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노총 전국건설노동조합이 5월 16일 서울 세종대로에서 ‘열사정신 계승 전국건설노동조합 총파업대회’를 열고 1박 2일간 총파업 투쟁에 나섰습니다. 총파업대회는 ‘양회동 열사 정신 계승’을 내걸고 진행되었습니다. 양회동 건설노조 강원건설지부 3지대장은 노동절인 5월 1일, 검경 수사의 부당함에 항의하며 분신한 뒤 하루 만에 사망했습니다.
대통령, 국토부 장관 “‘건폭’ 근절” 한목소리
윤석열 정부가 이른바 ‘노조 때리기’로 일관하고 있는 가운데 윤 대통령은 2023년도 제8회 국무회의(2월 21일)에서 “건설 현장에서는 강성 기득권 노조가…불법행위를 공공연하게 자행”, “‘건폭’이 완전히 근절될 때까지 엄정하게 단속해 건설현장에서의 법치를 확고히 세울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일부의 일탈을 건설노조 전반의 불법행위로 부각하며 건설노조 활동을 ‘건폭(건설현장 폭력 행위)’으로 규정한 것입니다.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도 2월 26일 건설업계와의 간담회에서 “법보다 주먹이 가까운 상태”, “(건설)현장을 무법지대로 만드는 그런 행태”라며 건설노조 활동을 불법‧폭력행위로 단정 지었습니다.
윤석열 정부는 건설노조에 적대감을 드러내며 건설노조 활동에 대한 대대적인 수사에 착수했는데요. 양회동 지대장은 지난 2월부터 조합원 채용, 노조 전임비 지급 강요 혐의로 수사를 받아왔고, 영장실질심사(구속 전 피의자 심문)를 앞둔 5월 1일 정당한 노조활동에 대한 검경의 업무방해 및 공갈혐의 적용에 억울함을 호소하며 법원 앞에서 분신하고 하루 뒤 숨졌습니다.
한겨레‧경향, 양회동 지대장 가족‧동료 통해 억울함 전달
양회동 지대장의 죽음을 다루는 시각은 신문사별로 극명하게 갈렸습니다. 한겨레 <“몇개월을 수사에 시달려…어떻게 버티겠나”>(5월 2일 김가윤‧김해정‧고병찬‧장현은 기자)는 “무리한 수사가 수개월간 지속됐다”며 “정신력이 강한 사람이라도 이렇게 압박수사를 하면 어떻게 버티겠냐”는 양 지대장 가족의 목소리, “윤석열 정부의 노동자 탄압이 노동자 분신으로 이어졌다”는 민주노총 건설노조 입장을 전했습니다. <사설/기울어진 법치주의, ‘노조 때리기’ 멈춰야 한다>(5월 2일)에서는 “정부가 불법 행위로 몰아간 내용들은 다단계 하도급 구조와 일감이 불규칙하게 제공되는 건설 현장의 특수성에서 비롯된 것이 많다”며 “최소한의 ‘노동 존중’ 없이 법치를 논해선 안 될 것”이라고 일갈했습니다.
경향신문 <건설노조 간부 정부, 노조활동 탄압 노동절에 분신 시도>(5월 2일 이삭‧조해람 기자)는 양 지대장이 남긴 편지와 동료들의 심경을 전하며, 양 지대장이 검경 수사에 대해 억울함을 호소해왔다는 사실을 보도했습니다. <사설/‘건폭 몰이’ 수사가 억울했다는 건설노동자의 분신>(5월 3일)에서는 “정부가 ‘건폭’의 대표 사례로 꼽는 월례비가 근절되지 않는 데는 공사 기간을 단축하려고 무리한 작업을 시키는 건설사 쪽 책임”이 훨씬 크고 “건설노조도 위법하고 위험한 관행(월례비 등)을 바로잡아야 한다고 주장해왔다”며, 윤석열 정부가 “해법을 찾을 대화는 도외시”한 채 “노동자들을 더 이상 죽음으로 내몰아선 안 된다”고 지적했습니다.
한국일보 <사설/노동절에 노조 간부 분신… 노사정 대화‧상생의 길 열어야>(5월 2일)는 “(윤석열 정부가 말하는) 법치주의가 틀린 말은 아니나 실제 내용은 노조 압박이고, 노사 타협은 실종된 채 문제를 악화”시킨다며 “노조를 적대적으로 몰아서는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고 밝혔습니다.
조선일보 “민주노총이 간부 분신을 현 정권 탓”
반면, 조선일보에서 양회동 지대장의 분신과 죽음은 시민 불편을 유발하는 민주노총 시위의 일부로 다뤄졌습니다. 조선일보 <민노총 2만명 점거…교통체증‧소음에 갇힌 도심>(5월 2일 정해민‧양승수‧조재현 기자)은 민주노총과 한국노총이 1일 노동절을 계기로 연 “대규모 집회로 서울 도심에서는 12시간 동안 교통체증이 빚어졌다”, “도심은 이날 정체로 몸살을 앓았다”, “집회로 인해 도심 일대의 차량 평균 통행 속도는 시속 4km였다”는 점을 부각했습니다. 양대노총의 노동절 집회 취지를 외면한 채, 교통체증으로 인한 시민 불편을 강조한 것인데요.
조선일보는 집회 도중 양경수 민주노총 위원장이 “윤석열 정권의 잔인한 건설노조 탄압이 노동자를 죽음으로 내몰았다”고 말했는데, 이는 양경수 위원장이 “건설사에 채용‧조합간부급여 강요” 혐의를 받던 민주노총 간부의 분신 시도를 “현 정권 탓으로 돌린 것”이라고 전했습니다. 해당 기사에서 검찰이 양 지대장에게 적용한 혐의 내용은 보도됐지만, 양 지대장이 호소했던 검경 수사의 부당함과 억울함은 보도되지 않았습니다.
이튿날 조선일보가 양 지대장 죽음을 전한 기사는 <민노총, 내일 윤정부 규탄집회>(5월 3일 정성원‧김정환 기자)입니다. 보도내용과 달리 민주노총 집회 소식을 제목으로 부각했는데요. 양 지대장의 분신 당시 상황과 검찰이 적용한 혐의 내용은 상세히 보도됐지만, 양 지대장이 호소했던 억울함을 전하는 데는 인색했습니다. 양 지대장이 동료들에게 남긴 편지 일부를 전한 것이 전부이기 때문입니다. 중앙일보, 동아일보와 매일경제, 한국경제는 양 지대장의 분신과 죽음을 단순 사건으로 치부하며 한국노총 관련 기사의 일부 혹은 단신으로만 전했습니다.
한겨레‧경향 “양회동 지대장 수사 무리”
한겨레와 경향신문은 5월 10일, “강원지역 건설업체 관계자들이 (양회동 지대장의) 영장실질심사를 앞두고 처벌불원서를 써준 것으로 확인”됐고 “처벌불원서를 써준 업체 관계자들은 노조로부터 협박‧강요를 받은 적이 없다고 했다”며, “정부가 건설 현장에 관한 이해 없이 무리한 수사를 밀어붙였다”고 짚었습니다.
경향신문 <다시는 이런 아픔 없도록 해달라 연대·애도 넘친 양회동 지대장 빈소>(5월 15일 김세훈 기자)는 양회동 지대장의 죽음 이후 노동계, 종교계, 학생, 정계 등 각계에서 이어지는 연대와 애도 행렬을 전하며, “동료들을 위해 건설사 책임자들과 대화하는 과정에서 임금 인상도 요구하고, 근로조건도 이야기하는 게 당연한데 이를 공갈과 협박이라고 말하는 경찰‧검찰의 수사행태가 협박과 공갈”이라는 함세웅 신부 발언을 옮겼습니다.
한겨레 <170명 사회원로 “윤 정부 건설노조 탄압 중단을”>(5월 17일 박지영 기자)은 “종교‧언론‧예술계 등 170명의 사회원로가 윤석열 정부의 ‘노조 탄압’에 항의하며 분신한 뒤 끝내 숨진 양회동 지대장의 죽음은 ‘사회적 타살’이라며 유족에 대한 정부의 사과와 노조 탄압 중단을 촉구”했다고 보도했습니다.
보수신문·경제지 “무법 노숙집회” “민폐집회” “총선 겨냥 정치투쟁”
한겨레와 경향신문은 5월 17일, 양회동 지대장을 추모하고 윤석열 정부의 건설노조 탄압 책임자 처벌을 촉구하는 민주노총 건설노조의 총파업대회 소식을 보도하며, 총파업대회에 참여하는 노조원들의 목소리와 민주노총 건설노조의 요구사항을 전했습니다.
반면 조선일보, 중앙일보, 동아일보, 매일경제, 한국경제는 총파업대회로 인한 시민 불편을 강조했습니다. 중앙일보 <건설노조 2만명 무법 노숙집회…한밤까지 도심 꽉 막혔다>(5월 17일 윤정민‧이찬규 기자)는 민주노총 건설노조 총파업대회로 “서울 도심 곳곳에서 퇴근길 극심한 교통 체증이 빚어졌다”고 전했으며, “건설노조 2만명 무법 노숙집회”라는 제목으로 일부 참가자들의 행태를 민주노총 건설노조 전체의 행태인 양 부각하기도 했습니다. “건설노조는 양씨를 ‘열사’로 칭하며 ‘경찰의 무리한 수사로 인한 죽음’이라고 주장”했다면서도 양 지대장의 영장실질심사를 앞두고 강원지역 건설업체 관계자들이 처벌불원서를 써줬다는 사실은 전하지 않았습니다.
매일경제 <평일 서울 한복판서…건설노조 ‘민폐집회’>(5월 17일 이지안‧박나은 기자)는 “민폐집회”, “대낮부터 교통대란”, “시민들 극심한 불편 겪어” 등의 표현을 쓰며 교통체증과 시민 불편을 강조했지만, 해당 기사 속 건설노조의 요구사항은 단 한 문장뿐입니다. 한국경제 <길 막고 돗자리 깔고 술판…민노총 ‘윤퇴진’ 노숙 시위>(5월 17일 안정훈 기자)는 시민 불편을 부각하며 “총선 겨냥 정치투쟁 돌입”, “노동개혁 저지 ‘정권퇴진’ 외쳐” 등의 표현으로 건설노조 총파업대회 목적이 ‘윤석열 정권 퇴진’에 있는 것처럼 왜곡했습니다.
조선일보, 확인 없이 “분신 막지도 불 끄지도 않았다”
조선일보는 온라인 기사 <건설노조원 분신 순간, 함께 있던 간부는 막지도 불 끄지도 않았다>(5월 16일 최훈민 기자)를 통해 양회동 지대장 분신 당시 함께 있던 건설노조 간부 A씨가 양 지대장의 분신을 막지 않고, 분신 후 불을 끄지도 않았다고 단정 지었습니다. 현장에 있던 YTN 기자가 경찰 조사에서 “A씨가 양씨를 말리는 말을 했다”고 진술했다면서도 “당시 상황을 본 다수의 목격자에 따르면, A씨는 양씨의 분신 준비 과정을 눈앞에서 지켜보면서도 단 한발짝도 움직이지 않았고, 어떠한 제지의 몸짓도 보이지 않았다”고 전했습니다. 경찰조사를 통한 YTN 기자 진술보다 익명의 목격자 발언에 더 무게를 둔 겁니다.
조선일보는 양 지대장의 분신 당시 상황이 담긴 CCTV 갈무리 화면을 싣고 “(양 지대장이) 자신의 몸에 불을 지르자, 이를 지켜보던 간부 A씨가 구호를 하는 대신 반대 방향으로 걸어가며 휴대전화를 조작하고 있다”며 A씨가 양 지대장의 분신을 방조했다는 뉘앙스를 더했습니다. “(양 지대장) 빈소에 적힌 상주(喪主) 명의자는 장옥기, 민노총 건설노조위원장 단 한 명뿐”이며 “민노총 홈페이지에 올라온 조문 안내 속 계좌의 명의자는 ‘전국건설노조’”였다며 민주노총 건설노조가 양 지대장 유족 뜻에 반하는 부적절한 행위를 한 양 보도하기도 했습니다.
△ 양회동 지대장 분신 관련 부적절한 기사를 온라인(5/16)에 이어 지면(5/17)에도 게재한 조선일보 |
민주노총 건설노조는 같은 날 <성명/인간이길 포기한 조선일보>(5월 16일)를 내고 조선일보를 질타했습니다. 그러나 조선일보는 민주노총 건설노조 성명과 유족‧목격자에 대한 2차 가해 지적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이튿날 지면 기사 <분신 노조원 불붙일 때 민노총 간부 안 막았다>(5월 17일 최훈민 기자)에서 같은 내용을 전했습니다.
<자살보도 권고기준 3.0>은 자살 사건을 보도할 때는 “자살 방법, 도구, 장소, 등을 구체적으로 보도하지 않는다”, “자살 장소, 방법, 도구 등에 관련된 사진이나 영상은 사용하지 보도하지 않는다”, “유가족의 심리 상태를 고려하여 세심하게 배려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양회동 지대장의 죽음 직후, 조선일보는 그가 호소한 억울함을 외면하며 민주노총 시위의 불편함을 부각했습니다. 보름이 넘는 시간이 지나서야 양 지대장 분신 당시 상황이 미심쩍다며 유족과 목격자 동의 없이 춘천지방검찰청 강릉지청 종합민원실 건물의 CCTV 화면을 보도하고, 분신 도구까지 사진으로 실어가며 유족과 목격자에 대한 2차 가해를 서슴지 않았습니다. “자살보도 권고 기준에 입각, 해당 사건 보도를 최소화”했지만 “미심쩍은 부분”이 있어 보도한다는 조선일보의 진의가 의심되는 이유입니다.
※ 모니터 대상 : 2023년 5월 2일~17일 경향신문, 동아일보, 조선일보, 중앙일보, 한겨레, 한국일보, 매일경제, 한국경제 지면기사 (▶보고서 원문 보기 클릭)
관리자 freemediaf@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