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월 1일, 노동절 아침 건설노조 강원건설지부 양회동 지대장의 분신 소식은 한국사회에 큰 충격을 줬다. 윤석열 정부가 ‘건폭’이라는 신조어를 만들어가며 노동혐오를 부추기고, 대통령 지지율의 지렛대로 사용하는 가운데 발생한 충격적인 사건이었다. “정권이 죽였다”라는 구호가 터져나왔다. 양회동 열사의 죽음은 권력에 의한 타살이었다. 그러나 윤석열 정부는 단 한 번의 사과도 없었다. 반대로 민주노총을 악마화하는 데에 더욱 골몰하며, 압수수색과 고소·고발로 노동자들을 더욱 압박하고 나섰다. 결국, 건설 노동자들은 ‘총파업’이라는 극한투쟁을 전개하기에 이르렀다.
이 같은 상황에서 조선일보는 16일, <건설노조원 분신 순간, 함께 있던 간부는 막지도 불 끄지도 않았다> 기사를 게재했다. 골자는 ‘양회동 열사가 분신하는 곳에 노조 상급자 A씨가 있었음에도 말리기는커녕 휴대폰만 만지작거리며 멀리 떨어진 채로 방관했다’는 내용이다. 충격적인 의혹을 제기하기에 근거는 턱없이 부족했다. 하지만 원희룡 장관은 SNS에 조선일보 보도를 인용하며 “동료의 죽음을 투쟁의 동력으로 이용하려 했던 것은 아닌지 의문”이라고 썼다. 원희룡 장관한테 되묻고 싶다. 양회동 열사의 죽음을 ‘진짜’ 정치적으로 이용하는 자는 누구인가.
조선일보의 악의적 기사…의혹의 목소리만 크고 근거는 부족
조선일보의 기사는 ‘악의적인 의도성을 가지고 쓰였다’라고 말할 수밖에 없다. 건설노조에 의하면, A씨가 분신장소에 도착했을 때에는 이미 양회동 열사가 본인의 몸과 주변에 휘발성 물질을 뿌린 상태였고 한 손에는 라이터를 들고 “다가오지 말라”는 경고하고 있을 때였다고 한다. A씨가 한 발짝 떨어진 곳에서 분신을 만류할 수밖에 없었던 상황이었다는 것이다. 취재 차 현장을 찾았던 YTN 기자들의 진술도 일관된 것으로 확인됐다. 그런데도 조선일보는 ‘다수의 목격자에 따르면’이라며 “A씨가 분신 준비 과정을 눈앞에서 지켜보면서도 단 한 발짝도 움직이지 않았고, 어떠한 제지의 몸짓도 보이지 않았다”라고 보도했다. ‘양회동 열사의 분신을 막아달라’며 간절한 마음으로 동료한테 전화했던 A씨의 행동을 조선일보는 “(A씨가) 휴대전화로 뭘 했는지는 알 수 없다”, “(그 시간) A씨 번호로 접수된 신고는 없었다”고만 적었다. 명백한 왜곡이다.
조선일보는 기사에 앞서 “자살보도 권고기준에 입각, 해당 사건(양회동 열사 분신)에 대한 보도를 최소화해왔다”면서 “그러나 ‘극단적 선택 그 자체’가 아니라 ‘당시 사건 현장에 있던 사람들의 대처’에 미심쩍은 부분이 있었고, 이 부분에 대해서는 보도의 필요성이 있다고 판단했다”고 밝혔다. 조선일보가 굉장히 ‘윤리적 취재와 보도를 지향하고 있는 것’처럼 설명했지만, 이 말이 인용된 기사부터 취재윤리의 ABC조차 지키지 않았다는 게 드러났다.
양회동 열사의 죽음을 ‘자살’로만 볼 것인지 ‘사회적 타살’로 볼 것인지 별개로 치더라도, 조선일보의 이런 자의적 문법은 위험하다. 한 건설 노동자의 사망에 정치적 의구심을 가함으로써, 사망에 이르게 된 노동자가 죽음에 이르게 된 사회구조적 문제를 가리기 때문이다. 그러라고 <자살보도 권고>와 <인권보도준칙>이 마련된 게 아니다.
조선일보가 인용한 CCTV화면 또한 문제가 없지 않다. 건설노조는 조선일보 기사 속 CCTV 화면의 위치와 각도 등을 살펴본 결과, ‘춘천지방검찰청 강릉지청 종합민원실 건물에 설치된 CCTV’라고 특정했다. 이런 정황으로 볼 때, 해당 CCTV 화면은 춘천지방검찰청이 제공한 것으로 보이며, ‘독자제공’이라는 조선일보의 표기는 허위일 가능성이 높다. 검찰청은 극도로 민감한 CCTV 영상을 조선일보에 제공하게 된 경위를 명확하게 밝혀야 한다.
윤석열 정부의 ‘노조혐오’ 정책과 (노동)혐오를 자극하는 조선일보의 보도 시스템의 합작품
양회동 열사의 사망과 조선일보의 악의적 보도를 일회성 사건으로 볼 수 없다. 앞서 지적했듯, 윤석열 정부의 ‘노조혐오’ 정책과 (노동)혐오를 자극하는 조선일보의 보도 시스템이 만난 결과로 봐야한다.
조선일보는 그동안 자회사인 ‘조선NS’를 통해 사회적 소수자를 향한 ‘혐오’를 증폭시키는 기사를 지속해서 작성해왔다. 지난 5월 <[단독] 넉달만에 욕창으로...脫시설 사업으로 ‘독립’한 장애인의 쓸쓸한 죽음> 기사도 마찬가지다. ‘탈시설한 장애인이 제대로 된 지원을 받지 못하고 방치되다가 욕창으로 끝내 사망했다’는 내용이다. 조선일보는 이를 통해 전장연이 중증 장애인을 강제로 내세워 투쟁의 수단으로 이용하고 있다는 악의적인 공격을 가하고 있다. 하지만 조선NS 기사의 대부분은 사실과 다르다는 게 드러났다.
조선일보 구성원들에 묻고 싶다. 조선NS가 취재윤리에 입각해 기사를 작성하고 있다고 생각하는가. ‘조선일보 기자가 쓴 기사가 아니라’는 변명은 소용없다. <건설노조원 분신 순간, 함께 있던 간부는 막지도 불 끄지도 않았다> 기사는 조선일보 지면에도 실렸다. 더 이상 ‘NS는 자회사다. 본사에서 쓰는 기사가 아니니 상관없다’는 식의 태도로 책임을 회피할 수 없다. 이제라도 기자로써 반성하고 책임 있는 행동에 나서야 한다. 기자들의 힘으로 기사를 내려라. 그것만이 기사로 인해 2차 피해를 입은 A씨와 건설 노동자에게 진정으로 사과하는 길이다.
양회동 열사의 분신은 윤석열 정부의 ‘노조혐오’ 정책에서 기인한 것이다. 그런데도 국토교통부 수장인 원희룡 장관은 본인의 SNS에 근거도 부족한 조선일보 기사를 인용해 “동료의 죽음을 투쟁의 동력으로 이용하려 했던 것은 아닌지 의문”이라고 썼다. 사회 갈등을 조정해야할 주무부처의 장관이 노조 혐오 확성기 역할을 자행한 것이다. 그는 양회동 열사의 죽음을 건설노조가 투쟁의 동력으로 이용하려 한다고 의문을 제기하지만, 양회동 열사의 죽음을 진짜 정치적으로 이용하는 세력은 다름 아닌 윤석열 정부와 원희룡이다. 원희룡 장관은 혐오선동을 중단하고 사퇴로 그 직에 맞는 책임을 져야 한다.
2023년 5월 17일
언론개혁시민연대
관리자 freemediaf@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