렇게 보고 있다면 그것은 ‘옷 로비 의혹’ 따위에는 견줄 수도 없을 정도의 심각한 문제라고 아니 할 수 없다. 이번 사건의 본질은 단순히 어느 장관 부인이 옷을 받고 말고의 문제가 아니다. 민심이 분노하는 것은 도덕성과 개혁을 앞세우는 정부의 고위층이 보인 전형적인 도덕적 해이에 있다. (·····)
  민심이 떠나게 된 것은 비단 이번 ‘장관 사모님들 행태’ 때문만은 아니다. 여론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관 주도로 밀어붙이는 ‘제2건국운동’을 비롯해 ‘고관 집 절도 사건’에서 드러난 고위층의 모습, 그리고 말뿐인 정치개혁의 뒷전에서 벌어진 ‘돈 선거’와 그에 대한 수사조차 미적거리고 있는 검찰 등등, 50년만의 여야 정권교체를 이루었다는 이 정부에 대한 기대와 믿음이 차츰 실망과 배신감으로 변하면서 민심이 돌아선 것이다.

  「성난 민심 바로 보라」(6월 4일자)

  어제 실시된 서울 송파갑과 인천 계양·강화갑 재선거에서 한나라당 후보가 모두 승리했다. 그것도 두 곳 모두 압승이다. (···) 이 같은 재선거 결과는 바로 공동정권의 국정 운영에 대한 중간평가로 봐도 무방할 것이다. 특히 최근 물의를 일으킨 ‘옷 로비’ 의혹 사건과 김태정 법무장관의 거취 문제, 그리고 지난 3·30 재보선의 부정선거 등이 유권자들의 표심에 상당한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는 분석이다. 바로 현 정부와 여권에 대한 준엄한 심판인 셈이다. (·····)
  (···) 한때 김대중 대통령을 위해 앞장섰거나 비판적 지지를 보냈던 50여 시민단체들까지도 “현 정부가 개혁을 외면할 경우 반정부투쟁으로 나갈 수밖에 없다”고 성명을 내는가 하면 거리로 나와 김 법무장관에 대한 퇴진 요구가 압도적이다. ‘옷 로비’ 사건 수사는 특정인을 봐주기 위한 꿰맞추기 수사였다는 의견이 절대 다수다. 이처럼 민심의 향배는 누가 보아도 분명한데 유독 정부만 이를 모른 체 등을 돌리고 있으니 참으로 답답한 노릇이다. 
  우선 김 대통령이 마음을 열어야 한다. 비록 귀에 거슬리는 소리라도 겸허하게 받아들이는 자세가 필요하다. 자신의 개혁 방향만이 옳다고 생각하면 국민의 소리를 들을 수 없다. 최근의 사태에 대한 김 대통령의 판단과 여권 내의 움직임을 보면 이미 오만과 독선의 징후가 엿보인다.


 ‘옷 로비’ 청문회와 특검

 1999년 6월 3일자 동아일보 1면에는 ‘옷 로비’ 사건에 관한 두 건의 기사가 실렸다. 첫 번째는 「김태정 법무 유임」이다.

  김대중 대통령은 ‘고급 옷 로비 의혹 사건’과 관련해 퇴진 압력을 받던 김태정 법무부장관을 유임시키는 한편 공직 기강 확립, 여야 대화 복원, 정치개혁 추진 등 광범위한 시국 수습 방안 마련에 나섰다. 
  김 대통령은 2일 ‘고급 옷 로비 의혹 사건’에 대한 검찰의 수사 결과 발표 직후 김 법무장관에게 “흔들림 없이 직무를 성실히 수행하라”고 지시했다. 
  이에 대해 박준영 대통령공보수석비서관은 “김 대통령의 결정은 이번 사건과 관련해 잘못이 있으면 엄중 문책하겠지만 그렇지 않을 경우 여론 몰이에 따른 인사를 해서는 안 된다는 입장에 따른 것”이라고 설명했다.

 두 번째 기사는 「“배 씨 대납 요구 미수” 결론」이다.

  ‘고급 옷 로비 의혹’ 사건을 수사해온 검찰은 수사 결과 강인덕 전 통일부장관의 부인 배정숙(61) 씨가 최순영 신동아 회장의 구명을 위한 로비 명목으로 최 회장의 부인 이형자(55) 씨에게 옷값 대납을 요구하다 미수에 그친 ‘실패한 로비 사건’으로 드러났다고 발표했다.
  서울지검 특수2부(김인호 부장검사)는 2일 오전 이 같은 내용의 수사 결과를 발표, 배 씨를 변호사법 위반 혐의로 불구속입건하고 수사 착수 6일만에 수사를 종결했다.  

  
 검찰의 수사 결과에 아랑곳하지 않고 한나라당과 보수언론이 ‘옷 로비’ 의혹을 끈질기게 정치적 논란으로 몰고 가는 가운데 8월 23일부터 25일까지 국회 법사위에서 그 사건에 관한 청문회가 열렸다.

  23일 강인덕 전 통일부장관의 부인 배정숙 씨가 출석한 청문회에서 ‘고급 옷 로비 의혹 사건’에 대통령 부인 이희호 여사의 연루 사실 여부를 둘러싸고 여야 간 공방이 뜨거웠다. 
  먼저 한나라당 안상수 의원이 불을 질렀다.
  안 의원은 질의가 끝날 무렵 “라스포사 의상실의 정일순 사장이 ‘이 옷이 청와대에 들어간다’고 과시한 일이 있느냐”고 배 씨에게 따져 물었다.
  이에 대해 “들은 적이 있다”고 말한 배 씨는 옆자리에 앉은 박태범 변호사와 숙의한 뒤 “정 사장이 지난번에 ‘(영부인이 TV에) 나갔을 때 입은 옷이 이 디자인’이라고 말한 적이 있다”고 덧붙였다. 안 의원은 또 최순영 신동아그룹 회장 부인 이형자 씨가 최 회장의 선처를 부탁하는 편지를 이 여사에게 전해달라며 정 사장에게 부탁한 사실을 아느냐고 캐물었다.
  한나라당 의원들의 질의가 끝나자마자 국민회의 의원들은 ‘불 끄기’에 나섰다.
  국민회의 조찬형 의원은 “청와대와 영부인을 거론하는 것은 본건과 다르며 의제 외 발언”이라고 반격에 나섰다. 한영애 의원도 “영부인은 20년 동안 남대문시장에서 옷을 사 입은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며 “이런 식으로 비싼 옷을 사 입었다고 몰아가는 것은 국민의 알 권리를 오도하는 것”이라고 이 여사를 엄호했다. 

 대통령 부인 이희호까지 끌어들이는 과격한 논란으로 번진 청문회가 이렇다 할 결론 없이 끝나게 되자  동아일보는 8월 25일자 5면에 「결국 특별검사가 밝혀야」라는 사설을 내보냈다.

  (···) 청문회에서는 증인들이 서로 엇갈리는 주장을 함으로써 이번 국회 조사가 진실 규명에 접근하기보다 오히려 혼란스럽게 만드는 결과를 빚었다. 이런 식으로 오늘 청문회가 끝난다면 사건의 실체는 묻혀버리고 말 것이다. 그렇게 되면 의혹은 더욱 커질 수밖에 없다. 따라서 검찰과 경찰은 국회가 요구한 사직동팀 내사 기록과 검찰 수사 기록을 제출해 진상 규명에 협조해야 마땅하다. 검경은 제출 거부 이유로 수사 기록에 거론된 사람들의 사생활 침해나 재판에 대한 영향을 내세우고 있지만 이미 관련자들이 청문회에 나와 증언하고 있는 마당에 그것은 설득력이 약하다. (·····)
  국회 청문회는 짧은 일정과 증인의 제한, 의원들의 준비 부족 등 때문에 진상 규명에 한계가 있음을 실감케 한다. (···) 이번 청문회는 비록 진실 규명에는 별로 성과가 없었지만 마치 물에 잠긴 빙산처럼 의혹의 큰 덩어리는 분명히 잠복해 있다는 심증을 국민에게 심어줬다고 생각한다. 권력 주변에 잠겨 있는 이 의혹의 덩어리를 깨는 길은 특별검사제를 조속히 도입해 사건을 전면 재수사하는 것뿐이다.

 10월 19일 ‘옷 로비 의혹’ 사건에 관한 특검이 구성되었다. 대통령이 임명한 특별검사 최병모는 두 달 동안 조사한 결과를 12월 20일 발표했다. 동아일보는 12월 21일자 1면 머리에 ‘옷 특검 수사 결과’를 보도했다.

  ‘옷 로비 의혹’ 사건은 최순영 신동아그룹 회장 부인 이형자 씨가 라스포사 사장 정일순 씨를 통해 김태정 전 법무부장관 부인 연정희 씨를 상대로 로비를 시도했다가 남편의 구속 방침을 전해 듣고 포기한 것이지만 당사자들의 거짓말이 겹치면서 점차 확대된 것으로 밝혀졌다. 
  경찰청 조사과(사직동팀)는 이 사건을 내사하면서 연 씨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성급하게 사건의 결론을 내리고 일부 기록을 누락했으며 검찰도 압수수색이나 계좌 추적 등을 불충분하게 하고 수사 기간을 짧게 한정하는 등 수사의 공정성과 수사 방법에 문제가 있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동아일보는 12월 22일자 5면에 특검의 수사 결과를 평가하는 사설(「밍크코트 5벌은 어디 있나」)을 실었다.

  최병모 특별검사팀의 옷 로비 의혹 사건 수사 결과는 상당한 성공작이다. 김태정 전 검찰총장과 박주선 전 청와대 법무비서관의 축소·은폐·조작 혐의와 김 전 총장 부인 연정희 씨 등의 위증 혐의를 캐낸 것은 평가할 만하다. 특검제가 아니었더라면 그냥 묻히고 말았을지도 모를 여러 ‘의혹’을 ‘사실’ 차원으로 끌어올린 셈이다.
  그러나 특검의 성과는 ‘미완의 성공’이다. 그 원인은 특검팀의 수사 능력에서가 아니라 최 특검과 양인석 특검보가 실토했듯이 수사 대상과 수사 권한의 제한, 수사 내용의 중간 공표 금지 등 제도적 측면에서 찾아야 할 것이다. 어쨌든 이제 더 이상의 진상 규명은 검찰에 다시 맡겨졌다. (···)
  우선 의상실 라스포사가 확보했던 밍크코트 8벌 가운데 사라진 5벌의 행방을 찾아야 한다. 공급업자에게 반납했다는 정일순 씨의 주장에도 불구하고 신동아그룹 로비용으로 고위 공직자 부인들에게 갔을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
  국회 청문회에서의 연 씨 등의 위증과 함께 일부 국민회의 소속 의원들의 ‘특정 증인 감싸기’에 대해서도 책임을 따지지 않을 수 없다. 청문회는 여야를 떠나 실체적 진실에 접근하기 위한 국회 차원의 법적 절차다. 그렇다면 진실을 규명하는 데 여야의 힘을 모으는 것이 도리다. 그러나 일부 의원은 ‘정권에 대한 충성’에 눈이 어두워 노골적으로 이를 방해하고 위증을 부채질하는 작태마저 보였다. 유권자들이 그 정치적 책임을 엄중히 묻겠지만 국회 스스로 문책을 논의해야 마땅하다.

 1999년 5월 25일 언론에 보도되기 시작한 ‘옷 로비’ 사건은 12월 21일 특검이 조사 결과를 발표하기까지 7개월 가까이 김대중 정권을 진흙탕에 빠뜨렸다. 동아일보를 비롯한 보수언론은 박정희·전두환·노태우 정권 시기에 일어난 대형 부정이나 비리를 눈 감아주거나 축소하던 것과는 달리 ‘옷 로비’ 의혹에 대해서는 가차없이 융단폭격을 퍼부었다. 

 대통령 김대중이 그 사건에 안이하게 대처한 것도 명백한 잘못이었다. 그렇다 하더라도 ‘실패한 로비’와 일부 고위 공직자 부인들의 행태를 빌미로 정권 전체를 나락으로 몰고 가려 한 한나라당과 보수언론은 결국 대한민국 역사상 처음으로 평화적 정권 교체를 이루고 들어선 국민의 정부에 치명상을 입힘으로써 김대중을 일찌감치 레임덕 직전 상태에 빠뜨리는 데 ‘성공’했다. 
 그로부터 9년 뒤인 2008년 2월 25일 17대 대통령으로 취임한 이명박과 친인척, 그리고 측근 세력이 저지른 이루 셀 수 없이 많은 부정과 비리에 대해 동아일보가 보인 ‘관대함’과 ‘아량’을 보면 김대중 정권 때의 ‘옷 로비 의혹’에 대한 무차별 공격이 얼마나 편파적인 것이었는지를 여실히 알 수 있다.


 

관리자 freemediaf@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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