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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6대 대선-‘노무현 죽이기’(2)

- 조선일보 대해부 5권 - 7장(2)

기사승인 2020.09.23  09:13: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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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무현의 ‘언론관’ 시비

 조선일보는 ‘청와대 음모론’과 ‘색깔론’에 이어 노무현의 ‘언론관’에 시비를 걸었다. 4월 5일자 1면 머리에 실린 「노무현 ‘언론 관련 발언’ 파문 / “집권하면 메이저신문 국유화”」라는 기사가 대표적인 보기이다.

  민주당 대선후보 경선에 나선 이인제 후보의 김윤수 공보특보는 4일 “노무현 후보는 작년 8월 1일 서울 여의도의 한 음식점에서 방송·신문기자 5명, 노 후보의 유종필 공보특보 등이 참석한 저녁식사 자리에서 ‘나라의 발전과 국민통합, 그리고 강력한 개혁을 위해서 언론이 한 방향으로 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전제한 뒤, ‘내가 집권하면 메이저 신문들을 국유화하겠다’는 발언을 했다”고 말했다.
  김 특보는 “당시 참석 기자들이 어떤 방법으로 국유화를 하겠느냐고 묻자, 노 후보는 ‘한국은행의 국채발행 등을 통해 매입하면 된다’고 대답했다”고 말했다. 김 특보는 “노 후보는 또 그 자리에서 ‘언론 사주들의 주식보유 제한도 필요하다. 과거 나는 동아일보를 참 좋아했다. 그러나 요즘 논조가 맘에 안 든다. 내가 대통령이 되면 김병관 회장의 퇴진을 요구하고 거부할 경우 동아일보를 폐간시키겠다’는 말을 했다”고 말했다.
  김 특보는 “당시 참석 기자들은 노 후보의 발언을 자기 회사에 보고했는데, 한 회사의 데스크로부터 보고 자료를 받았으며, 보고 내용을 참석 기자들에게 일일이 확인했다”고 말했다. 이 자리에는 조선·동아·중앙일보 등 이른바 ‘메이저 신문’의 기자는 없었다. (·····)
  이와 관련, 이인제 후보는 이날 밤 MBC 민주당 대선 후보 초청 토론회에 출연, “한 기자가 내게 와서 그런 얘기를 했으며, 확인 결과 참석했던 기자 5명이 대부분 일치된 얘기를 했다”면서 “대통령은 민주주의를 수호할 위치에 있는데 언론을 국유화하자고 한 것에 대해 해명이 있어야한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노 후보는 “국유화란 내 머릿속에 없다”며 “밥 먹으면서 술자리에서 한 얘기를 어디서 듣고 와서 따지면 어떻게 하느냐”고 말했다.
  이에 이 후보가 “그런 말을 한 적이 있느냐, 없느냐”고 재차 묻자, 노 후보는 “없다”면서 “내가 겉으로는 (언론사 소유) 지분 제한 얘기하면서 뒷구멍으로 누구와 짜고 국유화한단 말이냐”고 말했다.

 이 기사와 같은 날짜 조선일보 2면에는 「‘노무현 언론 발언’ 사실 여부 밝혀야」라는 사설이 나왔다.

  “내가 집권하면 메이저 신문들을 국유화하겠다. 동아일보는 논조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 집권하면 그 신문 회장의 퇴진을 요구하고 거부할 경우에 폐간시키겠다.” 이러한 발언이 만일 사실이라면 그것은 보통 문제가 아니다. 사실이라고는 도저히 믿기 어려운 말이다. 과거의 스탈린 시대로 되돌아 가지 않는 한 입에 담기도 힘든 발언이다. (·····)
  (···) 언론과 언론의 자유는 자유민주주의 체제의 근간인 만큼, 사안의 성격이 너무나 중요하다. 나라의 대통령이 되겠다고 나선 사람의 머릿속에 만에 하나 그러한 언론관이 자리하고 있다면 그것은 결코 용납될 수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 문제는 측근을 통해 “그렇다” “아니다” 하고 지나칠 일이 아니라 본인이 직접 나서서 전후관계를 한 점 의혹 없이 명확히 해야 할 일이다. 사실이라면 사실대로, 그렇지 않으면 그렇지 않은 대로 진실되게 설명해야 한다. 노무현 후보는 작년에 “언론과의 전쟁을 선포해야 한다”는 발언도 했다. 차제에 노 후보는 자신의 언론관 전반에 대해 소상하게 밝히는 게 필요하다고 본다.

 노무현이 8개월 전 기자들과 저녁식사를 하는 자리에서 그런 ‘언론관’을 이야기했다는 사실은 명확히 검증된 바 없었다. 게다가 그 자신과 대변인이 “그런 말을 한 적이 없다”고 부인하는 한편 “그런 일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고 강조했는데도 조선일보는 1, 3, 4면에 관련 기사를 대서특필했다. 4월 6일자 조선일보 역시 마찬가지였다.

 4월 6일 노무현은 민주당 인천 경선 연설에서 “조선일보와 동아일보가 나에게 언론사 소유 지분 제한 주장을 포기하라는 압력을 가했으나, 내가 포기하지 않자 모략을 하고 있다”며 “조선·동아일보는 민주당 경선에서 손을 떼라”고 말했다(조선일보 4월 8일자 3면). 그러자 조선일보는 4월  8일자 2면에 「노무현 씨의 말 말 말 바꿈」이라는 사설을 내보냈다.

  노무현 씨는 7일 친필서명의 ‘발표문’을 내고 자신의 언론 관련 발언을 그의 입장에서 종합해서 설명했다. 한마디로 ‘술자리의 가벼운 방담’을 참석기자들 중 누군가가 ‘동아일보 폐간’이니 ‘국유화’니 ‘사주 퇴출’이니 과장해서 ‘믿거나 말거나’ 식 정보 보고를 했다는 요지다. 그리고 그것을 민주당 내 경쟁자가 왜곡·과장·악용하고, 일부 신문이 큰일이나 난 것처럼 대서특필하면서 언론의 정도를 크게 일탈하고 있다는 것이다. 노무현 씨는 6일에는 또 “조선·동아가 나의 (신문사) 소유 지분 제한 주장을 포기하라고 했다가 안하자 모략하고 있다”는 요지의 발언을 했고, “조선·동아는 민주당 경선에서 손 떼라”는 말도 했다.
  우선 기자들의 정보 보고를 ‘믿거나 말거나’의 신뢰 못할 것으로 단정한 노 씨의 전제부터가 심히 괴이쩍다. 일방적으로 그렇게 단정하고 비하하는 근거가 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아울러 따져야 할 것은 노무현 씨의 일관성 없고 모호한 표현법이다. 한쪽으로는 ‘조작’ ‘터무니없는 얘기’ ‘전혀 기억이 나지 않으나…’ 하는 말들을 하면서, 또 다른 쪽으로는 “내가 100% 확신하지 못해 혹시 술 먹고 한 일일 수도 있기 때문에 주저하는 것인데, 내 사고에는 그런 게 없기에 없다고 말한 것” “동아가 벌금 내지 못해 문 닫게 되면 그건 우리 책임이 아니다라는 취지에서 얘기하지 않았나 싶다”라고 함으로써 공인임에도 사실관계를 ‘술’에 의탁해서 스스로 알쏭달쏭하게 만들어 왔다.
  그러나 노 씨와 저녁자리를 함께한 기자들의 증언에 따라 일부 신문들이 “동아일보 폐간 운운의 발언이 있었다”고 보도함으로써 노씨가 ‘거짓말’을 한 것으로 모양새가 되어가자 7일의 ‘발표문’이란 것을 내놓지 않을 수가 없었던 모양이다. 하지만 그 ‘발표문’ 역시 그의 일방적이고도 분명치 않은 설명이기 때문에 아직도 확실한 진실은 규명되었다고 할 수 없다. 문제의 발언 파동이 다른 사람도 아닌 대통령 지망자의 것인 만큼 노 씨 본인과 참석한 기자들은 앞으로도 이 자유민주주의의 근간과 연관된 중차대한 사안에 관해 계속 국민적인 입증 과정에 응해야 할 것이다. 도대체 대통령 도전자가 그렇게 정제(精製)되지 않은 말을 함부로 발설해서야 되겠는가?

 노무현에 대한 조선일보의 비난은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바로 이튿날인 4월 9일자 2면에는 「‘조선’에 ‘폐간 ’얘기 했을 수는…”?」이라는 사설이 또 나왔다.

  권력게임이 합헌적인 한계를 이탈하는 순간 곧 초헌법적인 차원으로 연결되며, 그 방식이 무엇이든 결과적으로 자유민주 체제의 훼손을 의미하게 된다. 그리고 자유민주주의 정체(政體)를 선택하고 있는 우리나라에선 자유민주주의 기본요소의 변경을 시도하거나 국민의 자유와 권리의 핵심 부분을 제약하려는 움직임은 그러한 헌법정신 훼손 행위와 동일 선상(線上)에 있게 됨은 두 말할 나위가 없다.  민주당 대통령 후보 경선에 나선 노무현 후보가 이 같은 민주적 법관(法觀)의 전제를 인정한다면, 신문의 폐간 운운 시비를 둘러싼 자신의 일련의 발언에 대해 분명한 입장을 밝혀야 한다. 동아일보에 따르면 노 후보는 7일 동아일보 폐간 논란을 해명하면서 “폐간 얘기를 했다면 조선일보에 대해 했을 수는 있지만…” 하면서 “내가 후보가 되면 아마 조선일보와 싸우게 될 것이다”라고 말했다. 이 발언 자체만으로도 자유민주 국가의 대통령이 되겠다고 나선 집권당 경선 후보의 말이라고는 도저히 믿어지지 않는다.
  노 후보는 언론과 표현의 자유가 우리 헌법이 규정한 사상의 자유의 핵심적 요소임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그런 그가 “폐간 얘기를 했다면 조선일보에 대해 했을 수는…”이라고 말한 것이 과연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노 후보는 우선 분명히 설명해야 한다. 집권을 통해 현행 헌법의 개폐를 추진하겠다는 것인지, 아니면 현행 헌법 하에서도 권력의 자의(恣意)로 신문의 폐간이 가능하다는 것인지 확실한 입장을 밝혀야 한다. 그 어느 쪽이건 노 후보의 “조선일보에 대해 했을 수는…”은 자유민주주의를 신봉하고 있는 대다수 국민의 생각과는 어긋나는 것이다.

 조선일보와 동아일보가 노무현의 ‘언론 국유화’를 기정사실화 하고 맹렬한 공격을 가한 데 대해, 문제의 ‘기자들 저녁 모임’에 참석한 바 있는 한겨레 기자 임석규는 <한겨레21> 4월 18일자에 다음과 같이 썼다.

  8개월 전 여러 사람들과의 식사 자리에서 오간 대화 내용을 글자 하나 틀리지 않고 정확히 기억해내기란 쉽지 않다. 술까지 곁들인 자리였으니 더욱 그렇다. 따라서 참석자들이 당시에 대한 기억을 되살린다고 해도 그것이 100% 완벽한 진실일 수는 없다. 때문에 누구도 자신만의 기억이 진실이라고 고집하기도 어렵다. 다만 몇 가지 대화의 내용과 그 맥락은 떠오른다.
  참석 기자 5명은 기억이 일치하는 부분과 엇갈리는 부분 등을 종합해 있는 그대로 기사화하고 이를 다른 언론사에도 알리는 형태로 공동 의견을 밝히려 했다. 그러나 일부 언론사의 데스크(차장과 부장 등 간부)에서 이를 반대해 무산됐다. 동아일보와 조선일보 등이 「입 열다 만 한겨레 기자」따위의 제목으로 4월 6일에 보도한 기사는 이런 전후를 왜곡한 매우 악의적인 기사다. 기사를 작성한 두 언론사의 기자들도 이후 기자에게 미안함을 전해왔다.


 ‘노무현 후보 확정’과 조선일보

 4월 29일자 조선일보 1면에는 「 노무현 씨 여 대선 후보 확정 /  “단절된 양김 하나로 복원」이라는 기사가 실렸다.

  민주당은 27일 서울 잠실 실내체육관에서 서울지역 대선 후보 경선 대회와 전국대의원 대회를 잇달아 열어 노무현 고문을 대선 후보로, 한화갑 고 문을 당 대표로 선출했다.   노 후보는 29일 김대중 대통령, 30일 김영삼 전 대통령을 잇달아 방문한다. 노 후보는 27일 대선 후보 수락연설 후 가진 기자회견에서 “김대중 대통령과 김영삼 전 대통령의 정통성을 함께 세워 민주세력의 단절된 역사를 복원하겠다”고 말했다.
  노 후보는 지난 3월 9일 제주도에서 시작, 이날 서울을 끝으로 16개 시도에서 치러진 대선 후보 경선에서 전체 유효득표의 72.2%(1만7568표)를 획득했다. 노 후보는 서울에선 투표자 5979명(투표율 34.9%) 중 3924표 (66.5%)를, 정동영 후보는 1978표(33.5%)를 얻었다. (·····)
  노 후보는 후보 수락연설에서 “경쟁력이 있는 나라” “중산층·서민도 잘사는 나라” “남북화해를 통한 동북아 중심국가”를 만들겠다고 약속했다.
  노 후보는 “특정 지역이나 특정학교 출신들이 권력을 독점하는 일은 용납하지 않겠다”며 “부정부패 척결” “친인척 감시” “지역·노사 통합”을 강조하고, “지역 분열의 정치 때문에 이리저리 흩어진 개혁세력을 하나로 뭉쳐내야 한다”고 말해, 정계 개편 의사도 분명히 했다.
  노 후보는 “국민의 정부가 어렵게 개혁하고 있는 것을 성공시키겠다”며 “국민들이 민주당에 나라의 미래를 맡길 것이며 민주당이 대선에서 반드시 승리할 것”이라고 말했다.

 조선일보는 같은 날짜 2면에 「노무현 후보의 ‘과거’ ‘현재’ ‘미래’」라는 사설을 실었다.

  노무현 씨가 27일 민주당 대선후보로 확정됐다. 노 후보를 탄생시킨 민주당의 ‘국민경선’은 7명의 주자 가운데 5명이 중도 포기하고, 후보 간 토론이 이상(異常)기류로 흐름으로써 후보의 자질과 경륜을 국민들에게 드러낸다는 원래의 취지를 다하지 못한 채 끝을 맺게 되었다.
  그 결과 노 후보는 대통령 선거 역사상 여당 후보로서는 그 이념과 정책과 자질이 가장 알려지지 않은 상태에서 국민 앞에 등장한 셈이다. 노 후보의 제도권 정치 이력은 두 번의 국회의원 생활과 8개월 간의 해양수산부장관 경력이 전부다. 따라서 그가 이 나라의 최고책임자로서 국가를 어느 방향으로 어떻게 이끌고 나갈지에 대해 많은 국민들은 감조차 갖지 못하고 있는 형편이다.
  대통령이 되겠다고 나선 사람은 그가 어떤 길을 걸어왔느냐는 ‘과거’, 나라의 지금 상태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갖고 있느냐는 ‘현재’, 집권하면 이 나라를 어디로 끌고 가려는지의 ‘미래’를 숨김없이 국민에게 제시해야 한다. 그러나 지금 국민들이 노 후보에 관해 손에 쥐고 있는 것이라고는 ‘재벌 주식 정부 매수·노동자에 분배’ ‘주한미군 철수’ ‘보안법 폐지’ 등 시비와 논란 속에 휩싸인 그의 ‘과거’뿐이다. 물론 지금은 일부 달라졌을 수 있다.
  그러기에 노 후보는 국가의 주요 현안에 대한 그의 지금의 입장이 무엇이며, 그것이 과거의 그것에서 어떤 경로로 어떻게 변화해 왔는가를 분명하게 설명해야 할 의무가 있다.
  노 후보 스스로도 이러한 검증을 회피하려 해선 안 된다. 노 후보가 수락 연설에서 제시한 ‘통합과 개혁의 정치’ ‘중산층과 서민이 함께 잘 사는 경쟁력 있는 국가’라는 일종의 절충론적 수사(修辭)는, 고도의 당파적 선명성으로 일관했던 경선 과정의 그의 발언들과는 너무나 대조되는 것이어서 국민의 궁금증은 더욱 절실할 수밖에 없다.

  단적으로 말하면, 조선일보의 이 사설은 “노무현 후보는 검증되지 않은 인물”이라서 국가 최고책임자가 될 자격이 있는지 의문이라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이 사설에 나타난 ‘노무현 후보’를 보고 기꺼이 그에게 표를 주겠다고 하는 사람이 과연 있었을까?


 노무현·정몽준의 갈등과 단일화 성공

 민주당 대통령 후보로 확정된 노무현이 선거를 눈앞에 두고 가장 먼저 해결해야 할 과제는 ‘국민통합21’의 후보 정몽준과 단일화를 이루는 일이었다. 2002년 여름의 ‘한일 월드컵 축구’에서 대한민국 대표팀이 기적적으로 4강까지 진출하자 축구협회장 정몽준의 인기는 높이 치솟았다. 그런 열풍에 힘입어 그는 국민통합21을 창당하고 대선에 출마했던 것이다.

 여러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노무현과 정몽준이 한나라당 후보 이회창에 각각 맞서면 패배는 명백한 것이었다. 그래서 민주당 안에서는 노무현에 비우호적인 일부 의원들이 ‘후보단일화추진협의회(후단협)’를 만들어 정몽준에 유리한 단일화 작업을 벌였으나 큰 성과를 거두지는 못했다.

 결국 노무현과 정몽준은 11월 15일 밤 10시 반부터 단독 담판을 벌인 끝에 16일  새벽 0시 20분께 합의 결과를 발표했다. 조선일보는 11월 16일자 1면에 「노·정, 여론조사로 단일화  / TV토론 후 일반국민 상대 실시키로 / 심야 단독 회동서 8개항 전격 합의」라는 기사를 실었다.

  민주당 노무현 대통령 후보와 국민통합21 정몽준 대통령 후보는 15일 국회에서 심야 회동을 갖고 일반 국민을 대상으로 한 여론조사 방식에 의한 양당의 후보 단일화 방식에 합의했다.
  두 사람은 이날 국회 귀빈식당에서 회동, 밤 12시를 훨씬 넘겨가며 2시간 10분 동안 단독 회동을 갖고 경선 방식과 향후 협력방안 등 8가지 항목에 합의했다.   회동 뒤 민주당의 이낙연 대변인과 국민통합21의 김행 대변인은 공동 발표에서 “가능한 한 여러 차례의, 정책이 중심이 된 TV토론을 거친 뒤 객관적 방식의 일반 국민을 대상으로 한 여론조사를 통해 단일후보를 결정한다”면서, 단일후보 확정 시한과 관련, “TV토론과 여론조사는 후보등록일(27일) 전까지 완료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두 후보는 또 “후보가 누구로 결정되든 두 사람은 단일후보의 선거 승리를 위해 최선을 다한다”는 데 합의했으며, “두 후보는 낡은 정치의 틀을 깨고 정치혁명을 이루는 데 함께 노력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같은 합의에 따라 양당의 후보 단일화가 성사될 경우 대선구도는 현재 의 다자구도에서, 한나라당 이회창 후보 대 ‘단일후보’란 양자구도로 변화되는 등 큰 변화가 예상된다. 이 같은 선거 구도의 변화에 대해 한나라당은 즉각적인 대응책 마련에 들어갈 것으로 예상된다.

  조선일보는 11월 18일자 2면에 노무현과 정몽준의 후보 단일화를 부정적으로 평가하는 사설(「양자 대결로 가는 대선」)을 실었다.

  민주당 노무현 후보와 국민통합21 정몽준 후보가 후보 단일화에 전격 합의함으로써 대선 구도의 중대 변화가 또 한 번 불가피해졌다. ‘1강 2중’이란 지금까지의 3자 대결 구도가 양자 대결로 단순화된 것이다.
  물론 “공중파 TV를 통해 정책토론을 실시한 뒤 국민 상대 여론조사로 단일화 후보를 결정한다”는 이번 합의에 대해 그것이 선거법에 저촉된다는 한나라당의 이의 제기가 있고, 이와 관련한 중앙선거위의 해석은 좀 더 기다려보아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이번 합의의 적극적 일면에 먼저 주목하는 것은 선거가 공고되기도 전에 경쟁 양상이 ‘1강 2중’ 구도로 고착되어 감으로써 대선에 대한 유권자의 관심이 눈에 띄게 저하되고 있었다는 우려에서다. 유권자의 관심 저하는 투표율 하락과 직접 연결돼 누가 대통령이 되든 그의 국정 운영에 필요한 정당성과 추진력을 훼손시킬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정치적 출신·이념·정책·노선이 판이한 두 후보가 “과거를 묻지 말자”는 식으로 단일화함으로써 그것이 과연 어떤 ‘노선 스펙트럼’을 보여줄 것인가 하는 의문만은 여전히 남는다. 선거란 기본적으로 현 집권세력과 그 반대세력 간의 싸움이고 그에 대한 국민적 심판이기 때문이다. 이 같은 모호성은 두 후보 모두 현 정권과의 관계를 계승과 단절의 측면에서 명확히 규정하지 않아 더욱 가중되고 있는 느낌이다.
  또 다른 문제점은 이번 합의를 이끌어낸 절박한 추진력이라 할 수 있는 ‘반(反) 이회창’이라는 슬로건 자체에서 비롯되는 것이다. 다시 말해 노무현·정몽준 두 후보를 하나로 묶으면 지금까지의 두 사람 지지층도 자동적으로 하나로 덧셈이 되느냐 하는 물음이다. 이 의문에 대해서는 선거가 끝날 때까지 그 누구도 확실하게 예단할 수 없을 것이다. 더군다나 두 사람 중 누구로 단일화되느냐에 따라 그 답은 다르게 나올 수도 있다.
  우리로선 다만 단일화가 될 경우 대선판이 모호성을 벗어나 보다 선명한 대결 구도 하에서 본격적이고도 의미있는 논쟁 양상을 드러내기 바랄 뿐이다.

  노무현과 정몽준이 후보 단일화에 합의한 뒤 조선일보는 단일화에 딴죽을 거는 사설들을 거의 날마다 쏟아내기 시작했다. 그 사설들의 요지를 간추려 보겠다.

 · 「단일화 ‘방법’에 문제 있다」(11월 19일자)

  노무현 후보와 정몽준 후보의 단일화 협상이 합의 발표 하루 만에 재협상 과정에서 정 후보 측 협상단이 철수하는 등 진통을 거듭하고 있다. 이것만 봐도 후보 단일화는 본인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복잡한 문제를 안고 있는 셈이다.
  그러나 보다 근본적인 문제는 이번 합의가 자칫하면 우리의 정치 과정에 대한 만만찮은 회의(懷疑)로 이어질 수도 있다는 점이다. 세 불리를 절감한 후보들의 연합·연대는 불가피한 정치행위라고 하지만, 정당의 존재이 유와 이념적 지향, 후보들의 비전과 소명의식 등 모든 것을 여론조사라는 불안정한 참고수치에 맡겨버렸기 때문이다. (·····)
  이번 합의에는 국민경선 결과를 되물려도 문제될 게 없다는 식의 발상이 반영돼 있다. 그리고 ‘TV토론을 거쳐 여론조사 단일후보 결정’이라는 합의는, ‘그들 내부의 경선’이라고 할 수 있는 TV토론에 공영방송들을 ‘사용(私用)’할 수 있다는 발상도 드러냈다. 선관위조차 이에 대해 어정쩡한 눈치보기 정치 타협으로 일관했지만, 특정 정치적 목적에 공영방송이 ‘동원’되는 일은 없어져야 한다.

 · 「국민 헷갈리게 하지 말라」(11월 20일자) 

  노무현 후보와 정몽준 후보의 단일화 합의가 발표되자마자 무산 위기를 맞고 있는 상황은 이번 대선 국면을 혼란스럽게 할 뿐 아니라 국민들의 정치 혐오감을 더욱 깊게 만들고 있다.
  한 나라의 최고지도자가 되겠다고 나선 유력 후보들이 축배를 들어가며 만들어 낸 최종합의문을 두고 어찌하여 단 하루도 안 돼서 원천무효니 아니니 하는 주장들이 나오고 있는지 국민들로서는 심히 헷갈리지 않을 수 없다. 시정(市井)의 사사로운 거래도 이보다는 나을 것이다.
  더구나 일이 이 지경이 된 이유라는 것이 참으로 가관이다. 양측이 비밀에 부치기로 한 여론조사의 구체적 방법이 언론에 보도됐기 때문에 다시 협상을 해야 한다는 것이 한 쪽의 주장인가 하면, 다른 쪽에서는 “언론이 우리를 이간질하고 단일화를 깨려하고 있다”는 말까지 쏟아냈다.
  합의내용이 그렇게 보안을 필요로 하는 것이라면 합의 당사자들이 목숨을 걸고라도 지켜내야지, 그걸 취재 보도한 언론이 무슨 잘못이란 말인가. 또 여론조사라는 것이 어차피 비밀작전 같을 수야 없는 것인데 그 방법이 공개됐다고 해서 합의 자체가 무산돼야 하는지도 선뜻 이해하기 어렵다. 이것이 협상의 기술적 문제에서 초래된 결과라면, 양측의 협상 테크닉은 그야말로 아마추어 중에서도 초보 수준이라고 할 수밖에 없다.

 · 「단일화 하는 건가 마는 건가」(11월 22일자)

  노무현 후보와 정몽준 후보는 진정 단일화를 하려고 하는가? 이제 이에 대한 분명한 결론을 내릴 때가 됐다. 대통령 후보 등록이 불과 닷새밖에 남지 않았는데 아직도 단일화 협상이 어떻게 될 것인가를 짐작하기 힘든 상황이라는 것은, 이를 지켜보는 유권자에 대한 결례가 아닐 수 없다.
  단일화 협상이 난관을 거듭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노·정 두 후보 모두 양보할 생각은 없고 ‘나에게로 단일화’를 바라고 있는데, 정작 양쪽 모두 깨끗이 승복할 수 있는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찾아낸 ‘여론조사’라는 방법을 놓고도, 어떻게 하는 게 본인들에게 유리한가를 따져야 하니 협상이 시시각각 타결과 결렬이라는 극단 사이를 오락가락할 수밖에 없다.
  단일화에 합의한다고 해도 보다 본질적이고 중요한 문제들은 그대로 남는다. 그것은 너무도 다른 두 후보들의 정책을 어떻게 조율할 것인가 하는 점이다. 한·미 동맹을 대하는 자세에서부터 경제·사회정책에 이르기까지, 우리 사회가 직면한 핵심 현안들에서 두 후보의 공약과 철학은 너무나 현저한 차이를 보이고 있다.

 · 「노·정 ‘정체성’도 단일화 될 수 있나」(11월 23일자)

  단일화에 합의한 노무현 후보와 정몽준 후보의 TV토론은 양측 이념과 정책의 수렴 가능성보다는 서로 좁히기 힘든 거리를 거듭 확인한 무대였다.
  ‘경쟁과 협력’이라는 이중적인 관계가 설정된 두 후보로서는 우선 차별성을 부각시켜 자신이 단일후보의 적임자임을 과시하는 것이 급선무였겠지만, 역사관과 주요 정책에서 근본적인 시각차를 드러냄으로써 단일화의 의미를 스스로 이른바 ‘반창(反昌)연대’로 한계지었다. 실제로 이번 토론에서 두 후보가 의기투합한 부분은 이회창 후보 공격뿐이었다.
  이 같은 양상은 물론 이미 예상된 것이었다. 두 후보의 단일화 과정은 사실상 대선의 ‘준결승’을 의미한다는 점에서 우리 선거 사상 초유의 사태라고 할 만하다. 그러나 노·정 후보의 단일화 작업이 그 대의명분과 방법, 그리고 이후의 파장을 고려할 때 과연 우리 정치를 한 단계 성숙시키고 정치권이 시대적 과제를 추진해 나가는 데 긍정적 기여를 할 것인가에 대해서는 회의적 시각이 적지 않다. (·····)
  게다가 이번 단일화 여론조사에는 보통의 조사에서는 보도 듣도 못한 희한한 장치와 해법이 동원된다고 하니 그것이 여론조사로서의 진정한 의미와 기능을 가질 수 있을 것이며, 단일화의 최종 성사를 보장해 줄 수 있을 지도 의문이다. 두 후보는 단일화 실천 과정과 대선 기간을 통해 이 같은 문제점들에 대한 정면의 해답을 유권자들에게 제시해야 할 것이다.


 ‘노무현으로 단일화’에 대한 조선일보의 트집 잡기

 11월 25일자 조선일보 1면에는「노무현 단일후보 확정 / 여론조사서 46.8 대 42.2% / 대선 양강 구도로」라는 기사가 올랐다.

  민주당 노무현 대통령 후보가 24일 민주당과 국민통합21 간의 대통령 후보 단일화를 위해 실시된 여론조사 결과, 정몽준 후보를 눌러 양당의 단일 후보로 결정됐다. 이에 따라 12월 대선 구도는 한나라당 이회창 후보와 민주당 노무현 후보의 양강 구도로 치러지게 됐다.
  민주당 신계륜 후보 비서실장과, 민창기 홍보위원장은 이날 밤 12시 서울 강남의 한 호텔에서 공동 기자회견을 갖고, R&R와 월드리서치 등 두 곳의 여론조사기관에 의뢰해 조사한 결과를 발표, “월드리서치의 조사는 무효가 됐으며, 유효한 R&R의 조사 결과에서 노 후보가 앞선 것으로 나타나 노 후보가 1 대 0으로 우세, 단일후보로 확정됐다”고 발표했다.
  이날 여론조사에 사용된 설문 문항은 “한나라당의 이회창 후보와 경쟁할 단일후보로서 노무현 후보와 정몽준 후보 중 누구를 지지하느냐”였다. R&R의 조사 결과, 노 후보는 46.8%를 얻어 42.2%를 얻은 정 후보를 앞섰다. 이회창 후보의 지지율이 낮게 나와 무효 처리된 월드리서치 조사 결과는 노무현 38.8%, 정몽준 37.0%였다. (·····)
  노 후보는 단일후보 확정 기자회견을 갖고 “단일화 합의가 어려운데 이에 수용해준 정몽준 후보를 높이 평가한다”고 말했다. 정 후보도 기자회견을 갖고 “노 후보의 승리를 축하한다”면서 “노 후보가 당선되도록 열심히 돕겠다”고 말했다. 정 후보는 노 후보의 선거대책위원장직을 맡을지 여부에 대해서는 “내일(25일) 노 후보를 만나 상의하겠다”고 말했다.

 노무현이 단일후보로 결정되자 조선일보는 즉각 여론조사 방법에 시비를 거는 사설(「‘이·노 대결’ 만들어낸 여론조사」)을 11월 25일자 2면에 내보냈다.

  어제 실시된 여론조사를 통해 노무현 후보가 정몽준 후보를 누르고 이번 대선에 나갈 단일후보로 선정됐다. 정 후보가 일단 결과에 승복하는 자세를 보인 만큼 올해 대선은 이회창·노무현 양자 대결 구도로 치러질 전망이다.
  여권 후보가 확정된 이상 앞으로 대선이 21세기 첫 대통령을 뽑는다는 역사적 의미에 걸맞은 비전과 정책의 대결로 진행되길 기대할 따름이다. 그간 후보 간 이념·공약 대결은 노·정 단일화 협의에 묻혀 버리면서 실종 상태에 빠져 있었다. 따라서 이제 대선 경쟁의 핵심은 한국의 미래에 관한 후보들의 비전과 정책, 리더십 등으로 그 초점이 옮겨져야 할 것이며 그 과정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게 지난 5년의 김대중 정부의 공과(功過)에 대한 평가일 것이다.
  그러나 이에 앞서 이번 후보 단일화 과정에 사용된 여론조사 방법의 문제점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민주당과 국민통합21로부터 참여를 요청받은 주요 여론조사기관 대부분이 이를 사양했다고 한다. 적어도 매출액 등 여러 면에서 랭킹 5위 이내로 인식되고 있는 여론조사기관은 모두 참여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유는 표면상 여러 가지이지만, 기본적으로 “여론조사는 이번 같은 중요한 정치행위 결정의 도구로 쓰이는 게 아니다”라는 것이다. 또 자칫 조사에 참여했다가 그 결과의 타당성·공정성 시비에 휘말릴 경우를 우려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러한 여론조사기관의 우려는 결국 “여론조사로 단일후보를 만들어낸다”는 것이 기실 얼마나 취약하고 불완전한 방식인가를 새삼 재확인하는 고백이자 고충 토로인 셈이다. 사실상 여론조사는 확률적으로 어떤 흐름을 해석하는 방식일 뿐, 유권자가 기표소에 나가 자신의 뜻을 표시하는 투표행위가 아니다.
  이런 점에서 이번에는 설령 할 수 없이 그랬다 치더라도 이런 헌정 사상 초유의 방식은 앞으로는 두 번 다시 되풀이돼서는 안 될 일이다. 유수의 여론조사기관들이 “어마 뜨거워라”며 기피한 ‘여론조사’라면 그것 자체로서 얼마나 희화적인 이야기인가?

 조선일보는 16대 대선 기간 내내 한나라당 후보 이회창을 비판하는 사설을 실은 적이 별로 없었다. 그러나 노무현에 대해서는 한나라당 기관지나 다름없다고 할 정도로 부정적인 글들을 마구 써댔다. 그야말로 ‘노무현 죽이기’라고 볼 수밖에 없는 논조였다. 조선일보의 그런 행태는 선거일 직전까지 계속되었다. 아래에 그런 사설들을 요약하겠다.

 · 「보·혁과 세대가 가르는 대선」(11월 26일자)

  선거 구도가 한나라당 이회창 후보와 민주당 노무현 후보로 단순화됨으로써 이번 선거의 정치적 성격이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대선의 정치적 성격이 명료해지는 것은 유권자들에게 투표의 방향 선택에 참고할 자료를 극명하게 제공한다는 점에서 특기할 만한 현상이다.
  이·노 대결은 이번 선거가 무엇보다도 김대중 정권의 단절·교체를 주장하는 세력과 그 승계·연장을 표방하는 세력 간의 경쟁이라는 측면을 선명하게 부각시키고 있다.
  노 후보 역시 “가신(家臣)정치·권위주의·인사정책 등 정치행태는 달라지겠지만 원칙적인 정책은 대동소이할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이번 선거의 쟁점이 “계승이냐, 단절이냐?”가 될 것임을 시사한 것이다. 따라서 유권자의 선택은 현 정권의 업적을 인정할 것이냐, 아니면 그 실정을 비판할 것이냐에 따라 방향을 달리할 것이다. (·····)
  또 하나 빼놓을 수 없는 것은 과거의 어떤 선거보다도 이번 선거는 세대 간의 단절과 대결을 더 한층 두드러지게 드러낼 것이라는 점이다.
  개발의 연대와 3김 시대가 물려준 부정적 유산이라 할 지역 간 대결의 틀 또한 이번 선거에서도 크게 달라지지 않을 전망이다. 결국 앞으로 남은 선거 기간에 두 후보가 이번 선거의 그런 정치적 성격을 어떻게 발전적으로 승화시키느냐에 따라 한국 정치의 내일이 판가름 날 것이다.

 · 「헌법이 권력 흥정의 수단인가」(11월 27일자)
 
  후보 단일화를 이룬 민주당과 국민통합21의 대선 공조체제 구축 과정에서 이른바 ‘분권형 대통령제’ 개헌 문제가 양측의 중요한 연결고리로 등장하고 있는 것은 이 제도의 좋고 나쁨을 따지기 전에 권력 나눠 먹기라는 비판을 받을 소지가 크다.
  사전 정책 조율 등을 아예 생략한 채 무조건 ‘사람의 단일화’만 만들어낸 양측으로서는 진정한 협력관계를 이루기 위한 여러 방도가 필요할 것이며, 그중에서도 잠재적 권력을 어떻게 나눌 것인가 하는 점이 가장 까다로운 현실적 문제가 될 것임은 쉽게 짐작할 수 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양측의 이해타산에 따라 헌법까지 고치겠다고 하는 발상은 용납하기 어렵다.
  물론 이른바 ‘제왕적 대통령제’의 개선 필요성에 대해서는 그동안 상당한 국민적 공감대가 형성됐다고 볼 수 있고, 이에 따라 민주당은 총리 권한을 실질적으로 강화하는 ‘책임총리제’ 실시를, 국민통합21은 ‘분권형 대통령제’ 개헌을 대선 공약으로 내걸기도 했다. (·····)
  설사 정파 간에 권력 분점을 위한 개헌 합의가 이루어지더라도 그것이 순수하지 못하면 한낱 휴지조각에 불과하다는 사실은 DJP 연합의 내각제 합의에서 여실히 입증됐다. 헌법도 필요하면 언제라도 고칠 수 있는 것이지만 그때그때의 정파 간 거래의 대상이 돼서는 안 되는 것이다. 헌법이 결코 민주당과 국민통합21 사이의 ‘권력계약’의 수단이 될 수는 없다.

 · 「노·정 ‘대북정책 조율’을 주시한다」(12월 3일자)

  국민통합21의 정몽준 대표가 “(노무현 후보와의) 선거 공조에 관한 우리의 책임을 다하려면 대북정책에 대한 의견 조율이 먼저 있어야만 한다”며 노 후보의 대북정책 변경을 요구했다. 엄격히 말하면 철학과 정책에 있어 너무나 상이한 시각을 가진 두 사람의 단일화 협상은 이런 차이를 먼저 해소한 뒤에 하는 게 일의 순서였다.
  때늦은 감은 있지만 본격적인 선거 공조를 앞두고 정 대표 측이 첫 정책 조율 대상으로 ‘대북정책’을 꼽은 것은 진정한 의미에서 후보 단일화의 완성을 위해 불가피한 과정이다. (·····)
  북한 핵 문제와 대북 지원에 대한 노·정 두 사람의 입장 차이는 분명하다. 노 후보는 “북한 핵 개발 중지와 미국의 적대적 관계 중지가 동시에 이뤄져야 한다”며 대북 제재에 대해서는 반대 입장을 분명히 하고 있다. 반면 정 대표는 한때 핵 문제와 대북 지원 연계 주장을 폈을 정도로 강경한 입장이다.
  지난달 27일 열린 후보 단일화 TV 토론 때 정 대표는 “남북한을 똑같이 놓고 보는 노 후보의 역사관이 위험하다”고 했고, 이에 대해 노 후보는 “그렇게 말하는 것은 냉전적 사고”라고 반박했다. 정 대표는 이번에 대북정책 변경을 요구하면서도 “노 후보에 대해 일부 유권자들이 걱정하는 부분이 분명히 있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 「행정수도 이전 쉽게 다룰 일 아니다」(12월 12일자)

  노무현 후보가 제기한 행정수도 이전 공약이 이번 대선의 최대 쟁점으로 부각되고 있다. 한나라당과 민주당이 연일 치열한 공방을 벌이고 있고, 10일의 대선 후보 TV 합동토론회를 계기로 이 문제에 대한 일반 국민들의 관심도 급속히 높아지고 있다.
  그러나 행정수도 이전 같은 중차대한 사안을 대선 공약의 단계에서 결정, 결말지으려는 듯 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는 것이 우리의 판단이다. 20세기들어 행정수도를 이전했던 호주, 브라질, 파키스탄의 경우 20~30년씩 논쟁을 거쳤을 뿐 아니라 아직도 그 성과에 대한 판단이 엇갈릴 정도로 수도 이전은 복잡하고 예민한 문제다. ‘번갯불에 콩 구워 먹듯’ 한 달도 안 되는 기간에 가부 간 결정을 내려야 한다는 식은 어불성설이다. (·····)
  최근 논쟁 과정에서도 드러나듯이 지금은 행정수도의 필요성에 대한 최소한의 합의조차 없는 상태다. ‘서울 공화국’을 이대로 방치할 수 없다는 점에는 공감하더라도, 다른 고려사항들을 제쳐놓고 국력을 기울여 행정수도 이전부터 단숨에 밀어붙여야만 하는 화급성에 대해서는 여전히 의문을 제기할 수 있다.
  “왜 굳이 충청도냐?”는 물음과 함께 이전비용과 “그렇다면 서울은 어떻게 되느냐?”는 반론 등은 그 다음에 계속 시간을 두고 다루어야 할 논쟁거리다. 수많은 의문부호를 남겨둔 채 대선 결과만으로 행정수도에 대한 최종 결론을 내릴 수는 없다.


  정몽준의 ‘노무현 지지 철회’에 환호한 조선일보

 제16대 대통령 선거 당일인 12월 19일자 조선일보에는 한 ‘충격적 사건’에 관한 사설과 기사가 실렸다. 먼저 1면 머리 기사(「정몽준 “노 지지 철회”  / 어젯밤 전격선언 / “국민의 현명한 판단 바란다”」)를 보기로 하자.

  국민통합21 정몽준 대표가 18일 민주당 노무현 후보에 대한 지지를 철회했다. 대선을 하루 앞둔 정 후보의 지지 철회로 대선 판도가 급격히 요동칠 것으로 보인다.
  정몽준 대표는 노 후보에 대한 지지를 철회하면서 “국민 여러분께서 각자 현명한 판단을 하시기를 바란다”고 말해, 노 후보에 대한 반대 입장을 분명히 했다. 정 대표를 대변하는 김행 대변인은 이날 밤 10시 20분쯤 성명을 발표, “오늘(18일) 서울 명동 합동유세에서 노무현 후보가 ‘미국과 북한이 싸우면 우리가 말린다’는 표현을 썼다”며 “정몽준 대표는 미국은 우리를 도와주는 우방이며, 미국이 북한과 싸울 이유가 하나도 없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김 대변인은 “정 대표는 우리 정치에서 가장 나쁜 병폐는 배신과 변절이고 이런 현상이 더 이상 반복되어서는 안 된다고 믿고 있다”면서 “정 대표는 노 후보에 대한 지지를 철회한다”고 말했다. 이후 노 후보와 민주당 정대철 선대위원장, 이재정 유세본부장은 이날 밤 늦게 “오해가 있으면 풀 것”이라며 정 대표 자택을 방문했으나 정 대표는 회동을 거절했다.
  이에 앞서 노 후보는 서울의 종로 유세에서 “북·미 간 핵무기를 둘러싼 싸움이 있다”며 “한국이 중심을 잡아야지 끌려 다녀선 안 된다. 미국이 시키는 대로 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중심을 잡고 북한과 미국에 양보를 요구해야 한다”고 말했다. 노 후보는 또 ‘다음 대통령은 정몽준’이라고 쓴 피켓을 보고 “너무 속도 위반하지 말라”며 “여기 추미애 의원을 기억하느냐. 대찬 여자 추미애 의원이 있다. 또 국민경선을 끝까지 지킨 정동영 최고위원도 있다. 몇 사람 있으니 경쟁할 수 있다”고 말했다.
  한나라당 이회창 후보는 정 대표의 노 후보 지지 철회에 대해 “노·정 단일화 합의는 원래 이뤄질 수 없는 것이었다”며 “깨질 것이 깨진 것”이라고 말했다.

 그 날짜 조선일보 2면에는 「정몽준, 노무현 버렸다」라는 제목으로 ‘후보 단일화’를 ‘코미디 대상 감’이라고 조롱하는 사설이 실렸다.

  16대 대통령 선거의 코미디대상은 단연 ‘노무현·정몽준 후보 단일화’다. 선거 운동 시작 직전, 동서고금을 통해 유례가 없는 여론조사로 후보 단일화에 합의하고, 선거운동 마감 하루 전까지 공동유세를 펼치다가, 투표를 7시간 앞둔 상황에서 정 씨가 후보 단일화를 철회했다. 이로써 대선 정국은 180도 뒤집어졌다.
  이런 느닷없는 상황 변화 앞에 유권자들은 의아한 심정이지만, 따지고 보면 ‘노·정 후보 단일화’는 처음부터 성립되기 어려운 일이었다. 북한 문제와 한·미관계를 보는 시각부터, 지금의 경제 상황과 사회적 문제를 보는 눈이 기본적으로 다른 두 후보가 단지 여론조사에서 우세한 사람을 단일후보로 뽑는다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었기 때문이다.
  비록 투표 직전이긴 하지만, 정 씨가 노 후보에 대한 지지를 철회한 것은 결국 이런 근본적 차이를 인식했기 때문이라고 해석할 수 있다.
  한편으로는 희극적이긴 하지만, 어쩔 수 없이 벌어진 급격한 상황 변화 앞에서 우리 유권자들의 선택은 자명하다. 지금까지의 판단 기준 전체를 처음부터 다시 뒤집는 것이다. 선거운동이 시작된 지난 20일 동안 모든 유세와 TV토론, 숱한 유권자들의 마음을 졸인 판세 및 지지도 변화 등 모든 상황은 노·정 후보 단일화를 전제로 한 것이었는데, 이 같은 기본 구도가 변했기 때문이다.
  오늘 하루 전국의 유권자들은 새로운 출발을 기약하며 투표소로 향할 것이다. 지금 시점에서 분명한 것은 후보 단일화에 합의했고 유세를 함께 다니면서 노무현 후보의 손을 들어줬던 정몽준 씨마저 ‘노 후보는 곤란하다’고 판단한 상황이다. 이제 최종 선택은 유권자들의 몫이다.

 거의 모든 여론조사에서 이회창과 노무현이 박빙의 경쟁을 벌이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었는데, 투표를 불과 다섯 시간 남짓 앞두고 정몽준이 노무현을 향해 ‘단일화 파기’를 일방적으로 선언한 것은 이회창의 승리를 ‘보증’하는 일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래서 한나라당은 뛸 듯이 기뻐했고 조선일보를 비롯한 보수언론은 선거일 아침 신문에 그 사실을 대서특필 했던 것이다. 그러나 그들이 너무 일찍 터뜨린 샴페인은 12월 19일 자정 무렵 텔레비전에 중계된개표 현황에 노무현이 이회창을 안정적으로 앞서 가기 시작하자 물거품으로 변하고 말았다.

 

 

관리자 freemediaf@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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