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정부는 지난해 5월 대통령 집무실을 용산 국방부로 옮겼고 그 직후 반환예정이던 미군기지를 시범개방한 뒤 지난 5월4일 환경오염 등에 대한 기준이 엄격한 ‘공원’ 대신 ‘정원’ 관련 법을 적용해 ‘용산 어린이 정원’으로 공개했다. 이는 정부가 국민의 생명과 건강을 최우선해야 한다는 원칙과는 거리가 먼 법 적용이라는 비판을 받고 있다.
반환 미군부지를 관할하는 국토부는 일부 환경단체가 토양오염이 심각하다고 주장하자 “‘대기 중’에는 오염 물질이 없다. 잔디·꽃 등으로 땅을 덮어 방문객과의 직접 접촉을 피했다”는 반박성 보도 자료로 응수했다. 국토부는 ‘대기 중 오염’은 일반 수준이라고 발표했지만 토양의 오염 정도는 구체적으로 언급하지 않았다. 정부는 미군 기지의 완전반환 후 토양 정화를 거쳐 공원 조성까지는 최소 7년이 걸릴 것이라는 전망도 나왔다. 해당 부지에서는 적지 않은 독성 물질이 검출된 데다 토양 정화 작업도 이뤄지지 않았다는 비판이 제기돼왔다. 2021년 한국환경공단이 미군과 합동으로 수행한 ‘환경조사 및 위해성 평가 보고서’에 따르면 스포츠필드에선 토양 1㎏당 석유계 총탄화수소(TPH)가 1만8040㎎ 검출돼 기준치의 36배를 넘겼다. 장군숙소 구역에서도 TPH와 아연이 각각 기준치의 29.3배, 17.8배 검출됐고, 야구장 부지는 TPH 8.8배, 비소 9.3배가 검출됐다.
정부는 용산 어린이 공원의 건강위협과 한미관계에 대한 국민적 오해와 불만에 대해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은 채 아래와 같이 다양한 행사를 직간접적으로 지원해 어린이, 청소년, 성인들의 건강을 해칠지 모르는 위험한 가능성을 방치하고 있다.
① 대통령실은 6월9일부터 용산 어린이 정원에서 ‘내가 대통령이라면’ 사진전을 개최해 대통령의 국정 활동 모습을 담은 전시했다.
② 산업통상자원부(장관 이창양)는 6월24부터 양일 간 용산 어린이 정원에서 로봇과 사람이 공존하는 미래세상을 경험할 수 있는 어린이 체험행사 '로봇 그리고 인간-로봇과 놀자'가 열린다고 23일 발표했다.
용산 어린이 정원 개방은 지난해 3월 “용산 대통령실 주변에 수십만 평 상당의 국민 공간을 조속히 조성하여 임기 중 국민과의 소통을 더욱 강화 하겠다”는 윤석열 당시 대통령 당선인의 공약에 따른 것이다. 국토부와 환경부는 개방 전 합동 모니터링을 진행해 공기질 측정 등에서 안전성을 확인했다고 밝혔지만 가장 중요한 토지 오염여부에 대해서는 함구했다.
국토교통부와 환경부는 지난달 25일 “지난해 9·11월, 올해 3월에 실내 5곳, 실외 6곳에 대한 모니터링 등을 진행했다”며 “실외는 측정물질 모두 환경기준치보다 낮거나 주변지역과 비슷한 수준으로 안전했고, 실내도 관련 환경기준에 모두 부합한 것으로 확인됐다”고 밝혔다. 또 “15㎝ 이상 두껍게 흙을 덮은 후 잔디나 꽃 등을 식재하거나 매트·자갈밭을 설치하여 기존 토양과의 접촉을 차단했고, 지상 유류 저장 탱크 등을 통해 안전에 문제가 될 요소들을 원천 차단했다”고 설명했다.
▲ 용산 어린이 정원. 사진=용산 어린이 정원 홈페이지 |
‘정원’ 공개의 두 가지 문제점
정부는 윤 대통령이 대통령실 주변 공간을 공원으로 조성하겠다고 공약한 것을 이행하는 차원에서 어린이정원을 임시 개방한다고 밝혔다. 용산 미군기지 부지는 1904년 한일의정서 체결 후 일본군이 주둔하다가 이후로는 미군기지로 활용되며 120년 동안 일반인 접근이 불가능한 지역이었다. 그러다 지난 2000년대 용산미군기지의 평택 이전이 결정되면서 기지 반환이 시작됐고, 지난해 대통령실 용산 이전을 계기로 반환에 속도가 붙었다.
정부는 용산 미군기지 약 243만㎡(약 74만 평) 중 58만4000㎡(약 18만 평) 부지를 지난해 반환받았고, 이 중 장군숙소 단지, 야구장 부지, 스포츠필드에 해당하는 약 30만㎡(약 9만 평)를 어린이정원으로 개방했다.
정부가 용산 미군 기지를 공원으로 조성한다는 당초의 계획을 수정해 오염 등 환경규제 강제력이 약한 ‘정원’ 규정을 적용한 것은 두 가지 점에서 문제로 지적되고 있다.
첫째 정부가 토질오염에 대한 정화 사업 없이 공원이 아닌 정원을 만들어 어린이 포함 일반인의 피해 가능성에 대한 우려가 크다. 지하의 오염 물질 등이 지하수를 타고 주변 지역까지 퍼질 위험도 적지 않다는 것이다.
두 번째, 용산기지 부지 오염의 원인 제공자인 미국이 정화에 대해 모르쇠 하는 태도를 취하고 있는 가운데 정부가 일반시민에게 유원지의 형태로 덜컥 공개한 것은 미군의 환경오염부담을 면제하거나 경감시켜줄 수 있다는 비판을 면키어렵다. 미군기지 환경오염문제에 대한 한미간 갈등은 해묵은 것이지만 그 원인이 한미상호방위조약 4조라는 점 등이 한미정부 당국에 언급되지 않아 국민의 오해와 불만이 매우 심각한 실정이다.
즉 미국은 한국이 제공한 미군기지를 사용하는 과정에서 발생한 오염 문제 등에 책임지지 않는다는 점은 미국이 마치 무법자이거나 무뢰배와 같은 인상을 줄 우려가 크고 한국 정부는 주권국가로써 그 위상이 심각하게 훼손될 소지가 크다고 보아야 한다.
정부가 이상과 같은 문제가 심각하다는 지적을 받는 용산 미군 기지를 공원으로 조성해 시민에게 개방하는 것은 아래와 같은 실정법에 위배된다.
대한민국헌법 제36조 3항은 “모든 국민은 보건에 관하여 국가의 보호를 받는다”고 되어 있다. 대한민국 헌법에서 건강과 관련한 조항으로는 위의 언급이 전부다. 포괄적 건강에 대한 권리만을 명시하고 있으며, 국민의 건강권 보장을 위한 국가의 의무를 강제하지 않은 채 지향적 권리 수준에 머물러 있다.
건강권이 헌법의 기본법 보장 조항에 명시되었을 뿐 사회적으로 보장되어야 할 권리로 구체적으로 정의되고 서술되지 않은 점이 미흡하지만 헌법상 기본권으로서의 건강권은, 한 사회가 그 구성원들에게 보장해야 할 기본 가치로서의 "건강"과 그에 대한 국가의 책무를 규정하고 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참고로 2011년 시점에서 세계 여러 나라의 건강 관련 조항에 대한 연구를 보면 191개국의 헌법 전문을 검토하고, 헌법에 명시된 건강권을 ①건강에 대한 포괄적 권리(the right to health), ②인구집단 건강을 위한 보건학/예방의학적 조치에 대한 권리(the right to public health), ③의료서비스에 대한 권리(the right to medical care)로 구분했다(https://www.pressian.com/pages/articles/164386).
첫 번째 범주인 건강에 대한 포괄적 권리에서는 신체적․전반적 안녕과 건강 보호, 건강 안보, 질병으로부터 자유 등이 주된 권리 내용이다. 두 번째 범주에는 시민 건강의 보호, 예방가능한 질병의 예방, 예방 서비스에 대한 접근권 보장 등 인구집단 건강의 보장과 이를 위한 국가의 의무들이 제시된다. 마지막으로 의료서비스에 대한 권리에는 질병의 치료와 재활을 통해 시민의 건강을 회복시키고, 적절한 의료기관을 설치하며, 다양한 의료서비스에 대한 접근권을 보장하는 국가의 의무들이 포함되었다. 이런 구체적인 것들이 한국헌법에 명기되지는 않았다 해도 해당 내용을 한국 정부가 이행할 의무가 있다 할 것이다.
다음으로 국민건강증진법에 따르면 용산어린이 정원의 적합성에 위배된다고 할 것이다. 이 법의 제1장 총칙 제1조(목적)에 따르면 “이 법은 국민에게 건강에 대한 가치와 책임의식을 함양하도록 건강에 관한 바른지식을 보급하고 스스로 건강생활을 실천할 수 있는 여건을 조성함으로써 국민의건강을 증진함을 목적으로 한다.”고 되어 있다. 이어 제6조(건강친화 환경 조성 및 건강생활의 지원 등) 1항은 “국가 및 지방자치단체는 건강친화 환경을 조성하고, 국민이 건강생활을 실천할 수 있도록 지원하여야 한다.”고 되어 있다.
이상의 법체계로 볼 때 정부는 보편적 건강권 보장을 위해 어떤 책임과 의무를 져야 하는지가 명백해진다.
용산어린이정원을 개장하면서 정부는 ‘공원 관련법’ 아닌 ‘수목원 관련법’ 을적용했고 그 개장은 미군의 용산미군기지 오염 원상회복 책임에 면죄부를 주면서 국민의 혈세가 투입되는 결과를 초래했다.
▲ 아동·청소년으로 구성된 '꿈의 오케스트라'가 5월13일 용산 어린이 정원에서 공연했다. 사진=용산 어린이 정원 홈페이지 |
‘공원 관련법’ 아닌 ‘수목원 관련법’ 적용
국토부는 ‘용산어린이정원’을 시민들에게 공개한 법적 근거로 2008년 시행된 용산공원 조성 특별법에 따라 도시공원 및 녹지 등에 관한 법률이 아닌 수목원·정원의 조성 및 진흥에 관한 법률을 적용했다. 수목원·정원의 조성 및 진흥에 관한 법률은 수목원 및 정원의 조성·운영 및 육성에 필요한 사항을 규정한 것이다.
이 법은 도시에서의 공원녹지의 확충·관리·이용 및 도시녹화 등에 필요한 사항을 규정한 도시공원 및 녹지 등에 관한 법률보다 환경 및 배치의 적정성 등에 대한 규제가 약하다.
정부가 윤 대통령 취임 1주년을 기념하기 위한 행사의 하나로 용산 미군기지를 시민들에게 개방하는 행사를 하기 위해 상식에 맞지 않은 법 적용을 한 것은 어린이와 시민사회의 건강 문제를 우선순위에서 배제한 것이란 비판을 자초한다.
‘용산 어린이정원 개방 중단을 위한 학부모 모임’이 지난 19일 기자회견에서 ‘오염정화 없는 용산 어린이정원은 아이들의 건강을 위협한다. 개방을 당장 중단하라’라는 제목의 회견문에서 “토양 정화는커녕 겉만 번지르르하게 흙을 덮고 잔디와 꽃으로 식재를 한들 오염물질에 노출되는 시민들의 안전과 건강은 전혀 보호받을 수 없다. 어린이정원 개방을 멈추고 토양을 정화해야 한다”며 밝힌 문제점은 아래와 같다.
--- 반환받은 용산 미군기지 부지에 대한 오염 정화를 완전히 생략하고, 당초 용산공원 조성계획과는 다른 <용산 어린이정원>이 개방되었다. 윤석열 대통령 취임 1주년을 기념하여 진행된 이 개방에서 많은 어린이들이 참가하는 전국유소년 축구대회, 전국유소년 야구대회를 진행하였다. 용산 주민들과 학부모들, 교육자들은 어린이들의 안전성이 전혀 담보되지 않은 용산 어린이정원 개방에 대한 즉각적인 중단을 촉구하는 바이다.
환경부의 ‘어린이 활동공간 환경 보건 업무 지침’에는 토양 관련 기준이 마련되어 있다. 토양에 함유된 납, 카드뮴, 6가크롬, 수은 및 비소가 환경부령으로 정하는 기준에 적합해야 하는데, 이번에 개방된 부지 가운데 미군이 스포츠 필드로 사용한 부지 환경조사 결과 석유계총탄화수소(TPH)는 36배, 납 5.2배, 비소 3.4배 등 기준치를 초과했으며, 한마디로 용산 어린이정원은 환경 기준을 모두 위반하고 있다. ---
용산구청이나 일부 초등학교에서 ‘e알리미’를 보내 학생들이 어린이 정원을 방문해 즐기도록 독려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는데 이는 오염 범벅지역에서 내일의 주인공인 어린이들을 뛰놀게 하는 위험천만한 발상이라는 지적을 받고 있다.
미군의 용산미군기지 오염 원상회복 책임에 면죄부
한국정부가 오염문제로 논란이 된 용산미군기지를 서둘러 시민에게 공개하고 이용하게 만들면서 미국은 오염 원상회복 책임에서 벗어나는 근거 일부를 화보하게 되는데 이는 결국 한국민의 혈세 부담으로 이어질 수 밖에 없 다. 용산미군지는 오염을 제거하는 데만 수조 원 정도는 당연히 들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 바 있어 국민의 혈세로 부담할 가능성이 커졌다(YTN 2022년 4월13일).
윤석열 정부의 주한미군에 대한 파격적 태도는 △미국의 한국 정부 도감청의혹에 공식적인 항의 등은 일체 생략하고 동맹을 강조하고 △일제치하의 강제징용에 대해 일본 기업 대신 한국정부가 제3자 변제라는 변칙수법을 동원해 굴욕외교 논란을 자초하거나 △후쿠시마원전 오염수의 해양방류에 앞서 시찰단을 일본 현지에 파견해 일본 내에서도 논란이 심각한 원전 오염수 방류에 면죄부를 주는 것과 매우 닮은꼴이다.
윤 정부의 한미일 군사협력구조를 구성하기 위한 미국의 의도에 굴욕적, 비자주적이라는 비아냥을 무시한 채 일방적으로 나서는 태도는 국내 노조활동 등에 대해 취하는 적대적 태도나 북한과의 대화 재개의 조치를 전면 생략하는 것과 대비된다. 특히 윤 정부가 중국과 러시아에 각을 세우면서 이들 두 개 국가에 진출하거나 통상을 하는 국내 기업들을 곤혹스럽게 만들고 있다.
윤 정부는 북한 핵과 미사일에 대한 대책이라며 미국, 일본과 군사관계를 급속히 강화하는 조치를 취하면서 군사안보에만 올인 할 뿐 경제, 기술안보에 소홀히 한다는 비판을 자초하고 있다. 주한미군에 의한 환경오염 문제에 대한 정부의 태도는 시민단체 등 자국민에 대한 태도는 국민을 주권자로 섬기는 원칙과 충돌한다는 점도 명백하다.
용산미군기지 오염 문제는 한미간의 관련 협정인 주한미군 지위협정, 즉 SOFA의 적용을 받아야 한다. 하지만 한국과 미국은 1966년 환경 관련 규정이 전무한 SOFA을 맺은 뒤 지금껏 명확한 환경오염 정화 기준을 마련하지 못했고 미군은 단 한 차례도 기지 안 오염에 대한 책임을 인정하고 치유에 나선 적이 없다(수원시민신문 2017년 7월17일). SOFA의 양해각서인 환경조항에는 ‘주한미군은 대한민국 정부의 환경법령 및 기준을 존중한다’고만 돼 있어 주한미군에 오염 문제 해결을 강제할 수 없는 상황이다(JTBC 2017년 7월11일).
SOFA 4조 1항은 미국 정부가 미국 기지 시설과 부지를 반환할 때 원 상태로 복원하거나 복원 비용을 배상할 의무를 지지 않는다고 규정하고 있다. 한미 SOFA 4조 1항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https://www.korea.kr/archive/expDocView.do?docId=28802).
--- 합중국 정부는, 본 협정의 종료 시나 그 이전에 대한민국 정부에 시설과 구역을 반환할 때에, 이들 시설과 구역이 합중국 군대에 제공되었던 당시의 상태로 동 시설과 구역을 원상회복하여야 할 의무를 지지 아니하며, 또한 이러한 원상회복 대신으로 대한민국 정부에 보상하여야 할 의무도 지지 아니한다. ---
이 조항이 논란이 되자 미국은 2001년 1월 “건강에 급박하고 실질적인 위험 ‘키세(KISE)’에 해당하는 오염은 미국 측이 정화비용을 부담해야 한다”는 입장을 ‘SOFA 환경보호에 관한 특별 양해각서’에 아래와 같이 포함시켰다(https://www.korea.kr/archive/expDocView.do?docId=28802).
--- 미합중국 정부는 주한미군 활동의 환경적 측면을 조사하고 확인하며 평가하는 주기적 환경이행실적 평가를 수행하는 정책을 확인하며, 이는 환경에의 악영향을 최소화하고, 계획․프로그램을 마련하여 이에 따라 소요되는 예산을 확보하며, 주한미군에 의하여 야기되는 인간 건강에 대한 공지의 급박하고 실질적인 위험을 초래하는 오염의 치유를 신속하게 수행하며, 그리고 인간 건강을 보호하기 위하여 필요한 추가적 치유조치를 검토하기 위한 것이다. ---
‘키세’는 'SOFA 환경보호에 관한 특별 양해각서'에서 미국이 책임질 환경오염의 내용을 표현한 영문 표현에서 해당 글자의 맨 처음 알파벳을 모아놓은 것이다. 그 영문 표기는 “the Government of the United States confirms its policy … to promptly undertake to remedy contamination caused by United States Armed Forces in Korea that poses a known, imminent and substantial endangerment (KISE) to human health.”이다. 이는 미국은 미군기지에서 발생한 환경오염 가운데 ‘이미 알려져 있고, 긴박하며 실질적인 위험으로 인간 건강에 해로운 사항’에 대한 것만 책임을 진다는 것이다.
‘SOFA 환경보호에 관한 특별 양해각서’ 3항에서 미국은 한국의 환경법규를 존중(respect)한다는 것으로 그것을 준수한다는 것과는 거리가 있다(https://www.usfk.mil/Portals/105/Documents/SOFA/A08_Amendments.to.Agreed.Minutes.pdf However, in the agreed minutes amended to the SOFA in 2001, the United States “confirms its policy to respect relevant Republic of Korea Government environmental laws, regulations, and standards.”). 미군은 주한미군 장병 가운데 ‘키세’로 인해 건강에 문제가 생긴 사례가 없다는 점을 앞세우고 있고 이러다 보니 한국 내 어느 미군기지도 ‘키세’가 적용되지 않았다.
그 결과 2001년 이후 ‘키세’로 인정된 사례는 전무하고 미국이 주한미군기지 오염에 대해서는 한 푼도 부담한 것이 없다. 미군이 제시한 ‘키세’에 해당하는 환경오염이 없다는 이유였다. 이는 미국이 ‘키세’에 해당하는지 여부를 판정하는 조사 방법을 비합리적인 것으로 고집한 탓이었다.
‘키세’는 미국의 환경책임과 환경정화조치와 관련된 연방법 ‘종합환경대응배상책임법(CERCLA)’과 유사한 내용이다(https://en.wikipedia.org/wiki/Superfund#Procedures). CERCLA는 잠재적인 환경오염 책임당사자의 범위를 정하여 엄격책임, 연대책임, 소급책임을 부과하고 배상자력 확보를 강제하고 있다는 것인데 미국은 한국 미군기지 오염 문제를 한국법이 아닌 미국 법에 의해 처리하겠다는 발상부터 대등한 국가 간의 태도가 아니다. 미국은 한미상호방위조약 4조의 권리를 집행하는 과정의 연장선상에서 주한미군 기지 오염문제도 대처하고 있는 것이다. 주한미군기지는 한국에서 치외법권 이상의 특혜를 누리고 있어 한국의 행정력이 전혀 미칠 수 없는 지역이기도 하다.
▲ 정부는 2020년 12월11일 미국과 제201차 주한미군지위협정(SOFA) 합동위원회를 열어 11개 미군기지와 용산기지 2개 구역을 반환받기로 합의했다고 밝혔다. 사진은 이날 반환 결정된 용산기지 2개 구역 중 ‘사우스 포스트 스포츠 필드’의 모습. ⓒ 연합뉴스 |
환경부는 주한미군 기지 오염문제에 대해 한국 환경법을 적용해야 한다는 입장이지만 미국은 공식적으로 ‘키세’를 고집하면서 사사건건 제대로 된 조사조차 이뤄지지 못하고 있다. 미군기지가 치외법권적 위상이라는 것은 명문화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거론치 않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의 한미공동조사는 아무 실효성이 없다. 예를 들어 2004~2007년 SOFA합동위원회는 41개 주한미군기지에 대해 조사했지만 개개 기지마다 조사기간은 105일로 제한됐고 기지를 방문해 현지 조사할 수 있는 기간은 6일에 불과했다.
실제, 미군측은 기지 조사나 협의에 비협조적이었다. 기지 오염을 조사할 한국 기업들은 기록 심사를 위한 30일 동안의 기한까지 기지에 대한 전체 환경 자료를 제공받지 못했다. 현지 조사기한을 연장하자는 한국측 요구는 미군이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 같은 악조건에도 불구하고 한국 측 조사관들은 미군이 반환한 23개 미군기지 가운데 22개가 발암성 물질이 위험 수위로 한국의 안전기준을 초과한 상태였다.
용산기지의 경우 미군은 그 반환을 앞두고 이 기지 오염여부에 대한 조사하자는 한국 정부나 서울시의 요구를 거부하다가 2015년 허용했지만 한국 정부는 그 내용을 공개하지 않아 이에 대해 한국 시민단체들이 소송을 제기했다. 환경부는 외교 사안이라 불가하다면서 거부하다가 법원이 시민단체의 손을 들어주자 항소하는 방식으로 버텼다(Korea Times. 2016년 7월17일).
주한미군기지는 ‘치외법권 적’ 지위를 누리고 있어 한국의 공권력이 적용되지 못하고 있고 미군부대에서 발생한 하나의 사례를 살펴보면 이런 한미간의 불평등한 현실이 그대로 들어난다(참고로 필리핀과 미국의 군사관계를 보면, 미군의 자국내 한시주둔 시 필리핀군 기지내에서 체류토록 하고 미군은 필리핀 국내법 적용을 받는다. 미군이 필리핀 기지에 설치하는 시설은 추후 필리핀 정부에 귀속된다.). 서울지하철 녹사평역 주변 오염이 근처의 용산 미군기지에서 유출됐다며 법원이 2007년 18억원의 배상 판결을 내렸을 때 그 배상금 18억여 원은 한미상호방위조약에 따른 특별법에 따라 미국이 아닌 한국 정부가 서울시에 지급했다(JTBC 2014년 1월18일). 국민의 혈세가 미군기지 오염 제거 등에 지출된 것이다.
또한 한미 두 나라가 2009년 합의한 공동환경평가절차에 따르면 한국 정부는 반환 미군기지 환경조사 기간을 20~150일로 한정하고 미군 합의 없이 관련 정보를 공개할 수 없다. 이 절차 때문에서 한국 정부는 일부 미군 기지에서 확인된 환경 문제에 대해 미군이 합의해 주지 않아 공개하지 못했다. 이는 주권 국가인 한국이 미군기지로 사용된 부지의 환경오염, 그 원상회복 문제에 대해 합당한 주권을 행사하지 못하고 국민들에게 심각한 불명예와 피해를 감수케 하고 있다.
용산미군기지 부지 75%가 113년 만에 2017년 서울시민의 품으로 돌아왔지만 이 기지의 환경오염 문제가 심각하다. 한국 외교부는 2019년 12월 서울 용산 미군기지 일부를 포함해 반환받는 12개 주한미군 기지의 환경오염 책임 문제를 두고 미국이 오염 정화 의무가 없다는 주장을 고수하자, 환경 치유 비용 협의가 원만하게 이뤄지지 않을 경우 미국에 소송을 제기할 수 있다고 밝혔다. 외교부는 한미가 기지 12곳 반환에 합의했다고 밝히며, 환경 치유 비용을 먼저 보전한 뒤 미국 측에 책임을 지우겠다고 했다(한국일보 2020년 12월18일).
외교부의 이런 태도는 불편하 한미동맹의 현실에 대해 국민에게 가짜뉴스를 제공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 한국 정부는 주한미군 문제로 한미간 갈등이 발생할 경우 마치 대등한 국가관계가 적용되는 것인 양 밝히고 있을 뿐이다. 미국이 슈퍼 갑이고 한국이 군사적 주권이 온전치 못한 을이라는 점을 한번도 공식 언급한 적이 없다. 윤석열 정부가 국제사회를 향해 자유와 가치를 강조하고 있는데 이런 원칙이 한미간에도 적용되기를 바랄 뿐이다.
미국이 서울지하철 녹사평역 주변 오염 비용을 거부했던 사례에 비춰 주한미군이 부지로 사용한 뒤 발생한 용산 기지 등의 환경오염에 대한 책임을 지지 않을 경우 정화비용을 고스란히 국민의 세금으로 충당할 가능성이 크다. 오염 상태에 대한 정확한 점검은 이뤄지지 않았지만 약 1조 원 전후가 들어갈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그러면 미군이 새로 옮겨가는, 단일미군기지로는 세계 최대라는 평택미군기지의 환경오염문제는 어떻게 되는가? 현재의 한미동맹 관계가 개선되지 않으면 용산 미군기지의 경우와 동일할 것으로 추정된다.
▲ 한미상호방위조약 가(假)조인식을 지켜보고 있는 이승만 대통령(뒷줄 가운데)과 가조인식에 서명하는 변영태 한국 외무부 장관(왼쪽), 존 포스터 덜레스 미국 국무부 장관(오른쪽). 사진=나무위키 |
용산 어린이 정원에서 확인된 한미상호방위조약 등 한미동맹의 불평등 문제
윤석열 정부가 용산 어린이 정원의 무리한 개방과 그 활용에 앞장선 모습은 책임정치, 주권국가의 의미를 새삼 되돌아보게 한다. 윤 대통령이 앞장서서 통합과 조정보다 갈등과 분열을 조장하는 정치를 한다는 비판이 커지고 있고 한미관계의 현실에 대한 사실관계 확인, 대안 모색도 미흡한 실정이다.
특히 북한 핵과 미사일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미국이 주도하는 신냉전 추세가 강화되면서 국내에서의 한미관계 불평등, 종속성에 대한 문제제기나 공론화는 더욱 위축되고 있다. 윤 대통령이 앞장서서 군사력으로 평화를 보장한다는 미국의 국가이기주의적 군사안보정책에 올인할 뿐 박정희, 노태우, 김대중, 노무현 대통령이 노력한 남북간의 전쟁방지, 평화통일 노력을 전면 부인하고 있는 것도 심각하다.
윤 대통령은 지난 29일 서울 중구 롯데호텔에서 열린 ‘한미동맹 70년, 한반도의 오늘과 내일’을 주제로 ‘2023 한반도 미래 심포지엄’에서 권영세 통일부 장관이 대독한 축사를 통해 “한미동맹은 가치동맹이자 세계 평화와 번영에 이바지하는 정의로운 동맹”이라며 “한반도에 굳건한 평화를 구축하고 인태 지역의 자유, 평화, 번영을 확대하는 데 힘을 모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윤 대통령은 이어 “지금의 눈부신 성장과 번영의 중심축이었던 한미동맹이 미래 세대에게 더 큰 기회로 이어질 수 있도록 정부가 최선을 다해 뒷받침할 것”이라고 밝혔다.
윤 대통령은 기회만 있으면 한미동맹을 극찬하고 있어 그 실체가 어떤 내용인지를 구체적으로 살펴볼 필요가 있다. 그렇게 하면 한국이 세계 경제력 10위권, 국방력 6위권의 선진국으로 부상한 상황에서 군사주권을 송두리째 외국의 손에 맡겨둔 채 독자적인 한반도 정책, 민족의 숙원이자 동북아 평화정착의 첫걸음인 평화통일 노력을 외면하는 정치적 행태의 객관적 의미가 확연해질 것이다.
한미동맹의 실체는 그 핵심축이 되고 있는 한미상호방위조약을 살펴야 한다. 이 조약은 전쟁직후인 1953년 10월1일 워싱턴에서 맺어진 뒤 1년 후 발효되었으며 전문과 6개의 조항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 조약의 포괄범위는 한반도가 아니라 태평양지역으로 되어 있어 미 본토의 미군까지 주한미군에 순환배치 되는 근거가 되고 있다.
또한 이 조약은 무기한으로 유효하고 단지 어느 당사국이든지 타당사국에 폐지를 통고한 후 1년 후에 본 조약을 종식시킬 수 있다고 되어 있다. 한미상호방위조약은 헌법 제6조에 의해 국내법과 같은 효력을 가지며 폐기되지 않는 한 미군의 무기한 한국 주둔이 가능하다.
한미상호방위조약은 북한의 핵과 미사일 위협 등을 고려할 때 한미동맹의 근간으로 중요성이 있다 해도 21세기 국제사회에서 그 타당성을 인정받기 어려울 정도로 심각하게 미국 쪽에 유리하다는 점에서 주권국 한국의 헌법 10조, 35조, 37조, 66조, 120조 등에 위배돼 더 이상 방치할 수 없는 심각한 상태로 판단된다.
한국은 경제력이 세계 10위권이고 무기를 사장 많이 수입하는 국가이지만 한미상호방위조약으로 표출되는 한국의 군사적 주권이 미약한 것에 대해 가해지는 국제적 수치와 미국의 주한미군기지 오염 문제 등에 대한 무책임한 태도는 심각하다. 한국 정부의 주한미군에 대한 과도한 경제적 지원과 비용 감수 등을 강제하는 이 조약은 주권국가 한국의 위상에 부합하는 내용으로 시정해야 된다. 하지만 국내에서의 인식 부족과 정치권의 무관심 등은 심각하다.
미군은 21세기 세계에서 가장 불평등한 군사동맹으로 평가되는 한미상호방위조약을 앞세워 주한미군기지의 오염 책임을 인정하고 조치에 나선 적이 2009년 이후 없다. 이는 불평등한 한미행정협정(SOFA), 한미연합토지관리계획(LPP), 공동환경평가절차(JEAP) 때문이고 SOFA, LPP 등이 한국에서 볼 때 너무 불평등한 것은 이들 협정 등의 모법인 한미상호방위조약의 불평등에서 기인하기 때문이다.
특히 SOFA가 미군의 한국 배비 시 구역과 시설에 대한 비용만을 한국이 부담하는 것으로 되어 있지만 SOFA 5조 1항에 근거해 방위비분담특별협정(SMA)를 만들어 한국에 막대한 미군 주둔비용을 부담토록 하고 있다. 이런 비합리적인 사항은 한미상호방위조약이 현재처럼 존속하는 한 지속되면서 미국이 한국에서 누리는 슈퍼 갑의 특권이 계속 유지될 수 밖에 없고 한국 국민은 미국과 군사동맹 관계를 맺고 있는 필리핀이나 일본 등이 겪지 않는 차별적인 불편과 불이익을 감수할 수 밖에 없다.
한미상호방위조약은 미국이 일본, 필리핀과 맺은 상호방위조약에 비해 미국이 지나칠 정도의 특권을 한국에서 누리고 있어 반드시 시정되어야 한다. 이는 헌법 10조 즉 ‘모든 국민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가지며,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가진다. 국가는 개인이 가지는 불가침의 기본적 인권을 확인하고 이를 보장할 의무를 진다’에 저촉되기 때문이다. 동시에 헌법 제66조 2항의 ‘대통령은 국가의 독립·영토의 보전·국가의 계속성과 헌법을 수호할 책무를 진다’와 제37조 1항의 ‘국민의 자유와 권리는 헌법에 열거되지 아니한 이유로 경시되지 아니한다’에 위배된다 할 것이다.
군사적 주권이 미약한 것에 대한 국제적 수치와 미국의 주한미군기지 오염 문제 등에 대한 무책임한 태도, 미군에 대한 한국 정부의 다양한 경제적 지원과 비용 감수 등은 큰 실망과 분노를 자아내게 했다. 이는 헌법 제35조 1항의 ‘모든 국민은 건강하고 쾌적한 환경에서 생활할 권리를 가지며, 국가와 국민은 환경보전을 위하여 노력하여야 한다’와 같은 조의 2·3항에 위배되며 헌법 제66조 2항에 저촉된다.
한미상호방위조약 1·3조는 한미 두 나라가 태평양지역의 평화를 위해 집단안보를 추구하게 되어 있는데 외국의 경우처럼 자국영토와 가까운 지역에 국한해야지 자칫 한국이 동북아지역 분쟁에 주한미군이 발진기지가 될 우려가 있다. 한미상호방위조약에는 한반도에 무력충돌이 발생하고 한미 등이 개입할 경우 그 이후 국제연합에 보고할 의무 등이 없다. 이는, 미국이 일본과 필리핀과 맺은 군사동맹의 경우 무력충돌이 발생할 경우 군사적 개입은 국제연합의 토의와 결정을 거치게 되어 있는 것과 차이가 있어 정상화 되어야 한다. 미국이 이라크, 리비아의 경우처럼 침략 성격의 군사행동을 하는 경우도 상정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한미상호방위조약 4조의 부속합의 성격인 외국군주둔군협정 SOFA도 그 모법의 불평등 취지에 맞춰 한국에 심각하게 불리한 조항들을 담고 있어 주한미군기지 오염문제 등에 대한 합당하고 상식적인 미군의 원상회복 조치가 가능토록 한미상호방위조약 4조 등을 개폐해야한다.
필리핀은 자국 주둔 미군기지에 대해 필리핀 부대 내에서 설치할 것을 규정하는 등 외국군에게 자국 영토를 사용토록 하는데 매우 엄격하다. 한국은 주한 미군에 부지, 시설을 제공하게 되어 있어 다수의 미군기지가 전국에 산재해 있어 국토의 효율적 이용 등에 역행한다. 이는 헌법 제66조 2항과 제120조 2항의 ‘국토와 자원은 국가의 보호를 받으며, 국가는 그 균형있는 개발과 이용을 위하여 필요한 계획을 수립한다’에 저촉된다.
미국은 한미상호방위조약, 한국군에 대한 전시작전권 행사 등으로 한국군사력에 강력한 통제력을 행사하고 있으며 미국 정부 당국이 북한에 대해 선제공격이나 김정은 제거 군사작전 등을 공개리에 언급하는데도 한국 정부와 사전 협의가 없는 것처럼 비춰진다. 이는 심리전 차원이라 해도 한국민에게는 매우 곤혹스런 일이다. 즉 미국의 대북 군사작전에 따른 북한의 한국 군사적 공격 등을 초래해 휴전선 이남에서도 막대한 피해가 발생할 수 있는 공포 때문이다. 미국의 자의적 판단에 따른 전쟁위험은 헌법 제66조 2항에 저촉된다.
또한 국제적으로 한국의 군사주권에 대한 의문이 제기된다는 점에서 국치스럽다. 이런 여러 가지 사실들은 주권국인 한국의 헌법 제66조 2항에 위배된다 하겠다. 북한 핵과 미사일 문제가 심각하다 해도 한국은 세계에서 무기를 가장 많이 수입하는 국가이고 국방예산만 해도 세계 10위권 전후에 속한다. 한국은 북한에 비해 핵과 장거리 미사일은 없지만 경제력은 40배 정도, 군사예산은 30배 북한에 앞선다. 군사적 주권을 정상화시키고 국제적으로 떳떳한 국가의 위상을 확립하는 것이 시급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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