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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천지와 KKK 닮은 점(4) 세 여자

- [귀신 씻나락 까먹는 소리(642)] 이승호 동화작가

기사승인 2020.03.23  17:3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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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first wave of the WKKK began in the mid-1860s.

 

(1) 신천지 여성 3인방

세간에서는 이만희에게 중요한 ‘세 여인’이 있다고 수군거린다. 이만희의 본처 유천순, 이만희와 사실혼 관계였으며 2인자로 불렸던 전 신천지 교인 김남희, 그리고 엊그제 대중 앞에 얼굴을 드러낸 이름 모를 여성 등이 그들이다.
 

유천순

유천순은 조강지처다. 한시절 이만희와 함께 큰 고생을 했다. 그녀와 관련된 에피소드들을 보면 호락호락한 분이 아니다. 옛날에 시한부 종말론에 빠져 교주의 ‘천국이 이뤄지는 날’을 맞아 남편 이만희와 함께 대기 중이었는데.... 젠장, 그날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단다. 화가 난 그녀는 교주에게 달려들어 크게 몸싸움을 벌였다는 얘기가 전해져 내려온다. 대단하시다.
 

▲유천순, 김남희, 베일속여성(좌로부터)

 

김남희

한때 신천지 2인자로 불리던 분이다. 전 세계여성평화그룹 대표를 지냈을 정도로 실세였다. 신천지 탈퇴와 함께 요즘 이만희를 열심히 디스하고 있다.
 

장막 저쪽의 그녀

얼마 전 이만희가 가평에서 기자회견 할 때 옆에서 보필하던 여성이다. 그녀의 역할이 보통 아니었다. 기자들의 질문공세를 적절히 처리하는 솜씨가 여간 아니었다. 본처의 총애를 받는 신세대로 알려져 있다.
 

▲무섭쥬?


 

(2) WKKK의 여성 3인방
 

제임스 챔버스, 로지 채플

1860년대 중반에 여성들이 주도하는 WKKK(Women of the Ku Klux Klan, also known as Women's Ku Klux Klan)가 등장했다. 설립을 주도한 두 여자가 있었으니 제임스 챔버스와 로지 채플이었다.

당시 WKKK 단원들은 남성단원들의 뒷바라지에 치중했다. 남편이나 남친의 KKK 가장복(假裝服)을 만들어주는 따위의 허름한 역할을 했다. 남성단원들은 여성단원들을 백인우월성의 증거와 상징으로도 이용했다. 백인여성이 인종적-성적으로 가장 우월하다! 이 두 거물여성에 대한 자료와 사진은 찾지 못했다.
 

매리 엘리자베드 타일러

1920년대 들어 여성단원의 수가 급격히 증가한다. 이 시기에 WKKK는 아칸소 리틀록 지역에 근거지를 두고 활동했는데 단원수가 무려 50만 명이 이르렀다.

이 시기 두각을 나타낸 여자가 매리 엘리자베드 타일러다. 이 여인에 관한 자료는 얼마간 남아있다. 지난 회에 소개한 바 있으므로 본문에서는 생략한다. 
 

▲신문에 난 Women of the Ku Klux Klan.

 

(신천지 여성 3인방)
 

유천순

이만희가 경기도 소사 신앙촌에서 벽돌을 구우며 살 때 고생을 바가지로 했다. 이만희가 시한부 종말론을 주장하던 사이비 종교인 백만봉을 추종할 당시의 에피소드. 백만봉은 1980년 3월 13일 정오 12시를 기해 ‘천국이 이루어진다’고 주장. 이만희-유천순 부부도 다른 신자들과 함께 과천 경마장 앞산에 천막을 치고 대기. 정오를 넘겼는데 아무런 일이 생기지 않음. 백만봉은 뒤늦게 나타나 “나는 오늘부로 주의 역사를 끝내고 사흘 내에 하늘로 올라갈 것잉께 그간 여러분들이 내놓은 헌금은 돌려주겠다”고 발표, 열받은 우천순은 백만봉에게 댤려들고.....


김남희

2인자로 불리던 여성. 전 세계여성평화그룹 대표. 탈퇴와 함께 이만희의 실상을 폭로하고 있는 중.


인터뷰 때 등장한 여인

이만희가 가평에서 기자회견을 할 때 옆에서 보필하던 여성. 그때 ‘이만희의 귀’ 역할을 했다. 사실 그녀의 역할은 그 이상이었다. 기자들의 질문에 순발력 있게 대처. 예를 들면 이만희가 ‘육체 영생’ 관련 질문을 받자 "질문 아니에요. 안 하셔도 돼요"라며 이만희의 말을 차단. 이만희의 ‘최근 행보’에 관한 질문에는 “움직이지 않고 여기에 있었다고 하세요”라고 코치. 10년 이상 과천 신천지에서 행정업무를 담당. 코로나 사태 이후 이만희를 지근거리에서 보필. 이게 중요한데, 본처의 총애를 받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일설에는 12지파의 세력가 가운데 누가 ‘파견’했느냐가 중요 포인트라는.... 이런 얘기도 있습니다요.

 

 

제임스 챔버스 & 로지 채플

The WKKK(Women of the Ku Klux Klan) was co-founded by James C. N. Chambers and Rosie Chappell in the 1860s. Although women were not participating members, they were often used as a symbol of racial and sexual supremacy. Some women assisted with sewing Ariel's costumes and others let the men borrow their own clothes to serve as a disguise.

 

▲Mary Elizabeth Tyler owned the Searchlight, the Klan's newspaper. Tyler built herself a large Classical Revival house on 14 acres in downtown Atlanta.

 

매리 엘리자베드 타일러

Mary Elizabeth Tyler. 그녀의 시기에, 남자들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여성들도 폭력화 경향을 보이기 시작했다. 남성단원들의 시가행진, 집회에도 동참했다. 1927년에는 자신들만의 믿음과 신념을 담은 강령도 독자적으로 만들어 조직의 교본으로 삼았다. 남성간부와 함께 다단계 방식을 도입, 회원수를 대규모로 확대. KKK 신문도 발행. She was an Atlanta public-relations professional who, along with Edward Young Clarke, founded the Southern Publicity Association. Their organization helped to turn the initially second Ku Klux Klan into a mass-membership organization with a broader social agenda. 당시의 단원들은 중산층 백인여성이 태반. The women had joined the WKKK, many of which came from stable, middle-class communities. Like the Klan, they were anti-Jewish, anti-Catholic, anti-immigrant, and anti-black. The Women of the Ku Klux Klan published their own creed, or "Kreed", in 1927 that outlined the goals and beliefs of the organization. It would join them in parades, social functions, and occasional meetings. 찌그러지기 시작.... By the end of the decade, the Klan collapsed rapidly as a result of economic depression, internal battles, and financial scandals.

 

▲시가행진 중인 여자 KKK 단원들

관리자 freemediaf@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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