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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분신 방조·유서 대필 기사 삭제하라”

- 언론노조 “객관적 근거나 물증 없이 혐오 조장…공식적 대국민 사과 요구한다”
“1991년에도 강기훈 유서대필 조작 왜곡 보도 주도하며 한 사람의 인권 유린”

기사승인 2023.05.19  21:37: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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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선일보

 

조선일보가 노조 탄압에 항의하며 분신한 노동자의 동료가 ‘분신을 방조했다’는 식의 왜곡 보도에 나서 최소한의 보도 윤리도 지키지 못한 2차 가해라는 비판이 거센 가운데 조선일보 자회사 월간조선에선 급기야 유서 대필‧조작 의혹까지 제기하는 보도가 나왔다. 전국언론노동조합은 조선일보를 향해 “반저널리즘 행위를 중단하고 국민 앞에 사과하라”며 공개적으로 기사 삭제를 요구했다. 

2일 정부의 건설노조 탄압 수사가 부당하다며 분신한 민주노총 건설노조 소속 양회동씨 사망을 두고 조선일보는 16일 <건설노조원 분신 순간, 함께 있던 간부는 막지도 불 끄지도 않았다> 인터넷 기사와 17일 <분신 노조원 불붙일 때 민노총 간부 안 막았다> 지면 기사를 통해 현장에 있던 동료 홍아무개씨가 양씨의 분신을 말리지 않았다고 왜곡하고 혐오를 조장했다. 부제는 ‘불 끄는 대신 몸 돌려 휴대폰 조작’이었다. 조선일보는 “다수의 목격자에 따르면, A씨(홍씨)는 양씨의 분신 준비 과정을 눈앞에서 지켜보면서도 단 한 발짝도 움직이지 않았고 어떠한 제지의 몸짓도 보이지 않았다”고 보도했다.

그러나 홍씨가 현장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양씨가 몸에 휘발성 물질이 뿌리고 한 손에 라이터를 든 채 주변 사람들에게 다가오지 말라고 경고하고 있는 상태였고, 홍씨가 노조 지부장과 연락하는 사이 양씨가 몸에 불을 붙였다. 경찰은 경향신문에 “바닥에 시너가 뿌려진 상황에서 곁에 다가갔다면 말리던 사람도 위험에 처할 수 있는 상황이었던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현장에 있었던 YTN 기자는 “동료분(홍씨)이 (양씨에게) 도대체 왜 이래, 이런 말을 하는 걸 들었다”며 “만류하는 취지의 말로 이해했다”고 증언했다. 

이런가운데 18일 월간조선은 “양씨의 유서 3장 중 1장은 글씨체가 다른 것으로 파악됐다”며 위조‧대필 의혹을 제기했다. 건설노조는 “양씨의 생전 활동 수첩을 갖고 있다. 반박할 수 없는 상세 자료가 준비돼 있다”며 “악의적 왜곡 선동 책임을 반드시 묻겠다”고 경고했다.

언론노조는 19일 성명에서 “1991년에도 조선일보는 강기훈 유서대필 조작 왜곡 보도를 주도하며 한 사람의 인권을 잔인하게 유린한 바 있다. 수십 년이 지나 무죄로 결론 난 뒤에도 제대로 된 사과 한 마디 하지 않고 있다”고 지적한 뒤 “이렇듯 한국언론사에 중대한 오점을 남겼던 조선일보 집단이 또다시 같은 방식으로 인권을 유린하고 언론자유의 본질을 왜곡하고 있다”고 강하게 비판했다. 

언론노조는 “광주시민을 폭도로 매도하며 군부독재를 옹호하는 데 앞장섰던 조선일보 집단이 다른 날도 아닌 5.18 기념일에 저널리즘의 기본 상식과 원칙에 반하는 보도로 전체 언론에 대한 국민적 불신을 가중시킨 데 대해 깊은 유감과 분노를 표한다”면서 “기사 작성자의 의심 외에 아무런 객관적 근거나 물증도 없이 혐오를 조장하는 조선일보 집단의 행위를 저널리즘 원칙에서 일탈한 반反언론행위로 규정하며 기사 삭제와 공식적인 대국민 사과를 엄중히 요구한다”고 했다. 

 

▲1991년 5월, 강기훈씨(가운데)가 유서대필 주장에 반박하기 위해 필체를 보여주고 있는 모습. ⓒ연합뉴스

 

앞서 1991년 4월 명지대생 강경대씨가 시위 도중 백골단 쇠파이프에 맞아 사망하며 노태우 정부 반대 시위가 본격화되던 중 전국민족민주운동연합(전민련) 사회부장 김기설씨가 5월8일 오전 8시경 서강대 본관 옥상에서 몸에 불을 붙인 뒤 노태우 퇴진을 외치고 투신했다. 옥상에선 유서 두 장이 발견됐다. 조선일보는 5월9일 <분신 현장 2~3명 있었다 : 목격교수 진술, 검찰 자살 방조 여부 조사>란 제목의 기사를 냈고, 이후엔 “검찰이 김씨가 남긴 유서 필적이 자필과 다른 사실을 밝혀냈다”며 당시 사회변혁의 열망을 ‘운동권의 자살방조’ 프레임으로 덮고 ‘유서 대필 공방’으로 몰아갔다. 

당시 경찰은 전민련 총무부장 강기훈씨를 유서대필 혐의자로 지목했고, 검찰은 국과수 필적 감정 결과를 내세워 강씨를 자살 방조 혐의로 기소했다. 이후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가 추가되며 강씨는 징역 3년형을 받고 만기 출소했다. 하지만 참여정부 시절 진실화해위 조사를 통해 국과수 감정 결과는 조작된 것으로 드러났고, 강씨는 2015년 5월14일 대법원으로부터 최종 무죄 확정판결을 받았다. 다음 날 조선일보는 사설에서 “모든 법관은 자신들의 판단 하나하나가 한 사람의 인생을 결정짓게 된다는 사실을 무겁게 봐야 한다”고 썼다. 

 

* 이글은 2023년 05월 19일(금) 미디어오늘 정철운 기자의 기사 전문입니다. 기사원문 보기 클릭

 

관리자 freemediaf@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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